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으로 가기 위해 시골 교회를 떠나려던 워시트 목사는 목사관 앞에 모여 무릎 꿇고 있는 신도들을 보았다. 그는 이삿짐을….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가 힘들 때가 있다. 어떤 중대한 문제들에 직면해서 우리는 마땅히 이렇게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로 좀더 기쁘고 좀 더 쉬운 길을 택하고 싶은 유혹을 받을 때가 많이 있다.
심지어 우리가 우리의 임무 수행을 하기 위해 결정할 때에 있어서도 흔히 그것을 쓸데없는 희생처럼 생각할 때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결코 우리 행동의 마지막 결말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그렇다. 이 세상의 역사 가운데에는 이 점을 증명해주는 여러 가지의 극적인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영국의 한 시골에서 일하던 어떤 목사에게 일어났던 다음의 이야기도 그런 이야기들 중의 하나에 속한다.
아주 오래 전 어느 여름날 아침이었다. 교회의 종소리가 아름답게 울려 퍼지고 있을 때, 요오크셔에 있는 웨인스게이트 마을로 아름답고 훌륭한 마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이 마차의 주인공은 런던으로 여행하는 도중에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서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는 이 오래된 작은 교회를 찾아온 것이다.
그는 낡은 교회당 의자 한쪽 끝에 앉아 젊은 시골 목사의 설교를 들으면서, 너무나도 깊이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기까지 하였으며, 이런 시골구석에 이렇게 훌륭한 설교자가 있는 사실에 놀라기까지 하였다. 사실, 이 젊은 목사의 설교는 단순하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이 여행자는 런던으로 돌아온 후 자기 교구의 감독을 만나, 이 이름 없는 시골 목사와 그의 힘 있는 설교에 대해 칭찬하면서 마침 비어 있는 자기 교회의 목사로 모실 것에 대해 상의하였다.
감독은 일단 그 젊은 시골 목사를 한번 초청하여 그 교회에서 설교를 시켜보도록 허락하였다. 즉각 이 시골 목사에게는 런던 시내에 있는 유명한 성(聖) 바울 교회에서 설교해 달라는 초청장이 보내졌다.
그리고 그 젊은 목사는 드디어 설교를 하기 위해 단 위에 서게 되었다. 처음에 이 젊은 시골 목사는 큰 교회에서 수많은 교인들을 대하고 섰을 때, 마음이 떨리고 몹시 긴장이 되긴 했으나 곧 마음의 침착성을 되찾고,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기독교인의 사랑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냉랭한 신앙을 갖고 있던 도시 교인들은 이 순박하고도 감동적인 설교에 매혹되어 버렸다. 너무나도 깊은 인상을 받아서, 예배 후에 교회 직원들은 감독과 더불어 이 젊은 목사를 담임 목사로 모시기로 즉각 결정하였다. 드디어 이 젊은 시골 목사에게 런던 시내에 있는 큰 교회의 담임자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이 젊은 목사는 기쁨으로 가득한 채 발걸음을 재촉하여 집으로 돌아와서 그 큰 기쁨의 소식을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에게 전해 주었다. 이제는 더 이상 일 년 내내 각박한 생활비로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장래가 밝게 내다보이게 된 것이다.
드디어 그들이 그 마을을 아주 떠나버리는 날이 되었다. 가족들이 그들의 짐을 다 꾸려가지고 목사관 문 앞을 나섰을 때, 그들은 놀라운 장면 앞에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모든 교인들과 마을 사람들이 목사관 앞에서 눈물을 글썽거리며 무릎을 꿇은 채 간절히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젊은 목사는 입을 굳게 다문 채 그의 아내를 바라다보았다. 그리고 그의 아내는 남편의 눈을 통해 그의 마음속을 읽을 수 있었다.
아내는 목사에게 말하였다.
“쟌 시트, 당신이 어떻게 떠날 수 있을는지 모르겠어요.”
목사는 목멘 소리로 대답하였다.
“갈 수가 없소. 런던에 있는 사람들은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만큼 우리를 필요로 하고 있지는 않소. 또 그들은 이 마을 사람들만큼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고 있지도 않소. 어서 짐을 풉시다. 그리고 다시 집안으로 끌어들입시다. 우리는 우리를 가장 필요로 하는 곳에서 우리를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 수밖에 없소!”
그날 오후 쟌 훠시트 목사는 밝은 마음과 평안한 마음으로 자기 책상 앞에 앉아서 (오늘날 거의 2백여 년 동안 기독교인들이 모이는 곳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아름다운 찬송가의 가사를 기록했다.
사랑과 친절과 형제애를 노래한 이 오래된 찬송가는 정말로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위로와 평안을 가져다주었다.
“주 믿는 형제들 사랑의 사귐은 천국의 교제 같으니 참 좋은 친교라.
피차에 슬픔과 수고를 나누고 늘 동고동락하면서 참 사랑 나누네.”
(찬송가 221장)
무엇이 삶을 아름답게 하는가
김득중
삼민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