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예천(醴泉)은 백두대간의 힘찬 기운이 마지막으로 모이는 명당 중의 명당이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예천은 태백산과 소백산의 남쪽에 위치한 복된 지역”이라고 했다. 너른 들이 있고 맑은 물이 흐르며 산이 감싸안은 배산임수(背山臨水) 마을. 그래서인지 예천에는 자연에 푹 파묻힌 오래된 한옥들이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달력이 한 장 남은 겨울의 문턱, 뜨겁게 타오르던 단풍도 물러날 때를 알았건만 온 국민이 언제까지 속이 터져야 할지 답답한 요즘이다. 이럴 때 아궁이에 장작불을 때는 옛집에서 고즈넉하게 하룻밤을 보내는 것은 어떨까. 하늘에 걸린 구름이 바람결에 흔들리고, 창호지 사이로 비추는 새벽 빛에 눈을 떠보자. 한옥은 겨울에 더 운치가 있다.
경북 예천 초간정 고택에서의 하룻밤은 짧았지만 여운은 오래 남았다. 영하의 날씨에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핀다는 것부터가 힘들고 불편했지만 따끈한 구들목에 언 마음을 녹이다보니 상처는 아물고 절망은 희망으로 바뀌었다. 온갖 시름을 이겨낼 용기도 생겼다.
■아궁이에 장작불 때는 초간정
장작불을 때는 한옥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연탄을 넣는 집은 더러 있어도 통나무를 잘라 땔나무로 쓰는 고택에서 하룻밤을 보내겠다니 모두들 “언감생심”이라고 했다. 지글지글 끓는 아랫목에 지친 몸을 누일 만한 옛집은 정말 사라진 것일까. 혹시 하는 기대감으로 한옥 전문가 최호진씨에게 물었다. 그는 “경북 예천 초간정 바로 옆에 있는 옛집에 머물면 찌들고 얼어붙었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서울에서 차로 2시간30분여 만에 도착한 금당실 마을. 하늘이 내어준 햇살을 따라 5분쯤 더 달리자 목적지인 초간정이 나왔다. 초간정은 조선시대 권문해가 세운 정자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이곳에서 시회(詩會)를 열고 독서를 하며 심신을 달랬다고 한다.
500살도 넘은 느티나무 여덟 그루에 시선을 빼앗기는 것도 잠시,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살포시 앉아 있는 초간정이 무심해 보였다. 흐린 날씨 탓인지 정자를 휘감아도는 개울은 처연했다. 빛바랜 팔작지붕을 이고 삐걱거리는 대청마루에 섰다. 날이 좋으면 저 멀리 문경의 천주봉까지 보인다는 옛 선비들의 시선을 조심스럽게 더듬었다.
산간 벽지의 밤은 순식간에 찾아온다. 겨우 오후 5시인데 어두컴컴하다. 오늘 밤 묵을 한옥은 초간정과 담벼락을 같이 쓰는 옛집이었다.
“한 시간쯤 지나면 구들목이 따뜻해질 겁니다.” 초간 권문해의 13대손인 권영일씨(60)가 장작불을 지피면서 인사를 건넸다. 아궁이에서 타오르는 불빛은 해돋이에서 보던 태양보다 더 강렬했다. 부지깽이로 아궁이를 뒤적거리지 않았는데도 ‘탁탁탁’ 불꽃이 여기저기로 튀었다. 집 안 가득 검댕이들이 장작 타는 냄새를 흩뿌리며 날아다니는데 왠지 구수했다. 부뚜막에 올려진 큼지막한 솥단지의 그을음은 정겨웠다. 아궁이 옆 처마 아래 수북이 쌓인 장작을 보니 혹독한 추위가 닥쳐도 걱정 없겠다.
밤새 구들에 몸을 맡기면 감기기운이 싹 달아나지 않을까. 냉큼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서려는데 좀처럼 문이 열리지 않았다. 혼자 끙끙거리는 소리가 아궁이까지 들렸는지 권씨가 “문고리를 살짝 위로 올려 보라”고 했다.
■불편함이 주는 추억의 하룻밤
한옥은 자연과 교감하는 집이다. 겨울에는 온돌이 있어 따뜻하고 여름에는 마루가 있어 시원하다. 천장은 낮은 것 같지만 앉고 설 때의 기순환을 배려했다. 한지로 바른 문풍지는 통풍과 습도를 조절한다. ‘구운 돌’에서 유래한 구들은 아궁이 불이 방바닥 위로 전해져 더운 공기와 찬 공기를 스스로 순환시킨다. 오랜 세월 달빛에 젖고 햇빛에 빛바랜 풀 한 포기,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자연을 닮은 선조들의 지혜에 다시금 숙연해졌다.
