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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詩 읽기 스크랩 원(圓) 외 / 임보
동산 추천 0 조회 52 18.10.07 13:2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 임보

 

 

무공(無空) 스님이 한 절을 찾아갔더니

마당 한가운데 동자승 한 녀석이

땀을 뻘뻘 흘리며 뙤약볕에 서 있는 게 아닌가

 

너 왜 그러고 있느냐?”

조실 스님께서 출타하시면서 저를

이 원 속에 가두어 놓으셨습니다.”

보아하니 녀석은 둥글게 그린 원 안에 서 있다

가두어 놓다니, 나오면 될 게 아니냐?”

원 밖에 나가면 절에서 쫓아낸다 하시고,

돌아오실 때까지 원 속에 있으면 종일 굶기겠다고 하시니

어찌해야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어허 참, 그게 그리 난감한 일이더냐? 내가 너를 구해주마!”

 

무공 스님은

마당 한 귀퉁이에 있는 대빗자루를 가져와

그려진 원을 쓸어버렸다

 

어떠하냐?

이젠 거리낄 게 없지 않느냐?”

?……!

 

* 세상에 떠돈 설화를 조금 바꾸어 만든 것임.






무산 설법 - 예술론 / 임보



1

무산 스님이 초파일 전날

문단의 중진들 수십 명 불러놓고

메밀국수 점심 공양을 하면서

설법하기를


예술이란 게 뭐꼬?

이게 다 사기(詐欺)기라


하루살이를 성자(聖者)*라 했드니마

세상이 발칵 뒤집힌기라

비평가가 그럴 듯하게 해설을 붙여놓았드마

미국의 저명한 대학에서

내 시집을 출판하겠다는 기야!

하루살이가 성자긴 무신 성잔가!


2

내가 그림도 아닌 그림을

만해 축전에 그렸더니마

한 신문사에서 그걸 지상에 보도를 한 기라

그 신문을 본 뉴욕의 세계적인 화랑이

내게 그림 전시회를 하자고 섭외가 온 게야 


한 점에 얼마씩 주겠느냐고 물었더니

10만 달러씩에 팔겠다는 게야

(10만 달러면 얼만고? 우리 돈 1억이야, 1!)

그런 사기가 어딨노?


내가 한 천만 원쯤이면 하겠다고 했더니

그런 싸구려 그림은 자기 화랑에선 못 판다는 게야


그래서 내가 거절을 했지


* 무산 스님은 아득한 성자에서 하루살이를 노래한 바 있음.

 

무산 스님은 겨울과 여름의 안거가 끝나면 1년에 둬 차례 서울의 흥천사에서

지인들을 불러 자리를 함께 하며 얘기하기를 좋아했다.

그런데 근래에 소식이 없어 궁금했는데 와병 중이었음을 뒤늦게야 알았다.

신문을 통해서 그의 부음의 소식을 듣고 많이 아쉬워 했다.







100년 후의 일기 / 임보

 

 

며칠 전엔 내 증손자의 증손자들이

내 유택에 찾아와 시제를 지내고 갔다

그들이 주고받는 말을 들어보니

기상천외, 세상이 참 많이도 변했다

 

모든 공장은 자동화시스템으로 상품을 생산하고

농업과 어업도 로봇들에게 맡겨 운영한다

노역에서 해방된 인간들은 오락이나 즐기며 빈둥거리고

자동차 대신 수륙병용의 작은 헬기로 나들이를 한다

 

회사원도 출근하지 않고 재택 근무

학생들도 가정에서 영상수업을 받는다

세계연방 정부는 투표를 하자고 켐페인을 벌이지만

입후보자도 유권자도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예술에 대한 열정들은 대단해

화가 음악가 시인들이 세상의 존경을 받는 귀족들이다

전시회 연주회 시낭송 모임들이 매일 곳곳에서 열리는데

낭송 가운데서도 낭창이 세상을 주름잡고 있다

 

삼각산 밑에 덩그렇게 임보문학관을 만들어 놓았지만

찾아오는 사람은 별로 없어 관리인은 늘 낮잠이다

내가 소장했던 수석 한 점이 1억 달러에 낙찰되고

내가 그린 시화 한 점이 5억에 거래된다는 소문

 

서리가 내린 초겨울 아침

검은 가마귀 한 마리

마른 나무 우듬지 위에서

몇 번 울다 날아간다


- 임보 시집 <사람이 없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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