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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중국 신화(Chinese mythology, 中國神話)
∎ 서왕모⋅무산신녀⋅직녀(西王母⋅巫山神女⋅織女)
중국 신화에는 천지창조와 패권 다툼, 그리고 피비린내 나는 전쟁만 있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갈피갈피에 영원한 생명과 아름다운 사랑을 꿈꾼 이야기도 함께 담겨져 있다. 인간은 생명을 얻으면서 또 하나의 욕망을 갖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바로 불사(不死)에의 꿈이다. 중국 신화에는 이를 관장하는 여신이 있으니 바로 서왕모(西王母)이다.
서왕모는 죽음을 관장했기에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영생과 불사의 여신으로 차차 여겨지게 된다. 서왕모는 반도원(蟠挑園)이라는 복숭아나무 밭을 관리했는데, 이곳의 복숭아는 3천 년 만에 꽃이 피고 다시 3천 년 만에 열매를 맺으며 한 개라도 먹으면 1만 8천 년까지 살 수 있다고 한다. 이 불사의 복숭아는 선도(仙桃)라 불리며, 영원한 삶을 상징하는 신비로운 과일로 무수히 회자되었다.
그 복숭아를 얻은 주인공은 누구일까? 바로 한무제(漢武帝)이다. 한무제는 불사의 약을 얻기 위해 서왕모에게 갖은 치성을 드렸다. 서왕모는 한무제의 정성에 감복하여 칠월 칠석 날 용이 끄는 수레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온다. 감격한 한무제가 떨리는 음성으로 머리를 조아린 채 불사의 복숭아를 청했다.
생명을 관장하시는 신, 서왕모시여, 저와 이 나라에 불사의 복숭아를 내리시어 영원토록 평안하게 이 나라를 다스리도록 도와주소서. 모든 영광과 기쁨을 서왕모께 돌리겠나이다.
마침내 서왕모는 한무제에게 선도를 내렸다. 그런데 그 순간 한무제 옆에 서있는 신하를 보고 서왕모는 깜짝 놀라고 만다.
아니, 너는 동방삭(東方朔)이 아니더냐? 네가 반도원에서 귀한 복숭아를 훔쳐가더니 여기에 숨어 있었구나. 고얀 놈 같으니라구……
원래 동방삭은 시간의 흐름을 맡은 별의 정령이었는데 인간 세상에 신분을 속이고 내려와 기이한 꾀와 재담으로 한무제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동방삭은 서왕모의 반도원에 가서 복숭아를 몇 번이나 훔쳐 먹은 탓에 오래오래 살았는데, 육십갑자를 삼천 번이나 살았다 하여 삼천갑자(三千甲子) 동방삭이라고 불리웠다.
서왕모는 원래 우리가 흔히 기대하듯이 아름다운 여신의 모습이 아니었다. 《산해경(山海經)》에 따르면 서왕모는 반인반수의 모습이었다. 표범의 꼬리에 호랑이의 이빨, 그리고 헝클어진 머리에 비녀를 꽂은 여신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이유는 원래 서왕모가 하늘나라에서 내리는 재앙이나 돌림병 같은 일들, 또는 잔인한 형벌을 관장하는 죽음의 여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서왕모의 역할과 모습은 조금씩 변형을 겪게 된다. 후대에는 절세의 미모를 지닌 아름답고 신비로운 여신으로 그려지며 연모의 대상이 된다.
동방삭에 얽힌 이야기는 한국에서도 전국적으로 널리 전승되어왔다. 한국의 경우 동방삭이 목숨을 연장하게 된 것은 저승사자를 잘 대접했기 때문으로 이야기된다. 대접을 받은 저승사자는 삼십갑자를 살게 되어 있는 동방삭의 수명을 삼천갑자로 고쳐주었다. 그러나 삼천갑자를 살고 난 동방삭이 붙잡히지 않자 저승사자는 동방삭을 잡아가기 위해 냇가에서 숯을 씻었다. 어느 날 동방삭이 지나가다 숯을 씻고 있는 이유를 물었다. 저승사자가 숯을 씻으면 하얗게 된다 해서 씻는다고 대답하자 동방삭은 자기가 삼천갑자를 살았지만 처음 듣는 소리라고 말하고 만다. 결국 그가 동방삭임을 저승사자가 알게 되어 잡혀가고 만다.
