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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들녘에서
김학영
애초엔 버섯을 따자고 나선 길이었다. 올해는 어느 해 보다도 버섯
이 많이 나서 전문가 아니더라도 상당한 양을 따올 수 있다는 친구들
의 말만 믿고, 갑작스럽게 나선 터 여서 제대로 준비도 하지 못하고
출발을 했다.
친구 하나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알게 되었다는 버섯 전무가 이
야기를 하면서, 잘만하면 오늘 송이도 맛볼 수 있노라는 말에 귀가
번쩍 띄어 저절로 의욕이 생겼다.
그런데 절로 생기는 의욕과는 달리 일기가 불안했다. 시나브로 어두
워지기 시작하는 폼이 기어코 한 줄 금 할 자세다. 모처럼 마음먹고
나왔는데 비가 오게 되면 산에도 오르지 못하고 돌아가야 하니 낭패
다. 욕심은 많아서 커다란 배낭을 메고 온 것이 벌써 민망스러울 즈음
우려했던 것이 현실로 나타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후덥지근한 차안의 공기가 갑자기 시원해지면서 한차례 소나기가 쏟아
지기 시작하자 우려는 어느덧 체념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러면 그렇지 내복에.” 자신도 모르게 자조 섞인 말이 튀어나왔다.
“지나가는 비 일거야 오늘 흐린다고는 했어도 비온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위로로 친구가 이야기했지만 그칠 비가 아니었다.
하늘이 온통 까맣고 꽉 짜인 것이 마음먹고 퍼부을 자세다. 차창밖엔
그 비를 고스란히 맞고 농부들이 쓰러진 볏단을 일으켜 세우고 있었
다. 죄책감이 들었다.
농부! 그 얼마나 정직한 직업이란 말인가. 내남 적 할 것 없이 정직하
여 신성하게 까지 느껴지는 자연의 파수꾼. 콩 심은 데서 팥이 날리
없고 팥 심은 데 콩 날리 없는 하늘의 이치에 거짓이 있을 리 없고, 남
에게 해를 끼칠 엄두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랬기에 함석헌 선생님
의 스승이신 다석 유영모 선생님께서도 농부를 그토록 좋아 하셨던 것
같다. 선생님께선 제자들에게 일체의 선물을 받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
는데, (우리 교수님처럼) 이러한 선생님께서도 농부 제자들의 농산물은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받으셨다. 뿐만 아니라 누가 농산물을 갖다드릴
뜻을 비치기라도 하면 '일부러 올 것 없어요. 내가 가서 받지요.' 하셨다.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도 농부들의 시름이 깊었던 해다. 홍수가 할퀴
고 간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태풍이 불어닥쳐 이중고의 시름을 주
었다. 하늘아래 부끄러운 죄라면 속박이한 죄밖에 없다시며 울분의
글을 썼던 C선생님 댁은 피해를 입지 않았는지...... 하늘이 무서워
소나기 퍼붓고 천둥 번개 치는 날 벼락을 조심해야될 사람들이 오히려
더 잘 사는 이상한 세상. 그 세상을 잊고 묵묵히 맡은바 삶에 충실하
는 농부들의 모습이 숙연하게까지 느껴질 즈음, 한가롭게 버섯이나
따러 다니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웠다.
버섯 따기는 도저히 틀린 날씨니 금강 유원지나 가서 점심 식사를
하자는 것을 차라리 속리산을 가자고 했다. 거리도 가깝고 묘막이라
는 곳을 지나서 가게되면 절경을 볼 수 있기에 강하게 주장을 폈다.
여름철이면 입구에서부터 밀리기 시작할 차량이 단 한 대도 없는 묘
막은 조용했다. 송이 입찰지역이라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있을 뿐
인적 드문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만 가득하다.
화양동 계곡이나 청천계곡도 좋지만 이곳은 그곳에 비해 사람들에
게 덜 알려져 있고 사실상 매스컴에 공개된 것도 그렇게 오래되지 않
아, 더 신선하고 생생한 모습으로 비쳐진다. 도로 포장이 되지 않았을
땐 정말 숨어있는 비경이었기에 인근 주민이나 친척들만 조용히 이용
할 수 있었던 천혜의 땅이었다.
불과 두어 시간 남짓 내렸을 비에 넘쳐난 삼가 저수지의 거친 물살
이 수박만한 돌들을 주워 삼키고 커다란 바위들의 발목아래 하얗게
부서지고 있다. 저수지의 열린 수구에서 마치 폭포수처럼 힘찬 소리를
내며 옥색의 물보라가 떨어지고 있는 사이, 물이 불어 더 커 보이는
저수지를 끼고 돌아 만수계곡으로 향했다.
삼가천과 천황봉, 그리고 형제봉에서 내려오는 물이 합수되는
만수계곡은 길게 4.5 킬로를 절경을 이루고 있다.
