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1411] 龍山과 龍坪
출처 조선일보 :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3/08/21/IEHABA3ZYZGWNIAUYQVK6YXTDE/
소나무 사진 작가인 고송 선생은 삼복더위가 오면 용평(龍坪)에 머문다. 고송 선생 거처에서 사흘을 머물렀다. 아니나 다를까 삼복 더위인데도 한낮 온도가 23~24도 밖에 안 된다. 서울보다 대략 10도가 낮은 것이다. 오후 4시쯤 짙은 운무가 밀려와서 도시를 덮으니까 고산 지대에 와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1458m인 발왕산을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다. 온도가 다시 10여 도 더 떨어져서 긴팔을 입어도 춥다. 발왕산에는 한민족이 가장 귀하게 여겼던 수령 1000년이 넘는 주목 수십 그루가 서식하고 있으니 성스러운 느낌마저 든다.
이렇게 시원한 용평을 어떻게 통일교가 갖게 되었을까? 고(故) 문선명 총재의 결정이었다고 한다. 1998~99년에 쌍용이 용평스키장 일대를 팔려고 시장에 내놓았을 때 ‘우선 당장 현찰 1000억원을 먼저 달라’가 조건 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당시 다른 재벌들도 사려고 눈독을 들였지만 현금 1000억원을 즉시 줄 수가 없었다. 문선명은 ‘바로 갖다 줘라’라고 명령을 하였다. 머뭇거리지 말라는 뜻이다. ‘발왕산은 원래 팔왕산(八王山)이다. 사방팔방에서 왕이 모이는 산이다. 그러니까 무조건 사라!’가 문선명의 콘텐츠였다. 그 뒤로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리면서 용평에 수십국 정상, 총리, 왕족들이 모였다. 이 정도 예견력은 있어야 교주(敎主)도 하는 것이다. 교주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현찰 1000억원은 어디서 났을까? 당시 용산에는 세계일보 터가 1만여 평 있었고, 용산이 개발되면서 이 땅을 3300억원에 팔았다고 한다. 피 떨고 1000억원이 남았다. ‘남은 돈 어떻게 할까요?’ ‘용평 사라!’ 용산에 있었던 세계일보 터는 원래 철도고등학교 터였다. 조선시대에는 궁궐의 기와를 굽는 와서(瓦署)가 있었다. 임금은 용이고, 용이 거주하는 궁궐에는 아무 데서나 만든 기와를 올릴 수 없었다. 용(임금)의 머리 위에 올라갈 기와는 풍수적으로 용의 대가리 터에서 만들어야 격이 맞다. 용의 뿔이 있는 용산에서 만든 기와여야만 했다. 용의 뿔(龍角)은 2개인데 한 개가 현재의 국방부 터이고, 다른 한 개가 와서(瓦署)였다. 와서에 후일 철도고등학교가 들어섰던 것이었다. 철도고등학교 터가 1988년에 매물로 나왔을 때 역시 문선명은 ‘무조건 사라’였다. 330억원이었다. 땅에 대한 투시력을 가지고 있었던 문 총재는 용자(龍字) 들어간 지명을 좋아하였던 것 같다. 필자는 풍수사(風水史)에서 도선국사, 무학대사, 그리고 문선명을 꼽는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컨텐츠학
빛명상
그림찻방 전경
특별기고
치유의 에너지가 넘치는
팔공산 빛(VIIT)터
풍수지리전문가
청담 최승호 교수
심신이 고단할 때,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주변인들과의 관계가 어려울 때, 우리는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한다. 떠나고 싶다는 것은 맞닥뜨린 현실을 피하고 싶은, 일종의 도피 심리가 작용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심정의 한가운데로 들어가 보면 마음의 상처와 고단함을 달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대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와 어려움을 달래는 방법에 익숙하지 않다. 자신의 어려움을 드러내고,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것이 경쟁 사회에서는 약자가 되는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꾸만 숨기고, 덮고, 막으려 하기 때문에 상처는 더 깊어지고 곪아가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치유’는 현대인이 가장 목말라하고 필요로 하는 것이지만, 가장 어려워하고 두려워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고단함과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을 모르는 이들에게 나는 좋은 땅의 기운을 얻을 수 있는 장소를 추천하곤 한다. 조용히 다녀올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온전히 자신을 돌아보게 하기 위함이다. 또 좋은 따의 정기를 받으며 자신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보듬어 새로운 기운을 충전하고 재도약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팔공산은 무언가 간절히 기도하는 이들에게 가장 많이 추천했던 장소 중 하나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팔공산의 밝고 큰 에너지를 받아 원하는 일들을 이루거나 마음의 안정을 찾거나 좋은 기운을 충전해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은 경우들이 많았다.
