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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와 미국민이 지금 잘 생각해야 할 제2차 세계 대전의 도화선이 된 '뮌헨 유화'의 교훈 / 3/23(일) / JBpress
(마스조에 요이치(국제정치학자)
조정자로서 전쟁 종결에 기여하고 평화의 사자 역할을 맡아 노벨평화상을 받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계획은 쉽게 실현될 것 같지 않다.
■ 가자에서의 실패
3월 18일, 이스라엘군은 가자 지구에서의 전투를 개시했다.
1월 19일부터 시작된 정전은 6주간의 첫 단계가 3월 1일 끝났다. 그때까지 하마스가 33명의 인질을 석방했고 이스라엘은 약 2000명의 팔레스타인인을 석방했다.
2단계에서는 가자지구에서 모든 이스라엘군이 철수하고 남은 인질 전원이 풀려날 예정이지만 하마스가 2단계로의 이행을 요구한 반면 이스라엘은 추가 인질 석방을 요구하며 가자지구 송전과 지원물자 반입을 중단했다.
위트코프 미 중동특사는 4월까지 휴전 연기를 요구했으나 하마스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미국이나 아랍 중개국의 제안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공습을 단행했고 지상작전도 시작했다. 그 결과 4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이에 대한 반격으로 하마스는 20일 텔아비브를 미사일과 무인기로 보복 공격했다.
2단계에 들어가기 전에 전쟁이 재개된 것인데 미국은 이스라엘의 행동을 용인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친이스라엘적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여기에 트럼프가 가자 주민을 이주시켜 휴양지로 개발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낸 것은 주민뿐 아니라 아랍 국가들의 반발을 샀다.
3단계에서는 숨진 인질들의 시신이 하마스에서 이스라엘로 인도돼 가자 부흥이 시작될 예정이지만 2단계에 들어갈 수 있을지도 불분명하다.
국제사회는 그동안 두 가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두 국가의 평화공존을 추구해 왔다. 그 역사를 무시하고 힘을 바탕으로 딜(거래)을 하자는 장사꾼의 발상으로는 팔레스타인 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
■ 푸틴의 페이스로 진행되는 정전 교섭
우크라이나 정전도 트럼프의 뜻대로 되지 않고 있다.
3월 18일 트럼프는 푸틴 대통령과 전화 협의를 실시해 전쟁을 끝내고 영속적인 평화를 실현할 것, 미-러 양국 관계를 개선하기로 합의했다. 또, 흑해에서의 정전이나 항구적 평화의 구축에 협력하는 것에도 동의했다.
그리고 푸틴은 에너지 시설에 대한 30일간의 공격 중단에는 동의했지만, 미국이 우크라이나와 합의한 30일간의 일시 정전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트럼프가 '에너지 시설이나 인프라'라고 표현한 반면 푸틴은 '에너지 시설'이라고만 표현하고 있어 미묘한 차이도 있다. 에너지 시설에 대한 공격 정지는 러시아에 있어서도 큰 메리트가 있기 때문이다.
이어 포로 교환이 합의돼 19일 실행에 옮겨졌다.
19일에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트럼프와 전화통화를 하고 에너지 시설에 대한 30일간의 공격 중단에 동의했다. 또 트럼프는 러시아군이 점거하는 자포리자 원전을 미국이 소유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이것으로, 일단, 부분 정전이 실현되게 되지만, 푸틴은 시간을 끄는 데 성공한 것 같다. 푸틴은 우크라이나군 동원 금지, 외국의 군사지원 및 기밀정보 제공 금지를 주장했지만 트럼프는 이 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와의 전화통화 전 푸틴 대통령은 경제 관련 비공개 회동에서 러시아가 일방적으로 병합한 우크라이나 동부·남부 4개 주와 크림반도를 러시아령으로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주장은 우크라이나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며 국제사회가 이를 인정하면 무력으로 다른 나라를 침공해 영토를 빼앗는 행위가 정당화되고 만다.
정전협상에서 모기장 밖에 놓인 유럽 국가들은 이번 합의를 정전을 위한 첫걸음으로 평가하면서 러시아에 대한 경계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23일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미국과 러시아,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협의가 있을 예정이다. 현재로서는 푸틴의 페이스로 협상이 진행되고 있어 트럼프의 겨냥이 조기에 이뤄지기는 쉽지 않다.
