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한 가을,
서재의 창을 통하여 비취는 가을하늘과 먼산의 누렇게 변하는 풍광이
깊어가는 가을의 끝자락을 달리면서 세월의 흐름을 재촉하며 흘러가는데,
깊어가는 '가을의 길'은 어디로? 궁금증이,
지난 주 어느 날 오후, 집안에 방콕하고 있는 나를 꼬드겨서,
집에서 한 시간 거리인 양평 부근 남한강변에 위치한
아름다운 힐 하우스(Hill House)를 찾아 '가을의 길'을 묻기로 하였다.
왜냐하면, 흘러가는 '가을의 길'을 물을 때는,
매년 이곳을 찾아 눈앞에 펼쳐지는 자연에게 꼭 물어 본다.
다름아닌, 높은 하늘에서 바람에 떠밀려가는 '구름'과
파란색이라기 보다 검푸르게 흘러가는 '강물'과
산야를 황금색으로 화려하게 물들려 놓는 '단풍'과
나뭇가지에서 흩날리며 땅바닥에 뒹구는 '낙엽'이다.
이것이 함께 만나 어울려 아름다운 정경을 이루는 곳이
남한강변을 따라 설치된 힐 하우스의 야외 정원이다.
바로 강변에 마련된 정원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떠밀려 흘러가는 구름과 말없이 흐르는 강물, 화려함을 자랑하는 늦 단풍,
발 밑에 굴러 떨어진 낙엽, 강가에 흐드러진 억새풀,
손잡고 거니는 아베크 족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저 흐르는 세월 속의 자연은
내년에도 똑 같은 모습으로 다시 피어남이 창조의 질서요 섭리일진데,
인간만은 변하고 사라지고 가는 길에서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아련한 회한의 상념이,
젊었을 때는 강렬하게 느끼거나 알지 못했던 사색의 세계 속에서
저 '가을의 길'은 어디로? 하는 물음을 펼친다.
흘러가는 '구름'은 왜 가을에는 저렇게 높은 하늘에서,
뭉게구름이 아닌 조각구름으로 차가운 바람에 떠밀려 모양을 변화시키면서
저 산 넘어 어디로 흘러가는가…..
넘실거림을 잃어버리고 잔잔한 물결을 이루며 흐르는 저 '강물'은
봄에 보이던 파란색은 어디로 가 버리고
세상의 온갖 물질을 머금은 듯 검푸르다 못해 짙푸른 색깔에
저렇게 무거운 느낌을 주며 삼라만상의 온갖 영욕을 안고 어디로 흘러가고 있단 말인가…..
부는 강바람에 나뭇가지에서 흩날리며 발 아래로 뒹구는 저 '낙엽'은
시간을 타고 흘러간 생명의 궤적이 뚜렷이 보이면서
봄에는 연녹색의 새순을 보이다가 여름에는 푸르름을 자랑하고
가을에는 화려한 단풍을 뽐내다가 겨울이 다가오면
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떨어져 땅바닥에 밟히면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도 구름과 강물과 낙엽이 되어 이 세상을 떠나는 날,
저 구름과 강물과 낙엽은
봄에는 희망을 여름에는 누림을, 가을에는 절정을, 겨울에는 떠나는 삶의 의미를
인간에게 무언으로 가르치고 선물로 남기지만,
인생의 후반부를 달리고 있는 나는,
오늘까지 인생을 살아온 수많은 세월 속에서 계절의 변화를 보내면서도
남에게 무슨 의미와 길을 가르쳐주며 아름다운 정취를 느끼게 해 주었던가?---하는 물음이
'가을의 길'을 묻는 남한강변의 길목에서 가슴 깊이 아련히 들려온다.
저 흘러가는 구름, 강물, 단풍, 낙엽은 내일의 모진 삭풍과 추위와 역경을 이기고
내년에는 똑 같은 모습으로 다시 돌아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자연의 신비한 섭리에 따라 흐를 텐데,
오늘 귀에 들리는 저 창조의 음성은 생명이 끝나는 섬뜩함의 마지막 절규를 넘어
잠깐 어디 다녀 오겠다고 인사하는 영원을 잇는 메아리로 들린다.
저 감성의 심연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가을의 길'을 묻는 나에게, 애면글면 살아온 삶의 짐과 세월의 무게를 내려놓고
조용히 들어 보라는 자연의 가르침의 음성인 모양이다.
서산에 걸린 노을과 서서히 밀려오는 땅거미를 시야에 담으며
구름과 강물, 단풍과 낙엽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보이는
그곳 신관 양식집에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발 밑에 흐르는 한강물에 어스름이 비친 앞산의 그림자를 감상하는데,
옆 벽에 '만해 한용운'선생의 시가 눈에 들어왔다.
-------사랑하는 까닭-----------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紅顔)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남한강변에서 "가을의 길"은 어디로? 묻는 나에게,
인생은 한번 흘러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숙명이지만,
'사랑하는 까닭' 또한 가슴을 따뜻하게 덥히는 아름다운 인간들의 이야기이다.
첫댓글 ------------------------------------
저 흐르는 세월 속의 자연은
내년에도 똑 같은 모습으로 다시 피어남이 창조의 질서요 섭리일진데,
인간만은 변하고 사라지고 가는 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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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글의 요점을 찌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