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3년 일본은 태평양의 제해권을 미국에게 넘겨주고 점령했던 많은 섬들을 하나씩 빼앗기고 있었다. 이때 알류산열도의 아쯔 섬을 수비하던 일본군이 전멸 당하고 그 옆의 키스카 섬마저 위태로워지자 대본영은 키스카 섬의 일본군 구출명령을 5함대에 내리게 된다.
1차 구출작전이 실패로 돌아간 후 일본은 제해권과 제공권을 빼앗긴 상태에서는 키스카 섬을 포위하고 있는 미군을 도저히 당할 수가 없으므로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구출할 희망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단 한가지 가능성이란 키스카 섬에 안개가 짙게 끼었을 때 미군 몰래 구출하는 것 뿐이었다.
북위 50도, 동경 180도 부근에 위치한 키스카 섬은 북쪽으로 베링해, 남쪽으로 북태평양에 접해 있고 쿠로시오 난류와 쿠릴 한류가 부딪치면서 안개가 많이 끼는 기상학적 특성을 보이는 곳이다. 일본 사령관은 키스카 섬의 기상을 파악하기 위해 잠수함이나 함선을 보냈으나 `함흥차사'였다. 이젠 전적으로 기상장교의 예보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안개가 낍니다.” 연필 한 자루에 운명을 걸고 일기도를 그려가면서 안개가 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던 기상장교는 최종적으로 일기도 위에 `안개'라고 써 넣고는 사령관에게 보고한다. 이에 일본 5함대 사령관은 8월 초에 약 30척의 선단을 이끌고 일본군 2차 구출작전에 나선다. “야! 웬일이냐, 정말 안개가 잔뜩 끼어 있으니!” 기상장교의 예보처럼 키스카 섬에는 안개가 짙게 끼어 있었고, 미군은 커녕 개미 한 마리도 볼 수 없었다. 작전은 예상보다 순조롭게 진행되어 1시간만에 전원을 구출하는 데 성공한다.
미군은 이 당시 일본군의 철수는 불가능하다고 여겨 키스카 섬을 봉쇄하던 함대들을 연료보급을 위해 일시 철수했었다고 한다. 일본군의 철수를 까맣게 몰랐던 미군은 그 후 섬을 점령하기 위해 상륙한 미군들끼리 서로 적군으로 오인해 사격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한마디로 일본의 이 구출작전은 안개 속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성공한 기가 막힌 작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구출작전의 안개 예보를 해야만 했던 기상장교의 마음은 어땠을까? 오늘날에도 해상의 빈약한 관측자료는 큰 믿음을 못 주는데 하물며 50년 전의 자료야. 아마 기상장교는 동료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그의 혼(魂)이 담긴 예보를 내지 않았을까? 나는 오늘도 내가 내는 기상예보에 혼(魂)이 깃들기를 바라며 최선을 다한다.
첫댓글손자병법의 너무나도 유명한 구절, 知彼知己 百戰不殆(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라는 말이 있지요. 얼핏 생각하면 적을 알고 나를 알면 100번 다 이길 것 같은데 왜 百戰百勝이라고 안했을까요? 그건 싸움에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제3의 요소, 즉 자연환경이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에 따라
첫댓글 손자병법의 너무나도 유명한 구절, 知彼知己 百戰不殆(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라는 말이 있지요. 얼핏 생각하면 적을 알고 나를 알면 100번 다 이길 것 같은데 왜 百戰百勝이라고 안했을까요? 그건 싸움에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제3의 요소, 즉 자연환경이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에 따라
승부가 차이가 날 수 있단 소리라네요.
정작 저 작전을 입안한 「기무라」 소장은 저 나라에선 영 대우를 못 받았죠. 망할 짓만 골라 했다는 말이 헛소리가 아니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