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1일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하느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걸 심심치 않게 체험한다. 처음에는 좀 놀랐지만 이제는 익숙해지는 거 같다. 바오로 사도의 증언이 기억난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 8,28).” 복잡한 세상사와 교묘한 속임수들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고 실행하는 것은 영리함이나 강한 의지가 아니라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고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겠다는 어린이 같이 순수한 지향이다.
아버지 헤로데 임금에 이어 그 아들 헤로데 임금도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다. 예수님께 호의적인 몇몇 바라사이들이 이를 알렸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걱정을 일축하셨다. 사람들은 죽음을 제일 두려워하지만 예수님께 가장 큰 두려움은 아마도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겟세마니 동산에서 피땀을 흘릴 정도로 번뇌하신 것도 당신의 수난과 죽음 그 수고와 희생이 헛되게 되는 걱정이었을 거 같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이 세상에 사는 동안은 누구나 하느님의 아들도 별별 걱정으로 불안해질 수밖에 없는 건가 보다. 그들이 알려 주지 않았어도 당신이 예루살렘에서 어떤 일을 겪으실지 이미 다 아셨는데도 말이다.
예수님은 헤로데를 여우라고 부르셨다(루카 13,32). 여우는 영리한데 힘은 약한 존재를 상징한다. 힘센 이는 사자로 비유됐다.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이 그렇다. 이 세상에 사는 우리에게 실제로 물리적인 힘을 발휘할 수 없지만 우리의 약점을 아주 교묘하게 이용해서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게 우리 마음을 조종하고 또 실제로 일을 저지르게 한다. 평화를 위한 전쟁이나 자살 폭탄 테러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악령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자마자 두려워 떨었고 그분 말씀 한마디에 쫓겨나곤 했다. 애초부터 그들은 예수님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반면에 우리는 그것들의 아주 손쉬운 먹잇감이다. 그것들을 이기는 방법은 피하는 것이고 예수님 뒤로 숨는 것뿐이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의 전투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권력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령들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대항하려면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히 무장해야 한다(에페 6,2-3). 하느님의 무기란 진리의 허리띠, 의로움의 갑옷, 평화를 준비하는 신발,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칼이다. 성령의 칼이란 바로 하느님의 말씀이고, 이런 무기와 방패를 늘 갖출 수 있게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우리가 모두 그렇게 하도록 인내하며 깨어있어야 한다(에페 6,14-18). 하느님 안에는 유혹이 있을 수 없지만 그 밖에서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그 유혹의 독침을 맞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늘 걱정하며 불안하게 살 수는 없다. 믿음과 신뢰가 아니고서는 하느님을 알 길이 없고, 그분과 연결되는 다른 방법이 없다. 그분이 계심을 느낄 수조차 없다. 기껏해야 일이 끝나고 난 뒤에 하느님이 함께해주셨음을 알게 되는 거뿐이다. 유혹을 이기는 방법은 힘을 키우는 게 아니라 하느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 익히는 것이다.
예수님, 주님을 따릅니다. 죽음이 가장 두려운 적이라는 말도 유혹인 거 같습니다. 정말 두려워해야 하는 건 하느님을 잊어버리게 되는 겁니다. 세상의 유혹은 속 빈 강정 같다는 걸 잘 압니다. 제 바람은 천국이 아니라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어머니 계신 곳에 제 마음도 함께 있게 도와주소서. 아멘.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