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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이번 생(生)은 처음이라 어쩔 수 없어, 살아지는 대로 사는 수밖에 없지 뭐!”
더는 삶의 방향을 알 수 없게 되었다고 느낀다면, 오랜 신념의 가치가 전락한 듯 느껴진다면, ‘닥터 필로소피’를 만나자! 기꺼이 그의 손을 잡고 당신의 단 한 번뿐인 삶에 드리워진 상처를 치유하러 떠나자!
‘에코디자인’이란 개념을 처음으로 정립하여 소개하면서 공공정책과 환경/생태 분야를 넘나들며 활발하게 일하고 있는 김대호 선생의 첫 번째 철학에세이. 그는 번잡하고 바쁜 일상 중에도 ‘철학하기’의 끈을 놓지 않는 철학덕후로 유명하다. 새벽잠을 반납하고 철학책에 심취하는 습관이나 작고 사소한 현상에 두레박을 던져 깊은 사색을 길어내는 행위 또한 이미 오래된 일상이 되었다. 이제 그는 눈을 뜨는 순간부터 눈을 감는 순간에 이르기까지 “하루종일 철학하는 사람”이다. 매 순간을 탐색하면서 ‘생의 이면’에 숨어 있는 진실을 찾는 즐거움으로 살아간다. 그는 어쩌다 이렇게 철학하기에 빠지게 되었을까?
저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제가 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매우 사적입니다. 약 10년 전 저는 심각한 불안장애를 앓았습니다. 잠을 이루지 못했고, 밀려드는 죽음의 공포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심장이 뜬금없이 마구 뛰는가 하면, 시도 때도 없이 식은땀이 흘러내렸습니다. 대체 왜 이런 것이 나한테 찾아왔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시간을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불안 발작 때문에 가장 왕성하게 일해야 하는 시기에 방구석 폐인으로 지냈습니다. 강의든 집필이든 거의 모든 요청을 거절하면서 숨어 있었습니다. 심각하게 병들어 있었던 겁니다. 끝없는 공허함, 지독한 허무와 함께 저는 심연의 바닥을 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라는 절체절명의 위기감이 엄습하더군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죽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니, 죽는 게 무서웠습니다. 그 상황을 이겨내고 싶었습니다. 그때, 철학을 ‘다시’ 만났습니다. 학창 시절에 조우했던 철학자들에게 절규에 가까운 초대장을 보냈습니다. 칸트, 니체, 키르케고르, 쇼펜하우어, 하이데거, 프로이트, 융 등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습니다. 성경과 불경, 인도 경전도 수없이 읽었습니다. 결과가 어땠냐고요? 저는, 분명히 말할 수 있지만,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철학은 정신의 길을 잃은 제게 단단한 나침반이 되어주었습니다.”
저자의 말처럼 철학은 ‘나’라는 존재를 사유하고 ‘나’의 마음과 상황을 객관적으로 탐색하는 데 매우 유용한 도구다. 철학을 하면 오감이 무척 예민해진다. 철학은 인간의 모든 감각, 즉 시각, 후각, 청각, 촉각으로 들어오는 다양한 현상과 사태를 내밀히 감지하여 분석하면서 나의 이성을 찾아내고, 이성의 기능을 확인하면서 비로소 합일에 이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렇게 철학하기를 삶 안으로 받아들여 자기 자신을 들여다봄으로써 존재론적 이해에 다가서게 된다. 그 결과로 개인 존재의 당위성을 인정하면서 인간의 윤리와 사회 전반에 적용되는 선한 공동체성에 눈을 뜨게 된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정신의 불안함이나 정서적 갈등도 많은 부분 극복하게 된다. 무엇인가에 늘 견줌을 당하면서 상대적인 고통에 휘둘리는 현대인의 낮아진 자존감도 물론 회복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철학하기’란 ‘아무도 모르는 참 자아인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고, 그 이후로 ‘나와 관계 맺는 타자(세상)’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라 하겠다. 『닥터 필로소피: 내 삶을 치유하는 철학 솔루션』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철학하기”로 나아간 저자의 ‘지(知)의 여정’을 소개하는 책이자 “치유, 회복, 성장 그리고 실천의 철학”을 만나게 해주는 가뭄의 단비 같은 철학에세이다. 저자가 기꺼이 펼쳐 보여주는 내밀한 ‘지혜 탐색 지도’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 여러분도 분명 곳곳에 숨어 있는 가치를 찾아내어 “이토록 아름답고 고마운 삶”을 긍정하는 자신을 인지하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이 전도(顚倒)된 듯 보이는 오늘날, 분분한 일상에서 길을 잃었을지 모르는 “이번 생이 처음인” 모든 이에게 이 책을 권한다.
