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묵호의 밤, 거대 비정형빌딩 탄생
이주민들의 애환-희망, 멋진 풍광 품어
묵호등대-논골담길-도째비골로 연결
BTS 10주년 축하 보라색꽃밭 별유천지
국토건설임무 마친 채석장 국민관광지로
추암,망상 매력지 완전정복 시티투어 인기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추암 촛대에 촛불 켜듯 솟은 태양을 두타산 무릉계 베틀바위 너머로 보내고 난 뒤 밤이 찾아오면, 묵호항 뒤편 산등성이엔, 높이 150m, 넓이 1500m 가량의 거대한 비정형빌딩이 태어난다. 동해 바다로 입수하려는 고래 혹은 명태를 닮았다.
별빛마을로 통칭되는 게구석-산제골, 논골마을로 묶이는 논골-도째비골, 그 사이 덕장마을이 해 진 뒤, 일제히 환하게 불 밝힌 모습이다. 정면에서 봤을 때 수직 높이가 150m이지 다랭이논 처럼 층층이 경사진 구릉에 도열한 건물들의 크기를 합하면 300m는 넘을 것이다.
별빛마을에서 내려다 본 묵호항 전경
묵호 ‘비정형 빌딩’의 동쪽 끝 지점
묵호 별빛마을 어린왕자 백구(109) 계단
이 우람하고도 장대한 빌딩을 가진 동해시민들은 리야드, 항저우, 인천 송도 같은 최신 비정형 건물의 야경 보다 크고 아름답다고 여긴다. 친퀘테레가 묵호를 여러 면에서 닮긴 했지만, 규모 면에서 너무 작아, 게구석마을 하나 정도가 엇비슷하게 상대해줄 만 하겠다.
이 초대형 비정형빌딩엔 입주민들의 애환과 희망, 오늘처럼 번듯한 대한민국을 만든 땀방울이 있기에 지구촌 아티피컬(atypical) 빌딩이 아무리 멋진 포즈를 취한들 묵호를 넘을수는 없다는 것이다.
80여년전부터 ‘약속의 땅’을 찾아 온 사람들이 산을 깎아, 바다를 무대로 하는 오페라하우스 객석처럼 집을 지어, 희망의 빛을 만들던 곳이다.
▶별빛마을 스토리 트레킹= 별빛마을로 가는 길은 동쪽바다중앙시장 쪽, 묵호항 어린왕자 백구(109)계단, 두 개이다. 수변공원, 논골담길, 도째비골까지 한방향으로 계속 트레킹을 하고 싶다면 시장쪽 출발이 낫겠다.
동피랑 처럼 계단 앞쪽으로 그림을 그려놓은 동문산 계단을 올라 산길 중턱에만 와도 묵호 바다정취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이 길과 이어지는 해맞이길이 비정형빌딩의 옥상격이고, 게구석길·산제골길·덕장길·논골(담)길·도째비(도깨비)길이 묵호 아티피컬 빌딩 건물의 구획을 ‘S라인’으로 종단한다.
‘약속의 땅’ 이주민들이 오징어와 명태를 말려 생계를 이어가고, 푼돈을 모아 아이들을 대학 보내던 곳. 이제 그 아이들이 5070세대가 되었다. 멋진 마을 야경은 주민들의 한낮 고단함을 달래주는 희망의 빛이었다. 그래서 이곳을 ‘묵호별빛마을’로 이름지었다.
별빛마을 산책길가엔 갈매기 그림, 바람개비, 어민의 애환을 담은 벽화가 여행자에게 말을 건다. 해맞이길에서 묵호항을 바라보니, 조업을 마친 어민들이 잠시 쉬는 방파제 초입을 북유럽풍 미니가옥으로 익스테리어한 것이 흥미롭다. 태풍때 집마당까지 대게,홍게가 들어온다는 게구석촌의 유래 이야기도 재미있다.
어민 쉼터를 북유럽풍 미니가옥으로 꾸민 모습
▶부모가 일군 희망, ‘상속자들’의 도시재생= 별빛마을은 최근 도시재생 ‘새뜰마을 사업’ 대상지로 선정돼 여행하기 좋은 마을로 거듭났다.
50대인 임명순 묵호동 3통 통장은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도시재생 디자이너 시민대학을 수료했다. 동네 살림 개선을 도맡고, 독거 어르신들 건사하며, 주민커뮤니티센터 겸 전망대카페인 ‘묵꼬양’ 스태프도 한다. 공예, 건강체조 등 다양한 동아리활동도 돌보면서 1인 다역을 맡고 있지만, 희망을 향해 달려온 지난세월 역경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행복감을 감추지 못했다.
