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수를 보자마자 금방 읽는 사람이면 열에 여덟, 아홉은 아마도 은행, 증권사 등에서 숫자와 관계된 일을 하는 사람일 게다. 대개는 속으로 십만자리 또는 백만자리부터 ‘십만, 백만, 천만, 억, 십억, 백억 … ’하며 거꾸로 올라와 다시금 읽어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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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수가 위와 같이 써 있다면 읽기가 어떨까? 네 자리마다 찍힌 콤마가 눈에는 어색하지만 ‘사백이십팔억 칠천삼백오십육만 구천’이라고 읽기에는 훨씬 편하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왜 ‘불편하게’ 콤마는 세자리마다 찍는 걸까?
간단히 말하면 우리가 전통적인 방법 대신 서양식 표기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로마숫자표기법을 사용한 서양에서는 ‘피보나치 수열’로 유명한 피보나치가 1202년 ‘계산판에 대한 책’(liber abaci)라는 책에서 인도의 숫자를 소개한 후 점차적으로 인도 숫자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당시에 큰 수는 세 자리씩 또는 여섯 자리씩 구분해 쓰고 읽었는데, 예컨대 1544년 스티펠이라 사람은 큰 수를 ‘2° 329° 089° 562° 800°’과 같이 세 자리씩 구분해 나타내고, ‘2천천천천329천천천89천천562천800’과 비슷한 방식으로 읽었다고 한다.
이후 점차 큰 수를 나타내는 말을 만들기 시작, 14세기 이탈리아 사람들은 ‘큰 천’, 즉 1000²을 의미하는 million이라는 말을 만들어 냈고, 15세기에 ‘슈케’는 byllion, tryllion과 같은 말을 만들어 냈는데 이는 각각 1000000², 1000000³을 의미했다. 그러다 17세기 후반부터 프랑스에서는 세 자리씩 구분하는 것으로 통일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million, billion, trillion 등이 각각 106, 109, 1012를 의미하는 것으로 변하게 됐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이미 중국에서는 2세기에 만, 억, 조, 경과 같은 단어가 사용되고 있었고, 14세기 세종대왕이 읽었다는 산학책에는 경 다음의 수 이름으로 해, 자, 양, 구, 간, 정, 재, 극, 항아사, 아승기, 나유타, 불가사의, 무량대수와 같은 이름이 나타나는데, 이는 모두 네 자리마다 구분해 만든 수의 이름이다. 그런 까닭에 서양식으로 세 자리마다 콤마를 붙이면서, 읽기는 네 자리 수마다 이름을 사용해 읽는 것이다.
교수와 교사가 함께 집필한 이 책에서는 교과서에만 있는 수학에서 벗어나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서 수학을 찾아내 설명한다. 복잡한 공식과 계산 때문에 수학은 어렵다는 편견에서 벗어나, 흥미롭고 때로는 재미까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A4용지는 210×297㎜, B4용지는 257×364㎜처럼 외우기 어려운 규격을 사용하는 이유, 음료캔이 사각이나 삼각기둥이 아닌 원기둥인 이유 … . 이 모든 우리 주위의 사물과 현상들이 바로 ‘수학’과 관련이 있음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 A4용지와 B4용지가 복잡한 규격을 사용하는 까닭은 ‘종이절약’을 위해서다. 종이 규격을 정할 때 처음 종이와 반으로 접은 종이의 모양이 같아져야지만 버리는 부분이 없다. 그러려면 긴 쪽이 짧은 쪽의 √2 배가 돼야 한다. A계열은 가장 큰 종이의 넓이가 1㎡(A0는 841×1189㎜), B계열은 1.5㎡(B0는 1030×1456)이다. 아울러 음료캔이 원기둥인 이유는 원과 정사격형과 정삼각형의 둘레 길이가 같을 때 넓이는 원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캔의 높이가 같으면 원기둥의 부피가 사각기둥이나 삼각기둥의 부피보다 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