|
사도행전 11장 19-24절. 안디옥 교회의 설립
19절.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New American Standard Bible: So then those who were scattered because of the persecution that occurred in connection with Stephen made their way to Phoenicia and Cyprus and Antioch, speaking the word to no one except to Jews alone.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Οἱ μὲν οὖν διασπαρέντες ἀπὸ τῆς θλίψεως τῆς γενομένης ἐπὶ Στεφάνῳ,
those indeed therefore having been scattered from the persecution the having taken place on Stephen
직역하면 ‘그러므로 스데반에게 일어난 박해로 흩어졌던 자들이’란 뜻입니다.
‘일어난’(γενομένης)은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taken place) 과거에 일어난 확실한 사실(AD 38년)을 가리킵니다.
‘흩어진’(διασπαρέντες)은 부정과거 분사 수동태로서(having been scattered) 과거에 박해로 인해 흩어졌던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διῆλθον ἕως Φοινίκης καὶ Κύπρου καὶ Ἀντιοχείας,
pass through to Phoenicia and Cyprus and Antioch
직역하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에 이르렀다’
‘이르러’(διῆλθον)는 부정과거로서(pass through) 과거에 이르렀던 확실한 사실을 가리키고, 원형(διέρχομαι)은 ‘갔다, 두루 다녔다, 소문을 펼쳤다’(go through, go about, spread a report)는 뜻입니다.
‘베니게’는 페니키아로서 레바논에 해당하는 지역이며, 지중해변에 남북으로 320킬로로 이어지고, 폭이 50킬로 정도로 길게 이어진 지역이고, 중요 도시는 두로와 시돈이 있고, 북쪽으로는 수리아, 남쪽으로는 블레셋, 동쪽으로는 레바논이 위치해 있었습니다.
‘구브로’는 팔레스틴 서쪽 지중해에 있는 섬으로서 바나바의 고향이고, 나중에 바나바와 바울이 전도한 곳입니다. (행 13:4-12)
‘안디옥’은 로마 제국에서 로마와 알렉산드리아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도성이었고, 로마의 지원을 받아서 잘 발달된 도시였고, 수리아 지방의 수도였고, 오론테스강을 끼고 건설되어 있었고, 인구가 약 50만 명이나 되었고, 유대인의 집단 거주지가 있었습니다. (Farrer, the life and work of St. Paul. 288)
이 안디옥은 많은 외국인이 모여 사는 곳이었기 때문에, 배타적인 유대인들도 이방인들과의 교제가 활발하게 이루어져서, 기독교의 복음 전도를 비교적 쉽게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래서 이곳에 최초의 이방인 중심의 교회가 설립되었고, 이 안디옥 교회를 중심으로 바울의 세 번에 걸친 전도 여행이 이루어졌습니다.
한편 안디옥은 주신제(酒神祭)를 비롯한 우상이 가득한 곳이었고, 사기꾼 마법사 돌팔이 의사 거짓 약장수가 가득했고, 온갖 죄악이 가득한 곳이어서, 복음을 통한 새로운 빛이 간절히 요구되는 곳이었습니다. (Renann, the apostles, 7장 by Baker).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μηδενὶ λαλοῦντες τὸν λόγον, εἰ μὴ μόνον Ἰουδαίοις.
to no one speaking the word, if not only to Jews
직역하면, ‘유대인이 아니면 아무에게도 말씀을 전하지 않았는데’란 뜻입니다.
‘전하는데’(λαλοῦντες)는 현재분사로서(speaking) 말씀을 전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1. 유대가 우리나라의 전라남도라면, 사마리아는 전라북도와 같습니다.
그런데 베니게는 충청남북도 서해안과 같고, 구브로는 인천 앞바다에 있는 백령도와 같습니다.
베니게는 두로와 시돈지역이고 일반 역사에서 페니키아라고도 합니다.
이곳은 구약에서 아합의 아내 이세벨의 친정이고, 이세벨은 시돈 왕 엣바알이 친정아버지였습니다.
