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지방의회 내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가 선출직 의원일 경우, 현재의 지침과 징계 절차만으로는 예방이 쉽지 않다며 더욱 강력한 예방교육과 징계절차가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 대전시당 여성위원회는 25일 오전 대전 서구 KW컨벤션웨딩 아이리스홀에서 '권력형 성범죄 및 지방의회 내 성폭력사건 처리절차의 문제점과 대안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는 최근 대전시의회에서 일어난 송활섭(무소속·대덕구2) 시의원의 성추행 의혹과 관련이 있다. 송 의원은 지난 2월 대전 대덕구의 한 건물에서 30대 여성 A씨의 신체를 부적절하게 접촉했다는 의혹으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송 의원은 이 여성에 대한 또 다른 성추행 의혹을 받고 있으며, 지난해 대전시의회 여직원에 대한 성희롱 의혹으로 국민의힘으로부터 징계처분을 받았었다.
현재 대전시의회는 송 의원을 윤리특별위원회에 회부해 징계절차를 밟고 있으며, 시민사회단체들은 송 의원 제명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다만, 송 의원이 윤리특위 출석을 거부하고 있고, 일부 윤리특별위원들이 사법적 판단 이후 징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징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매뉴얼 따르기 어려운 현실적 어려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열린 이날 토론회에서 '지방의회 내 성폭력 사건 처리절차의 한계와 대안'이라는 주제로 발제에 나선 젠더교육플랫폼효재 황지영 교육위원장은 "지자체장뿐만 아니라 지자체의 선출직 공무원인 '의원들'의 경우, 공공기관 내 성희롱·성폭력사건 처리 절차(여성가족부 매뉴얼)를 준용해 처리하면 되지만 의회 소속 직원이 아닌 시·도의원인 경우에는 적용이 쉽지 않다"라고 의회 내 성폭력 사건의 특수성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여성가족부 등의 매뉴얼대로 처리되기 어려운 현실적인 어려움 그 첫 번째 이유를 '선출직 공무원인 의원에 대한 신고가 쉽지 않다'는 점을 들었다. 의원들은 조직 내에서뿐 아니라 지역 내에서 영향력을 갖고 있고, 이는 피해자와 조력자 등에게 부정적 영향(심리정서 뿐 아니라 현실적인 상황들에 대해)을 끼칠 수 있다는 견해다.
또한 신고를 하더라도 조직 내에서 처리를 공정하게 할 것이라는 신뢰를 하기 어렵고, 수사기관에 신고를 하는 경우에도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지역 여론이나 권력관계의 유착으로 피해자에게 불리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지는 않을지에 대해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황 위원장은 진단했다.
이밖에도 ▲피해자에 대한 비난 여론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점 ▲동료의원이 피해자인 경우는 피해자가 누구인지 드러나면서 심각한 2차 피해(지역 사회 내 소문, 피해자 비난, 가해자 옹호 발언 등)가 발생한다는 점 ▲공공기관의 경우 사건 신고가 되고 조사가 시작되면 행위자로 지목된 사람에 대한 직무정지, 공간 분리 등의 조치가 가능하지만 선출직 공무원인 의원에 대해서는 쉽지 않고, 시행한다고 하더라도 의원들의 경우에는 이 조치가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는 점 ▲성희롱 사건이 신고가 돼도 내부에서 조사를 하기 쉽지 않다는 점 등을 제시했다.
"의회 내 성폭력 처리 지침 마련 미흡... 가해 의원, 상급기관 신고 불가"
이어 황 위원장은 의회 내에 이와 관련한 지침 등이 미흡한 상황을 가장 강조했다. 지자체장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는 여성가족부에 신고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지만 의원들은 상급기관으로 신고하거나 조치를 요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의회 내 윤리위원회나 해당 의원이 소속된 당에서의 조치가 있을 수 있지만 윤리위원회를 열지 않거나 소속된 당에서 제명을 하게 되면(지역구의원의 경우) 무소속으로 활동이 가능하고, 또는 윤리위원회에서 행위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활동중지 또는 제명 등의 의견을 내더라고 본의회에서 통과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
활동중지 또한 의회가 열리는 시기를 피하면 여전히 의원으로서의 활동은 가능하고, 무엇보다 의원들이 행위자로 지목되는 경우 이런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지침 자체가 없기 때문에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황 의원은 강조했다.
