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한동연 운영진 모임을 마치고, 헬멧님, 수니꺼님과 함께 부암동 서쪽 나들이를 했어요.
지난 토요일 서촌 가족 나들이 때 여기까지 오려 했으나 여의치 않아 못왔던 곳이지요. ^^
아기자기한 골목으로 걷는 것 조차 마냥 즐거운 부암동 서쪽골목입니다,
우리가 자주 다니는 백사실계곡 쪽은 찻길 건너 동쪽골목이예요.
얼마 가지 않아 근래 새롭게 단장하여 문을 연 무계원에 닿습니다.
본래 무계원은 꿈에 본 도원을 안견에게 그리게 하여 몽유도원도를 탄생시킨
안평대군 이용의 집터인 무계동(武溪洞)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서쪽으로 30m 떨어진 곳에 세종의 세째아들인 안평대군이
꿈에서 놀았던 도원과 같은 자리라 생각되는 곳에 짓고, 놀았다는
무계동 각자석이 있답니다.
비록 몽유도원도 진품은 교툐 천리대학교 수장고 깊숙히 잠들어 있으나,
우리는 그 현장 속을 거닐어 볼 수 있다는..
새로 지어진 무계원의 한옥은 나름 100년의 시간을 축적한 고옥이랍니다.
건물은 우리나라 3대 요정 중의 하나였던 오진암 것이고요.
본래 위치는 종로 운현궁 바로 뒤쪽에 있었어요, 그러다가 2010년 10월 관광호텔 신축으로
허물어질 위기에 처하자 당시 종로구청장이 호텔 사업자와 협의해 한옥 건물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짓기로 하여 이런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다양한 문화공연 등을 하고 있지만, 1910년 처음 지어진 상업용 한옥이었고,
1972년에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비밀리에 서울을 찾은 박성철 북한 부수상이
분단이후 최초로 통일과 관련한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대원칙을 기본으로 한
공동합의문인 7.4남북공동성명을 논의하기도 했던 건물입니다
또 김두한을 비롯한 당대 실세들의 단골집으로도 유명했던 곳이라고 하네요.
휴일임에도 우리 외에 아무도 찾지 않던 한가로운 고택입니다.
어쩜 이리 번잡한 서울에 쓸쓸한 만치 교교한 곳들이 많은 걸까요?
꽤 넓은 부지를 종로구가 확보하여 이전했네요.
무계원에 몽유도원도 영인본이 있다고 하여 곳곳을 찾았는데, 못찾았어요.
결국 나중에 확인해보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야 있다고 하네요.
관리인이 없어서 방문 열 생각을 안했더니만... ^^;;
알고 보니 제 사진 속에도 있었군요. 밖에 있었어요. 위 사진 보세요 ㅎㅎ
나중에 덧붙인 사진입니다. 오른쪽 기둥 사이 안쪽에 걸린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보이시는지... ^^;;
무계원 바로 옆 현진건 집터와 안평대군 집터는 거의 같은 위치입니다.
무슨 공사가 이뤄지는 듯 했던 안평대군 이용의 집터입니다.
오른쪽으로 무계동 각자바위가 자리한답니다.
바위가 세월에도 씻기지 않는 이야기를 굳세게 간직하는군요.
무계원 담장을 돌아 흥선대원군 별장이었다는 석파정을 향합니다.
멀리 석파정이 보입니다.
흥선대원군의 호인 석파(石坡)는 돌산인 인왕산 옆에 지은 이 별장에서 유래했다네요.
아름드리 소나무와 함께 고관대작들의 별장들을 유추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서울의 명소입니다.
또한 이 별장을 흥선대원군이 소유하게 된 내력이 황현의 매천야록에 전하는데요.
뒤에 그 이야기는 전합니다.
석파정을 들어가려면 서울미술관을 지나야 합니다.
이름만으로는 관에서 운영하는 미술관 같지만 사설미술관이랍니다. (성인 입장료 9천원)
미술애호가로 알려진 유니온약품의 안병광 회장이 운영한다고 합니다.
굉장히 좋은 작품을 많이 소장한 곳인데, 개관 5주년 기념 '불후의 명작'전시회를
4월 8일까지 하고 있답니다.
서울미술관의 후원이자 얼굴마담이 된 석파정 개장시간이 오후 4시까지여서
이곳 먼저 둘러보기로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왔습니다.