시간이 흘러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신으로 변모한 서왕모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흠모를 받았음은 물론 마침내 아름다운 사랑의 주인공이 되기에 이른다. 그 상대는 바로 주(周)나라 때의 목왕(穆王)이다. 그는 여덟 필의 준마가 이끄는 수레를 타고 서쪽으로 여행을 떠나 곤륜산에 이르게 되는 데, 그곳에서 서왕모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주목왕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한 사람이었는데, 특히 서쪽 세계를 동경하였다. 그는 원정대를 꾸려 기나긴 여행을 시작했고 강을 건너고 여러 부족들의 땅을 지나서 왕모가 있는 곤륜산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둘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첫눈에 사랑에 빠진 왕과 여신은 아름다운 연못인 요지(瑤池)에서 매일매일 잔치를 벌였고 주목왕은 고국에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듯 신비로운 사랑 속에 파묻혀 지냈다.
그러나 황홀한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날 본국으로부터 급보가 날아온다. 동쪽 변방의 서언왕(徐偃王)이 쳐들어와서 도성이 위급하다는 소식이었다. 이에 주목왕과 서왕모는 마지막 잔치를 열고 눈물겨운 이별을 하게 된다.
그대 가시는 길이 너무도 멀고 험합니다. 우리 사이에 험준한 산과 사나운 강물이 셀 수 없으니 언제 다시 뵈올까요? 부디 오래 사시어 꼭 다시 오십시오.
동쪽의 내 땅에 돌아가 나라를 잘 다스리고 백성을 평안하게 한 뒤 다시 돌아오겠소. 약속컨대 3년 후에 내가 꼭 이곳에 다시 오리다.
그러나 주목왕은 서왕모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그는 황급히 귀국길에 올라 하룻밤에 천 리를 달려가 나라를 지켰으나 다시 돌아오지는 못했다. 용감한 왕과 아름다운 여신의 애틋한 러브 스토리는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 채 수천 년의 세월 동안 그 향기만 전하고 있다.
∎ 주목왕의 여행 이야기를 담은 《목천자전(穆天子傳)》
서기 281년, 서진(西晉) 무제(武帝) 시절 당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 사건이 생겼다. 급현(汲縣)이라는 고을에서 부준(不準)이라는 도굴꾼이 한 왕릉을 도굴하였는데, 아주 오래된 책들이 나온 것이다.
그 왕릉은 전국(戰國)시대 위양왕(魏襄王)의 무덤으로, 당시로부터 600여 년 전쯤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그 책들은 죽간(竹簡)이라는 대나무쪽에 오래된 글자체로 쓰여져 있었다.
그 중의 한 책이 특별히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는데, 그 책이 바로 《목천자전(穆天子傳)》으로 기원전 10세기쯤에 생존했던 주목왕의 신비로운 여행담을 기록하고 있었다.
태초의 세계에 피어오른 또 하나의 아름다운 사랑이 있으니, 구름같이 아득하고 비처럼 슬픈 사랑의 주인공, 바로 무산신녀(巫山神女)와 초(楚)나라 회왕(懷王)의 사랑 이야기이다.
염제에게는 딸이 넷 있었는데, 그 중 셋째 딸인 요희(瑤姬)는 불쌍하게도 아리따운 나이에 요절하였다. 가슴 속에 열정이 가득했던 이 소녀의 영혼은 한 포기의 요초(瑤草)라는 풀로 다시 태어나는데 이 풀에는 신비한 힘이 있었다. 이 풀의 열매를 먹기만 하면 사람들에게서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후 요희는 그녀가 묻힌 무산의 신녀로 환생하는데, 무산은 아름답고 신비한 산으로 그녀는 이곳에서 구름과 비의 신이 되었다. 전국시대 말, 초회왕이 무산에 놀러왔다가 고당관(高唐觀)이라는 누대에 이르러 피곤을 풀기 위해 잠시 눈을 붙였다. 막 낮잠에 빠져든 왕의 꿈 속에 아리따운 여인이 나타나니 그녀가 바로 무산신녀이다.
