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오피니언
독재 국가와 민주 국가의 전쟁[임용한의 전쟁사]〈256〉
임용한 역사학자
입력 2023-03-28 03:00 업데이트 2023-03-28 03:00
전쟁의 역사에서 오래된 고민이 있다. 개인의 생각과 행동이 자유로운 민주 국가, 그리고 지도자의 의지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독재 국가. 두 나라가 전쟁을 하면 어느 나라가 유리할까? 자유와 진보를 추종하는 지식인들에게도 두려운 질문이다. 전쟁은 그 시작부터가 자유, 합리, 상식의 지경에서 벗어나서 벌이는 행동이다. 총탄 앞으로 돌격해야 할 때 토론을 할 여유는 없다.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가 침공해 왔을 때 아테네 민주주의자들은 자유의 힘을 주장했다. 전제군주에게 강제로 동원된 노예 같은 군대와 자신의 의지로 가족과 나라를 위해서 싸우는 전사의 전투력은 다르다. 하필 아테네가 승리하면서 이 지론은 현대 전쟁에서까지 자유민주주의자들의 바이블이 되었다.
이 말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전제국가인 마케도니아 왕국의 알렉산드로스가 아테네를 병합하고 페르시아까지 정복해 버린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부의 키는 자유 시민군과 노예 군대의 대결이 아니다. 다양한 상황에서 최대 효율을 발휘할 수 있는 조직력을 갖춘 군대와, 전장에서의 융통성과 적응력을 희생한 경직된 조직을 갖춘 군대의 대결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 군대는 경직된 조직이 얼마나 치명적인 비효율을 초래하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보면 아테네인들이 말한 고향과 가족을 지키겠다는 자유 의지의 힘도 무시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그 자유 의지란 전쟁의 효율과 적응력을 높이는 종류의 자유여야 한다. 전쟁이라는 특수 사정을 인정하지 않는다거나 나라와 가족보다 이념이나 정치권력을 지키려는 의지가 앞선다면, 국가의 전쟁 수행 능력을 파괴하는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즉, 자유 의지에 따른 국가의 분열, 조직력의 분열은 권위주의 국가에서 경직된 조직력이 전쟁 수행에 미치는 해악보다 더 큰 해악이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자유 국가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갖추고 있다. 그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요즘 상황을 보면 단점이 위험 수위로 치닫는 것 같다. 모두가 이 문제를 인식하고 노력해야 할 때가 되었다.
임용한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