이처럼 두로와 시돈 지역은 바알 숭배의 본거지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방 우상 나라에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구브로는 바나바가 살던 곳이고, 바나바가 구브로에 있는 밭을 팔아서 바쳤습니다. (행 4:36-37)
그런데 사울의 핍박으로 흩어진 예루사렘 교회의 성도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에 사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20절.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there were some of them, men of Cyprus and Cyrene, who came to Antioch and began speaking to the Greeks also, preaching the Lord Jesus.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Ἦσαν δέ τινες ἐξ αὐτῶν, ἄνδρες Κύπριοι καὶ Κυρηναῖοι,
were being but some of them, men of Cyprus and Cyrene,
직역하면 ‘그러나 구브로와 구레네 사람들, 그들 중에 몇 사람이 있었는데’란 뜻입니다.
‘있었는데’(Ἦσαν)는 미완료과거로서(were being) 계속 있었던 것을 가리킵니다.
‘구레네’는 리비아 지역의 수도입니다.
그러므로 구브로 섬 출신의 전도자들과 아프리카 구레네 출신의 전도자들이 안디옥에서 전도하여, 이방인 교회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후에 예루살렘 교회에서 파송된 바나바가 교회를 부흥시키고, 바나바와 사울이 함께 사역하여 대교회로 부흥시키게 됩니다.
안디옥에 이르러
οἵτινες ἐλθόντες εἰς Ἀντιόχειαν
who having come to Antioch
‘이르러’(ἐλθόντε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come) 과거에 안디옥이 이른 사실을 가리킵니다.
당시에 안디옥은 동양에서 가장 큰 도성이었고, 많은 유대인의 집단 거주지도 있었고, 안디옥의 유대인들은 개방적이었고, 예루살렘 교회에 안디옥 출신의 니골라가 안수집사로 있었다는(행 6:5) 여러 가지 이유로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이 안디옥에도 가서 전도했습니다.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ἐλάλουν καὶ πρὸς τοὺς Ἕλληνας,
were speaking also to the Greeks
‘말하여’(ἐλάλουν)는 미완료과거로서(were speaking) 계속 말하고 다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헬라인’이란 헬라어를 말하는 유대인이란 뜻이 아니고, 이방인이(Gentiles)라는 뜻입니다.
주 예수를 전파하니
εὐαγγελιζόμενοι τὸν Κύριον Ἰησοῦν.
preaching the Lord Jesus
‘전파하니’(εὐαγγελιζόμενοι)는 현재분사로서(preaching) 계속 전파하고 다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1. 사울의 핍박으로 흩어졌던 유대인들이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 헬라인에게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원래 예수님은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만이 아니라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는데, 유대인 성도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유대인들에게만 전도하다가, 얼떨결에 이방인에게도 전도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이방인 전도는 계획적으로 말씀 순종의 믿음으로 전도한 것이 아니라, 우발적으로 이방인 전도를 한 것입니다.
21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the hand of the Lord was with them, and a large number who believed turned to the Lord.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καὶ ἦν χεὶρ Κυρίου μετ’ αὐτῶν,
and was being hand of Lord with them
직역하면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있었다’는 뜻입니다.
‘있었다’(ἦν)는 미완료과거로서(was) (주의 손이) 계속 함께 있었다는 뜻입니다.
‘주의 손이 함께 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축복해주셨다는 뜻이고, 때로는 이적과 기사가 동반되는 것을 뜻합니다. (행 4:30, 13:11, 눅 1:66, 출 8:19)
당시 안디옥 사람들은 AD 37년 3월 23일에 일어난 지진에 의해서 마음이 열려 있는 상태도 좋은 영향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πολύς τε ἀριθμὸς ὁ πιστεύσας
great then number the having believed
‘믿고’(πιστεύσα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believed) 확실하게 믿은 과거의 사실을 가리킵니다.
