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루카 10,42 )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라는 주제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루카 복음 10장 42절의 말씀인데, 먼저 영화 얘기부터
하겠습니다.
'조
블랙의 사랑' 이라는 영화가 있는데, 제가 보기에는 아주 좋은 영화지만,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합니다. 부분적인 내용은
이렇습니다.
미디어계의
재벌인 빌 패리쉬라는 회장(안소니 홉킨스가 그 역을 맡고 있습니다) 은 경쟁사와의 합병 문제로 심각한 위기를 맡게 되며, 또한 자신에게 죽음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불길한 예감도 함께 찾아옵니다.
빌
패리쉬에게는 두 딸이 있는데 큰딸은 백수건달에게 시집가서 남편을 회사 이사로 만들었지만 전혀 주제 파악이 안 되는 친구며, 둘째 딸은 의사인데
회사의 유능한 간부와 연애 중입니다. 어느 날 출근하는 비행기 안에서 아빠가 둘째 딸에게 그런 말을 합니다.
"정열적인
사랑을 해 봐라. 사랑은 정열과 집착이다. 그 사람 없이는 못 사는 것이다. 사람이 살면서 깊은 사랑을 안 했다면 산 게 아니다." 아버지가 볼
때 둘째 딸이 연애를 하면서도 신나는 기쁨과 가슴 설레는 흥분이 없습니다. 이건 사랑이 아닙니다. 연애를 한다면 뭔가 그 이상의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충고를 합니다.
"마음을
열어라. 그러면 첫눈에 불꽃이 튀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나는 네가 기쁨에 겨워 둥둥 떠다니는 모습을 보고 싶다. 노력을 해라.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산 게 아니다."
저는
그 두 가지 말을 이렇게 들었습니다.
"주님과
정열적인 사랑을 해 봐라. 그분 없이는 못 사는 것이다. 사제로 살면서 주님과 깊은 사랑을 안 했다면 사제로 산 게
아니다."
"마음을
열어라. 그러면 첫눈에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할 수 있다. 나는 네가 기쁨에 겨워 늘 노래하는 것을 듣고 싶다. 노력을 하거라.
노력도 안한다면 그것도 사제로 산 게 아니다."
저는
그날, 영화를 보고 싶어 본 것이 아니라, 수녀님들과 함께 출장 다녀올 때 수녀님들이 영화나 한 편 보고 가지고 졸라 제목도 안 보고 들어갔다가
뜻밖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날은 마침 제 사제수품 기념일이었기에, 그 영화가 마치 저를 위해 만든 것처럼 보였습니다.
영화에서
둘째 딸은 바로 그날 아침 커피숍에서 정말 눈에 불꽃이 튀는 남자를 만납니다. 그 남자가 바로 유명한 배우 브래드 피트입니다. 처음 만나
대화하는 장면이 아주 아름답습니다. 여자가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남자도 여자의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두
사람은 그래서 헤어지는 것을 몹시 아쉬워하다가 브래드 피트가 그만
교통사고로
죽습니다. 아주 순간적인 일이라, 방금 모퉁이를 돌아섰던 여자
는
브래드 피트의 죽음을 전혀 모릅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저승사자가 공교롭게도 죽은 브래드 피트의 육체를 입고 빌 패리쉬를
찾아옵니다.
저승사자가
찾아왔으니 빌 패리쉬에겐 굉장히 기분 나쁜 일입니다. 그런
데
저승사자는 이때를 애용해 휴가를 즐기면서 엉뚱하게 둘째 딸과 깊은 사
랑에
빠집니다. 둘째 딸은 저승사자의 정체를 모르고 커피숍에서 만났던 남
자로
착각하며, 이제 비로소 아버지가 말한 정열적인 사랑을 찾았다고 기뻐
합니다.