■ 뮌헨 회담
나는 젊은 시절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국가에서 히틀러 시대 유럽 외교사 연구에 매달렸다. 그 연구 성과를 돌이켜 보면 지금의 우크라이나 정전협상이 1938년 9월 뮌헨 회담과 매우 유사하다는 의구심을 금할 수 없다.
이 역사상 유명한 회담에서 많은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 유럽 국가들이 트럼프의 딜에 회의적인 것은 뮌헨의 유화가 제2차 세계대전을 야기했음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1938년 9월 뮌헨에 독일 히틀러, 영국 체임벌린, 프랑스 달라디에, 이탈리아 무솔리니 등 4개 정상이 모여 체코슬로바키아 주데텐 지방을 독일에 할양하기로 결정했다. 그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히틀러의 강경 자세를 앞에 두고 영불이 타협한 것이다. 그 결과 전쟁은 회피되었다. 그러나 이 타협이 1년 뒤 제2차 세계대전을 촉발시킨 것이다. 이를 뮌헨의 유화라고 한다.
이번 우크라이나 정전협상과 겹치면 히틀러가 푸틴, 체임벌린이 트럼프, 그리고 체코슬로바키아가 우크라이나다. 성격적으로는 금방 격앙되는 점 등 히틀러와 트럼프는 많이 닮았다. 그러나 역할은 별개다.
■ 유화 정책
체코슬로바키아는 회의 참석을 거부당했고, 독일인이 살고 있다는 이유로 자국 영토를 깎아 독일에 주는 것을 강대국으로 정해버린 것이다. 트럼프가 푸틴이 요구하는 우크라이나의 영토 할양을 인정하면 뮌헨 회담과 같은 셈이 된다.
뮌헨에서 이탈리아는 독일과 동맹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무솔리니는 히틀러 편을 든다.
프랑스는 독일과 인접해 있어 히틀러의 침략을 두려워하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의 최대 관심사는 대독 안보이자 독일 봉쇄다. 그래서 독일 포위망을 형성하기 위해 프랑스는 1924년 1월 체코슬로바키아와 1935년 5월 프랑스-소 상호원조조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달라디에는 히틀러의 강경 자세와 체임벌린의 양보를 앞에 두고 체코슬로바키아의 영토를 지키지 않았던 것이다. 이로써 체코슬로바키아는 프랑스를 동맹의 상대로 보지 않게 됐다. 군사적으로는 35개 사단을 잃은 셈이다. 감란 장군과 레이노 법무장관은 다라디에에게 어디서 새로 35개 사단을 조달할 겁니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체코슬로바키아가 프랑스에 버림받은 것을 보고 있던 스탈린은 프랑스가 소련을 구하러 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깨달은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것이 1939년 8월의 독일-소련 불가침 조약, 그리고 독일-소련에 의한 폴란드 분할로 이어진 것이다.
트럼프가 푸틴의 주장에 찬성해 우크라이나 지원을 중단하고 러시아인이 살고 있다는 이유로 동부 등 영토 할양을 허용하면 영국이나 프랑스가 히틀러에게 양보한 구도와 같아진다.
■ 군사 정보의 필요성
히틀러의 측근 중에서도 뮌헨협정과 같은 타협이 아니라 즉각 전쟁으로 매듭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대표가 리벤트롭 외무장관이다.
그러나 군 최고 간부인 괴링과 카이텔은 이에 반대했다. 그것은 아직 독일의 군비가 충분하지 않고 체코슬로바키아의 요새조차 격파할 수 없다는 것, 프랑스군과 싸우면 곧 패퇴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외교관 리벤트롭에게는 그 정보를 전하지 않았던 것이다. 프랑스 총리인 다라디에 역시 군사정보에 정통하지 못했다. 체임벌린도 그렇다.
뮌헨협정 체결로 시간을 벌고 군비를 충실히 하여 전쟁 준비를 할 수 있게 되어 가장 기뻐한 것은 독일군 최고 간부였다.
지금의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트럼프는, 그리고 우리는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의 군비, 계전 능력 등에 대해 어디까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을까. 푸틴이나 젤렌스키는 어떨까.
지금은 통신위성 등의 인텔리전스 능력이 히틀러 시대에 비해 현격히 진보하고 있다. 그러나 군수공장 안까지 잠입해 꼼꼼히 살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통신위성이 없던 시대가 휴먼 인텔리전스는 발달했을지도 모른다.