주께 돌아오더라
ἐπέστρεψεν ἐπὶ τὸν Κύριον
turned unto the Lord
‘돌아오더라’(ἐπέστρεψεν)는 부정과거로서(turned) 주께로 단호하게 돌아온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1. 이처럼 이방인 전도를 하니까, 주의 손 즉 성령님이 함께 하셔서,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왜냐하면 이방인 전도는 주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주님의 뜻대로 살면 형통하고 성공합니다.
주의 손이 함께 했다는 것은 성령님이 함께 했다는 뜻입니다.
바울 사도도 사도행전 13장 11절에서 박수 엘루마를 장님 되게 할 때 주의 손이 그렇게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주의 손이 함께 하셔서 안디옥 교회가 큰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하면 무슨 일을 하든지 성공하게 됩니다.
비록 시작은 미약하더라도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하면, 크게 성공하게 됩니다.
22절.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 news about them reached the ears of the church at Jerusalem, and they sent Barnabas off to Antioch.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Ἠκούσθη δὲ ὁ λόγος εἰς τὰ ὦτα τῆς ἐκκλησίας τῆς οὔσης ἐν Ἱερουσαλὴμ περὶ αὐτῶν,
was heard now the word in the ears of the church of the being in Jerusalem about them
직역하면 ‘그들에 관해서 그 말이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의 귀들에 들렸다’는 뜻입니다.
‘있는’(οὔσης)은 현재분사이고(being), ‘들렸다’(Ἠκούσθη)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was heard) 분명하게 들린 과거의 사실을 가리킵니다.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καὶ ἐξαπέστειλαν Βαρνάβαν ἕως Ἀντιοχείας·
and they sent forth Barnabas until Antioch
‘보내니’(ἐξαπέστειλαν)는 부정과거로서(they sent forth) ‘그들이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냈다’는 과거의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바나바’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 토지를 팔아서 기부한 사람이고, 회심한 사울을 예루살렘 교회에 소개한 사람이고, 나중에 바울과 함께 선교 여행을 다닌 사람입니다.
그리고 바나바의 생질은 마가 요한이고, 누나인 마리아의 집은 예수님이 성만찬을 거행하신 것이고, 당시에 예루살렘 교회로 쓰였습니다.
특히 바나바는 고향이 구브로 섬이었고, 안디옥과 가까웠기 때문에, 안디옥에 아는 사람들이 많았으므로,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에 파송할 적절한 사람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학자의 말대로 바나바는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흩어져 간 전도자들을 물질적으로 후원했기 때문에, 예루살렘 교회가 바나바를 안디옥교회로 파송했다는 것입니다. (Baker)
그러므로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의 영향과 목회로 설립되고, 확장된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예루살렘 교회는 자기들에게서 흩어져나간 유대인 성도들이 전도해서 안디옥 교회가 설립되고 크게 부흥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를 안디옥 교회의 목회자로 파송했습니다.
이전에 사마리아 교회가 설립되었을 때는 베드로와 요한을 파송했습니다. (행 8:14)
그런데 이방인 중심의 안디옥 교회가 설립되자, 바나바를 목회자로 파송했습니다.
이 바나바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준사도였습니다.
바나바의 누나인 마리아와 생질인 마가의 집은 예루살렘 교회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나바는 예루살렘 교회가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구브로에 있는 밭을 팔아서 헌금했던 분입니다.
이 바나바가 살던 구브로는 안디옥 바로 앞에 있는 섬이었습니다.
마치 백령도가 서울의 앞바다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즉 구브로가 백령도라면 안디옥은 서울에 해당했습니다.
그래서 바나바를 안디옥 교회에 파송했습니다.
이처럼 교회에서 선교사나 목회자로 파송할 때는 그 교회에서 가장 훌륭한 인재를 파송하곤 했습니다.
