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초가 피어난 한라생태숲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겨울의 끝자락. 봄소식을 가장 먼저 알린다는 복수초가 이제 막 기지개를 켜는 참이다. 제주 한라생태숲에 피어나기 시작한 노란빛 ‘봄의 전령사’가 이른봄을 찾아 떠나는 여행자의 발걸음을 이끈다.
노란 복수초를 만나는 한라생태숲
늦겨울 추위에도 노란 꽃을 피워내는 복수초
복수초(福壽草), 뜻을 풀이하자면 ‘복과 장수를 기원하는 꽃’이다. 땅 위에 거의 붙어 있다시피 할 정도로 키가 작지만, 한겨울 눈 속을 뚫고 꽃을 피워낼 정도로 뚝심 있는 꽃이다. 무채색의 계절에 갇힌 숲속에서 홀로 노란빛을 띤 복수초는 봄의 전령사다운 기운이 충만해 보인다. 아기 주먹처럼 소박하고 귀여운 꽃망울들이 곧 다가올 봄을 준비하라며 아직 동면 중인 초목들을 재촉한다.
한라산 기슭에 자리한 한라생태숲
제주에서 노란 복수초 꽃무리를 만날 수 있는 곳 중 하나가 한라생태숲이다. 한라산 북쪽 자락에 자리한 한라생태숲은 난대식물부터 한라산의 고산식물까지 다양한 식생을 한 장소에서 만날 수 있는 공간으로 오랫동안 훼손된 채로 방치되었던 야초지를 본래 숲으로 복원했다. 생태숲 안에 여러 테마 숲과 연구를 위한 시험림 등이 조성되었으며, 제주 시내가 한눈에 잡히는 멋진 전망도 품고 있다. 제주대학교에서 차로 약 5분 거리에 있어서 찾아가기도 쉽다.
숯을 구워내던 동산, 숫모르숲길
[왼쪽/오른쪽]숫모르숲길 이정표 / 절물자연휴양림으로 이어진 길 이정표
한라생태숲을 대표하는 숫모르숲길은 자연을 그대로 느끼며 걷기 좋은 길이다. 총길이 4.2km에 이르는 짧지 않은 코스로 산책하는 기분으로 천천히 걸으면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숫모르숲길 중간 즈음에 절물자연휴양림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어 좀더 오래 걷고 싶다면 이 길을 이용해도 된다. 절물자연휴양림까지는 3시간 정도 걸린다. 단, 차를 이곳에 주차하고 간다면 휴양림에서 되돌아와야 하므로 이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더 낫다.
지하수를 굴착할 때 출토되었던 암석
숲길 입구에 닿으면 가장 먼저 길게 놓인 원형의 암석이 시선을 끈다. 한라생태숲 지하수를 팔 때 출토되었던 암석이라고 한다. 굴착기를 이용해 지하 460m 정도를 뚫었는데 그 깊이까지 이처럼 단단한 암반 지형이라니, 제주도가 화산섬임을 다시금 실감하게 한다.
숫모르숲길을 안내하는 노란 리본
이내 ‘숫모르숲길’이라 쓰인 노란 리본이 길을 안내한다. ‘숫모르’는 숯을 굽는 동산이란 뜻으로 한라생태숲 일대를 가리키던 옛 지명이다. 제주의 숲에는 이같이 숯을 구워내던 터와 사람들이 거주했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숯을 굽는 데 여러 날이 걸리기 때문에 일꾼들은 근처에 움막 등을 짓고 며칠을 숲속에서 보내야 했다. 원시림에 가까운 숫모르숲길을 걸으며 옛적을 상상하자니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아무도 없는 깜깜한 숲속에서 몇날 밤을 어떻게 보냈을까? 보통 사람이라면 아마 하룻밤도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왔을 것 같다.
