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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자녀 둔 두 엄마의 성장 다큐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성가소비녀회, 예수회 등 함께해
'너에게 가는 길', 변규리 감독, 나비, 비비안, 한결, 예준 외 출연, 연분홍치마 제작, 성소수자부모모임 제작협력. (자료 제공 = (주)엣나인필름)
17일 개봉을 앞둔 영화 ‘너에게 가는 길’ 시사회 현장. 가톨릭 사제, 수도자들로 북적였다.
‘너에게 가는 길’은 성소수자 자녀의 커밍아웃을 마주한 두 엄마의 성장 여정과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살아가는 그의 자녀들, 성소수자부모모임의 활동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11일 서울 CGV여의도에서 열린 시사회는 ‘너에게 가는 길’ 상영단과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인권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 정치, 종교, 학계 인사들을 위해 마련한 자리다. 종교계에서는 가톨릭 성직자와 수도자 32명, 개신교, 불교, 원불교 등에서 19명이 함께했다.
영화는 어느 날 두 엄마가 자녀들의 커밍아웃을 마주하며 시작한다. 두 엄마는 자녀의 커밍아웃을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지만 자녀들을 통해 성소수자를 이해하고 그들이 놓인 고통에 깊이 공감한다. 또 이를 넘어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사회구조에 맞서 부모이자 어른이며 한 인간으로서 성장해 가는 여정을 그린다.
주인공인 ‘나비’는 34년차 소방공무원으로 성별 정정을 통해 남성으로 살아가는 한결이의 엄마, ‘비비안’은 27년차 항공 승무원으로 게이로 살아가는 예준이의 엄마다. 자녀의 커밍아웃을 계기로 ‘나비’와 ‘비비안’은 성소수자부모임에서 활동하게 됐고 영화까지 찍게 됐다.
수술은 물론 성별 정정 허가까지 남성으로 살기 위해 험난한 과정을 한결이와 함께 헤쳐 가는 나비는 영화에서 "이런 세상에서 애들이 살고 있단 말이야? 부모라도 싸워야지", "가족에서 위로를 받는 사람을 보면 다행이다, 하지만 위로받지 못한 사람 보면 더 다행이다, 더 튼튼해지겠군 생각해요"라고 말한다.
7년 동안 자신의 성 정체성 때문에 고민해 온 아들이 엄마 때문에 또다시 힘들어 하지 않도록 아들의 커밍아웃을 '쿨하게' 받아들이려 눈물겹게 애써 온 비비안. 그는 "우리 게이 아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이뤄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당당하고 행복하게 사는 꿈, 저도 매일매일 꾸고 싶습니다"라면서 성소수자 인권을 위한 싸움에 힘차게 뛰어든다.
(오른쪽부터) 변규리 감독과 주인공인 비비안, 나비. ⓒ김수나 기자
고유한 존재들의 공존, 이것이 신앙
타인의 고통 구체적 이해, 관계의 확장
이날 시사회에 참석한 사제, 수도자들은 어떤 마음으로 영화를 봤을까.
먼저 조진선 수녀(성가소비녀회)는 “이 영화는 성소수자만이 아니라 우리 인간의 이야기였다”면서 “나와 가족 또는 친구, 이웃 등 하느님이 주신 선물인 모든 존재들과의 관계에서 다른 존재에게 건너가기 위한 이야기이며 그 과정에서 나 자신도 만나게 된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조 수녀는 “이는 타인을 존중하는 법,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법, 이를 위해 자기 자신의 고유함도 이해하는 것”이라며 “하느님의 신비란 매우 다양하고 넓어 우리로서는 헤아릴 수 없고, 우리 짧은 소견으로 존재를 구분하고 나누는 것이 얼마나 폭력인가, 그것이 가족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 등을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신자들이 이 영화를 통해 하느님 창조주께서 인간과 모든 생명체를 얼마나 고유하고 소중하고 신비롭게 만드셨는지, 나와는 다른 존재, 다른 가치, 다른 사람과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고 공존하는 법, 이것이 하느님에 대한 신앙임을 느껴 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상훈 신부(예수회)는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고 싶어도 구체적 삶의 모습을 보지 못하면 이해하기 쉽지 않은데, 이 영화는 삶의 아주 구체적 질감을 표현하고 있어 매우 좋다”면서 “어느 면에선 누구나 소수자이지만 성소수자만큼 제도, 문화, 시스템에 의해 모멸받고, 차별받지는 않기 때문에 영화를 보면 성소수자에 훨씬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박 신부는 “두 어머니의 노력은 그저 부모 자식 사이에 머무르지 않고 확장된다. 이는 김용균 씨의 어머니나 세월호참사 희생자의 어머니들의 모습에도 동시에 나타난다”면서 “사회적 재난이나 고통 속에서 다시 한번 가족과 인간 관계를 생각할 수 있는 영화”라고 말했다.