저는 염제의 딸로서 이곳 무산에서 구름을 띄우고 비를 내리고 있습니다.
초회왕은 무산신녀의 아름답고 신비로운 모습에 매혹되어 그 자리에서 사랑을 맺게 된다. 홀연히 떠나려는 그녀를 향해 초회왕은 아쉬운 듯이 물었다.
아름다운 그대, 언제 다시 볼 수 있겠소?
아침에는 산봉우리에 구름이 되어 걸려 있다가 저녁이면 산기슭에 비가 되어 내리는데 그게 바로 저랍니다.
이 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이내 사라져 버렸다. 초회왕은 아쉬움과 그리움으로 어쩔 줄 몰랐다. 그는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저녁이 되기를 기다렸다. 저녁때가 되자 그녀의 말대로 산기슭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초회왕은 그 비가 바로 그녀임을 느낄 수 있었다. 초회왕은 그녀와의 짧은 사랑을 잊지 못해 그곳에 누대를 지었는데, 그 이름을 조운관(朝雲觀)이라 하였다. 조운이란 아침에 생겨난 구름, 즉 무산신녀를 뜻한다.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이 되면 비가 되는 무산신녀와의 사랑, 그 사랑은 적나라한 애정 행각과는 거리가 먼, 신비로우면서도 아름다운 사랑이다. 또한 아름답고 애틋하지만 그럼에도 찰나에 불과한 사랑의 본질을 담고 있다. 이로부터 남녀가 사랑하는 행위를 두고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맺는다고 부르게 되었다.
초나라의 시인 송옥(宋玉)이 무산신녀의 모습을 노래한 《신녀부(神女賦)》
그녀의 아름다운 자태를 볼까나.
온몸을 감싼 화려한 비단 눈부시고,
수놓은 저고리, 맵시 좋은 치마에 아름다운 몸매 돋보여라.
살랑살랑 그녀 발자국이 온 방안이 환해지고,
문득 몸을 돌이킬 땐 구름 속에 노니는 용과 같아.
얇은 겉옷 위로 예쁜 몸 드러나고,
머리에선 난초 향, 몸에선 두약(杜若) 내음 풍기네.
왕과 여신과의 사랑은 세월이 흐르면서 평범한 남자와 여신과의 사랑으로 확대된다. 우랑과 직녀의 이야기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이야기인 견우와 직녀의 러브 스토리와 유사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 바로 선녀와 나뭇꾼형 견우와 직녀 설화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직녀(織女)는 천제의 손녀라고도 전해지고 서왕모의 외손녀라고도 전해지는 선녀로 은하의 동쪽에 살고 있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시간과 계절의 변화에 따라 빛깔이 달라지는 천의(天衣)라는 옷감을 짜고 있었다. 직녀 말고도 여섯 명의 선녀들이 함께 베를 짰는데 하늘나라에서도 가장 뛰어난 길쌈 솜씨를 지닌 선녀들이었다.
야트막한 은하를 사이에 두고 인간 세상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우랑(牛郞)이라는 청년이 살았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형수의 집에 얹혀 살면서 눈칫밥을 먹고 지내고 있었다. 우랑이 하는 일은 소를 치는 일이었는데, 어느 날 형수는 늙은 소 한 마리를 주며 이제 집에서 나가 독립하라고 했다.
형수의 집에서 쫓겨난 우랑은 늙은 소의 도움으로 황무지를 개간하여 농사를 짓고 집도 지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말도 통하지 않는 소만이 유일한 벗이었던 그는 매우 외로웠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소가 갑자기 사람의 말을 하는 것이었다. 우랑은 놀라서 자빠질 뻔했다.