[왼쪽/오른쪽]마른 나뭇가지들이 만드는 신비한 풍경 / 고개를 들면 나뭇가지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왠지 모를 두려운 상상은 숲이 깊어질수록 더해간다. 두려운 마음과 달리 이파리 하나 달리지 않은 마른 나뭇가지들이 이리저리 얽힌 숲 풍경은 점점 신비로워진다. 아무렇게나 놓인 돌과 나무, 빛바랜 조릿대와 그 틈새에 낀 초록빛 이끼 등이 한데 어우러지며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가느다란 가지들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나무의 정령들이 사는 세계로 들어선 건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인다.
봄을 부르는 복수초와 노루귀
숲길에 피어난 복수초 꽃무리
문득 눈에 스쳐 지나가는 노란빛 무리. 몇 발자국 더 옮기자 노란 복수초 무리가 여기저기 반가운 얼굴을 내민다. 그 노란빛이 어찌나 밝게 느껴지는지 마치 어두운 숲길에서 발견한 노란 등불 같다. 마른 검불 사이로 꽃무리가 반짝반짝 빛난다. 거무튀튀한 현무암과 퇴색된 낙엽들 사이에서 초록빛과 노란빛의 조화가 그림처럼 아름답다. 벚꽃이나 매화 같은 화려함은 없지만 복수초에는 그만의 소박한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작고 노란 꽃 안에서 끊임없이 따스한 봄빛이 새어나온다.
복수초와 더불어 봄을 부르는 노루귀
재미있게도 복수초는 한낮엔 꽃잎을 활짝 열지만 밤이면 꽃봉오리를 닫는다. 밤에는 추위를 견디기 위해 꽃잎을 꼭꼭 닫고 있다 따스한 볕이 내리쬐는 낮에는 노란 꽃잎을 열어 동네방네 봄소식을 전하는 것은 아닐까? 혼자 엉뚱한 상상을 하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사이, 오래된 나무둥치 틈에 피어난 새하얀 꽃이 문득 눈에 띈다. 복수초와 더불어 봄을 부르는 야생화로 꼽히는 노루귀다. 가느다란 줄기 끝에 흰 눈 같은 꽃잎을 매단 노루귀까지 만나니 봄이 한 발 더 성큼 다가온 느낌이다.
마른 억새풀들이 흔들거리는 숲길
복수초의 향연에 취해 정신없이 걷다 보면 어느새 숲길 끝자락에 다다른다. 마른 억새풀들이 바람결에 이리저리 춤을 추며 사라락 상쾌하게 합창을 한다. 사계절 푸른 상록수림이 우거진 숲을 지나면 이른봄을 찾아 떠났던 여정도 마무리된다.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기는 산책길이다. 아마도 내년 이맘때, 겨울의 끝자락에 다시 이 길을 찾게 되지 않을까. 긴긴 겨울밤에 지쳐 누구보다 빨리 봄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면 누구보다 먼저 이 길을 걷고 있을 것 같다.
2층 높이로 세워진 전망대 [왼쪽/오른쪽]푸른 바다와 제주 시내가 한눈에 잡힌다. / 눈 덮인 오름 풍경
숲길 산책 후 전망대에 들르는 것도 잊지 말자. 주차장 끄트머리에 세워진 전망대에 오르면 제주 시내는 물론 그 너머 앞바다까지 훤히 내려다보인다. 탁 트인 풍경에 겨우내 움츠려 있던 마음이 말갛게 씻기는 기분이다. 반대쪽으로 돌아서면 웅장한 한라산과 주변 오름 풍경이 또 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한라산 정상부는 나무들이 새잎을 틔우는 초봄에도 눈이 녹지 않은 설경을 보여준다.
여행정보
한라생태숲
-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516로 2596
- 문의 : 064-710-8688
주변 음식점
- 해락원2호점 : 제주 제주시 중앙로24길 5 / 064-756-3378
- 커리왈라 : 인도 가정식 커리 / 제주시 애월읍 일주서로 6015 / 010-2889-5188
- 카페 하루하나 : 핸드드립, 영귤차 / 제주시 애월읍 장전로 155 / 070-7788-7170
첫댓글 지금제주에는 유채곷이 한창이겠죠
그리습니다
아름답고,소중한 인연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