👨🏫 저자 소개
김대호
대한민국 어느 시골 마을에 살면서 가끔 생존 활동을 위해 마실 나가듯 서울로 가 일한다. 일하는 중에도 산책과 철학적 사유를 즐기는 철학 덕후이다. 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고, 공공 분야 컨설턴트로서 공공 PR, 공공 정책, 도시재생, 에코 디자인 및 친환경 분야를 넘나들고 있다. 다수의 공공기관 및 지자체의 전략 수립 및 연구 컨설팅을 수행했으며, 100회가 넘는 강연을 진행한 전문 강연자이기도 하다. 잘 살아가던 어느 날 불안과 공황이라는 불청객을 맞아 오직 앞만 보며 달려온 길에서 인생의 길을 잃었다. 그때 직업적 지식 외에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깨달았다. 그 무지를 깨닫고 인생에 해답을 줄 지식과 지혜를 찾아다녔다. 그러고는 30대 후반이 되어서 마침내 철학을 만났다. 이후 수많은 철학자들의 지혜를 탐구하며 ‘삶의 의미’를 깨달았다. 현재는 한 명 한 명 철학자들을 덕질하며 삶의 의미와 인생의 재미를 맛보는 방구석 철학자로 버전2.0의 인생을 사는 중이다. 그동안 쓴 책으로 『에코 크리에이터』 『에코 크리에이터2』 『에코 크리에이터 디자인』 『지구를 품은 착한 디자인』 등이 있다.
📜 목차
저자의 말
프롤로그
나를 살린 철학 / 철학과 과학은 친구다 / 철학만의 매력은 무엇일까? / 삶의 위안이 되는 철학자들의 언어
1장 치유: 인식론_마음을 위로하는 철학
불안아, 그냥 나랑 같이 살자 / 쾌락의 블랙홀에서 탈출하는 법 / 나만 빼고 다 행복한가 봐 / 욕망이라는 이름의 소비 / 당신과 나를 지배하는 기호는 무엇인가
2장 회복: 존재론_자존감을 높여주는 철학
빨강머리 앤이 행복을 느끼는 방법 / 내가 아는 나는 누구인가 / 페르소나와 그림자 / 운명에 반항하라 / 당신의 불행에는 이유가 없다 / 너의 이름은 / 생각하는 대로 말할까, 말하는 대로 생각할까 /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3장 성장: 지성론_지혜를 더해주는 철학
내가 아는 것은 오직 ‘모른다’는 것뿐 / 존재를 성장시키는 건 경험의 다발이다 / 당신의 신념에 돌을 던져라 / 나는 깊이 성찰한다, 고로 존재한다
4장 실천: 윤리론_공동체를 지켜주는 철학
응답하라 1988 / 단 한 사람의 고통도 외면하지 않으려면 / 오늘 눈물 흘리는 당신은 훌륭하다 /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 구분하기 / 평범한 악은 용서해야 할까 / 공정함이란 무엇인가 / 모든 변화는 나로부터 시작된다
에필로그
철학을 통해 생각의 자유를 얻다 / 더 깊은 사유 안으로 / 세상이 먼저일까, 내가 먼저일까? / 당신이 특별한 이유 / 삶은 오묘하다 / 철학하기로 유연함 기르기 / 참 재미있는 철학 / 철학은 삶의 나침반이다
인용출처 및 주 / 참고문헌 / Photo credits
📖 책 속으로
철학자들의 언어는 무척 함축적이지만, 짧은 문장 하나하나에도 다양한 정신이 들어있습니다. 저는 그런 문장들을 마음속 깊이 새겨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하나씩 꺼내 봅니다. 깊이 생각하면서 사유합니다. 덕분에 저는 삶의 여러 고민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언어는 인간의 사고 활동을 가능하게 해주는 가장 기본적인 재료이자 사유하는 주체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본질이기도 합니다. 언어는 또한 개념을 만들어냅니다. 나와 너, 철수와 영희, 책상과 의자, 이 모든 것은 ‘그렇게’ 호명됨으로써 비로소 타자와 구별되고 존재하게 됩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시구처럼요. 그런데 철학자들의 언어에는 개념을 알려주는 것 외에 또 다른 본질적인 힘이 있습니다. 우리의 뇌를 끊임없이 자극하여 사유하고 또 사유하게 함으로써 사유의 범위를 확장하게 해줍니다. 