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 여성시대 동물농장 / kbs 다큐 오월 그녀 / http://www.vop.co.kr/A00001275885.html
피 / 시신 사진 *살짝 주의*
나는 어머니가...사진 속, 자기 아들의 시신을 손으로 짚는 심정을 감히 헤아리지도 못하겠어...
시간이 오래 지나더라도 끝까지 가해자들 찾아내서 처벌 해야해.
[인터뷰] 5.18 엄마가 세월호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
“자식 잃은 고통은 말로 설명할 수 없제. 내가 그 마음 잘 아네.”
여든을 앞둔 노모(老母)는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세월호 아이들을 보고 우리 막내가 생각났다”는 노모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김길자(79)씨는 1980년 5월18일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고등학교 1학년 아들을 잃은 어머니다. 광주상고에 다니던 문재학(당시 16세)군이 계엄군 총에 맞아 숨진 사건은 평범한 어머니를 ‘투사(鬪士)’로 만들었다. 38년이 지난 지금도 김씨는 거리에서 ‘5.18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아들 문재학 군을 잃은 김길자 씨가 아들의 영정사진을 바라보고 있다.ⓒ민중의소리
세월호 가족들에게 닥친 고통의 시간을 고스란히 겪은 노모에게 ‘세월호 유족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주제로 인터뷰를 요청했다. 김씨는 “내 말이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자식을 잃은 엄마로서 해줄 말이 있다”며 인터뷰에 응했다. ‘세월호 4주기’를 앞둔 지난 6일 광주 북구 중흥동 자택에서 ‘5.18 유가족’ 김길자 씨를 만났다.
“도청서 심부름 하겠다”던 고1 아들의 죽음, 구명조끼 벗어주며 친구 곁을 지킨 학생들, 거리로 나온 5.18·세월호 엄마들의 눈물
김길자 씨의 막내아들은 1980년 6월 초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왔다. 머리와 가슴에 총상을 입은 교련복 차림의 재학 군은 광주 망월동 묘지에 가매장된 채 발견됐다. 2주 전 “도청에서 심부름해야 한다”는 재학 군의 통화가 가족들과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계엄군이 오니 집에 가자’고 하니깐 ‘국민학교 동창인 (양)창근이랑 사람이 많이 죽었다’는 거야. ‘도청에서 심부름 좀 하고 간다’고. 그때 재학이를 집에 못 데려온 게 평생의 한이여. 설마 쪼매만한 애들까지 죽일 거라고 생각도 못 했제.”
김씨는 “세월호에서 서로 구명조끼를 벗어주던 단원고 학생들을 보고 심부름해야 한다며 도청을 지킨 막내 재학이가 생각났다”고 말했다. “우리 재학이 또래 아이들 일이라 더 마음이 찢어졌제. 자기가 죽을지도 모르면서 남 생각하던 아이들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당께.”
첫댓글 어떤 마음인지 감히 상상도 못하겠다..
저때 총쏘고 살인했던 계엄군들 지금 다 잘쳐먹고 잘 살아숨쉬겠지? 개만도 못한 놈들
아....슬프다....맘아파.....
저 마음을 상상도 못하겠어.....
마음이 너무 무거워졌어.. 아직까지 처벌 안 받았을 계엄군 새끼들 생각하니까 짜증나고 답답하고..
이와중에 계엄군인 자기 아빠도 피해자라던 여시 생각나네ㅋㅋ
22 그 여시 518때마다 생각남 생각날때마다 빡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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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마음아파...ㅜㅜ
저 사진을 아들 누워있는 사진을 몇 번이나 보셨을까... ㅠㅠㅠㄱ.냥 눈물만 난다
아 마음아파 소년이온다 같아ㅠㅠㅠ
눈물나진짜...
아이고....ㅠㅠ
진짜 쭉정이만남았어!흐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