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상 수상작 이화윤
별빛, 미드나이트 블루 외 2편
들판에
고흐의 이젤이 보이지 않아도 괜찮아요
삼각대에 수줍게 기댄 고백쯤 없으면 어때요
눈부신 태양,
해바라기 사이로 걸어보는 거예요 걷다가 혹시
달빛 한 모금 필요한 적 없었나요
햇살 아래에서 문득 두 눈 감으면
대낮에도 다시마보다 짙은 어둠 환히 열리죠
수중 바위 밑에서 별이 뜨는 마라도에서는
두 눈을 꼭 감아 주세요
누구도 건너가지 않은 태초의 밤하늘이 그곳에 서식하죠
지느러미 달린 별빛은 3억 6천만 년 전 진화를 멈춘 실러캔스
바닷가에 서면,
당신의 발가락에도 지느러미가 돋아나요
캄캄한 해저에서 커다란 화석이 헤엄치는 것을
당신은 믿어야 할 시간, 새벽별 뜨는 푸른 밤
한 마리 거대한 별빛,
수중을 꼬리에 묶고 리본처럼 끌고 다닐 때
사이프러스 나무가 없어도 이제 두 눈을 뜨세요
죽음처럼 빛이 들지 않는 해저에서
꼬리지느러미 달린 밤하늘이 이리저리 헤엄쳐요
머나먼 곳, 고흐의 별들 걸어 나오는 새벽
휘익- 회전하다 재빨리 수중을 가르는 푸른 밤 한 마리,
검푸른 몸으로 거대한 아가미를 뻐끔거리죠
오늘 당신 꿈속에 별이 뜨지 않아서
온몸에 눈부신 별을 붙인 실러캔스,
고흐의 캔버스처럼
물속 밤하늘이 되어가는 거죠
우수(雨水)한 성적표
수은주가 52도까지 급상승하자
단숨에 거리가 주방으로 돌변했다
행인들은 저마다 뭔가를 깨뜨려 맨홀 위에다 올렸고
커다랗고 둥근 무쇠들은 충성스럽게 제 몸을 불살랐다
여름이면 아스팔트 위 맨홀들은 성수기를 맞았는데
그것들은 달걀프라이 메뉴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갑자기 멱살 잡혀 밖으로 끌려 나온 무수한 계란들은
모국어보다 능통해져 갔다
달걀은, 점점 익어가는 한 알의 지구
아마존에서 스발바르까지 모든 대륙은
단숨에 완숙을 꿈꾸며 한발 앞서 뜨겁게 내달렸다
렌인지를 켜지 않아도, 이것은 매우 신속하고 빠른 조리법
수시로 분노 게이지가 상승하던 엄마의 갱년기도
대왕 프라이팬 앞에서는 맞수가 되지 못했다
피자도 파이도 에그도 글로벌한 대왕 프라이팬이 제격이었다
아스팔트 맨홀에 붕어빵 반죽을 넉넉히 부으면
치지직- 시원한 빗소리를 내며
고소하게 익어가는 우리들의 ASMR,
무엇이 우수한 것인지는 몰라도
맨홀뚜껑 위에서 잘 익은 반죽을 와플처럼 뒤집으면
우수(雨水)하다는 성적표가 곳곳에서 격자무늬로
아주 자랑스럽게 찍혀 나오곤 했다
1.5℃ 상승에 붉게 방점을 찍은 한 알의 거대한 지구
스톱 버튼은, 그새 누가 떼어먹었는지
꼬리 잘린 붕어빵처럼 흔적도 없었다
우린 너무도 원 킬을 좋아해서
계란 한 판, 와플 10인분, 붕어빵 20마리
그들의 바글거리는 가족사쯤 단번에 숨통 끊어줄
고성능 살상무기,
커다란 맨홀뚜껑 프라이팬 개발에 드디어 성공했다
숨바꼭질
검은 컨베이어벨트 위 검은 비닐봉지가 (꼬오옥 꼬오옥)
푹 썩은 해골처럼 부드럽게 회전합니다 (숨어라~)
적당한 간격으로 서서 온종일 쓰레기를 선별하는 사람들,
★소각장 야간작업 안전규칙★ ※밤에는 거울 보지 말 것 ※밤에는 뒤에서 이름 부르지 말 것 ※악취가 유독 심한 봉투는 절대 풀어보지 말고 경찰에 신고할 것 |
이곳에선 옆 사람을 믿지 마세요 자정만 되면 (꼭 꼭)
명단에 없는 사람들이 인부들 틈에서 (숨어라~)
나를 향해 창백하게 웃어요 (꼭꼭숨어라머리카락보일라)
토막 난 마네킹들, 데포르마시옹⁕으로 출몰해요 (머리카락~)
악어에게 뜯긴 물소처럼 너덜너덜해진 쓰레기들, (보일라아~)
토막이라고 설마 이름까지 없겠어요
뒤에서 부르지 않아도 저절로 존재하죠 (꼬오옥 꼬오옥 숨어라~)
밤은 없고 철야만 있는 굴뚝, 소각장은 연중무휴죠
뭔가를 숨길 땐 더 꽁꽁 싸매주는 센스 (머리카락~)
쿵쿵 뛰는 심장도 폐기물로 위장하면 (보일라아~)
뉴스특보가 뛰어다녀도 감쪽같죠 (꼭꼭 숨어라~)
컨베이어벨트에서 툭, 떨어진 (머리카락~보일라~)
죽음처럼 뒤엉킨 생머리 (꼭꼭 숨어라~)
어머, 머리핀 대신 토막 난 손가락을 꽂았군요
식겁한 눈알들 순간, 뭉크처럼 얼음이 된 거죠 (뜨헉…!)
