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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선화공주, 버리기엔 너무 아깝다` [연합]
프랑켄 추천 0 조회 625 09.05.20 13:17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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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5.20 16:10

    첫댓글 '미륵사'의 창건과정에 있어서의 '선화공주'와 '사택왕후'에 관련된 연구는~ 아직 걸음마 단곕니다!!!ㅎㅎ 벌써부터 어느 한쪽이 "백번 옳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연구가 진행된 상태는 아니잖습니까???^^; 물론 '봉안기'라는 중대한 "고고학적 유물"이 발견되어~ 다른 쪽이 우세해졌지만, 아직 '삼국유사'의 '서동설화'를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라고 단정하기는 너무 이릅니다^^;; 특히 '설화' 중에서도 매우 구체적이고, 그 시대에 적확성을 가진 '서동설화'는 단순히 '전설'로 치부하기에는 그 의미가 결코 작지 않아요ㅎㅎ '미륵사'를 세우지는 않았더라도, 최소한 그런 인물(선화공주)이 존재했을 가능성은 다분합니다^^;;;

  • 09.05.20 16:15

    그리고 오랜만에 글을 올려주셔서 잘 읽었습니다만, 전에 줄기차게 이야기 하셨던 '민족주의'에 관한 후속글은 어찌되어 가는 것인지 궁금하군요^^;

  • 작성자 09.05.21 09:46

    이론적으로는 백 번 옮다고 판단하기 힘들다 하더라도 이런 상황에선 '하나 보고 열을 안다' ' 싹이 노랗다'란 말이 딱 맞아 떨어지죠. 디시 인사이트 같은 막장 토론 사이트에서도 저런 ' 이거 포기 못해'식의 뻘말은 절대로 안 하는데, 말과 글로 먹고 살아야 하는 교수 입장에서 - 자기가 주장하는 학설이 부정되면 그만큼 자기영향력이 줄어드니- 더더욱 피해야 할 자폭질을 했으니 - 이런 발언은 두고두고 회자될텐데 말이죠- '선화공주 창건자'설이 논리가 빈약하기 그지 없다는 명백한 증거이죠. 그리고 솔직히 선화공주 설화가 당시 상황과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결정적 단점이 있었죠. 백제 무왕이 신라와 싸워 기록에 남은 전투수만

  • 작성자 09.05.21 09:53

    큰 걸로만 따져봐도 13번이나 되는데, -그래서 시호가 武자이죠- 이렇게 험악했던 두 나라 상황에서 이런 해피엔딩이 있다는 건...말이 안 되죠. 선화공주 인물 자체는 실존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지만...맛동과의 헤피엔딩 스토리는 없었다는 게 맞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건은 ............ 솔직히 빠른 시일 내 올리기는 힘들 거 같군요. 쥐마왕이 워낙 경제를 망쳐놔서 일자리 구하는 것이 우선이라서요 ㅡㅡ 그래도 약속은 지킬 것이니 차분히 기다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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