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행
김영숙
나는 기어이 아버지께 일러 바쳤다.
오빠가 공부를 소홀히 하는것 같다고. 아버지께서는 잠시 굳은 표
정으로 생각을 하시더니 니 오래비가 어딜가는지 따라가 보라고 하셨
다.
오빠는 친구들과 과외를 받고 있었다. 아버지께 지시를 받고 나는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는데 드디어 때가 왔다. 까만 썬그라스와 007
가방은 들지 않았지만 그 첩보원보다 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한 발자
국씩 오빠를 미행하는데 일단은 성공했다. 오빠는 아무런 의심없이
책을 들고 천천히 대문을 나섰다. 바쁠것이 없는 걸음걸이다. 한가
한 동네를 벗어나자 곧 시끄러운 차소리와 인파가 많아진 길이 나타났
다. 어느정도 오빠와의 사이를 띄우면서 마치 영화의 주인공이 하듯
나는 전봇대나 좁은 골목이 보이면 몸을 숨기곤하며 눈은 오빠를 잃을
“세라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한참을 걸어가다 멈춘 곳은 지금은 없어
진 상당공원 자리에 있던 동아극장 앞이다.
옳지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계속 오빠의 다음 행동을 지켜보았
다. 그런데 게시판에 붙여진 영화배우들의 사진만 쓰윽 훑어 보더니
옆 빵집으로 걸어간다 “그럼 그렇지"하지만 여기서도 그냥 구경만
하더니 갑자기 걸음을 빨리한다. 나는 고개를 조금 숙이고 사람들의
뒤에 몸을 숨기며 계속 오빠를 따라갔다. 눈치를 챘을까 가슴은 콩닥
거렸다 걸음이 빨라진 것이 마음에 걸렸다. 오빠는 아무런 행동도 보
이지 않은 채 묵묵히 걷기만 했다. 나의 발은 오빠의 걸음에 따라 급
해지기도 하고 더디어지기도 했다. 오빠는 한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
는다. 그것이 나에게 안심을 주었다. 큰길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진 주
택가로 접어든다. 나도 놓칠세라 급히 골목길로 꺾어들었다. 그런데
그 동네는 길이 왼쪽으로 가다 다시 오른쪽으로 요리조리 골목길이 많
았다.
어느덧 얼굴에는 땀이 배어 나왔다. 어렵게 쫓다가 그만 오빠
가 사라졌다. 어디로 갔을까? 나는 걸음을 옮기며 오빠의 뒷 모습을
찾았다. 그때 불쑥 "너 나 찾니?" 순간 너무 놀래서 숨이 딱 멈추는
것만 같았다.
“으응, 저어....” 오빠는 얼굴이 홍당무가 된 채 쩔쩔매는 나의 손을
잡더니 어느 아담한 한옥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키가 크신 선생님께
서 활짝 웃으시며 “여-미니치마 입은 꼬마 아가씨네..”하시며 들어오
라 하셨다. 나는 그때 큰 언니가 보내주신 곤색의 짧은 원피스를 입
고 있었는데 그것을 보고 미니라 하셨다. 그 말씀이 또한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었고 바로 인사를 하고 나와 버렸다.
오늘 오빠의 미행은 실패가 되고 말았다.
2000.6집
첫댓글 다녀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