잠자리에 들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 대문을 나섰다. 칠흑보다 어두운 깊은 밤이다. 촘촘히 박혀 있는 별을 올려다보니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가 따로 없다. 낭만도 잠시, 갑자기 손발이 차가워지더니 기침이 나왔다. 얼른 방으로 돌아와 아랫목 이불에 몸을 숨겼다. 천장을 올려다보는데 뼛속까지 느껴졌던 한기가 사르르 풀린다.
추운 겨울날, 서로 아랫목을 차지하겠다며 부리나케 이불 속으로 뛰어들던 때가 있었다. 노랗게 타들어간 아랫목의 장판은 어느 집이나 귀한 사람들의 방석이었다. 모처럼 오붓하게 가족이 모인 날, 부엉이가 울면 이불 밑에 밥공기를 두고 오손도손 이야기꽃을 피웠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귀신 이야기가 나왔고 문풍지 사이로 들려오는 매서운 바람소리에 외할머니 치마폭을 수 없이 파고들었다. 지금은 혼자이지만 옛 추억이 있어 외롭지 않았다.
자정이 가까워지는데 잠들지 못했다. 펄펄 끓는다고 해야 할지, 지글지글 탄다고 해야 할지 누웠다 앉았다를 반복했다. 뜨거워도 너무 뜨거워 벌떡 일어섰지만 차가운 공기에 놀라 또다시 눕기를 반복했다. 엎드렸다가, 천장을 바라보다가, 빨래를 짜듯 온몸을 뒤틀어도 소용이 없었다. 찜질방이라면 벌써 얼음방으로 도망쳤을 텐데….
온몸에서 땀이 나는데 코끝이 차갑다. 숨쉬기도 편하다. 머리는 차게, 발은 덥게 하라는 동양 의학의 두한족열(頭寒足熱)이 떠올랐다. 스멀스멀 장판을 기어다니는 이름 모를 벌레를 잡고 싶다는 마음마저 사라지게 했다. 아늑한 침대와 비데가 딸린 변기, 온수가 나오는 샤워기 대신 고택을 택한 것이 후회스럽지 않았다. 추억에 잠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지 않은가.
깊은 산에서 맞이한 새벽은 평화로웠다. 밤새 뒤척이느라 푹 자지도 못했는데 몸이 거뜬했다. 마당으로 나가 이슬을 머금은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려 심호흡했다. 역시 흙과 나무로 지은 옛집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맑은 물을 따라 새들이 쉼없이 말을 걸어왔다.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고, 버리고 떠나라”고.
초간 권문해(1534~1591)는 조선시대 우리나라 최초의 대백과 사전인 <대동운부군옥(보물 제 878호)>을 편찬한 퇴계 문하의 대학자다. 고려시대 팔만대장경처럼 목판에 새겨진 대백과사전은 분량만 20책(20권), 1232쪽에 달한다. 예천 권씨 초간 종택(중요 민속 문화재 201호)에 있는 종가별당(보물 457호)에 보관되어 있다. 조선시대 사대부 집안을 엿볼 수 있는 초간 종택은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렸다. 막돌로 기단을 쌓고 그 위에 막돌 초석을 놓은 네모난 기둥의 정면 3칸, 측면 2칸이 고택이다.
초간정 고택에 머무르려면 하루 전에는 예약해야 한다. 방 3칸, 부엌이 2칸인데 직접 밥을 지어먹을 수도 있다. 대문 밖으로 5m쯤 떨어진 곳에 현대식 세면시설과 화장실이 있다. 일교차가 크기 때문에 두꺼운 옷은 필수다. 양치 도구와 생수 정도는 챙겨야 한다. 1박에 5만~10만원이다. (054)655-9233
금당실 마을에 가면 한 끼에 5000~7000원 하는 백반집 ‘목마’ 등이 있다. 고등어, 갈치조림과 육개장에 나물 반찬이 나오는 밥상이 근사하다. 공기밥은 무제한 제공한다. 금당실 마을에도 한옥 민박을 하는 곳이 10여군데 있다. (054)654-2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