황 위원장은 이러한 의회 내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지침 제정과 엄정한 적용 등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정기적으로 폭력예방교육이 필요하다고 봤다. 현재 교육이 진행되고는 있지만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4시간 통합 교육을 하는 경우 시간을 다 채우지 않는 경우도 있고, 2회로 나눠 하는 경우에도 교육에 잘 참여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
그는 "공직자들의 성희롱·성폭력에 대한 인식과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이것을 인식하는 데 있어서는 시민들과 의원들 간의 인식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며 "따라서 누구나 안전한, 지속가능한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해 적극적인 변화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촉구하면서 네 가지를 제안했다.
첫 번째는 폭력예방교육을 성의 있게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서 교육시간이 확보돼야 하고, 강의 방식이 아닌 참여 방식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다면서 교육을 받는 전체 과정이 실시간으로 보여진다면(시의회 방송 송출 등)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제안했다.
두 번째는 교육내용이 폭력예방뿐 아니라 성차별적인 조직문화와 성희롱·성폭력 사건 발생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 교육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의원들의 성희롱·성폭력 사건 발생 시 처리할 수 있는 내부 지침이 상세하게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네 번째는 시의회 홈페이지 등에 '신고센터'를 개설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그러면서 황 위원장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건'으로만 성희롱·성폭력 사건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예방과 근절을 위해 조직문화의 변화를 꾀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는 의회 내뿐 아니라 시민들을 만나고, 조직하고, 당원들의 행사나 지역 내 행사의 준비와 기획, 실행의 과정, 선거를 준비하는 조직 내에서 선거가 이뤄지는 모든 과정과 기간 동안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고 봤다.
아울러 "성희롱·성폭력 사건은 정치적 이해관계나 정파적 목적을 넘어서서 다뤄져야 하고, 진실이 무엇인지 밝히고 가해자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피해자는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알아가는 노력은 누구를 공격하거나 무너뜨리려는 의도와는 전혀 무관하다"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것에 대해 말하고 행위를 중단시키고 행위자가 합당한 처벌과 책임을 지도록 하는 일이고, 또 이런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고 이를 예방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덧붙였다.
"대전시의회, 성범죄 증가에도 대책 마련 없어"
이날 토론에 나선 토론자들은 제도적 한계를 지적했다. 김난희 대전여민회 공동대표는 "대전시의회 윤리강령 및 윤리실천규범에 관한 조례' 중 의원의 징계사유를 보면, 성희롱·성폭력에 대한 징계사유 및 징계기준이 명시돼 있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며 "이러한 제도적 한계로 인해 권력형 성범죄가 양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즉 의원들 스스로 제정하는 윤리강령조례에 성폭력에 대한 징계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
그는 또 "최근 대전시의회는 의원들의 성범죄 및 성비위 사건의 증가추세에도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 모든 책임은 대전시의회에 있다"면서 "따라서 권력형 성범죄 및 성비위 사건에 대한 신고절차 및 징계절차·양정기준 규정 마련을 통해 신속하고 정확하게 절차가 진행되고, 성비위 행위 의원에 대한 엄중한 처분과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신혜영 대전서구의회 의원은 "권력형 성범죄는 폭력에 대해 피해자가 저항하지 못할 수 있음을 충분히 인지하고 저지르는 것"이라며 "피해자 관점에서 더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개선방안으로 ▲우월적 지위를 활용한 성범죄에 대해 더 강력한 법적 제재 조치 마련(처벌강화, 신상공개, 정당 제명 및 복당금지) ▲신고시스템 개선 ▲피해자에 대한 지원체계강화 ▲철저한 사전 교육과 인식 개선(현역의원 평가 기준에 도덕성 비중 강화) ▲기관 내 감시 및 견제 장치 마련 등을 제시했다.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