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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 예수님으로 인한 모든 사랑과 은혜와 능력과 승리들, 대속과 대신과 나음과 화평들 등에 있어서의 구원의 값과 분량, 정도와 크기, 범위와 영역 등은 원론적으로는 단적으로 말해 성자 하나님 만큼인 것이고, 그것은 곧 말 그대로 하나님 만큼인 것으로..
굳이 표현하자면 온 세상과 전 인류보다, 온 우주보다도 더 큰 것을 의미하는 것일 뿐 아니라 그 어떠한 공간들도 초월하는 것이며, 참으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 모든 시간보다 더 크고 영원보다도 더 작을 수 없는 것임을 내포하는 것입니다..
진정 조금만 통찰해 봐도 그러한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고 우리 인생들이 상상도 다 못하며, 더 나아가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의 죄와 문제들, 그로 인한 진노와 심판들을 다 포함하는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으로..
진정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여 주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구원에 참예케 된 구약의 모든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 더 나아가 오신 메시야이신 구주 예수님을 믿고 구원에 참예케 된 신약의 허다한 제자들과 하나님의 백성들, 특히 오늘날 이 시대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모든 자들, 진정 다른 그 누구보다도 오늘 이 시간 나 같은 자까지도, 참으로 내 안에 있어서의 모든 죄악과 문제와 심판들까지 다 포함하는 것이며, 그에 있어서의 모든 대속과 대신들, 사함과 나음들이 다 포함되어 있는 것이고, 사실상 온 세상과 전 인류를 다 포함할 수 있는 것이며, 더 나아가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까지 모두 다 포함하는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으로 실제로 그 예수님께서는 근본과 존재 자체가 하나님이신 분이기에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구원은 그러한 모든 것들보다도 더 크고, 그에 있어서의 필요한 모든 일들을 다 포함하고 감당하며, 하나하나 모두 해결하고 고치며, 온전히 다 이루고 전적으로 직결되며 영원에 이르기까지 성취되게 하는 유일한 길과 통로와 방법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에는, 특히 그 예수님의 이름과 함께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면에 있어서는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그러한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께서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무엇보다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다 실행하시고 하나하나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며 경험케 하시고 성취되어 지게 하시는 것이고..
게다가 실상은 애초부터 그러한 모든 일들, 특히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실제와 경험들마다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뜻하시고 계획하시며, 약속하시고 예정하시며, 준비하시고 진행하시면서 하나님의 시간에 따라 정말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경험케 하시며 성취해 나가심으로 인해 가능한 것이고 처음부터 시작될 수 있었던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러한 구원의 역사는 결코 구주 예수님 단독이시라거나 단 한 순간이라도 하나님 아버지, 성령님과 분리될 수가 없는 것으로 근원적으로는 그와 같이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또한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인 것일 뿐 아니라 구약과 신약 시대 등을 위시한 모든 시대들, 심지어는 창세 전 부터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실제로 창세 전부터 영원에 이르기까지 함께 하시면서 정말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고 완전히 하나되시어 우리들이 상상도 못할 만큼 실제적이고 구체적이며 신령하고 강렬하며 실질적으로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을 나타내시고 실행하시면서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세상 끝 날,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모두 나타내시고 생생히 경험케 하시며 다 이루시고 온전히 성취하시는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와 함께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것이듯이 실제로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나면서부터 못 걸었던 자가 베드로로 인한, 좀 더 정확하게는 아무나이거나 아무렇게나가 아니라 당시 목숨까지 아끼지 않았을 정도의 말씀의 신앙이었던 베드로를 통한 나사렛 예수님 이름의 선포 한 번으로도 그 자리에서 걷게 될 수 있었던 것인데..
곧, 다시 한 번 더 강조하면 그러한 역사는 결코 그 구주 예수님 단독이실 수 없는 것으로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 있는 역사인 것이고, 직접적, 경험적으로는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시어 그 역할에 따라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역사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다 이루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과 같은 구원의 일들을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고 생생히 누릴 수 있게 하시는 성령님으로 인한 역사와 경험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마찬가지로 복음을 위해 생명조차 아끼지 않았을 정도로 말씀의 신앙이었던 사도 바울도 가는 곳마다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치유하고 살리며 걷게 하고 귀신들을 쫓아내면서 허다한 영혼과 가정들, 지역과 나라들, 대륙과 세대들을 고치고 변화시키며 교회들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이고..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 공동체를 위시해서 2000년 교회사에 있어서의 모든 교회들과 하나님의 백성들과 인류 역사의 현장들 가운데 있었던 능력과 역사들도, 심지어 구주 예수님에 대한 다양한 예표와 모형들, 약속과 계시들 등을 통해 정말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며 구원에 참예케 된 것일 뿐 아니라 오늘날의 우리들과 같이 죄악들과 싸우며 살아 있는 말씀의 신앙으로 몸부림치면서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을 허다하게 경험했던 구약의 모든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 그리고 그들을 통한 응답과 이적들 하나하나에 있어서도, 더 나아가 대략 2000년 전에 이 세상에 오신 메시야이신 구주 예수님을 믿고 구원에 참예케 된 것일 뿐 아니라 계속해서 순간순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으며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죄악들이 아닌 살아 있는 말씀의 신앙으로 믿음의 몸부림을 칠 수 있게 됨과 함께 삶의 자리와 사역의 현장들 속에서 날마다 순간마다 셀 수 없는 응답과 역전과 복들 등을 실제로 누리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들에 이르기까지의 말로 다 표한 못할 하늘의 힘과 은혜들, 변화와 열매들마다 오실 메시야든, 오신 메시야든 간에 어쨌든 잘 통찰해 보면 반드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이름과 함께 넘쳤던 것임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모든 일들을 포함해서 구약과 신약 성경 속의 모든 역사들, 인류 역사의 있어서의 모든 은혜들, 더 나아가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세상 끝 날과 영생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일들이 사실상 따지고 보면 단 하나라도, 단 한 번일지라도 하나님과 관계없거나 모르시거나 그 통치와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으로 모두 다 하나같이 근원적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으로 인한 역사들에 포함되는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인데..