「생명의 비자」로 유명한 스기우라 치우네의 본직은 첩보 활동이었고, 그와 같이 당시의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던 첩보 요원으로부터는, 지극히 정확한 정보가 본국에 전달되고 있었다. 그러나 주독대사인 오시마 히로시처럼 히틀러에게 심취한 외교관으로부터는 그 정보를 무효화하는 정보가 외무성에 타전된 것이다.
■ 대중의 어리석음
체임벌린도 다라디에도 뮌헨에서 본국으로 귀환했을 때 평화를 유지했다며 국민들에게 큰 갈채를 받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충실한 동맹국인 체코슬로바키아를 저버린 데 대해 고뇌하는 다라디예는 귀국길에 올라 파리 르부르제 공항에 접근했을 때 대군중이 공항에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항의 폭풍이 올 것으로 생각하고 해명 성명 원고를 다 쓸 때까지 공항 상공을 선회할 것을 조종사에게 요구했던 것이다.
그러나 착륙한 그의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환희에 겨워 총리를 기리는 큰 함성이었다. 공항에서 시내로 향하는 길, 파리 시내에서도 기쁨이 넘치는 관중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보들이다. 그들은 무엇을 기뻐하는지 알고 있는가」라고 다라디에는 자조하는 듯이 중얼거렸다고 한다.
체임벌린 또한 귀국했을 때 국민들의 함성을 들었다. 국왕 조지 6세는 버킹엄궁 발코니에 총리를 맞아 국민의 환영을 받도록 하는 이례적인 대응을 했다.
하지만 처칠은 뮌헨의 유화에 대해 이것이 일의 끝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는 청산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집권 1기 때 트럼프는 러일전쟁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해 아베 총리를 놀라게 한 적이 있다. 뮌헨 회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역사를 공부하지 않는 남자가 세계 제일의 대국을 지배할 위험성을, 특히 미국 국민은 인식해야 한다. 바로 트럼프를 정권으로 내건 포퓰리즘이 세계를 망하게 만들고 있다. 지금은 제3차 세계대전 전야일지도 모른다.
마스조에 요오이치
https://news.yahoo.co.jp/articles/28bdd91febda11ed72f3ab4346bc4a7098e903b5?page=1
トランプと米国民がいまこそ噛み締めねばならない第二次世界大戦の引き金となった「ミュンヘンの宥和」の教訓
3/23(日) 11:21配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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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Bpress
トランプ大統領(写真:ロイター/アフロ)
(舛添 要一:国際政治学者)
調停役として、戦争の終結に貢献し、「平和の使者」としての役割を演じ、ノーベル平和賞を受賞しようというトランプ大統領の目論見は、容易には実現しそうもない。
【写真】ミュンヘン会談を終えて帰国した首相のダラディエを熱狂的に迎えたパリ市民。ダラディエ自身は「馬鹿な奴らだ、彼らは何を喜んでいるか知っているのか」と呟いたという
■ ガザでの躓き
3月18日、イスラエル軍はガザ地区での戦闘を開始した。
1月19日から始まった停戦は、6週間の第一段階が3月1日に終わった。それまでに、ハマスが33人の人質を解放し、イスラエルは約2000人のパレスチナ人を釈放した。
第2段階では、ガザ地区から全てのイスラエル軍が撤退し、残る人質全員が解放される予定であるが、ハマスが第二段階への移行を要求したのに対し、イスラエルはさらなる人質の解放を求めてガザ地区への送電と支援物資搬入を停止した。
