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무영 순교성지 순교자 전
진무영의 기능이 다시 확대되는 계기가 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것은 1866년에 발발한 병인양요였다. 병인박해 때 프랑스 선교사들을 처형한 데에 대한 보복과 통상을 목적으로 프랑스 극동함대가 9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조선을 침공한 것이었다. 10월 16일 프랑스군은 강화부를 점령하고, 대량의 서적과 무기, 금은괴(金銀塊) 등을 약탈했다. 그러나 11월 9일, 프랑스군은 정족산성에서 양헌수(梁憲洙)가 이끄는 조선군의 공격으로 패퇴했고, 이를 계기로 11월 11일 강화도로부터 철수했다.
진무영의 순교자들 1868년 5월(음) 장치선(張致善) · 최영준(崔英俊) 등이 진무영에서 효수(梟首)되었다.
최인서(崔仁瑞) 요한(1810-1868년) [진무영 순교성지 순교자 전]
순교자. 일명 영준(英俊), 세례명은 요한. 경기도 용인(龍仁) 출생. 1866년 병인(丙寅)박해 때 서울 애고개[지금의 阿峴洞]의 회장직을 맡고 있었다. 베르뇌(Berneux, 張敬一) 주교를 비롯한 7명의 프랑스 선교사들이 처형되고 박해가 점점 가열되자 1866년 6월말 장치선(張致善), 박성집(朴聖集) 등 10명의 교우들과 함께 조선의 박해상황을 프랑스 정부에 알리려는 리델(Ridel, 李福明) 신부를 중국으로 탈출시켜 주었고, 이어 이해 9월 병인양요(丙寅洋擾)가 발생하자 리델 신부를 태우고 강화도에 정박 중인 프랑스 군함에 승선, 리델 신부에게 조선에 남아 있는 칼레(Calais, 姜) 신부, 페롱(Feron, 權) 신부의 소식과 박해상황을 전하였다. 이로 인해 1868년 5월(음) 아내와 함께 체포되어 아내 주 데레사는 옥사하고 자신은 2명의 교우와 함께 강화도에서 처형당해 순교하였다.
장치선(張致善, 1810-1868) [진무영 순교성지 순교자 전]
순교자. 세례명은 미상. 성인 장주기(張周基)의 조카. 1866년 병인박해(丙寅迫害)로 베르뇌(Berneux, 張敬一) 주교를 비롯한 7명의 프랑스 선교사와 많은 교우들이 순교하자 이 해 6월말 최인서(崔仁瑞) 등 10명의 교우와 함께 조선의 박해상황을 프랑스에 전하려는 리델(Ridel, 李福明) 신부를 중국으로 탈출시켜 주었고, 이어 이해 9월 병인양요(丙寅洋擾)가 일어나자 리델 신부를 태우고 강화도에 정박 중인 프랑스 군함에 승선, 조선에 남아있는 칼레(Calais, 姜) 신부, 페롱(Feron, 權) 신부의 소식과 박해상황을 리델 신부에게 전해 주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온 가족과 함께 체포되어 1868년 순교하였다. [출처 : 이상 한국가톨릭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