산자락에서부터 내려와 숨이 가쁜 칡넝쿨이 이제 막 끝가지부터 타
오르기 시작한 나무들 허리쯤에서 쉬고 있는 계곡, 물이 너무 맑아도
고기가 없다고 했는데 해오라기 한 마리가 강태공처럼 한유롭게 날고
있다.
계곡의 중간쯤에 이르니 약의 집이라는 간판이 걸린 하얀 집이 산기
슭에 보인다. 천황봉과 형제봉을 두루 다니며 채취한 약초를 가지고
한약을 짓는 집으로 추정이 되었다. 동의보감의 유익태 같은 훌륭한
스승과 허 준 닮은 제자가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계곡은 끝까지 조용하다. 피서철이면 텐트 칠 곳이 좀처럼 없다는
곳인데 가도 가도 사람의 그림자하나 발견할 수 없다. 비가 진종일이
라도 내릴 양으로 더도 덜도 아닌 마치 자동차가 경제속도를 지키는
것처럼 퍼붓고 있었지만 계곡 옆의 길은 친절하게 포장되어 있어 별
불편이 없다.
그 옛날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전의 만수계곡을 그려보았다. 포
장이 되지 않은 길은 좁아 계곡은 더 깊어 보였을 것이고, 여름철 홍
수를 이루듯 몰려드는 피서객도 별반 없어 사시사철 고요한 정적이 유
지될 수 있었을 것 같다. 무분별하게 채집되고 있는 수석이나 야생화가
지금보다 훨씬 많았을 것이며, 어쩌다 만나는 외지인들에게 베풀어지
는 친절 또한 지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을 것 같다.
입구에 4.5K라고 써있었건만 가도 가도 끝이 나오질 않는다. 기왕
에 들어선 것 끝을 보자고 마음먹고 오 분 여를 더 올라가니 먼저 벌
통들이 보이고 채마밭이 보이며 작은 촌락을 이룬 집 몇 채가 보였다.
피서철에는 제법 식당으로도 훌륭하게 역할을 할 집들 앞에, 음식종
류와 술 이름이 적힌 메뉴 판이 이정표처럼 세워져있다. 구태여 묻지
않아도 무공해가 틀림없는 배추가 포기를 탐스럽게 안고 있고 대추나무
가 몇 그루 실하다. 문득 새 한 마리 울고 간 정적이 주위를 싸고 돌
즘 발길을 돌렸다.
시간이 충분할 때 다시 한번 올 것을 생각하면서 아쉬움 속에 백현
을 향했다. 만수계곡은 곳곳에 피어있던 야생화가 보기 좋았는데 이곳
은 온통 호박꽃 일색인지라 웃음이 나왔다. 비록 꽃은 화사하지 않지
만 잎에서부터 열매에 이르기까지 온몸으로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식물로 이만한 식물도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호박꽃은 언제 보아도 나에게 웃음을 주는 사연이 있다. 60년대 초
반 지금은 순대 골목이 되어버린 꽃 다리에서부터 닭 전 골목까지의
둑 방엔 호박이 많이 심어져 있었다. 아마도 가난한 시절 한끼 끼니를
에우는데 한 몫을 했던 호박범벅이나 임신부의 훌륭한 영양식을 만들
기 위해 심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일 학년 자연시험에 호박꽃 문제가 출제되었다. 맞는 것에
동그라미 틀린 것에 가위표 하는 아주 쉬운 문제였음에도, 나는 틀리
는 바람에 돌아가신 아버님께 눈물이 핑 돌도록 골 밤을 맞았다. 어이
없게도 호박꽃은 파랗습니다 라는 문항에 동그라미를 했던 것이다. 눈
만 뜨면 볼 수 있는 둑 방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호박꽃을 파랗다고
했으니 속이 상하실 만도 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기왕에 돌아갈
수 없는 고향에 미련을 버리고 자식농사나 잘 지어보시려고 부단한 사
랑을 내게 쏟으셨는데, 자식의 아둔함에 어찌 울화통이 터지지 않을
수 있었을까. 지금은 회초리로 매일 맞더라도 살아 계셨으면 좋으련
만......
백현을 지나 백석에 도착하면서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박선희 순대
라는 간판을 미리 붙이고 건물을 짓고있는 현장을 발견했는데 건물의
재료가 처음부터 끝까지 기차 레일의 밑에 까는 침목을 사용하고 있
었다. 아! 저 징그러운 침목...... 침목은 단단하기가 이루 말할 수
가 없다. 십여 년 전 레스토랑 공사를 하면서 나는 침목을 사용해보
았다. 입구에서 실내에 이르는 삼십개정도의 계단을 침목으로 깔았는
데 고생고생 그러한 고생은 실내장식을 지금까지 하면서도 처음이었
다. 속살까지 잔뜩 박혀있는 콜 탈의 끈적거림은 기계대패의 바닥을
들어 붙게 했고 단단한 나무는 대패 날을 쉽게 무디게 하여 목수 한
명은 하루종일 대패 날만 가는 곤욕을 치러야했다. 무게는 또 어떤가
2M만 넘으면 장정 네 명의 품을 잡아먹었다. 그러한 어려운 제목으로
건물 전체를 짓고 있는 이 믿기지 않은 현실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
고 있으니 아연했다.