불쌍한 주인이시여, 오늘밤 은하수에 선녀들이 와서 목욕을 할 것입니다. 그 중 가장 아름답고 가장 빼어난 솜씨를 지닌 직녀의 옷을 감추세요. 그렇게만 하면 직녀를 아내로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랑은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으나 결국 소가 말한 대로 하기로 했다. 그는 은하수 옆의 갈대숲 속에 몸을 숨기고 선녀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어둑어둑 땅거미가 내리고 밤이 되자 일곱 명의 아리따운 선녀들이 은하수에 와서 하늘하늘한 날개 옷을 벗어 버리고 목욕을 하기 시작했다. 우랑은 살금살금 걸어가 직녀의 옷을 찾아 숨겨 놓았다. 그 모습을 본 선녀들은 허겁지겁 나와 자기 옷을 찾아 입고 훨훨 하늘로 날아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불쌍한 직녀만은 옷이 없어 은하수에 그대로 남게 되었다.
나의 아내가 되어주면 옷을 돌려드리리다.
우랑의 말에 직녀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우랑이 싫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부부의 연을 맺었다. 우랑은 밭에 나가 농사를 짓고 직녀는 집에서 옷감을 짜며 아들딸을 낳고 더할 수 없이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그들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 사실을 천제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천제는 선녀가 인간과 부부가 되어 살고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직녀를 하늘로 불러들였다. 그러자 우랑과 아이들은 아내와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이때 늙은 소가 다시 사람의 말을 하였다.
주인님, 저는 이제 곧 죽을 것입니다. 제가 죽으면 저의 가죽을 벗겨 뒤집어쓰세요. 그러면 하늘나라로 갈 수 있을 겁니다.
말을 마친 늙은 소는 그 자리에 쓰러져 죽어버렸다. 우랑은 소가 말한 대로 하고 아이들을 양 옆에 끼고 하늘로 올라갔다. 마침내 은하수를 건너 하늘나라로 올라가려는데, 공중에서 갑자기 커다란 손이 내려왔다. 바로 서왕모의 손이었다.
서왕모는 급한 김에 머리에 꽂았던 비녀를 빼어 은하를 따라 금을 주욱 그었는데, 그 순간 야트막한 은하가 물결이 험하게 출렁거리는 험한 강이 되고 말았다. 직녀를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났던 우랑과 아이들은 슬피 울다가 강을 바가지로 퍼내기 시작했다. 참으로 애처로운 광경이었다.
이 모습을 본 천제와 서왕모는 그들에게 선처를 베풀기로 결정했다. 해마다 7월 7일 저녁이 되면 우랑과 직녀가 만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들이 만날 때는 까치들이 와서 강물에 다리를 놓아 주었는데, 바로 오작교였다. 오작교 위에서 우랑과 직녀는 일 년에 한 번 사랑을 속삭이게 되었다.
고대의 중국에는 아주 많은 민족들이 살고 있었고 그들이 섬기는 상제와 신, 그리고 그에 따른 신화들이 모두 달랐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 이야기들은 서로 융합하고 해체되면서 복잡하게 변화해 갔다. 한 가지의 사건이 여러 사람에게 일어난 것처럼 이야기되기도 하고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의 모습으로 나뉘어져 등장하기도 했다.
동방의 은(殷)민족이 섬기던 제준(帝俊) 또한 마찬가지다. 제곡(帝嚳), 제순(帝舜)이라 불리기도 했고 순임금 또한 같은 사람이라 전해진다. 원래 제준은 주나라의 황제와 견줄 만큼 위대한 상제였으나 주나라에게 은나라가 패한 후 그에 관한 신화는 대부분 없어지고 단편적인 이야기들만 몇 개 남아 전해지고 있다.
제준에게는 세 명의 아내가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아황(娥皇)이었다. 아황은 인간 세상에 삼신국(三神國)을 탄생시켰는데, 그 나라 사람들은 머리 하나에 몸이 세 개였다고 한다. 또 다른 아내는 희화(羲和)였는데, 희화는 열 개의 태양을 아들로 낳았다. 그들은 동쪽 바다 밖 탕곡(湯谷)이라는 곳에서 살았는데, 그곳의 바닷물은 열 개의 태양이 목욕을 하고 있어 늘 펄펄 끓는 것처럼 뜨거웠다.
