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을 달다 보니 조금 길어져서...
수 많은 고구려 후예들이 중화속으로 녹아 들어갔겠지요.
그들이 중국의 주축을 이루었다해도 중국이 우리의 역사는 아니겠지요.
금나라나 청나라를 이룬 주축세력은 삼성이북지역이 아닌 두만강 지역주민인것만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청나라는 한민족사와는 무관하지요.
하지만 저는 금나라의 역사는 조금 다르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금나라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나라가 아니기에 한민족과 관계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기에
한민족사에 포함시켜야 하면 왜 포함시켜야 하는지..
한민족사가 아니라면 언제부터 아닌지...
무작정 한민족사와 관련이 없다고
뚝 때어버리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는 잘모르겠습니다.
발해의 역사가 한민족의 역사이라고 생각하기에
발해후국의 역사는 한민족의 역사이라고 생각합니다.
압록강 유역의 정안국과
송화강 유역의 오사국과
두만강 지역주민이 연합하거나 혹은 연맹형태로 거란에 대항하였을 때는
한민족의 역사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안국이 멸국되고, 오사국이 송나라에 배반당하고
마침내 두만강 유역주민이 처음으로 한민족의 나라가 아닌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였을 때
이 때부터 독립된 역사로 보아야 한다면...
옥저의 백성이었고 , 동부여의 백성이었고, 고구려의 백성이었고
발해의 백성이었고, 발해후국의 연맹이었던 두만강 지역주민이
나라가 없어지자 마자 한민족과 무관하다고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발해여진동본일가는
송화강의 오사국 와해과정을 함께 고려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안국이 멸국되고 오사국이 송나라와 갈라서고 나서
두만강 지역주민은 송나라, 거란에게 최고의 교섭대상이 될 수 밖에 없고
두만강 지역주민은 이 기회를 최적의 기회로 만들어 내는데
거란과 친하게 지내고, 발해부흥세력을 진압하면서 금나라를 건국하고
큰 세력을 형성하였으니..
발해후국들이 당연히 금나라에 등을 돌리게 되는 것이고...
그래서 거란의 요나라와 최후의 일전을 위해서 들고나선 것이 발해여진동본일가인데...
여진인이라서 한민족의 역사가 아니라면
압록강 지역주민의 역사는 또 누구의 역사라고 해야하는지도 의문입니다.
압록강 일원에서 발해후국인 정안국의 있을 때도 압록강 지역주민을 여진인이라 했고
고려가 여진을 제압하고 압록강 일원으로 영토를 확장한 시대 또한
정안국의 멸국되자마자인데
와해된 발해후국의 세력을 흡수했다고 하지 않고 여진인의 압록강 유역 축출로
배워야 하는 역사가 올바른 역사가 맞다면
한민족의 역사는 삼국시대 부터 한강 남쪽에 살았던 후예들의 역사라고 해야하는 것은 아닌지..
금나라가 북중원을 장악하고 나서는...
이 때 부터는 잘 모르겠습니다. 과연 우리의 역사라고 해야 하는지...
황제가 고려의 후예이었고
지배세력은 고구려의 후예이고 발해의 후예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금나라가 우리의 역사이면, 일본도 우리의 역사라고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그러나 금나라가 멸국되고 나서는..
이 때 또한 잘 모르겠습니다. 과연 우리의 역사가 아니라고 해야 하는지...
북중원은 몽고나 중국의 역사라 하겠지만
요동과 두만강 유역은 몽고의 지배를 받았지만 그래서 몽고역사 시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중국의 역사시대가 아니며
금나라의 유예가 지켜졌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려인이 더 많은 활동을 하였으며
금나라 유예의 모든 것들이 청나라로 이어졌던 것이 아니라
한민족속으로 다시 녹아들어 왔는데
한반도 북반부 지역주민과
압록강 지역주민과
두만강 지역주민은 여진인이라 불렀는데
우리의 역사는 이들을 금나라, 청나라, 고려, 조선으로 확연한 계보를 나누었지만
이들 지역주민의 역사가 진정 확연히 갈리어졌던 역사가 맞는지......
저는 북중원을 지배한 금나라와 중원을 지배한 청나라의 역사시대를
우리민족의 역사시대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고 생각도 하지 않지만
발해후국의 역사로 부터 시작하여
압록강지역주민의 역사, 두만강 지역주민의 역사, 그리고 한반도 북반부 지역주민의 역사
그리고 일부 요동지역주민의 역사는 한민족의 역사이라 생각하기에
이들의 유예가 금나라, 청나라, 고려, 조선, 그리고 몽고의 역사를
어떻게 왔다 갔다 했는지는 따져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결국 답은 잘모르겠다이지만 싹뚝 잘라서 아니다 라는 답은 정답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첫댓글 금나라의 화려했던 북중원의 역사보다는 개국과정과 멸국후의 역사를 다시한번 살펴볼 필요성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금나라의 요동지역주민은 청나라가 개국될 때 그 유예가 지켜졌는지..오히려 고려인이 아니었던지..그들이 조선의 역사속으로 녹아들어오기를 거부했던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지 못했던 조선의 역량이 문제이었는데..그들의 역사를 금나라의 유예가 지켜진 청나라의 역사로 보아야 하는 것인지..그리고 금나라가 들어서고 여전히 남아 있었던 두만강 지역주민의 역사는 또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인지..