이를테면 18세기 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자였던 볼테르가 말한 “파렴치를 분쇄하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파렴치를 분쇄하라니, 대체 무슨 뜻일까요? 그 진의를 알려면 우리는 18세기 프랑스로 뛰어들어야 합니다. (중략) 그는 광신과 권력이 영합하여 불러온 끔찍한 사태 앞에서 행동하는 지식인이 되고자 마음먹고는 이 사건에 대한 전말을 서술하여 인쇄한 뒤 친구들에게 돌리면서 도움을 요청합니다. 볼테르는 이때 친구들에게 쓰는 모든 편지의 마지막을 “파렴치를 분쇄하라!”라는 말로 끝맺습니다. 이후 ‘파렴치’란 단어는 비단 신앙뿐 아니라 지적이거나 정치적인 면에서의 모든 광적 압제를 상징하게 됩니다. 저는 바로 이런 철학자들의 문장에서 새로운 사고의 물꼬를 트게 되었습니다. 특히 삶에서 어려움과 고단함이 느껴질 때 철학자들의 문장을 되새기면서 새로운 길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그전에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통찰을 얻으면서요.
--- 「삶의 위안이 되는 철학자들의 언어」 중에서
제가 자주 타는 출퇴근 광역버스에서 종종 뵙는 기사님이 한 분 있어요. 그런데 이분은 늘 화가 차 있습니다. 차선을 잘 지키지 않는 사람을 보면 나가서 싸우고, 앞차가 조금이라도 느리게 가거나 멈추어 서면 경적을 울려대고, 상대방이 뭐라 하면 또 나가서 싸우고, 다른 차가 경적을 울렸다고 또 나가서 싸웁니다. 운전하는 시간보다 싸우는 시간이 더 많아 보일 정도입니다. 늘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는 모습이 꼭 싸우기 위해 운전하시는 것 같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잠깐 생각해볼 문제가 하나 있어요. 세계적인 작가이자 칼럼리스트인 에릭 와이너(Eric Weiner, 1963~)는 차가 꽉 막히면 우리는 “차가 왜 이렇게 막히나?” 불평해대지만 나 또한 차에 타고 있다는 사실, 문제의 일부라는 사실을 종종 무시한다고 지적해요. 맞는 말이죠? 만일 나에게만 유독 모든 것이 삐뚤게 보인다면 그것은 내 마음이 삐뚤어졌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앞에 펼쳐진 현상과 세계는 그저 흘러가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그 속성은 규칙과 불규칙성이 혼재되어 있는데 전체적인 순환 구조가 균일하고 질서 있다면 큰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주 작은 문제까지도 매번 눈에 걸리고 괴롭다면 그것은 세상에 장애물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내 안에 장애물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 장애물의 정체를 파악하고 없앨 때까지는 어쩌면 나에게 펼쳐진 세상은 늘 지옥일지도 모릅니다. 현명한 사람은 순간에 붙잡히지 않습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은 우리의 정신이 재해석한 세상일 뿐입니다. 나를 화나게 하는 일들은 많은 부분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지 우리를 일부러 괴롭히기 위해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그냥 지나칠 줄도 알아야 합니다. 덤덤하게, 여유롭게, 그렇게 살아가도 됩니다. 작은 돌멩이 하나가 발치에 걸린다고 해서 그곳에 서서 이 돌멩이를 어떻게 처리할까, 하며 오랜 시간을 보내는 건 어리석은 일입니다. 길을 걷다 보면 모난 돌멩이만 있는 게 아니에요. 풀도 있고 나무도 있고 때로 꽃도 있습니다. 그러니 돌멩이의 존재 따위 잠시 접어둔 채 내게 아름다움을 일깨워주는 꽃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어떨까요?