첫 풍경은 모두 '와~~'하는 작은 놀라움으로 시작합니다.
메마른 땅 서울에 이리 촉촉한 곳도 있었나 싶은 의외성이 있습니다.
철종 때 영의정을 지낸 김흥근의 별장이었다는데,
이 '소수운렴암' 각자는 그 이전부터 누군가의 별장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증거라고 합니다.
뒤로 보이는 것은 경주에 있던 석탑을 옮겨 온 것이라고 하네요,
‘巢水雲簾菴’(소수운렴암: 구름 발 드리운 물 위의 암자)이란 글씨는 노론의 영수 송시열의
수제자인 권상하(權尙夏)의 글씨라고 전해집니다.
본래 석파정 자리는 장안의 으뜸가는 최고의 명원이라고 소문이 자자했다고 합니다.
이 별장 소유자였던 김흥근에게 대원군이 이 별장을 팔라고 하였으나 거절당했다고 하네요.
할 수 없이 대권군은 하루만 이곳을 빌려달라고 청하였고, 당시 풍습상 이마저도
거절할 수 없어서 빌려주었는데, 그때 김흥근의 입장에서는 사단이 나고 맙니다.
하루 빌렸주었던 바로 그날 대원군은 고종을 이곳 별장으로 초대하여 행차하게 한 것이지요.
보통 임금이 거했던 곳을 신하가 다시 사용하는 것이 금기시 되던 시절이었다네요.
결국 김흥근은 '임금께서 임했던 곳을 신하의 의리로 다시 쓸 수 없다'하여
다시는 삼계동에 가지 않았고, 이 삼계동정사는 마침내 대원군의 소유가 되어
대물림 되었다고 합니다.
이때 삼계동정사 이름도 호를 석파로 바꾼
흥선대원군을 따라 석파정이 되었답니다.
석파정은 왕실 후예들에게 대물림되었으나 한국전쟁 후 가톨릭에서 운영하던
고아원으로 사용되다가 개인소유로 바뀝니다.
여러 사연이 있으나 이렇게 일반 공개가 된다는 점은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 안에는 지금도 공개하지 않는 대단한 별서들이 곳곳에 있거든요.
석파정을 중심으로 짧지 않은 산책로가 있는데요.
길 위 다양한 각도에서 석파정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특히 오래된 노거수 소나무들이 많아 정취가 정말 보통 아닙니다.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본래 있던 사랑채 건물을 1958년
석파랑 쪽으로 이전하여 음식점의 부속채로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살랑살랑 산책로 걷기를 하다 발견한 한쌍의 석물입니다.
뒤로 오롯한 숲 그리고 듬성듬성한 바위를 품은 단아한 구도에서 아취가...
오른쪽에 보이는 정자는 ‘유수성중관풍루’(流水聲中觀楓樓: 흐르는 물소리 속에서 단풍을 바라보는 누각)
라는 긴 이름을 가진 정자입니다. 기와 대신 동판을 덮어 서세동점의 시대적 분위기를 풍깁니다.
애정이 깊어질 수 밖에 없는 센스 만점의 데이트 코스 아닌가 싶었습니다.
외곽의 벽돌담장은 서울미술관이 소장한 좋은 작품들의 모사작이 있어
메마른 블록에 예술을 불어넣었습니다.
이중섭 선생의 소는 총 아홉 작품이 있는데, 그중 이 작품은 서울미술관에서 소장합니다.
아울러 오늘 가볼 불후의 명작 전시회에서 천경자 화백의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와 함께
전시회의 꽃을 이룹니다.
소나무가 단아하면서도 고취 가득한 숲길을 호위합니다.
석파정 뒤로 돌아...
멀리 북악의 마루금을 타고 오르는 서울성곽의 모습도 눈에 들어옵니다.
보호수로 지정된 대단한 소나무입니다.
흥선대원군과 고종, 그리고 많은 인물들이 이 나무를 보며 즐거워했겠네요.
수형이 정말 대단해보입니다. 천연기념물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듯...
김흥근 시절에 새겼을 듯한 삼계동 각자.
소나무가 석파정을 끌어안고 북악에 안긴 듯한...
책이나 앉아 읽으면 좋겠다 싶은 벤치들이 많았던...
여러모로 이쁜 모습들...
유료관람이라 휴일에도 적당했던 관람객으로 더욱 즐거웠던 석파정 유람..