적어도 그들 사이에서는 팔공산이 신묘한 기운을 가진 영험한 산이 되었을 것이고, 실제로 풍수적으로 보더라도 팔공산은 큰 의미를 가진 산으로 해석해볼 수 있다. 신라 오악(동쪽 토함산, 북쪽 태백산, 서쪽 계룡산, 남쪽 지리산, 중앙 팔공산)중 팔공산은 그 중심에 위치해 있다. 그중 빛(VIIT)터는 오대양을 대표하는 빛(VIIT)안테나로 본관과 그림찻방 중심으로 다섯 곳의 혈처, 쌍혈처가 감싸고 있다. 인체에서도 가장 중요한 장기는 신체의 중심 쪽으로 모여 있듯이 자연의 모습 또한 마찬가지인 것이다.
팔공산 아래 위치한 빛(VIIT)명상센터를 풍수적으로 살펴보면 팡공산이 주산(빛VIIT터의 뒤쪽)이 되고 수려한 금산 형태의 도덕산이 백호방(빛VIIT터의 오른쪽)에, 팔공산 줄기 일부가 청룡방(빛VIIT터의 왼쪽)에, 온화한 목산과 토산 형태의 응해산과 왕산이 안산과 조산방(빛VIIT터의 정면)에 위치하여 오행산이 모두 빛(VIIT)명상센터를 감싸 안고 있는 듯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이는 어머니의 자궁처럼 평온한 느낌을 주는 것과 동시에 생명을 잉태하는 신성하고 귀한 기운이 깃든, 소원을 이루어주는 축복받은 터라고 본다.
그래서일까? 빛(VIIT)명상센터를 찾는 회원들의 얼굴을 보면 하나같이 평온하고 행복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출처 : 빛(VIIT)향기와 차명상이 있는 그림찻방
2021년 1월 18일 초판 1쇄 P. 245~6
팔공산 전경
빛(VIIT)터에 오면은
빛(VIIT)터에 오면은 팔공산 정기가 서려 있다는 응기봉과 수십만 명이 둘러앉아 식사를 할 수 있다는 풍요산을 바라 볼 수 있다. 저 멀리 남쪽에는 비슬산도 보이고 서쪽에는 배가 잔뜩 부른 누에산이 석양을 향해 함께 예를 올린다. 동녘에는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갓바위 부처님께 경 올리는 소리도 바람결에 들려온다. 그림찻방 사계창으로 보면 팔공산 끝자락이 명물처럼 휘감아 사시사철 솔향기 구름 위로 실어 나른다. 팔공산 소나무들은 빛(VIIT)터를 좋아한다. 빛(VIIT)으로 정화된 사람은 더욱 반긴다.
빛(VIIT)터에 오면은 푸름을 잃지 않는 변치 않는 소나무,
빛(VIIT)으로 정화된 사람들과 팔공산의 소나무를 만날 수 있다
출처 : 빛(VIIT)향기와 차명상이 있는 그림찻방
2021년 1월 18일 초판 1쇄 P. 274~275
빛명상터
이 터에 온지도
어언 20년이 지나간다.
작은 도로 앞,
수십 년 정년이 넘은 과수원.
크고 작은 돌 틈에서
농약과 비료에
겨우겨우 신음으로 살아가던
사과나무와 이 땅의 기운들.
끝없는 하늘에서부터 내려온
직선 무지개의 터,
찬란한 빛(VIIT)으로 나와 터와의
인연을 맺게 되었다.
농약과 비료에 지친 나무들을
편안히 쉬게 하고
지친 땅을 마사토란
새 흙으로 보듬고
크고 작은 돌들을 담장으로 쌓고서야
비로소 드러난 무지개의 언덕.
새로운 크고 작은 나무들을 심고
금잔디를 옮겨오고
물줄기와 배수로를 만들어 주고
사시사철
이 땅에 땀을!
그분의 빛(VIIT)을!! 쏟아부으니
이젠 바람도 구름도 쉬어가고
온갖 새들이 둥지를 틀었고
잊혀 가던 여치랑, 홍굴레랑,
지렁이까지 되살아 왔다.
출처 : 빛(VIIT)향기와 차명상이 있는 그림찻방
2021년 1월 18일 초판 1쇄 P. 238
바람과 구름, 새들도 쉬어가는 팔공산 빛(VIIT)명상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