그 뜨거운 바다 한가운데 어마어마하게 큰 뽕나무가 있었다. 이를 부상(扶桑)이라 불렀는데, 높이가 수천 길이나 되고 둘레도 천 길이나 되었다. 태양들은 부상에서 머무르다 매일 아침 하나씩 교대로 떠올라 하루 종일 하늘을 운행했다. 이렇게 운행을 하다가 서쪽 끝의 우연(虞淵)이라는 연못에 이르면 하루의 할 일을 마치게 되었다.
희화는 늘 수레를 직접 끌고 현거(懸車)라는 곳까지 아들들을 데려다 주었다. 현거까지 어머니가 데려다 주면 아들들은 남은 여정을 혼자 마쳐야 했다. 어머니가 늘 길을 안내했기 때문에 오랜 기간 열 개의 태양은 착오 없이 차례차례 하늘에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들은 오랜 기간 되풀이한 이 일이 지겹다고 느끼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르게 된다. 바로 어머니의 수레를 타지 않고 동시에 하늘에 떠오르기로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인간 세상에는 무서운 재앙이 생기게 된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부인은 상희(常羲)로, 그녀는 열두 명의 딸을 낳았는데 이들은 달이었다. 이들 열두 명의 딸은 아들과는 달리 별다른 소동을 일으키지 않고 조용하게 밤 세계를 비추었다.
열 개의 태양이 동시에 하늘에 떠오르자 지상은 마치 지글지글 타오르는 지옥처럼 변해 갔다. 초목은 말라죽고 가뭄이 들어 강물은 말라갔으며, 인간들은 갈증과 굶주림으로 까맣게 말라가며 괴로워했다. 열 개의 태양은 지상의 이런 상황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하늘을 제멋대로 날아다니며 놀기에 정신이 없었다. 오랜 굴레에서 빠져나온 자유를 만끽하려는 듯 마음껏 돌아다녔다.
아버지인 천제 제준과 어머니인 희화 여신이 아들들을 나무라고 달랬지만 소용이 없었다. 당시의 임금은 요(堯)임금으로 백성들을 사랑하고 아낀 성군이었는데, 힘들어 하는 백성을 보며 그는 매우 마음이 아팠다. 요임금은 우선 신통력 있는 무당을 불러 하늘을 향해 비를 청했다. 당시 비를 내리는 신녀로 이름이 높았던 여축(女丑)이 있었는데, 여축은 산꼭대기에 올라 하늘을 향해 비를 청했지만 열 개의 태양은 여전히 하늘에서 이글거렸다. 한참을 기도하던 여축은 땀을 비오듯 흘리더니 마침내 말라죽고 말았다.
여축이 죽자 백성들은 믿었던 희망마저 사라져 공포에 떨기 시작했다. 날씨가 불같이 뜨거워지자 구영(九婴), 파사(巴蛇) 등의 맹수들이 이글거리는 숲이나 펄펄 끓는 듯한 강물에서 뛰쳐나와 백성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요임금은 천제를 향해 간곡한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위대하고 자비로우신 천제시여, 땅의 백성들이 지금 무서운 재앙 앞에 울부짖고 있습니다. 부디 살피셔서 열개의 태양이 하늘에서 물러나도록 해주십시오. 불쌍한 백성들을 굽어 살피소서.
요임금의 간곡한 기도는 천제 제준의 귀에도 들렸다. 제준은 이제 더 이상 아들들을 그대로 놔둘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자식이라 해도 온 세상이 아우성을 치는데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제준은 활을 잘 쏘는 신인 예(羿)를 불렀는데, 예는 신묘한 활 솜씨로 천상에서도, 지상에서도 유명하였다. 예가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갈 때 제준은 붉은색의 활과 하얀색의 화살 한 통을 주었다.
그대의 신묘한 솜씨로 나의 어리석은 아들들을 혼내주고 불쌍한 인간들을 구하라.
제준은 예가 아들들에게 그저 경고만 해주기를 원한 듯하다. 나중에 예에게 한 그의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 제준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예는 제준의 명령을 받고서 아내인 항아(嫦娥)를 데리고 곧장 인간 세상으로 내려갔다.
예가 인간 세상에 내려가자 인간들이 몰려와 예를 환영했다. 예는 사람들이 모인 광장에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에는 여전히 열 개의 태양이 타오르고 있었다. 예는 요임금과 인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천천히 활과 화살을 들어 첫 번째 목표물을 향해 있는 힘껏 화살을 당겼다.