둘째
딸이 저승사자와 깊은 사랑에 빠진 것을 보며 아버지 빌 패리쉬는 너무 당황했습니다. 일이 하필 왜 이렇게 되었는지 말릴 수도 없었습니다. 아니,
말려도 딸은 이해를 못하며 달리 손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
빌 패리쉬에게 65회 생일이 다가오는데, 큰딸은 아빠의 생신을 위해 온갖 수고를 다합니다. 아빠로부터 점수를 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그러나 빌 패리쉬는 자기 생일에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화사가 거덜 날 판에 생일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저승사자에게 끌려갈 판국에 무슨 기쁨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둘째 딸만은 아버지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생신을 위해 손 하나 움직이지 않는데도 아버지의 사랑을 독점합니다.
마치 루카 복음 10장 38-42절에 나오는 마르타와 마리아 이야기같습니다.
성경에서
마르타는, 예수님을 위해 온갖 수고를 다하면서도 주님의 칭찬
은
받지 못합니다. 오히려 바쁘다고 불평하는 마르타에게 예수님이 그러셨습니다. "마르타 야, 마르타 야!" 아마 답답하시니까 두 번이나
부르셨을 것입니다.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이다! 그게 뭡니까?
우리는
이 대목에서 많은 갈등을 느낍니다. 주님은 당신을 위해 수고하는 언니 마르타는 꾸짖으시고, 대신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동생 마리아만
칭찬하십니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그럼, 그게 뭐죠? 참 좋은 몫은 뭐고, 빼앗아서는 안 될 그
한 가지는 뭡니까?
다시,
영화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아빠가 드디어 저승사자와 함께 이승을 넘어갈 때 아무도 눈치 못 채는데 둘째 딸만은 저승으로 넘어가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뛰어갑니다. 큰딸도 모르고 둘째 딸만 바라봅니다. 왜 그랬죠? 사실은, 둘째 딸이 누구보다 아빠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지 않는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봅니다.
성경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요한복음 12장에 보면, 과월절을 앞두고 예수님이 마르타의 집에 다시 들르셨을 때 마르타는 여전히 시중을 들고 있었고, 마리아는
매우 값진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분의 발을 닦아 드립니다.
이걸
보고 유다가 불평을 터뜨립니다. "어찌하여 저 향유를 300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그때
300 데나리온이라면 현재 시가로는 500만 원이 훨씬 넘습니다. 이처럼 엄청나게 비싼 것을 한 사람의 발에 붓다니, 돈이 너무
아깝고 마리아가 바보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무슨 날이라고 했죠?
장례 날!
장례가
뭡니까? 예수님이 이젠 곧 죽어 저승으로 넘어가실 긴박한 상황입니다. 이때 제자들은 전혀 눈치를 못 채고, 그저 '한자리' 해 먹을 궁리만
하는데, 오직 마리아만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합니다. 왜 마리아만 알까요? 마리아가 누구보다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5백만 원이 문제가 아닙니다. 마지막 가시는 주님을 위해서라면 있는 재산을 다 바쳐도 아깝지 않습니다.
제가
왜 영화 얘기를 장황하게 했는 고 하니, '영화에서 둘째 딸이 아버지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처럼 내가 과연 주님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가?'
라는 질문에 대답이 막혔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나는 과연 마음을 열고 노력하고 있는가?' 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도 대답이
궁했기 때문입니다.
"정열적인
사랑을 해 봐라." " 마음을 열고 노력해라." 아직도 귀에 쟁쟁하게 울립니다.
흔히
마르타를 행동하는 여자, 마리아를 관상하는 여인으로 설명합니다.
맞는
말이겠지만, 그러나 그런 판단만 가지고는 부족하고 좀 더 그 의미를 넓게 새겨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라는
주님의 말씀은 관상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너무 지쳐 있을 때는 누가 음식을 권해도 반갑지 않습니다. 만사가 귀찮습니다. 피곤하다고 음식이 다 좋은 게 아니고,
술을 좋아한다고 해서 아무 때나 술이 좋은 게 아닙니다. 다 때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런 상황입니다.
많은
이들에게 설교하시고 안수하시고, 반대자들을 피해 전교하시면서 심신이 굉장히 피곤한 상탭니다. 우리가 상상해 보면 짐작이
갑니다. 그럴 땐 먹는 것도 귀찮고 씻는 것도 귀찮습니다. 가만히 쉬고 싶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2부에
계속>
♣ 은총 피정 中에서 / 소록도 성당 강길웅 요한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