--- 「쾌락의 블랙홀에서 탈출하는 법」 중에서
인간은 종종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한계상황에 직면합니다. 죽음, 전쟁, 질환 등이 이에 속하는데요. 야스퍼스는 그런 한계상황에 처할 때 인간에겐 진정한 내면이 열리고, 실존적 자각에 이르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가 나치 치하의 경험을 통해 철학적 통찰을 얻었듯 말입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동물은 외부세계를 살지만, 인간은 내면세계를 산다는 점입니다. 눈에 보이는 현상을 자신 내면 안에서 재해석한 세계를 사는 것입니다. 이때 인간 특유의 가치판단이 들어가는데요, 어떤 가치를 수렴하느냐에 따라 현상의 본질은 달라집니다. 실존하는 인간은 그러므로 객관적 사태에 지배받지 않습니다. 야스퍼스처럼 말입니다. 현실 세상은 우리 스스로가 어찌해볼 수 없는 한계상황으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런 한계상황에 기꺼이 자신을 던지는 존재입니다. 또 다른 실존철학자인 사르트르의 말대로 현재를 초월하여 미래로 자기를 내던지는 ‘기투(企投)’하는 존재죠. 오직 인간만이 그렇습니다. 사르트르도 그래서 이렇게 우리에게 권고하고 있어요. “언제나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매 순간 나의 생생한 실존과 마주하라”고요. 한계상황을 자각하지만, 그것에 지배받기보다는 극복해나갑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에게 “삶이란 아름다운 거야”라고 이야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스스로 아름답게 살아가라고 말해줄 것입니다.
--- 「운명에 반항하라」 중에서
그렇습니다. 근대적 정신은 ‘어떻게’라고 질문하고 의심하는 능력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수많은 매카시즘 열풍과 혼란스러운 미신적 주장들 속에서 ‘어떻게’라는 질문은 종종 파묻혀 버리고 맙니다. 의심하면 죄악시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의심 없이는 진실도 발견할 수 없는 법입니다. 의심하지 않고 질문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지속되면 결국 합리적 의심을 하는 사람들이 ‘단두대’에 서게 됩니다. 이런 상태에서 빠져나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오직 사실’만을 보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미운 사람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비판하지 말고,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사실이 아닌 내용으로 감싸지 않는 태도를 견지하는 건데요. 그러려면 내 안에 잘못된 믿음은 없는지 늘 점검하면서 정확히 모르는 사안에 대해선 차라리 침묵하는 편이 좋습니다. 사실인 것과 사실이길 바라는 마음은 완전히 차원이 다르니까요. 철학자이자 논리 실증주의 창시자인 오귀스트 콩트(Auguste Comte, 1798~1857)는 지식의 진화를 3단계로 나누는데, 첫 번째는 종교적 단계로 신의 계시로 세상 만물을 인지하는 단계입니다. 여기에서 지식과 믿음은 사실 구분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인류는 한 단계 도약을 하게 되고 형이상학적 단계로 나아갑니다. 세상의 근원을 질문하는 단계로 신이 아닌 인간의 이성으로 판단하려는 경향입니다. 드디어 현대에 이르러 지식은 현대적 진화를 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경험과 관찰을 바탕으로 한 과학적 단계입니다. 오귀스트 콩트는 과학적 지식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은 바로 사실주의라고 말합니다. 사실 기반이 아닌 것은 객관적 지식, 즉 과학이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 「당신의 신념에 돌을 던져라」 중에서
아무리 진취적인 사상과 이념을 갖고 있다 한들 합리적인 문제 제기와 건전한 비판마저 하지 못하게 하고, 자신의 믿음을 모든 사람에게 강요하고, 여기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적대시하는 사람은 히틀러와 다를 바 없는 파시스트이기 때문입니다. 진보적인 이념이라고 해서 늘 민주적일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흔히 하는 착각 중 하나입니다. 마르크스로 인해 생겨난 좋지 않은 도그마 중 하나가 많은 지식인에게 뿌리 깊은 역사법칙주의적 사고를 심어주었다는 것입니다. 역사가 하나의 목적성을 갖고 있고 그곳으로 향해 달려감으로써 어떤 특정한 선의 실현이 이루어진다는 사상은 유사과학과도 같은 종교적 믿음에 불과합니다.