화살은 하늘의 불덩이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공중을 가로질러 갔다. 잠시 후 하늘에서는 불덩이가 스러지면서 불꽃이 여기저기 튀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붉고 빛나는 무엇인가가 땅 위에 떨어졌다. 그것은 바로 삼족오(三足烏)였다. 삼족오란 황금빛이 나는 세 발 달린 신성한 까마귀로 태양의 본래 모습이었다.
백성들은 환호하고 요임금은 안도했다. 드디어 무서운 재앙으로부터 그들을 구원할 영웅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예는 조금의 흐트러짐 없이 또 하나의 화살을 꺼냈다. 그리고 하나씩 하나씩 태양들을 쏘아 떨어뜨렸다. 환호성과 함께 지상의 열기가 조금씩 식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오로지 활쏘기에만 몰입하고 있는 예의 모습에는 고지식한 충성심과 자신의 능력을 천상과 천하에 증명하려는 듯한 자만심이 함께 깃들어 있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요임금은 태양이 하나씩 떨어질 때마다 기뻐했지만 재빨리 상황을 판단했다. 급히 사람을 시켜 예의 화살통에서 화살 하나를 몰래 뽑아오게 시켰다. 덕분에 예는 하나의 태양을 남기고 활쏘기를 멈췄다.
이제 세상은 예전과 같이 시원해졌고, 백성들은 기쁨에 겨워 그들을 구해준 예를 위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예는 자신의 임무를 다하고 백성들을 구했다는 생각에 흡족했다. 그러나 자신의 임무를 다한 것이 나중에 자신에게 벌로 되돌아오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이글이글 불덩이처럼 타오르던 지상은 이제 안정을 찾긴 했지만 백성들의 괴로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나운 괴물들이 여전히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는 자신에게 주어진 새로운 임무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첫 번째로 퇴치해야 할 괴물은 알유였다. 알유(猰貐)는 중원 일대에서 사람들을 못살게 굴고 있었다. 알유는 소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했다고도 하고 뱀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했다고도 하는 괴물이었는데, 어린아이 울음소리를 내 사람을 유인한 후 잡아먹었다. 예는 알유가 아이 울음소리를 내자 속은 척하고 가까이 간 뒤 괴물이 가까이 왔을 때 화살을 날려 한 방에 처치하였다.
다음 차례는 북방의 흉수(凶水)에서 온갖 말썽을 부리고 있는 구영이었다. 구영은 머리가 아홉 개 달린 물과 불의 괴물이었는데, 물도 뿜어내고 불도 토해낼 수 있었다. 예는 아홉 개의 화살을 거의 동시에 날려 이 흉악한 괴물을 처치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동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예는 청구(靑邱) 지역의 호숫가에서 대풍을 발견했는데, 대풍(大風)은 사납고 거대한 새로, 성질이 몹시 포악하였다.
화살 하나로 대풍을 죽일 수는 없겠는 걸. 좋은 방법이 없을까? 옳지! 실을 이용하면 되겠구나.
예는 우선 푸른 실을 화살 끝에 매달았다. 그리고 숲속에 숨어서 새가 날아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가슴 중앙에 정통으로 화살을 맞추었다. 대풍은 다시 날아오르려 했으나 실에 끌려 도망치지 못하고 예의 칼에 맞아 죽었다.
예는 잠시 쉴 틈도 없이 남방으로 향했다. 코끼리까지 삼켜버린다는 파사(巴蛇)가 동정호(洞庭湖)에서 사람들을 잡아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파사는 검은 몽뚱이에 푸른 머리를 한 뱀으로 무지무지하게 컸다. 예는 작은 배를 타고 동정호의 파도를 헤치며 파사에게 접근했다. 한나절쯤 찾았을까. 파사가 산더미 같은 파도를 일으키며 예의 배를 향해 헤엄쳐 왔다. 예가 화살을 쏘았으나 파사는 죽지 않았고 칼을 뽑아 혈투를 벌인 끝에야 겨우 파사를 죽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처치해야 할 괴물은 봉희(封豨)였다. 봉희는 긴 이빨에 날카로운 발톱을 지닌 거대한 멧돼지로, 농사를 망쳐놓고 사람과 가축들을 잡아먹었다. 예가 봉희의 다리에 화살을 쏘아댔더니 죽지는 않았지만 도망치지는 못했다. 드디어 예는 봉희를 사로잡았다. 인간 세상을 괴롭히던 괴물들을 모두 없애버린 예는 인간들로부터 가장 위대한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백성들은 그를 칭송했고 요임금도 예의 위대한 행적에 감동했다.
