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게는 조선시대 왕들로부터 가깝게는 이승만 대통령 각하까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그저 제 한 목숨 건지겠다고 체면이고 뭐고 내던지고 앞장서 줄행랑 친 한반도 리더들의 역사는 유구하기도하다. 침몰하는 배 안의 300여 어린 생명을 뒤로 하고 1등으로 탈출한 세월호 선장은 전통 문화의 훌륭한 계승자이다.
대참사에 망연자실한 국민적 슬픔과 상실감이 누군가에 대한 화풀이식 마녀사냥으로 귀결되는 건 물론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특정한 직책은 그에 걸맞는 직업윤리와 공적 사명감을 요구한다. 비행기의 기장이나 배의 선장은 기체를 조종하는 기술 외에 반드시 그런 특별한 책임감을 지녀야만 한다. 그의 판단에 수백명의 목숨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선장은 항해에 대한 최종책임자이며, 비상상황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보유한 사람이다. 그런 선장이 배에 남아서 상황 통제에 힘을 썼더라면, 하는 가정은 - 결코 할리우드적 영웅에 대한 기대가 아닌 - 항해 책임자에 대한 최소한의 상식적 요구인 것이다.
17~19세기 영국이 제국을 건설할 때 뱃사람들에게는 첫째가는 원칙이 있었다. 배가 침몰하면 여자와 아이들을 가장 먼저 탈출시키고, 그래도 구명보트 자리가 남으면 남자들을 탈출시키고, 마지막에 선원들이 탈출했다. 이 원칙을 어기면 그 자리에서 총살했고, 선원들은 죽음의 공포를 이기려 침몰하는 갑판에 정렬해 노래를 불렀다.
선원들이 노래를 부르며 승객들을 보낸다는 대목이 가슴을 때린다. 이 원칙은 1912년의 실제 사건을 다룬 영화 '타이타닉'에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대서양을 횡단하는 호화 여객선 타이타닉이 좌초하자 영국인 선장은 여성과 어린이부터 구명보트에 태우라고 지시한다. 그래서 케이트 윈즐릿이 살고, 디카프리오는 죽었다. 마지막까지 배를 지킨 선장은 "영국인답게 행동하라(Be British)"며 선원들을 격려했다. 그리고 침몰하는 배와 함께 선장과 선원은 전원 사망했다. 여성과 어린이를 우선시키는 것은 이들이 약자이기 때문이다. 약자에 대한 배려는 문명과 교양을 반영한다. 국제 공용의 여객선 대피 매뉴얼에도 '선원은 마지막까지 승객을 도우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세월호'에선 순서가 거꾸로였다. '문명과 교양'이 아니라 '야만과 몰상식'의 시간이었다.
선장은 아침 9시쯤 조난 신호를 보낸 뒤 불과 30분 만에 배를 버렸다. 사무장과 막내 여승무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배가 완전 침몰된 것은 그들이 도망가고도 1시간 50분이 지나서였다. 승무원들에겐 두 시간 가까이 승객을 대피시킬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도리어 죽음의 길로 몰아넣었다. 자신들은 배를 떠나면서도 '제자리를 지키며 움직이지 마라'는 안내 방송을 계속 내보낸 것이다.
3. 세월호, 대한민국의 압축판
유감스럽게도 우리에겐 위기 때마다 종종 책임 있고 힘센 사람들이 먼저 도망치는 불명예스러운 기억이 있다. 한국전쟁이나 베트남 참전 때 권력층 자제는 몸을 숨기고 서민층 청년들이 최전선에 간 사례는 부지기수다. 고위 공직자 아들 중에 군대 면제와 황금 보직 비율은 일반인 평균을 훨씬 웃돈다. 어느 힘 있는 지방 실력자는 하루 5억원짜리 황제 노역으로 감옥까지 탈출할 뻔했다. 100년 전 타이타닉호보다 2014년의 대한민국은 보다 개화된 곳이라 자부할 수 있을까.
한국일보 서화숙 기자가 인용했듯이 미국의 정치경제학자 마거릿 레비는 사람들이 어떻게 공동의 규칙을 지키게 되는가를 납세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납세자는 통치자가 공동의 편익을 제공해주며 다른 사람들도 그러하리라는 확신이 들어야만 세금을 잘 낸다. 남들도 규칙을 지키고 협동한다고 믿어야 규칙을 지키지 자기만 규칙을 지켜서 '순진한 바보'가 되는 것은 누구도 원치 않는다. 하물며 정부의 수장인 대통령과 각료들이 규칙을 지키지 않고 책임을 다하지 않는데 어떻게 구성원들이 그러하겠는가.
첫댓글 네. 수학여행은 개별 단위에서 알아서 결정해야지요. '특별한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더더구나. 그래서 대규모 여행보다는 소규모 여행으로 기획하자고 오래 전부터 의견들을 나눠왔건만...