비가 오는 바람에 작업을 쉬고 있는 관계로 공정을 보지 못하는 것
이 아쉬웠다. 순대 맛은 어찌되었던지 개업하면 꼭 한번 와 보아야 되
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장갑리를 거쳐 본말을 지나 원평에 도착했다.
메밀이 한창인 이곳은 지난번 문학기행에서 보았던 평창의 메밀밭을
생각나게 했다. 결코 적지 않은 평수의 밭에서 메밀들이 내리는 빗물
에 거저 세수를 하여 더욱 싱싱하다.
막걸리의 한자어처럼 들리는 탁주에 도착하니 지금까지 지나오면서
보지 못했던 아카시아가 흔하게 눈에 띈다. 벼랑 아래로 수염풀이 부
드러울 즈음 적음이라고 적힌 이정표가 보인다. 마을이름도 참 재미
있다. 세상을 살면서 욕심을 비운 달관한 사람들만 모여 사는 마을인
지, 아니면 고지대에 위치해서 홍수 피해가 적은데서 유래된 지명인지
모르지만, 이곳은 옥수수가 한창이다. 마치 온 동네의 아줌마들이 아
기를 등에 업고 한 자리에 모인 모습으로 다정하게 보인다.
마주 보는 나무는 서로에게 그늘을 만들어 잘 자라지 못한다는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은행나무 두 그루가, 수천의 아이들이 손을 흔드는
모습의 연두색 잎들을 빗물에 씻고있는 창 리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후
청주로 향하는 길 낭성 쪽으로 접어들었다.
실개천을 넓혀 콘크리트로 둑을 쌓은 곳엔 여뀌와 고마리가 서로 경
쟁을 하듯 시냇물의 숨통을 막고 있다. 하염없이 내리는 빗줄기 속에
전원 주택 한 채가 동화처럼 발견되었다. 근처에 도무지 집 한 채 찾
아볼 수 없는 곳의 앞마당에 잔디가 깔리고, 원목탁자가 있고 등나무
의자가 놓여져 있는 폼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어느 예술가의 작
품 실로 추정이 될 만큼 작지만 곳곳에서 운치를 느낄 수 있는 집은
벽이 하얗게 칠해져있고, 송판으로 나직하게 둘린 담장이 앙증스럽다.
집 뒤에 넓게 과수원이 펼쳐 저 있고 과수마다 배가 탐스럽게 매달
려 있어 정겨웠는데, 질서 있게 줄을 지어 서있는 과수에 철사로 만든
그물이 영 보기 좋지 않았다. 자연의 풍성함 속에서 자유롭게 열매맺
지 못하고 교도소의 수형 수처럼 억압된 상태에서 억지로 열매 맺고
있는 것 같아 보는 마음이 불편했다.
모두가 까치 때문이란다. 우리는 반가운 소식을 전하고 그 자태까지
아름다워 길조로 알고있지만 그 식성이 아주 못된 새라고 친구가 설명
해준다. 하다못해 과일을 쪼아먹어도 한군데서 하나만 쪼아먹는 것이
아니라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쪼아먹는 바람에 온 과수원을 다 망쳐
놓는다고 했다. 잡아오면 한 마리 당 삼천 원씩 준다는 이유를 확실
알게 해준 현장이었다.
청주에 도착해서야 비가 멈추었다. 어차피 버섯은 따지 못하였고,
거저 하루를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에 책상에 앉았다. 잠시 하루의 피
로를 씻고 조용히 묵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 본다. 이제 살아온 날
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적은 것이 자명할진대 참으로 하루하루를
값지게 살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지난날을 뒤돌아보며 자기 검증을
통해 반성을 하고 진정 남은 날들을 매일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그날을 내 인생의 최초의 날로 생각하고,
또 최후의 날로 생각하고 살아가라는 어느 교수 작가의 말씀을 새겨본
다. 다가올 미래의 귀중한 시간들을 진정 의미 있게 알차게 살아갈 것
을 다짐해본다.
2000. 6집
첫댓글 남은 날들을 매일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그날을 내 인생의 최초의 날로 생각하고, 또 최후의 날로 생각하고 살아가라는 어느 교수 작가의 말씀을 새겨본다. 다가올 미래의 귀중한 시간들을 진정 의미 있게 알차게 살아갈 것을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