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무서운 생각 / 박완서
요즘은 마당 일이 많이 줄었다. 흙의 왕성한 생산성이 처서 處者 지나고 많이 꺾였기 때문이다. 넓지 않은 마당이지만 사람사는 집 마당처럼 가꾸려면 품이 많이 든다. 사서 하는 고생이고 즐기니까 할 수 있는 일이다. 내가 마당에 엎드려 잔디 사이에 난 잡풀을 뽑고 있거나 그늘에서 웃자란 풀을 가위로 잘라주는 걸 동네 사람들이 보면 그런 일은 한 달에 한두 번 사람을 사서 시키면 될 것을 뭣하러 노인네가 손수 하냐고 딱한 듯이 말하곤 한다. 그럼 나는 암말 안 하고 그냥 웃는다. 웃기는 말이 생각나서이다.
우리나라에 신식 교육이 들어오고 나서 얼마 안 된 개화기의 일이라고 한다. 초창기의 신식 학교는 거의 선교사들에 의해 설립됐기 때문에 수업 방식도 서구식 커리큘럼을 따랐을 것 같다. 교실에서 하는 수업 못지않게 체육시간도 중요시하고 축구 같은 운동도 보급되어 학교끼리 시합도 시켰다고 한다. 자기 아들이 선수로 뽑혀 시합에 나가게 되어 그 경기에 초청받아 구경을 온 어떤 점잖은 양반님네가 아들이 땀을 흘리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걸 보고 사람들이 박수 치며 즐기는 걸 보고 크게 노하여 가라사대, 아니 저렇게 힘든 일은 종놈들한테 시키면 될 것을 어찌하여 금지옥엽 내 아들한테 시키고 구경거리로 삼는 것이냐고 했다는 이야기이다.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해본 바도 없고 또 확인할 수 있는 일도 아니지만 있을 법한 일이다.
내가 마당에서 흙 주무르는 일을 즐기는 것은 내 태생과도관계가 있다. 나는 시골 태생이고 시골 중에서도 문명의 혜택이 전혀 미치지 않은 깡촌 태생이다. 인형 대신 베개를 업고 어르면서 놀았고, 동무들하고 소꿉장난할 때는 게딱지를 주워다가 솥을 걸고 모래알로 밥을 짓고 솔잎으로 국수를 말아 맛있게도 남냠 먹는 시늉을 했다. 단순한 자연이 상상력의 보고였다. 유별나고 극성스러운 엄마 덕에 어린 나이에 서울 와서 학교 다니면서도 일 년에 두 번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 고향에 내려가 자연과 흙의 맛을 보는 낙, 요즘 말로 하면 충전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면 아마 가난하고 삭막한 도시 생활을 견디어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내 고향은 지금은 갈 수 없는 휴전선 이북 지방이다. 시댁 쪽은 대대로 내려오면서 한 번도 사대문 밖조차 벗어나본 적 없는 순 서울토박이 집안이다. 늙으면 입맛이 U턴을 한다는 소리가 있다. 우리나라가 일반적으로 가난했을 때 먹던 음식 혹은 엄마가 해주던 반찬이 먹고 싶어진다는 얘기를 우리 노인들끼리는 모이면 곧잘 한다. 나이 들면서 내가 온갖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아침저녁 흙 만질 수 있는 집에서 살고 싶어 한 것도 그와 유사한 정서적 U턴 현상일지도 모르겠다. 남들이 어떻게 보든 말든 내 딴에 즐겨 하는 일이고 사서 하는 고생이다. 그렇다고 내가 소유한 이 작은 마당도 나에게 마냥 우호적인 것만은 아니다.
