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일(연중 제31주일) 들은 그대로 따르기
가끔 TV에서 남자 유대인이 머리와 왼쪽 팔뚝, 즉 심장과 가까운 곳에 조그만 상자를 끈으로 매어 붙이고 다니는 모습을 본다. 이는 오늘 첫째 독서로 들은 한 분이신 하느님을 사랑해야 하고 언제나 이 명령을 마음에 새기고 자녀에게 전하고, 이 말을 손에 표징으로 묶고 이마에 표지로 붙이고 문설주와 대문에 써놓으라는 말씀을 따른 것이다(신명 6,4-9). 수천 년 전에 하느님이 자기 조상들에게 하신 명령을 아직도 지키는 것이다. 좀 유난스러워 보이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사람은 하느님 명령을 잊어버리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첫째가는 계명이 무엇이냐고 예수님께 물은 그 율법 학자는 몰라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였다(마태 22,35; 루카 10,25). 그는 앞서 예수님이 부활 따위는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 말문을 막아버리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는데, 그분이 혹시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려는 것이었을 거다. 그는 ‘최선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다고 믿었다(마르 12,33). 그는 예언자 사무엘이 사울 왕에게 전한 하느님 말씀을 인용했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 바치는 것을 주님께서 더 좋아하실 것 같습니까? 진정 말씀을 듣는 것이 제사드리는 것보다 낫고 말씀을 명심하는 것이 숫양의 굳기름보다 낫습니다(1사무 15,22).” 하느님은 사울을 이스라엘 첫 임금으로 뽑으시고 흡족하셨다. 그런데 그는 나중에 하느님 말씀을 듣지 않았다. 아말렉을 공격해서 그들에게 딸린 것들, 남자와 여자, 아이와 젖먹이, 소 떼와 양 떼, 낙타와 나귀를 다 죽이라고 하셨다(1사무 15,3). 사울은 그대로 하긴 했는데, 하느님께 제물로 바칠 생각으로 전리품 중에 양과 소를 비롯해 그 밖에 좋은 것들을 아깝게 여겨 가지고 왔다(1사무 15.9.21). 그는 이스라엘의 임금이기 때문에 하느님 말씀을 한 자 한 획도 틀리지 않게 따라야 했다. 하느님이 그것들을 완전히 없애라고 하신 데는 다 이유가 있었을 거다. 푸짐한 제사상을 차리는 것보다 하느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 율법 학자는 예수님을 만나서 기뻤다. 마음 없는 요란한 제사가 아니라 마음과 최선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고 있었는데 자기와 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다. 당신의 대답을 듣고 좋아하는 그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그 뒤에는 누구도 감히 그분께 묻지 못하였다(마르 12,34). 그 말씀이 어떤 것이길래 그 이후 아무도 예수님께 도전하지 못했을까? 하느님의 나라에 다녀왔거나 그곳에 속해 있지 않다면 그런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 말고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다(요한 1,18; 6,46). 그래서 예수님은 사제다. 하느님과 사람을 연결하고 중재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분이 하느님께 가는 길이고 다른 길은 없다. 성체성사, 미사는 예식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이다. 이 성사 안에서 주님은 나를 구하시기 위해 다시 수난과 죽임을 당하시고 또 부활하신다. 당신 자신을 통째로 우리에게 내어주신다. 우리도 가서 그렇게 하라는 하느님 명령이고, 제발 그렇게 하라는 하느님의 간절한 부탁이다. 그래야 하느님 나라로 가고, 그 길 말고 다른 길은 없기 때문이다. 예식이 아니라 사랑이 하느님과 하나 되고 그분께 가는 유일한 길이다.
예수님 인생에서 하느님 말씀과 사랑을 빼면 아무것도 없다. 사울은 제멋대로 하느님 명령을 해석해서 따랐지만 예수님은 죽기까지 하느님 뜻에 순종하셨다. 그 당시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면 죽임을 당하리라는 걸 아셨지만 타협하지 않으셨다. 이랬다저랬다 하거나 상황에 따라 다르게 말하면 그는 하느님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께 돌아갈 수 있다. 늘 그 자리에 계시고 늘 같은 말씀을 하시기 때문이다. 이마와 팔뚝에 하느님 말씀을 붙이고 다닐 수는 없어도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을 늘 기억하고 마음에 새겨 넣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고, 좋아하는 감정을 사랑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섬기는 거처럼 가장 작은 이들에게 잘 해주고, 싫어하고 나와 생각이 다르고 함께 있으면 불편한 사람은 물론이고 나를 아프게 한 사람 원수까지 사랑하도록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노력해야 한다. 이 길 말고 하느님의 나라로 가는 다른 길은 없다. 이게 바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예수님, 때론 효율과 융통성도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주님 말씀을 들은 그대로 쓰여 있는 그대로 따를 마음이 우선입니다. 고집이 아니라 부모의 말을 따르는 어린이와 같은 마음입니다. 내키지 않아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웃을 제 몸처럼 사랑하겠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두 분의 심장이 서로 맞닿게 아드님을 안고 계시니 제게 그 마음을 전해주소서. 아멘.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