23절.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n when he arrived and witnessed the grace of God, he rejoiced and began to encourage them all with resolute heart to remain true to the Lord;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ὃς παραγενόμενος καὶ ἰδὼν τὴν χάριν τὴν τοῦ Θεοῦ, ἐχάρη,
who having come and having seen the grace of the God, was rejoiced
‘이르러’(παραγενόμενο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come) 과거의 확실한 사실을 가리키고, ‘보고’(ἰδὼν)도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seen) 과거에 본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기뻐하여’(ἐχάρη)는 부정과거 수동태(was rejoiced)로서 참으로 대단히 기뻐하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καὶ παρεκάλει πάντας τῇ προθέσει τῆς καρδίας προσμένειν τῷ Κυρίῳ,
and was exhorting all with the resolute purpose of the heart to abide in the Lord
직역하면 ‘마음의 굳건함으로써 주 안에 머물러 있도록 모두에게 계속 권고했다’는 뜻입니다.
‘머물러 있도록’(προσμένειν)은 현재 부정사형 동사로서(to abide) 항상 머물러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권하니’(παρεκάλει)는 미완료과거로서(was exhorting) 계속 권하고 있는 것을 가리키고, 원형(παρακαλέω)은 ‘초청하다, 간청하다, 권고하다, 위로하다, 격려하다’(① send for, summon, invite, ② beseech, entreat, beg, ③ exhort, admonish, ④ comfort, encourage, console)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1.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에 가서 보니, 안디옥 교인들이 하나님의 은혜중에 신앙생활 잘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나바는 안디옥 교인들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님과 함께 머물러 있으라고 권했습니다.
이처럼 바나바는 율법주의 유대인이 아니고, 이방인 성도들을 사랑하고 존중했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15장에서 예루살렘 교회의 율법주의자들은 이방인들에게 할례와 모세 율법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24절.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he was a good man, and full of the Holy Spirit and of faith. And considerable numbers were brought to the Lord.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ὅτι ἦν ἀνὴρ ἀγαθὸς, καὶ πλήρης Πνεύματος Ἁγίου καὶ πίστεως.
for he was being man good, and full of Spirit Holy and of faith
직역하면 ‘왜냐하면 그는 착한 사람이고, 성령이 충만하고,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여기 동사(ἦν)는 미완료과거로서(he was being) 바나바가 계속 착하고, 계속 성령 충만하고, 계속 믿음이 충만한 것을 가리킵니다.
스데반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했다고 했습니다(행 5:5).
바나바가 착한 사람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사실들로 알 수 있습니다: ①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서 재산을 헌납한 일(행 4:36-37), ② 다메섹에서 회심한 사울을 상대하기 무서워하는 예루살렘 교회 사도들과 연결시켜 준 일(행 9:27), ③ 안디옥 교회의 초신자들에게 주님께 붙어 있으라고 친절하게 목회한 일(행 11:23), ④ 아무도 상대하지 않는 사울을 다소에 가서 데려와 안디옥 교회에서 사역하게 한 일(행 11:25), ⑤ 바울을 자기보다 앞세운 일(행 13:7, 13, 46), ⑥ 생질인 마가의 실수를 감싸주려고 한 일(행 15:37) 등입니다.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καὶ προσετέθη ὄχλος ἱκανὸς τῷ Κυρίῳ.
and was added crowd great to Lord
직역하면 ‘그리고 큰 무리가 주께로 더하여졌다’는 뜻입니다.
‘더하여지더라’(προσετέθη)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was added) 과거에 더하여진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1. 바나바는 인격적으로 착한 사람이었고, 신앙적으로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나바의 목회로 인하여, 큰 무리가 더해져서 안디옥 교회는 더욱 부흥했습니다.
2. 훌륭한 지도자는 이 세 가지가 잘 갖추어져야 합니다.
첫째 인격이 훌륭해야 합니다.
그래야 불신자들에게도 존경을 받고 전도가 됩니다.
그러나 인격이 좋지 않으면 전도해놓고도 그 신자에게 상처를 주게 됩니다.
둘째로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즉 기도를 많이 하고, 성령이 충만해야 합니다.
그래야 항상 마음이 기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칠 수 있습니다.
셋째로, 믿음이 충만해야 합니다.