며칠 전 일이다. 잔디 사이에 때아닌 민들레가, 때가 아니기 때문에 시들시들 작고 가련하게 핀 것을 보고 뽑아버리려고 허리를 굽혀 아무런 도구 없이 이파리 밑동을 손가락으로 후벼파려는 찰나, 따끔하면서 뭔가 내 가운뎃손가락을 물었다. 여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지독한 아픔이었다. 물고 나서 날아간 곤충 같은 것도 보지 못했고, 개미나 그런 기어 다니는 미물도 보지 못했다. 그러나 가운뎃손가락 끝은 3밀리 정도의 이빨 자국이 선명했고 통증은 어깨까지 빠르게 퍼졌다. 나는 순간 독이 퍼지면 죽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흙 묻은 손가락을 입으로 맹렬히 빨았다. 빤 침을 퉤퉤 뱉으면서. 그리고 집 안으로 들어와 손가락을 흐르는 수돗물에 씻고 닦고 나서 소독하고 연고를 발랐다. 그동안도 통증이 어깨까지 퍼지는 통로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것을 독이 퍼져가는 통로라고 생각하지 않고 내 몸의 백혈구들이 독과 싸우려고 손끝으로 모이는 통로라고 생각하려 들었다. 그래서 열심히, 고맙다 내 백혈구야, 잘 싸워다오 격려를 보내며 나를 위로하는 사이에 통증은 조금씩 가라앉았다. 작은 상처로 팔 하나가 통째로 아픈 통증은 가라앉았지만 손끝은 벌겋게 부어오르더니 며칠 만에 그 물린 자리에 노랗게 고름이 비쳤다. 바늘로 따고 고름을 짜낸 후에도 그 자리가 가렵다가 요새 비로소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 후에 마당에 나갈 때는 꼭 비닐장갑 위에 면장갑까지 끼지 절대로 맨손으로 흙을 만지지 않는다. 아직도 나는 그때 내 손을 문,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것의 정체를 모른다. 백혈구 운운도 어려서 배운 교과서적인 지식일 뿐 정말 그런 일이 내 몸 안에서 일어났는지, 독충에 물렸다는 것도 내 엄살에 불과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몇 년 전인가 우리 마을 뒷산에 멧돼지가 나타났다고 해서 사람들을 놀래킨 적이 있지만 실은 멧돼지보다는 말벌 따위의 피해가 더 무섭다. 자연에 숨은 복병이 수없이 많다. 큰 것이 무서운 게 아니라 작은 것이 무섭다. 인간의 지혜는 크고 힘센것들 순으로, 이를테면 사자나 호랑이 순으로 멸종을 시켜왔다. 인간을 위협하는 건 눈에 안 보이는 것이라 해도 현미경으로 볼 수 있는 거라면 싸그리 멸해왔다. 그래도 질병은 그치지 않는다.
만일 자연의 조화를 관장하는 어떤 큰 힘이 있어 인간의 독주와 오만에 분노하여 인간을 멸하고자 한다면, 인간의 지혜를 앞지르는 극미소한 세균을 퍼뜨리면 인간 세상은 간단하게 멸할 수 있지 않을까. 지나친 과소비나 무분별한 개발 등을 접할 때 이래도 되는 걸까 문득 하늘 무서운 생각이 들 적이 있어 해보는 소리이다.
[박완서]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은 모든 작가들의 어머니 같은 분이시죠. 타계하시기 직전까지 집필하시던 마당이 있는 노란 집 아치울, 지금은 맏딸이신 호원숙 작가가 어머니와의 추억을 기록하고 아치울의 아름다웠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고 해요. 어머니가 안 계신 마당은 엄마 없는 아이가 되어 버렸다, 하시던데요. 박완서 선생님을 생각하면 참 수수하게 아름다우신 분, 감칠맛 나는 언어에 자연스럽고 긍정적이며 지혜롭고 사색이 깊은 우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태풍 ‘카눈’이 많은 피해를 남겼지만, 전주 지역은 비교적 순하게 지나갔네요. 삼천천 물이 많이 불었던데요, 선생님 말씀이 옳아요. 하늘 무서울 줄 알아야 제2의 ‘코로나’ 사태가 발발하지 않겠죠. 이제 말복이 지났으니 불에 불을 얹은 8월 무더위도 차츰 물러나겠지요. 더위야 물렀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