큭… 끼익-
뭔가에 목 졸린 컨베이어벨트도 숨이 툭, 멎었어요
-여러분 안녕하세요 여기는 CSM 보도본부 사건 시대입니다 방금 들어온 뉴스입니다. 어제 자정쯤, 경기도 모 소각장에서 폐기물선별 야간작업을 하던 한 인부가, 검은 봉투에 담겨 버려진 신체 일부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경찰은 일단 작년 여름 실종신고 된 23세 직장여성 B 씨의 신체 일부로 추정하고 DNA를 조사 중에 있습니다.
바람도 비릿한 발자국을 킁킁 따라갔죠
*데포르마시옹 : ‘변형’ ‘왜곡’이란 뜻, 특정 부분을 의도적으로 왜곡하여 변형시키는 미술 기법.
실천사항
지구의 모든 것이 비극 쪽으로 변하고 있다. 자연은 더 이상 시간과 인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지구는 인류에게 새로운 ID카드, 에코 신분증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지금까지 모든 위기마다 인류는 공동의 이름과 선으로 지켜냈고, 변화의 역사를 써왔다. 어쩌면 인간에게는 이번이, 또 하나의 역사를 쓸 최후의 순간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결코 되돌릴 수 없는 비극의 역사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다시 써야 할 지구의 이야기, 바로 오늘 나로부터 사소한 변화로 희망이 시작되고, 생활 습관과 신념으로 완성된다. 지금 ‘절제’라는 개념은 ‘시대의 양식’으로 자리매김할 수밖에 없다.
일상생활 속 실천사항
* 에너지 절약, 외출할 때 전원 플러그 뽑기
* 에어컨 사용 중단하여 온실가스 줄이기
* 대중교통 애용과 자전거 이용 늘리기
* 가정용, 개인용 전기 전자 제품 수리해서 오래 사용하기
* 에코 가방 자주 사용하고, 텀블러 휴대하고 외출하기
* 복사지와 작업용 지류 절약하고 보조용 신문도 여러 번 재활용하기
* 미세플라스틱 줄이고, 화학성분 치약 대신 양치 소금 사용
* 플라스틱, 스티로폼 쓰레기 배출 줄이기- 배달 음식 주문제로 실천
* 지역 천변 쓰레기 줍기와 봉투, 비닐장갑 준비하고 산책하기
* 지역 농산물 구매하여 지역 농가 살리기
* 탄소 배출 저감용 식단으로 준비
* 생수병 구매 중단하고 식수 끓여서 마시기
* 절수(중 수압)로 수자원 아끼기, 헹굼물 청소할 때 재사용하기
* 주방세제, 세탁세제 친환경 인증 제품 사용
* 쓰레기 최소용량 배출하기 (음식물 1L / 일반 5L)
* 헌 옷 재활용하고, 셀프 디자인해서 입기
* 물건 신중하게 구매하고 버릴 때 더 신중하기
* 의류 수선 필요할 때 가능한 한 손수 바느질 즐기기
* 작은 의류와 적은 세탁물은 손 세탁하기
* 휴지 대신 손수건 사용, 택배용 에어백 재활용하기
환경보호 활동단체 연대와 사회적 참여
‘그린피스’ 국제 환경운동 단체의 해양 보호 후원하기, 지역 환경생태 회복 운동 교실 ‘들꽃마실’ 생태안내자 양성 교육 확인과 신청하기, 환경보호 입법안 제정하는 정당에 투표하기, 지자체 환경생태 보호 정책에 관심 갖고 참여하기
이화윤
1965년 경북 칠곡 출생.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졸업(불어불문학과). 전, 가톨릭 선교사. 현재 천안 거주. 제3회 문학뉴스 & 시산맥 기후환경신인상 수상.
심사평
더 높은 수준의 작품과 구체적인 실천사항들
제3회 기후환경문학상에는 작년과 비슷한 175명의 시인이 관심을 주었다. 기후환경문학상은 다른 상과는 달리 시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구의 기후환경을 위하여 작은 실천과 행동으로 이어지는 초석을 만들자는 것이다. 올여름은 특히 지구의 가뭄과 홍수로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의 실천이 바로 탄소발자국을 줄이지는 못하여도 의식의 변화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이 상의 취지이다.