예는 멧돼지를 제물로 바치고 천제께 제사를 지냈다. 천제의 명령을 모두 수행했으니 마땅히 치하 받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천제는 전혀 기뻐하지 않았고 응답조차 없었다. 예는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천제의 아들인 아홉 개의 태양을 쏘아 떨어뜨렸으니 어찌 보면 예는 엄청난 죄를 지은 것이었다.
용맹하고 충직했지만 고지식하고 자만에 찬 영웅에게 돌아온 것은 천제의 노여움뿐이었다. 그 후 예는 수많은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하늘로 돌아가지 못하고 인간 세상에 남아 일생을 보내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로 인해 예는 중국 신화 속에서 가장 비극적인 영웅으로 그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머리가 아홉인 구영은 목숨도 아홉이라고 으스대었다. 9개의 입을 쩌억 벌리고 독기 서린 화염을 뿜어내며 물과 불로 예를 공격했다. 구영은 목숨이 아홉이라서 하나를 맞춰도 금방 살아나기 때문에 예는 연환전법(連環箭法)을 썼는데 이는 9개의 화살을 거의 동시에 날려 구영의 아홉 머리를 맞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구영의 아홉 목숨은 한순간에 끊어지고 말았다.
예의 아내인 항아는 천상에서 지상으로 떨어져 인간으로 살게 된 신세를 한탄하며 남편을 원망했다. 자연히 부부간의 금슬도 나빠졌다. 괴로움을 참지 못한 예는 집에서 뛰쳐나와 유랑 생활을 하게 된다. 예는 이곳저곳 떠돌다가 어느 날 낙수의 강가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그곳을 거닐고 있는 한 여인을 발견하게 된다. 멀리서 보아도 빼어난 자색임을 알 수 있는 그녀는 바로 복희의 딸이자 물의 신 하백의 아내인 복비(宓妃)였다. 복비의 아름다움은 중국의 유명한 문장가들이 두고두고 노래할 만큼 빼어났다고 전해진다.
예가 복비를 발견했을 때 복비는 선녀들과 함께 낙수의 물가에서 노닐고 있었다. 다른 선녀들이 깔깔거리며 유쾌하고 즐겁게 놀고 있는데, 유독 복비만 선녀들과 따로 떨어져 바위 옆에 홀로 서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왠지 어둡고 슬퍼 보였다. 이는 아마도 그녀의 남편인 하백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백은 성정이 곱지 못한데다 해마다 신부를 새로 맞을 정도로 바람둥이였다. 그래서 그녀의 마음속에는 늘 하백에 대한 불만과 불행한 결혼 생활에 대한 답답함이 쌓여 있었다.
천하의 절세미인 얼굴에 우수가 어려 있으니 천하의 영웅, 예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우연한 만남은 애틋한 사랑으로 발전했고 결국은 질투를 불렀다. 예와 복비의 만남에 대한 소문을 들은 하백이 예에게 결투를 청한 것이다. 하백은 흰 용으로 변하여 예에게 덤벼들었으나 세상의 괴물들을 모두 물리친 예의 상대가 되지는 못했다. 예는 활을 쏘아 흰 용의 왼쪽 눈을 명중시켰다. 예는 하백을 이기기는 했으나 복비와의 사랑도 막을 내려야 했다. 예에게는 남편을 원망하는 아내, 항아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원래 하늘의 여신이었던 항아는 남편인 예가 천제의 뜻을 거슬러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 너무나 못마땅했다. 그러다 곤륜산 서쪽에 서왕모라는 신이 불사약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곤륜산에 있는 서왕모님이 불사약을 가지고 있다니 당신이 가서 불사약을 구해 오세요. 당신은 태양도 쏘아 떨어뜨리고, 무시무시한 괴물도 모두 없애 버렸으니 그깟 불사약쯤이야 쉽게 구하지 않겠어요?