ウィトコフ米中東特使は、4月までの停戦延期を求めたが、ハマスは受け入れなかった。イスラエルは、ハマスがアメリカやアラブ仲介国の提案を拒否したことを理由に空爆に踏み切り、地上作戦も開始した。その結果、400人以上が死亡した。
これへの反撃として、ハマスは20日、テルアビブをミサイルや無人機で報復攻撃した。
第二段階に入る前に、戦争が再開されたのであるが、アメリカはイスラエルの行動を容認している。トランプ政権がイスラエル寄りであることは周知の事実である。それに加えて、トランプがガザの住民を移住させ、リゾート地として開発するというアイデアを出したことは、住民のみならず、アラブ諸国の反発を買った。
第三段階では、死亡した人質の遺体がハマスからイスラエルに引き渡され、ガザの復興が始まる予定であるが、第二段階に入ることができるかどうかも不明である。
国際社会は、これまで「二つの正義」を実現すべく、「二国家の平和共存」を追求してきた。その歴史を無視して、力を背景に「ディール(取り引き)」を求める商売人の発想では、パレスチナ問題が片付くわけがない。
■ プーチンのペースで進む停戦交渉
ウクライナ停戦もトランプの思い通りには進んでいない。
3月18日に、トランプはプーチンと電話協議を実施し、戦争を終わらせ、永続的な平和を実現すること、米露の両国関係を改善させることで合意した。また、黒海での停戦や恒久的平和の構築で協力することでも同意した。
そして、プーチンはエネルギー施設への30日間の攻撃停止には同意したが、アメリカがウクライナと合意した30日間の一時停戦には同意しなかった。
トランプが「エネルギー施設やインフラ」と表現したのに対して、プーチンは「エネルギー施設」とのみ表現しており、微妙な違いもある。エネルギー施設への攻撃停止は、ロシアにとっても大きなメリットがあるからである。
さらに、捕虜の交換が合意され、19日に実行に移された。
19日には、ゼレンスキー大統領がトランプと電話で会談し、エネルギー施設への30日間の攻撃停止に同意した。また、トランプは、ロシア軍が占拠するザポリージャ原発をアメリカが所有するのが最善だと述べた。
これで、一応、部分停戦が実現することになるが、プーチンは時間稼ぎに成功したようである。プーチンは、ウクライナ軍の動員禁止、外国からの軍事支援や機密情報提供の禁止を主張したが、トランプはこの点については言及していない。
トランプとの電話会談前に、プーチンは、経済関連の非公開会合でロシアが一方的に併合したウクライナ東部・南部の4州とクリミアをロシア領と認めるように求めたという。この主張は、ウクライナは受け入れないだろし、国際社会がこれを認めれば、武力で他国を侵攻し領土を奪う行為が正当化されてしまう。
停戦交渉から蚊帳の外に置かれているヨーロッパ諸国は、今回の合意は「停戦に向けた第一歩」として評価するとともに、ロシアへの警戒心を隠していない。
23日には、サウジアラビアで、アメリカとロシア、アメリカとウクライナの協議が行われる予定である。今のところ、プーチンのペースで交渉が進められており、トランプの狙う早期実現は容易ではない。
■ ミュンヘン会談
私は若い頃、フランスやドイツなど欧州諸国で、ヒトラー時代のヨーロッパ外交史の研究に励んだ。その研究成果を振り返ってみて、今のウクライナ停戦交渉が、1938年9月のミュンヘン会談によく似ているという危惧の念を禁じえない。
この歴史上有名な会談から、多くの教訓を引き出す必要がある。ヨーロッパ諸国がトランプのディールに懐疑的なのは、「ミュンヘンの宥和」が第二次世界大戦を引き起こしたことを忘れていないからである。
1938年9月、ミュンヘンに、ドイツのヒトラー、イギリスのチェンバレン、フランスのダラディエ、イタリアのムッソリーニの4首脳が集まり、チェコスロバキアのズデーテン地方をドイツに割譲することを決めた。その要求が容れられなければ戦争も辞さないとするヒトラーの強硬姿勢を前に、英仏が妥協したのである。その結果、戦争は回避された。しかし、この妥協が、1年後の第二次世界大戦の引き金となったのである。これを「ミュンヘンの宥和」という。
今回のウクライナ停戦交渉と重ね合わせると、ヒトラーがプーチン、チェンバレンがトランプ、そしてチェコスロバキアがウクライナである。性格的には、すぐ激高する点など、ヒトラーとトランプはよく似ている。しかし、役割は別である。
■ 宥和政策
チェコスロバキアは会議には出席を拒否され、ドイツ人が住んでいるという理由で、自国の領土を削ってドイツに与えることを大国に決められてしまったのである。トランプが、プーチンの求めているウクライナの領土割譲を認めれば、ミュンヘン会談と同じことになる。