마을 트레킹은 어린왕자가 그려진 묵호항 초입 109계단을 내려오는 것으로 1차 마무리된다.
게구석을 지나 논골담길로 가는 도중에 덕장마을이 있다. 이곳 주민들은 명태의 영양을 높이는 새로은 비법을 갖고 있다. 바로 ‘언바람 묵호태’이다. 황태가 덕장 지붕을 열어 눈비를 맞게 한 뒤 말린 것으로 속이 건조하다면, 묵호태는 덕장 지붕을 덮어 찬 바닷바람만으로 말려 겉은 검어지고 속은 노란 빛이다. 영양분과 함께 해변가 수분까지 농축돼 쫄깃하고 건강하다.
덕장마을을 지난 묵호 비정형빌딩은 한류드라마 ‘상속자들’에서 이민호가 박신혜를 애타게 찾으며 깊은 사랑의 감정을 노출한 논골담길과 동해시 랜드마크인 묵호등대, 상서로운 도깨비 불빛이 빛났다는 도째비골 스카이밸리로 이어진다.
어민의 애환 담은 논골담길 벽화
▶지구촌 다니다 결국 묵호로 온 배민호 작가= ‘한국의 산토리니’라는 논골담길 입구 안내판을 지나 면 116개 벽화들이 반긴다. 머구리, 어부 등 실제 주민들을 모델로 했기에 여행자의 마음도 벽화속으로 들어간다.
벽화작업은 계속된다. 별빛마을에선 자원봉사자와 지역화가들이 참여했고, 전문가들의 밑그림에 지역주민이 손수 빈공간을 채색하기도 했다. 홍예림, 장단비 작가 등 워킹그룹은 오는 12월까지 묵호의 근현대사와 고향화가들의 어린시절 추억을 그려넣는다.
유렵,인도,동남아 등 세계 각지를 돌며 작품 활동을 하다 고향 동해시에 돌아온 배민호 사진작가는 “고향이 대구인 어머니가 화려한 빌딩 같은 묵호 야경이 너무도 아름다워 이곳에 정착하셨다”면서 “아름다움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말로 지금 고향의 애환,추억,인정,희망을 앵글에 담는 이유를 설명했다. 정지용의 시어가 모두 고향 옥천 것이고, 함윤의 시어가 고향 동해시 포도밭이었듯이.
묵호 비정형빌딩의 동쪽끝 도째비골 스카이밸리에는 철썩이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스카이싸이클로 하늘을 하이킹하는 모습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도째비골 스카이밸리 하늘자전거
무릉별유천지 스카이글라이더
무릉별유천지 라벤더 꽃밭
▶또하나의 반전, 무릉 별유천지 감동= 방탄소년단(BTS)의 데뷔 10주년을 축하하려는 듯, 거대한 평원에 ‘보라해’ 라벤더꽃으로 가득 메운 무릉 별유천지 역시 반전매력의 역사를 품고 있다.
대한민국 국토 건설, 선진국 진입의 1등공신, 시멘트 최대 생산지였던 이곳의 석회석 채석장에 물이 고여, 플리트비체와 같은 에메랄드색 거대호수 두 개가 보석처럼 빛나게 되었는데, 쌍용시멘트가 이를 국민건강여행지로 기부했다.
라벤더 꽃밭 위로 하늘에는 국내 최초 액티비티, 봉황 스카이글라이더가 여행자들을 안전하게 매달고 산과 산 사이를 나르고 있었다.
추암 해상출렁다리
무릉계 베틀바위
논골담길, 묵호등대, 추암-망상-한섬해변, 무릉계, 천곡동굴 등 기존의 스테디셀러 외에도 베틀바위-마천루 협곡, 무릉별유천지, 도째비골 스카이밸리, 해랑전망대, 별빛마을 등 새로운 매력관광자원들을 발굴하고, ‘KTX 동해선(서울-평창-묵호-동해)’도 다니는 동해시가 매력지 모두를 편리하게 섭렵할수 있는 동해시티투어버스 운행을 시작했다. 자유롭게 내리고 타기를 반복하며 여행을 즐기는데 1일권 5000원의 행복이다. 동해시는 KTX와 함께 관광택시 상품도 운영중이다.
애환 끝에 희망을 움켜쥐고, 땀방울의 상징이 국민사랑 여행지로 바뀌는 반전매력을 목도하면서, 동해시민들은 행복의 파이를 키울 줄 안다는 생각이 든다. 역경이 없었다면 작았을 행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