오늘 교육부에서 초중고 수학여행을 전면 금지시켰군요. 저희 학교는 영일과, 영중과로 나누어 여행사가 주관하는 관광성 수학여행이 아니라 자매 학교와의 교류 프로그램을 일년간 준비하였습니다.
이번 사고 후 예정대로 할지 여부를 학생과 학부모가 결정하도록 하여 의견수렴을 재차 하고, 학교운영위원회 논의를 거쳐 100퍼센트에 가까운 학생과 학부모 찬성율로 계속 진행하려 하였는데, 금지 조처가 내려졌습니다. 아이들에게 이 소식을 어찌 전해야할지... 저는 학년부장에게, 학년부장은 저에게 나쁜 소식을 전하는 '악역'을 미루고 있습니다.ㅠㅠ
헐....보류하고 학생과 학부모 의견을 다시 받는다고 하더니 이젠 전면금지인가요? 왜 이렇게 학교현장과 관련된 정책과 방침을 정할 때마다 청소년 당사자들의 의견은 매번 배제되는 건지..제 동생도 '자기들이 뭔데 학생도 아니면서 마음대로 수학여행을 폐지하냐 마냐를 논하냐'며 언짢아하더라구요. 문제의 본질은 수학여행이 아니라 노후선박을 개조해서 그대로 쓰고, 부실한 안전점검을 한 것과, 몇차례 수리를 요구했음에도 전혀 수리가 되지 않았던 점, 선원들의 직업윤리 결여, 천안함을 겪고도 관련 매뉴얼 하나 마련하지 못한 정부당국이 아닌가요. 어휴 이땅에 사는 죽은 아이들과 산 아이들아 내가 다 미안하다ㅠㅠㅠㅠㅠ
일단은 '여론에 부응하는 강한 조처'를 교육부가 취하는 모양새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바뀌는 건 아무 것도 없이 흐지부지 예전처럼 돌아갈까 염려스러워요....
금지와 지시만능의 행정관료들 짓거리야 그렇다치고... 주체적으로 결정한 것을 번복하게 된 걸 학생들한테 말하기가 어렵겠네요. 학생들과 교육부 욕만 하기도 그렇고...ㅜㅜ
소규모 여행 기획은 그 나름대로 또 다른 여러 어려움과 문제가 있어요. ㅠㅠ 안전 사고 예방과 대처라는 측면만 국한해서 생각하더라도 지금처럼 담임 혼자 모든 업무를 처리하고 인솔해야 하는 소규모 수학여행은, 보조 교사나 인력의 지원이 없는 한,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게 경험을 통해 갖게 된 제 생각이에요.
그말씀 맞아요. 인력이 보완돼야죠.^^
네. 그래서 저희 학교는 국내 체험활동은 2-3학급 단위, 해외 체험활동은 4학급 단위로 실시합니다. 전교생이 함께 움직이는 것도 단점이 있지만 근교가 아니라면 한 학급 단위로 움직이는 것도 학부모의 경제적 부담 등 단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참담한 이야기이자, 섬세한 논리가 번뜩이는 선생님의 글을 오랫만에 볼 수 있어 반갑고 슬픕니다.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정진하며 기도해야 하는 때 인 듯 합니다. 늘 강건하십시오.
네, 선생님 오랜만에 글로나마 인사 나누니 반갑습니다. 선생님도 늘 건강하시고 아이들과 더불어 즐거우시길 바랍니다.
키팅!! 오랜만의 안부를 여기서 묻네요. 오늘 수업시간에 겨울왕국의 주제곡 중 하나인 For the first time in forever를 배웠지요. 가사중에 나오는 gassy라는 단어를 설명해주다가 거품이 많고 허풍스럽고 실속이 없는 우리의 현실과 맞아떨어지는 단어라는 씁쓸한 생각을 했답니다. 그렇게 살아온 삶이 오래라면 저 역시 그럴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해보았지요. 오늘의 교육이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바꿀 수 없는, 바꾸지 못한, 바꾸려하지 않는 우리 교사들부터 누가 누구를 탓할 수 없는 우리 모두가 저지른 참혹한 범죄라는 생각이 잘못된 걸까요?
제 생각에는 사고의 단계에 따른 관련자들의 책임을 묻는 것과 우리 모두의 성찰이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전자에만 머무르는 것은 근본적 변화를 가로막고 후자에만 치우치다 보면 자칫 누구의 책임도 아닌 것이 되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지요.
겨울왕국 주제곡으로 수업 하신다니, 전문계고 아이들과 영어수업을 아기자기하게 하려 애쓰시는 선생님 모습이 그려져서 좋습니다.^^ 제가 아는 영어 노래는 몇년 째 업데이트되지 않고 정체되어 있네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