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미국의 언어학자이자 진보 사회학자인 놈 촘스키(Noam Chomsky, 1928~)도 “마르크스주의는 그 자체가 교회 혹은 신학이 되곤 한다”라고 비판합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나 프로이트주의처럼 사람 이름이 붙은 학설은 일종의 종교로 미화되는 경항”이 있다는 견해입니다. 사실 마르크스 이론은 레닌스탈린 체제 이후 정치철학으로써 내리막을 걷게 되는데, 수많은 학자 역시 이 원인으로 맑스주의의 종교화를 지적합니다. 이상적인 사회를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할 사회 이론이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현상으로 즉 매개가 목적 그 자체가 됐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탄생한 프랑크푸르트 학파40는 사회운동에 반드시 휴머니즘이 전제되어야 하며 인간에 대한 사랑이 없는 변혁 운동은 사이비 운동일 뿐이라 말합니다. 그저 또 하나의 권력 이데올로기일 뿐이라는 것이죠. 반세기 전 대한민국도 이런 권력 이데올로기의 대표적인 희생지였습니다. 세상에 인간의 생명보다 중한 사상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80억 인구에게 공통된 유일한 가치는 모두가 공존하는 ‘평화’ 외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같은 일종의 역사에 대한 신화적 상상력은 많은 이들에게 특정한 이념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었고 그것에서 벗어나는 자는 ‘역사를 거스르는 자’로 심판받아 마땅하다는 사고가 되었습니다. 불과 반세기 전 세계의 절반을 차지했던 공산주의가 실패한 것은 이처럼 잘못된 믿음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 「단 한 사람의 고통도 외면하지 않으려면」 중에서
세계를 나 자신의 표상으로 본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사유하면 “세계는 인식하는 주체를 위해 존재한다”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세계는 언제나 우리를 위해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우리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삶은 무척 특별합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을까요? 도저히 인간 지능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무에서 유가 생겨 우주라는 것이 탄생했습니다. 어떤 지점에서 빅뱅이 일어나고 불가능한 확률로 질서정연하게 혼돈에서 질서가 잡혔습니다. 여기에 엄청난 우연으로 태양계가 생기고 또 한 번 엄청난 확률로 태양계에 지구라는 곳이 생겼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곳에 말도 안 되는 확률로 유기체라는 생명의 근원이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지구의 기후는 오랜 세월 혹독했습니다. 그러다가 지구 역사에서 아주 짧은 기간 기후가 안정화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우리 인간이라는 생명이 탄생했습니다. 이것은 허리케인에 날아간 목재들이 우연히 결합해 정교한 건물이 될 확률보다 낮은 것입니다. 즉 우리의 존재는 매우 특별한 ‘우주적 사건’입니다. 어쩌면 이 우주는 당신을 꽃피우기 위해 생겨난 무대일 수 있습니다. 제가 인간을 특별한 존재로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철학적 관점에서 이 광대한 세상은 바로 당신을 위해 존재합니다.
--- 「당신이 특별한 이유」 중에서
🖋 출판사 서평
≪닥터 필로소피≫ 이렇게 읽자
이 책은 철학의 오랜 주제인 인식론, 존재론, 지성론, 윤리론을 저자의 경험과 연결된 저자의 시각을 바탕으로 다루고 있다. 먼저 1장 ‘인식론’에서는 인간의 의식이 어디에서 왔는지, 이로 인한 문제점들은 무엇인지 살피면서 허상과 진실 사이에서 정신을 치유하는 철학적 의식 상태를 소개한다. 2장 ‘존재론’에서는 나란 존재란 무엇이고, 존재를 깨닫는 데 필요한 것은 어떤 것인지, 철학적 사유의 습관을 장착하고 살아가면 어떤 점이 좋은지 등등 개개인이 스스로의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삶의 도구로서의 철학을 논한다. 3장 ‘지성론’에서는 진정한 ‘앎’이란 무엇인지, 우리가 무엇을 안다고 할 때 그 앎이란 정확히 무엇이며 어떤 관계성 안에서 앎이 가치를 가질 수 있는지, 그렇게 쌓은 앎이 지혜가 되어 과연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줄 수 있는지 탐색한다. 마지막으로 4장 ‘윤리론’에서는 나라는 개인을 넘어서는 우리의 개념, 이기적 사유에서 이타적 사유로 나아가는 공동체적 사회 철학에 대한 아이디어를 공유한다. 그러나 독자들은 이 책을 읽을 때 주어진 순서에 관계없이 자신의 관심 분야부터 읽어도 무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