즉 주님을 모시고, 주님 뜻대로 잘 순종해야 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무슨 일을 하지 않고, 주님의 인도 따라서 주님 뜻대로 순종해야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즉 사울처럼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고, 다윗처럼 주님 뜻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한 가지 더 보태자면, 실력이 있으면 더 좋습니다.
즉, 성경을 잘 알아야 교사를 하고, 악보를 읽을 줄 알아야 찬양대를 하고, 계산을 잘해야 회계 업무를 보고, 운전면허가 있어야 차량 봉사를 하고, 컴퓨터를 잘해야 방송실 봉사를 할 수 있습니다.
3. 이 바나바는 성품이 참 좋았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상대하지 않는 사울을 사도들에게 소개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사울이 고향 길리기아 다소에서 11년 썩고 있을 때, 사울을 데려다가 안디옥 교회에서 같이 목회를 하게 했습니다.
사울이 고향에서 11년 썩었다는 것은 갈라디아서를 보아야 알 수 있습니다.
즉 갈라디아서 1장 17-18절을 보면, 사울이 아라비아에서 3년을 보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1장 21절에서 사울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이 받아주지 않으니까, 고향 길리기야 다소에 가서 삽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2장 1절에 <14년 후에> 사울이 바나바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울은 아라비아 3년 빼고, 안디옥 교회에서 일한 1년을 빼면, 적어도 10년을 고향 길리기아 다소에서 묻혀 보내게 됩니다. (물론 아라비아 3년을 빼지 않으면 13년을 보냄)
이처럼 사울이 고향에서 묻혀 있을 때 바나바가 사울을 데려다가 목회를 하게 했으니, 바나바는 얼마나 훌륭한 인격을 가진 사람입니까?
4. 그러나 성격이 좋은 바나바는 강직하지 못해서 무른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반면에 사울은 성격이 강직해서 양보나 타협을 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사도행전 13장 13절에서 사울이 바나바와 조카 마가와 함께 선교 여행을 하다가, 마가가 중간에 포기하고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15장 37-39절에서 사울이 바나바에게 2차 선교 여행을 가자고 했을 때, 마가를 데리고 가는 문제로 둘이서 크게 다투어 갈라서고 말았습니다.
즉 바나바는 마가의 실수를 봐주고 다시 데리고 가자고 했고, 바울은 데리고 갈 수 없다고 해서 서로 크게 싸우고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바나바는 착하고 정이 많은 반면에 바울은 강직하고 타협이 없었습니다.
5. 그리고 갈라디아서 2장 11-13절에서 바울은 베드로와 바나바를 모두 책망한 사건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안디옥 교회에 베드로가 찾아와서 이방인 성도인 안디옥 교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안디옥 교회의 목회자인 바나바와 부교역자인 바울도 함께 식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때 예루살렘 교회에서 유대인 성도들이 찾아왔습니다.
이 때 예루살렘 교회는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최고 지도자로 있었습니다.
사도 야고보는 이미 사도행전 12장에서 칼로 목 베임을 당해서 순교해서 없었고요.
그래서 베드로가 예루살렘 교회 유대인 성도들을 보자, 함께 식사하던 이방인 성도들을 버리고 일어나 도망을 갔습니다.
그러자 심지어 안디옥 교회의 목회자인 바나바도 자기 교인들을 버리고 도망을 갔습니다.
그러자 바울이 베드로와 바나바를 여지없이 책망해버렸습니다.
이렇게 성격이 좋은 바나바는 다른 사람을 잘 포용하지만,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따지지는 않았습니다.
반면에 바울은 성격이 강직해서 옳고 그름을 잘 따지지만, 잘못한 사람을 포용하는 것은 잘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격도 좋고, 지도력도 뛰어난 사람은 참으로 훌륭한 지도자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나바가 착한 성품을 가지고, 성령 충만하고, 믿음이 충만하여, 안디옥 교회를 부흥시킨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성도님들도 착한 성품을 가지고, 기도 많이 해서 성령 충만하시고, 주님께 잘 순종하는 믿음이 충만한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교회가 부흥하고, 가정이 복을 받고, 성공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