ミュンヘンでは、イタリアはドイツと同盟関係にあったので、ムッソリーニはヒトラーの肩を持つ。
フランスは、ドイツと隣接しており、ヒトラーの侵略を恐れている。第一次世界大戦後のフランスの最大の関心事は、対独安全保障であり、ドイツ封じ込めである。そこで、ドイツ包囲網を形成するために、フランスは、1924年1月にチェコスロバキアと、1935年5月に仏ソ相互援助条約を締結した。
しかし、ダラディエは、ヒトラーの強硬姿勢とチェンバレンの譲歩を前にして、チェコスロバキアの領土を守らなかったのである。これで、チェコスロバキアはフランスを同盟の相手とは見なさなくなった。軍事的には35個師団を失ったことになる。ガムラン将軍やレイノー司法大臣は、ダラディエに「どこから新たに35個師団を調達するのですか」と疑問を呈した。
チェコスロバキアがフランスに見捨てられたのを見ていたスターリンは、フランスはソ連を助けにはこないだろうと醒めた判断を下したのである。それが、1939年8月の独ソ不可侵条約、そして独ソによるポーランド分割へとつながったのである。
トランプが、プーチンの主張に賛成して、ウクライナ支援をやめ、ロシア人が住んでいるという理由で東部などの領土の割譲を認めれば、イギリスやフランスがヒトラーに譲歩した構図と同じになる。
■ 軍事情報の必要性
ヒトラーの側近のなかでも、ミュンヘン協定のような妥協ではなく、直ちに戦争で決着をつけるべきだと主張する者もいた。その代表が、リッベントロップ外相である。
しかし、軍の最高幹部であるゲーリングやカイテルはそれに反対した。それは、まだドイツの軍備が十分ではなく、チェコスロバキアの要塞すら撃破できないこと、フランス軍と戦えばすぐに敗退することを知っていたからである。外交官のリッベントロップには、その情報を伝えなかったのである。フランス首相のダラディエもまた、軍事情報に精通していなかった。チェンバレンもそうである。
ミュンヘン協定の締結によって時間を稼ぎ、軍備を充実させて戦争の準備をすることができることになって最も喜んだのは、ドイツ軍最高幹部だったのである。
今のウクライナ戦争について、トランプは、そして私たちは、ロシア軍やウクライナ軍の軍備、継戦能力などについて、どこまで正確に把握しているのだろうか。プーチンやゼレンスキーはどうか。
今は、通信衛星などのインテリジェンス能力が、ヒトラー時代に比べて格段に進歩している。しかし、軍需工場の中まで潜入して細かく調べることができるわけではない。通信衛星がなかった時代の方が、ヒューマン・インテリジェンスは発達していたかもしれない。
「命のビザ」で有名な杉浦千畝の本職は諜報活動であり、彼のように当時のヨーロッパで活動していた諜報要員からは、極めて正確な情報が本国に届けられていた。しかし、駐独大使の大島浩のように、ヒトラーに心酔する外交官からは、その情報を打ち消す情報が外務本省に打電されたのである。
■ 大衆の愚かさ
チェンバレンもダラディエも、ミュンヘンから本国に帰還したとき、「平和を維持した」として、国民に大喝采で迎えられた。
先述したように、忠実な同盟国であるチェコスロバキアを見捨てたことに苦悩するダラディエは、帰国の途について、パリのル・ブルジェ空港に近づいたとき、大群衆が空港に集まっているのを見た。彼は、抗議の嵐が来ると思い、釈明の声明の原稿を書き終わるまで、空港上空を旋回するようにパイロットに求めたのである。
しかし、着陸した彼の飛行機を待っていたのは、歓喜して首相を称える大歓声であった。空港から市内へ向かう道、パリ市内でも喜び溢れる大観衆が待っていた。
「馬鹿な奴らだ。彼らは、何を喜んでいるかを知っているのか」とダラディエは自嘲気味につぶやいたという。
チェンバレンもまた、帰国したとき、国民の大歓声に迎えられた。国王のジョージ6世は、バッキンガム宮殿のバルコニーに首相を迎えて国民の歓迎を受けることを許すという異例の対応をとった。
しかし、チャーチルは、ミュンヘンの宥和について、「これが事の終わりと考えてはならない。これは清算の始まりにしかすぎない」と批判した。
1期目の政権にあるとき、トランプは日露戦争について全く知らなくて、安倍首相を驚かせたことがある。ミュンヘン会談についても同様だろう。歴史を勉強しない男が世界一の大国を支配する危険性を、特にアメリカ国民は認識すべきである。まさに、トランプを政権につけたポピュリズムが世界を滅ぼそうとしている。今は、第三次世界大戦前夜なのかもしれない。
舛添 要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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