예심을 맡은 기 수상자인 김성윤 김인식 김재환 손준호 시인의 꼼꼼한 심사로 다수의 응모자 작품이 본심에 올랐다. 수준이 많이 높아진 까닭이다.
식물성 잠 외 6편, 우유를 주세요 외 4편, 눈사람 셔벗 외 6편, 저출산을 권장하는 칸타만토 외 6편, 별빛, 미드나이트블루 외 4편, 점프 위블 외 4편, 폰포비아 인플루언서의 럽스타그램 외 4편, 피구왕 통키는 아니었다 외 5편, 이상기후 외 4편, 브로콜리 숲 외 8편, 사람이 없는 시간 외 4편, 나무 발전소 외 9편, 고양이 의자 외 7편, 우리들의 해변 외 5편, MEMORY 칩蟄 외 9편, 그 왕버들 외 7편, 달에서 모일까요? 외 5편, 플라스틱 러브 외 5편(18명)
무기명으로 본심위원 앞으로 작품을 보내고 그 결과를 기다렸다. 이번 응모작품에는 특히나 실천사항을 꼼꼼하게 기록하여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것도 심사위원의 심사점수에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 본다. 더불어 한 사람에게 문학상을 주는 것보다는 앞으로 환경단체를 만들기 위하여 다수의 수상자를 선정키로 하였다. 심사 결과 3명의 작품이 고른 점수를 받았다. 청주에서 기후환경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민은숙 시인(저출산을 권장하는 칸타만토 외 6편), 전주에서 좋은 시를 쓰고 있는 최서정 시인(점프 위블 외 4편), 천안에서 활동하는 신인 이화윤 시인(미드나이트블루 외 4편)이다. 아래는 수상 작품을 추천한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이다.
민은숙의 작품에서는 생태위기의 물리적 현상들이 생생히 재생되고 있다. “육점박이비단벌레”와 “잎갈나무좀붙이”의 터전인 나무들. 그들의 “팔뚝”과 “허벅지”와 “허리”를 자르고 팔아 치워 “차곡차곡” 물신(物神)의 “동그라미를 불려주는” 인류의 탐욕이 결국엔 모든 생물을 소멸시키는 “멸종채무”의 부메랑으로 돌아오리라는 ‘심각경보’의 사이렌이 그의 시에서 울려 나온다. 기후위기의 사회적 원인들을 폭넓게 인식하면서 생명공동체의 미래를 기상학적 렌즈로 진단하고 있는 것이 민은숙의 강점이다. 이에, 그의 시 「저출산을 권장하는 칸타만토」 외 6편을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송용구) 기후환경 문학상은 독특하게도 시인의 시적 역량만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고 기후환경을 위한 시인의 노력, 실천사항을 함께 본다. 때로 이 시인이 기후환경을 위해 앞으로 펼쳐나갈 활동 역량까지 고려하기도 한다. 올해는 좋은 작품이 쏟아져 들어와서 심사하는 동안 시를 읽는 즐거움이 컸다. 그러나 기후환경 문학상의 취지를 고려하다 보니 문학성이 우수한 작품이 당선작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더러 생기게 되었다. 어느 해보다 심사위원들 간의 합의가 쉽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최서정의 작품을 뽑는 데는 심사위원들이 가볍게 동의했다. 작품성을 갖추면서도 기후환경 문학상의 취지를 잘 살린 작품이 최서정의 시들이었다. 최서정의 시는 풍부한 상상력과 더불어 활달한 언어 구사가 두드러진다. 더불어 그의 시는 시야가 다채롭다. 가까이는 가족으로부터 내 주변의 폐업한 주유소까지, 그리고 이국의 산들까지 나아가 해와 달까지 그의 시야는 열려 있다. 그리고 그가 시선이 닿는 곳에서 지구환경의 문제를 끄집어내는 예리함을 지녔다. 최서정 시인의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한다. (한명희)
이화윤의 시는 세심하게 직조된 상상력의 전개가 돋보인다. 시 「별빛, 미드나이트블루」에서는 고흐의 그림에서 추출한 눈부신 태양과 태초의 밤하늘이 씨실과 날실로 엮여 있다. 밝음 속의 어둠, 새벽 별과 실러캔스가 만난 독특하고 아름다운 세계다. 「칩 칩 칩」에서는 신재생에너지 사업이 오히려 자연을 파괴하는 실상을 감각적으로 묘사한다. 첨부한 ‘내가 실천한 환경보호 활동 내용’도 구체적이며 성실하다. 큰 기대가 되는 신인이다. 정진을 바란다. (박민영)
이번 제3회 기후환경문학상에 관심을 주신 많은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시를 통하여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를 실천하는 시산맥 지구별수비대에서 함께해주시기를 바런다. 앞으로 그런 분들이 이 상의 주인공이 되었으면 한다. 제4회에는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후환경백일장 개최를 조심스럽게 엿보고 있다. 기성세대인 우리들의 몫은 다하고 가야 할 것 같다.
심사위원 송용구 박민영 한명희 조영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