실제로 삼위일체라는 존재나 개념 자체가 그렇듯 구약과 신약 시대를 위시해서 모든 시대와 나라들, 심지어는 무에서 유로의 천지창조와 창세 전, 더 나아가 세상 끝 날과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가 될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며 완전히 하나되어 한 뜻을 이루는 의미와 실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사실은 다른 그 누구보다 오늘 이 시간 우리들, 진정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오늘날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부터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대략 2000년이라는 시간과 공간들,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아무 값없이 실제로 구원에 참예케 된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고 확정되며 인침 받게 된 것으로 모두 다 마찬가지가 아닐 수 없는 것이고, 근원적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인 것이며, 근본적으로 조금도 다를 수 없는 이치와 원리인 것이고..
더 나아가 날마다 순간마다 그 예수님의 이름을 다른 무엇보다 의지하면서, 곧 오늘 지금 이 시간까지도 다시 한 번 더 강조하면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순간순간마다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붙잡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며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들을 사모하고 의지하며 갈급하고 누리면서 진정 죄악들이 아닌 말씀들로 결단하고 몸부림치는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믿음이 됨과 함께 오늘 이 시간 우리들, 다른 그 누구보다 바로 나 자신이야 말로 매사에 있어, 크고 작은 모든 기도 제목들에 있어 더더욱 바로 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선포하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와 근거들이 여기에 있는 것이고, 그와 함께 세상이 주지 못할 하늘의 힘과 응답들을 계속해서 보고 경험하게 됨도, 가면 갈수록 더 생생하게 은혜와 복들에 실제로 거하고 누리게 될 수 있음도 전적으로 같은 이치와 원리들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진정 근원적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으로 인한 역사들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중요한 사실과 관건은, 참으로 아무리 강조하고 반복하며 외치고 애쓴다고 한들 결코 과하거나 지나칠 수 없고, 오히려 부족하고 또 부족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제와 기준은 실상 아무나가, 아무렇게나 그러한 은혜와 역사들을 온전하게, 생생하게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고, 특히 죄악과 세속과 정욕들 등으로 병들고 죽은듯한 신앙 가운데에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더욱 사랑하셔서라도 아비의 심정으로 그 자녀들이 더 이상 죄악들을 반복하지 않고 하루 바삐 돌이키며 속히 제대로 된 믿음에 서게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시간까지 하늘의 힘과 응답과 복들 등은 막으시곤 하고 대신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들 등과 같은 징계들을 아끼지 않으시곤 하는 것이기에..
다른 그 누구보다 오늘 이 시간도 살아 있는 믿음, 곧 본질적으로는 말씀의 신앙으로 결단하고 갈망하며 몸부림치고 있는 자들이 소중하고 중요하며 긴급하고 절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고, 다른 그 누구보다 바로 그러한 자들, 곧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믿음들과 함께 진정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으로 인해, 직접적, 현실적으로는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그러한 모든 신령하고 놀라운 역사와 실제들의 생생함과 충만함들 가운데 생각 이상으로 깊이 거하며 풍성하게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고, 근원적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한가운데 강렬하고 풍성하게 거하게 되는 것으로 그것이 참으로 마땅하고 당연함은 무엇보다 바로 그러한 구주 예수님께서야 말로 본질적으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분인 것이고, 성령님께서도 단적으로 말씀의 영이신 것이며, 근원적이면서 본질적으로 그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바로 그 자체가 말씀이신 것이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며 다 이루시는 분인 것임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바꾸어 말해 오늘 우리 가운데 간직하고 있는 복음 안에서 다른 무엇보다 말씀으로 살아 있는 믿음, 좀 더 넓게는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무기 삼고 예배와 경배와 경건 등을 가장 우선에 두는 신앙이 말씀이 육신이 되시어 말씀대로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구주 예수님께 합당하다는 사실인 것일 뿐 아니라..
다름 아닌 바로 그러한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과 함께 모든 하늘의 역사들이, 특히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하늘의 힘과 실제들이,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으로 인한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이, 온갖 응답과 열매들이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의 모든 기도의 제목들과 인류 역사의 현장들 속에서 순간순간 함께 역동하고 경험되며 응답되고 예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엡3:18~20)
('페북두란노서원66'중에서 인용과 추가/밀알서원)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9월 24일(화)2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