윤관의 여진정벌 이후 곧 모든 성을 돌려주었다고 하는데 고려사지리지에는 공험진은 그 이후에도 성을 수리한 기록을 남기고 있고, 고려사지지리의 편찬자와 교정자는 선춘령이남은 한민족의 역사영역이었다고 왕조실록에 기록을 전하고 있는데...청나라의 중심세력이었던 두만강 유역주민을 금나라의 유예가 지켜진 세력으로만 볼 수 있는지...
'발해여진본동일가'가 분열되어있던 발해인들을 한데묶기위한 것이였군요. 금나라를 일구고 이끌었던 이들이 누구였는가를 생각해보면, 넓게 보아 우리민족사의 일부로 보아도 상관없을듯...
제 생각이 맞다는 것은 아니고 저는 이렇게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역사에 기록된 발해인은 발해지배층의 후예이고 역사에 기록된 여진인은 발해지배층이 아닌 발해의 후예와 흑수말갈인입니다. 금나라 황제를 제외한 최고 지배층인 대씨, 고씨, 장씨의 족적은 역사에 기록된 발해인입니다. 금나라의 기틀을 닦은 장씨일문 마저도 고구려 고씨의 후예이니 혈족만으로는 고구려의 지배층이자 발해 지배층의 후예입니다. 금나라의 북중원 개척의 역사는 두만강 지역주민 보다는 역사에 기록된 발해인의 후예가 개척한 역사입니다.
저는 혈족만으로 따지면 부여, 고구려, 발해, 금나라, 청나라는 같은 혈족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흑수말갈 마저도 같은 혈족으로 보고 있습니다. 일정기간 동안 고구려나 발해의 신속을 받은 정도로는 같은 혈족이라 할 수 없겠지만 3세기의 읍루와 6세기의 흑수부가 성장하여 흑수말갈의 족적을 이룬 것이 아니라 북부여의 후예인 두막루의 향방이 흑수말갈로 이어졌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흑수말갈 마저도 같은 혈족으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씨족으로 따지면 많은 다른 계통의 씨족이 포함되었겠지만 저는 수만명으로 출발하였을 예맥인만을 고구려인이라 생각을 하지 않기에 부여나 고구려에 일정기간 신속되었던 족속이 아닌 부여화 하였고 고구려화 하였던 모든 씨족을 한민족의 혈족으로 파악합니다.
그러나 혈족의 향방이 곧 민족사는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만약 발해가 멸국되지 않고 오늘날 까지 왕조만 교체되어 왔다면 한민족사라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만약 발해가 중원마저도 통합했다면 그 때부터는 한민족사는 구분되어져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대륙백제가 중원에 있었건, 고구려가 북경유역을 경영했건간에 중원은 백제화, 고구려화 되지 않았고 확연하게 다른 운명이 유지되었습니다. 최소한 민족사라면 역사는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물론 이것은 저의 생각일 뿐입니다.
중원이 고구려화 되지 않았고, 백제화 되지 않았고, 고려와 조선은 그러한 고구려와 조선의 역사를 이어 받았기에 발해가 멸국되지 않고 중원을 발해속에 포함시켰다해도 발해의 중원지배사는 한민족의 역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천산님, 카페에서는 댓글 3개 이상 달 경우엔 따로 답글을 달 것을 요청하고 있으니 이를 숙지하시고 따라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죄송합니다..달다보니 저도 모르게 말이 끝이나질 않아서..죄송합니다.
저는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금나라를 한민족사에 넣으면, 청나라도 넣는게 맞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청나라 건국 당시의 이름은 '후금'이었거든요. 즉 이름만으로 볼 때 청나라는 금나라의 후예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누루하치의 탄생신화 역시 난생신화고 특히 은나라 시조 설의 탄생 신화와 거의 똑같습니다. 단 청나라 건국사 등에 대해 자세히 살펴본 바 없기 때문에 이거다라고 확실하게 말씀드릴 것은 없네요.
고대의 동북아시를 지금의 민족과 국경의 개념으로 바라보면 뒤죽박죽이되죠, 여진족이 우리민족인지, 우리가 여진족인지, 일본이 우리껀지, 우리가 일본 껀지?...지금 일본인이 멸족되었다면 일본을 우리 역사로 인식할지도 모르고요....만주족이 흔히 멸족된줄로 아는 사람이 많은데,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천만 이상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랑 같은 민족으로 생각하지 않고, 우리도 같은 민족으로 인정하지 않죠. 청이 우리 역사면, 조선의 역사도 만주족의 역사라고 할수 있습니다....현재 만주족이 우리랑 같은 민족으로 인식하지 않는한 청의 역사를 우리역사로 보는건 만주족의 분노만 일으키는 의미없는 논재 같네요.
이러한 태도가 문제라고 보여집니다...우리의 역사면 역사이지..우리의 역사이지만 현실 상황상 우리의 역사라고 부를 만큼 자료을 수집하자..또는 금,청의 역사는 우리의 역사도 아니지만...독립군...독립군후손들이 살고 있으니
어느시기를 기점으로해서 우리의 역사라고 하자...아니면 ...간도는 우리 조상들의 영혼이 깃든 곳이니...간도 지역에 포함된 역사만 우리 역사라고 하자.((다들 아시겠지만 금청이 중원에 간 이후 배제하자 이러한 의견도 있죠)...그것도 아니면..단군은 우리의 정신적 지주이니 단군 조선영역 그 이후는 우리의 역사다....이렇게 .확실히 했으면 합니다...상황에 따라서 입맛에 따라서 이랫다 저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