이제희 수녀(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는 “성소수자 문제를 낯설어하실 법도 한 연세 드신 선배 수녀님까지도 영화에 나온 엄마들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시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의 실제 이야기가 지닌 힘을 느꼈다”면서“아픔을 나누고 그 아픔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며 같이 이겨 나가려 애쓰는 이들의 따듯함이 느껴진 영화”라고 말했다.
이 수녀는 “성소수자들은 다수와는 좀 다른 정체성을 지녔다는 이유만으로 두렵고 아프고 힘겹게 살아간다”면서 “성소수자들은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사실부터 인정하고, 그들의 두려움과 아픔, 힘겨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도록 노력하며 같이 걸어가야 하지 않을까,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영화 마지막 성소수자 부모님들의 커밍아웃 장면에서 눈물이 나면서, 힘겹지만 당당하게 자신을 찾아가는 저 여정에 동참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면서 “이제 교회가 성소수자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좀 더 진지하고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이고, 이 영화가 그 고민과 논의의 출발점이 될 수 있겠다”고 말했다.
영화 속 주요 장면들. (자료 제공 = (주)엣나인필름)
성가소비녀회와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에서는 이날 시사회에 수도자 20여 명이 참가한 데 이어 영화 개봉에 맞춰 성북구 아리랑시네센터에서 단체 관람도 진행할 예정이다.
이날 시사회에서 변규리 감독과 주인공인 나비와 비비안, 성소수자부모모임 회원들은 차별금지법 제정에 이 영화가 도움이 되길 바란다면서 관객들에게 연대와 지지를 요청했다.
나비는 “28살 남성으로 살아가는 자식에게 부모가 가는 길이자, 자식을 통해 성소수자의 세계를 알게 되고 그 길을 통해 좋은 어른,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나에게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면서 “그런 시선으로 여러분과 함께 우리에게 가는 길이기도 한 영화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고 나서 기쁘게 이 영화를 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그러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5년 전 성소수자라는 아들의 고백을 듣고 성소수자부모모임에 나가게 되면서 영화를 찍게 된 비비안은 “매우 힘들던 때 부모모임은 제게 등불 같은 존재였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비비안은 “우리 일상과 주변에는 항상 성소수자가 살고 있고 그 부모와 가족,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함부로 그들을 폄하하거나 차별, 혐오해선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면 좋겠다. 연대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봐 달라”고 요청했다.
변규리 감독의 ‘너에게 가는 길’은 성소수자부모모임의 협력으로 제작됐다. 약 여덟 달 간 사전 준비, 17번의 성소수자부모모임 정기 취재, 2년에 걸친 밀착 촬영까지 만드는 데 4년이 걸렸다. 전주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상,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용감한 기러기상(특별상) 등 여러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고, 평단과 관객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11일 서울 CGV여의도에서 열린 ‘너에게 가는 길’ 시사회에 참여한 종교계 인사들. ⓒ김수나 기자
제작을 맡은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는 한국 사회 사각지대와 소수자 문제를 담은 영화를 꾸준히 만들어 온 창작집단이다. 대표 작품으로는 기지촌 여성의 삶과 성매매 구조를 다룬 ‘마마상’(2005), 최초 커밍아웃 레즈비언 최현숙 국회의원 후보의 이야기 ‘레즈비언 정치 도전기’(2009), 용산참사를 다룬 ‘두개의 문’(2012) 등이 있다.
제작에 협력한 성소수자부모모임은 성소수자의 부모, 가족, 당사자들이 모인 비영리 단체다. 2014년 2월 6일 성소수자의 어머니 3명이 첫 모임을 시작해 매달 정기모임을 이어가고 있고, 2020년 천주교 인권위원회가 주는 제9회 이돈명 인권상을 받았다.
▲영화정보
제목 : 너에게 가는 길(Coming to you) / 감독 : 변규리
출연 : 나비, 비비안, 한결, 예준 외 / 제작 : 연분홍치마
제작협력 : 성소수자부모모임 / 배급 : (주)엣나인필름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 러닝타임 : 93분
개봉 : 11월 17일 전국 극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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