다음 전시 예정인 웨딩 관련 소전시네요.
정말 좋은 작품을 감상했습니다. 수니꺼님 감사드립니다. ^^
불후의 명작 전은 사진촬영 금지였으나 유일하게 촬영이 가능했던 발자국 모양에서 한 컷!
4월8일까지 전시가 이어집니다.
1층 전시실에서는 오페라 '사랑의 묘약'을 모티브로 한 테마 기획전시가 있었습니다.
사랑의 묘약을 형상화한 물약들, 정말 연인들이 많네요.
이 전시는 총 10개의 방(네모리노의 방 5개, 아디나의 방 4개, 그들의 방1개)으로 구성됩니다.
마침 오후 4시 도슨트 해설이 있어서 식견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요건 일본 작가의 작품으로 색종이를 오려붙이고, 다시 그림을 그리는 복합적인 작품이랍니다.
일상이 곧 사랑이다 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네요.
"나의 작품은 조각도, 사진도, 그림도 아니다
오히려 조각이면서 사진이고, 사진이면서 그림이다.
경계가 사라진 나의 작품에서 당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보길 바란다"
라고 말하는 스페인의 '이르마 그루넨홀츠'의 작품입니다.
그는 점토를 통해 조각을 만든 후 그 위에 채색을 하고,
그것을 사진 촬영하여 다시 일러스트 작업을 통해 완성한다고 합니다.
조각, 그림, 사진의 경계를 허물어버리는 기법이라고 자평한답니다.
그는 실 = 인연 의 동양적 상징을 강렬하게 잘 활용한다네요.
거의 커플로만 구성된 듯한 관람객들이 전시설명을 열심히 들었어요.
설치미술을 하는 서울 사는 이석과 뉴욕 사는 신단비 작가는 자신들의 이름을 딴
'신리아트'라는 명칭으로 예술활동을 하는 커플 아티스트입니다.
실제 연인으로 같은 동시간대에 뉴욕과 서울에서 촬영을 하고 그것을 합성하여
공간은 다르지만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표현하려 했다네요.
다른 공간에 있지만 시선 등이 일치하는 것은 서로의 눈높이 등을 기억하고,
스치는 바람에서 조차 서로를 보기위해 노력한 결과라고 합니다.
전화통화를 하며 같은 시간에 셔터 누르는 작업으로
무려 4천장의 사진을 촬영했다고 들었습니다.
느껴지시나요? 공간을 뛰어 넘은 사랑이?
이것도 신리아트의 작품.
이곳도 신리아트.
작가 김현수는 극사실주의 작가입니다.
소년과 성인을 상징하는 뿔을 모티브로 하여 작품을 구현했다네요.
이 작품은 성인이 되어 더 이상 주체할 수 없으나 여전히 저항하는
작가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모습일지도...
사랑의 묘약을 마셔볼까 고민하는 수니꺼님? ^^;;
하지만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 나온 약은 싸구려 와인이었다는 사실...
그래서 헬멧님과 함께 맥주 한잔으로 뒤풀이를 대신...
버스 정거장 뒤에 있던 세종문화회관 한컷!
커튼처럼 쳐진 거대한 흰 스크린에 산수화가 쏟아지는 모습
3만 달러를 눈 앞에 둔 우리나라 현 상황에서
"문화를 통해 3만 달러를 달성해야 지속가능한 선진국이 구현된다"던
어느 분의 말씀이 떠오르네요.
진정한 문화강국은 그걸 사랑하는 우리들의 마음에서 결과가 드러날 것입니다.
저와 함께 두발로 이것을 사랑하시자고요... ^^
첫댓글 복잡한 서울 한복판에 아름다운 데이트코스가 있다니~~한번 놀라고 미술관에서 불후에 명작인 천경자님과 이중섭님의 작품을 볼수있어서 넘 좋았습니다 ~~기회를 주신 발견이님 .헬멧님 감사합니다~
행복했던 하루였어요~^^
뜻하지 않게 횡재를 한 느낌이었지요. 덕분에 아름다운 시간 보냈습니다. 감사합니다. ^^
수니꺼님 덕분에 석파정과
서울미술관을 보았습니다
들어 가기전에는 서울 5대문안에 이런곳이 있을것 이라
생각도 못했었는데
지기님과 수니꺼님 두분
덕분 이었습니다
저도 덕분에 즐거운 저녁 보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