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검다리 연휴를 맞아 2박3일간 남해안 한려해상국립공원을 찾아 나섰다. 거제에서 여수에 이르는 수많은 섬과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우리나라 최고의 해상 관광지 가운데 하나다. 이번 여행은 그 아름다운 풍광을 자전거로 온몸에 담아보자는 뜻에서 마련한 특별한 라이딩이었다. 나는 길을 떠나기 전날 밤 바이크 손대장의 자택에서 동숙하고 새벽 5시 밴에 탑승한 후 경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에서 람보림(임종국), 오벨로 부부를 태우고 여수로 향했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차창 밖 풍경이 조금씩 달라졌다. 도시의 빽빽한 풍경은 어느새 산과 들로 바뀌었고, 마음도 자연스럽게 여행의 설렘으로 물들었다.
오전 7시 30분경 여산휴게소에 들러 사골우거지국밥으로 든든하게 해결한 뒤 다시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여수IC에 도착한 것은 오전 9시 30분경이었지만, 교통체증으로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한참을 달려 마침내 화태대교에 도착했다.. 화태대교는 2016년 3월 개통된 교량으로 길이가 1,345m에 이르며, 주경간장은 500m, 주탑 높이는 130m에 달한다. 다리 위에 올라서자 탁 트인 바다와 수많은 섬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푸른 바다 위에 점점이 떠있는 섬들은 마치 누군가 정성스럽게 그려놓은 한 폭의 수채화 같았다.
우리는 자전거와 함께 기념사진을 남기며 남해의 절경을 가슴에 담았다. 돌산도 해안도로를 따라 이어지는 풍경은 차창 밖으로 스쳐지나가기에는 너무나 아까웠다. 언덕 위 바람 찻집에 잠시 들러 비치파라솔 의자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니 낭만이 밀려왔다. 바다를 바라보면서 친구들과 나누는 담소는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돌산도의 끝자락에는 해돋이 명소로 이름난 항일암이 자리하고 있다. '해를 바라본다'는 뜻의 항일암은 바다를 굽어보는 절벽 위에 세워진 아름다운 사찰이다. 숙종 41년인 1715년 인묵대사가 남해 수평선 위로 솟아오르는 장엄한 일출에 감탄하여 항일암이라 이름을 지었다고 전한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충무공 이순신을 도와 왜적과 싸웠던 승려들의 근거지로도 알려져 있어 아름다운 자연 경관뿐 아니라 역사적 의미까지 간직한 곳이다. 차량 관광을 마친 우리는 여수 연안여객터미널 부근의 고향식당에서 돌게장과 서대회로 점심을 먹었다. 남도의 풍성한 밥상으로 배를 든든히 채운 뒤 오동도 입구에서 본격적인 라이딩을 시작했다. 오동도는768m의 방파제로 육지와 연결된 아름다운 섬이다. 동백나무를 비롯한 194종의 희귀식물이 자생하고 있으며, 기암절벽과 물개바위, 거북바위 등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섬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오동도와 인접한 여수항은 부산항에 이어 손꼽히는 수산항이자 남해안의 중요한 항구다. 한려수도의 여러 섬과 뱃길로 이어지는 관광항구이기도 하다. 우리는 여수세계박람회장과 엑스포역을 지나 마래터널 옛 철길로 향했다. 그러나 길이 막혀 아쉽게도 우회해야 했다. 방향을 바꾸어 만성리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만성리해수욕장은 전국에서도 보기 드문 검은모래 해변으로 유명하다. 검은 모래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해변은 어느 백사장과는 전혀 다른 독특한 정취를 자아냈다. 잠시 자전거를 멈추고 바다를 바라보니, 파도소리가 그동안 쌓였던 피로를 씻어주는 듯했다.
만성리를 지나 오천산업단지를 통과하자 모사금해수욕장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아름다운 바다 풍경만 감상할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잿몰랑고개, 소치고개, 신덕고개가 차례로 나타났다. 10도 이상의 경사가 이어지는 고갯길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숨이 가빠지고 다리는 무거웠지만 동료들과 서로 격려하며 한 고개 한 고개를 넘었다. 신덕해수욕장과 덕대, 석현마을을 지나자 여수화학단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산업시설의 웅장함이 한 공간에서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거대한 유조선들이 광활한 바다 위에 떠있었고 길게 뻗은 송유관은 마치 바다를 가로지르는 또 하나의 교량처럼 보였다.
해안도로를 따라 이어진 석유화학단지를 지나 묘도선착장에 도착했다. 묘도는 광양만 한가운데 자리한 섬으로,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왜군의 퇴로를 차단하고 격파했던 역사적 공간이기도 하다. 섬 이름의 유래도 재미있다. 묘도의 묘(猫)는 고양이를 뜻하는데, 인근 영취산에서 바라보면 섬의 모습이 고양이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묘도의 봉화산에는 옛 도독성의 흔적도 남아있다고 한다. 임진왜란 이전부터 봉화대가 전초기지 역할을 했으며, 적의 침입을 알리는 봉화가 산을 타고 이어졌다고 하니, 이 평화로운 섬에도 긴장과 노고가 서려있는 섬이다.
묘도대교를 건너자 곧 광양만을 가로지르는 이순신대교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순신대교는 여수 묘도와 광양 금호동을 잇는 대형 현수교로, 주탑 사이의 경간 길이가 1,545m에 달한다. 이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탄신년인 1545를 기념하여 정한 것이라고 한다. 다리 위에 올라서자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거세졌다. 자전거가 좌우로 흔들릴 정도로 강한 바람이었다. 순간 몸을 최대한 낮추고 핸들을 단단히 잡았다. 거대한 교량 위에서 바다와 하늘 사이를 가르며 달리는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다리 아래로 펼쳐진 광양만과 멀리 보이는 광양제철소와 광양항은 거대한 하나의 도시처럼 웅장했다.
바다 위에 희미하게 떠 있는 섬들은 저녁 햇살과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하루 종일 페달을 밟은 끝에 오후 6시 30분경 광양시 중동의 숙소에 도착했다. 여장을 풀고 근처 물회 전문점에서 우럭매운탕으로 간단하게 저녁을 먹었다. 샤워를 마치고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하루종일 자전거를 타고 달린 탓인지 모두들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여행의 의미도 달라진다. 젊은 시절에는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것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함께 길을 달리고 풍경을 바라보며 친구들과 웃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남해의 바람은 거셌고 고갯길은 힘들었다. 그러나 그 바람과 오르막이 있었기에 정상에 올라 바라본 바다가 더욱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길을 친구들과 함께 달렸기에 오늘의 추억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것이다, 아름다운 여수의 바다와 돌산도의 해안길, 묘도와 광양만을 지나며 우리는 또 하나의 멋진 인생길을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