아내의 말에 예는 그 길이 얼마나 멀고 험하든 불사약을 꼭 구해 오리라 결심하고 길을 떠난다. 서왕모가 살고 있는 곤륜산은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곳이었다. 곤륜산 아래에는 약수(弱水)의 깊은 물이 흐르고 있는데, 이 약수는 가벼운 새의 깃털조차도 가라앉을 만큼 모든 것을 가라앉히는 물이였다. 또 곤륜산의 바깥 쪽에는 불꽃이 타오르는 거대한 산이 있어 누구도 범접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예는 물과 불의 난관을 헤치고 마침내 곤륜산의 서왕모와 대면하게 된다.
위대한 신, 서왕모시여, 저는 활 쏘는 예입니다. 저는 열 개의 태양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고 세상 모든 괴물들을 처치하였습니다. 그러나 천제께서는 저에게 화가 나시어 다시는 천신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저에게 불사약을 내려 오래도록 죽지 않는 소원을 이루게 도와주소서.
예가 정성을 다해 기도를 드리자 서왕모는 예와 항아의 기막힌 운명에 깊은 동정심을 표하고 예에게 불사약을 주었다.
이 약은 당신 부부가 함께 먹어도 영원히 죽지 않을 만큼의 충분한 양이오. 만일 한 사람이 혼자서 다 먹는다면 하늘로 올라가 신이 될 수는 있지만…….
예는 불사약을 받아 집으로 돌아와서 아내와 날을 받아 함께 마시기로 했다. 그러나 항아의 마음은 달랐다. 불사약을 혼자 다 마시고 하늘로 올라가기로 결심했다. 항아는 남편의 것은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불사약을 전부 먹어 버렸다. 그 순간 항아의 몸이 두둥실 떠오르면서 하늘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 하늘로, 하늘로 올라가는 구나. 이제 나도 다시 신이 될 수 있어. 그런데 하늘나라에 당도해서 다른 신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남편을 배신한 나쁜 계집이라고 손가락질하지 않을까?
기쁨도 잠시, 그녀는 하늘나라에 도달했을 때 다른 신들이 그녀에게 손가락질하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잠시 달에 숨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달로 향한다. 그러나 달에 도착한 그녀는 자신의 몸에 무언가 변화가 생기는 것을 느꼈다.
항하(嫦娥)의 배와 허리는 팽팽하게 부풀었으며 어깨와 머리는 붙어 버렸다. 입은 쭈욱 늘어나고 눈은 흉하게 툭 튀어나왔다. 백옥 같던 피부는 칙칙해지고 울퉁불퉁해졌다. 뛰어난 미인이었던 항아가 못생기고 흉한 두꺼비로 변한 것이다. 그제야 후회한들 아무 소용없었다. 아내는 달에서 두꺼비가 되어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고, 땅위의 남편은 자신을 저버린 아내를 원망하였다.
영웅에게는 불행한 최후가 따른다고 했던가? 태양을 쏴 떨어뜨리고 온갖 기이한 괴물들을 물리쳤던 예는 천신의 자격도 박탈당하고, 아내인 항아마저 배반하고 떠나간 기가 막힌 신세가 되었다. 예는 현실의 고통을 잊고자 제자들에게 활쏘기를 가르치는 일에만 열중하였다.
예의 제자 가운데 재주가 출중한 자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봉몽(逢蒙)이었다. 봉몽은 예가 가르치는 것은 열심으로 배웠다. 활쏘기 전에 눈을 깜박이지 않는 법, 작은 물건을 크게 보는 법 등을 익혔다. 자신이 지도하는 대로 열심히 익히는 봉몽을 보며 예는 진심으로 기뻐하였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거의 모든 재주를 봉몽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리하여 봉몽의 활 솜씨도 세상에 알려져, 명궁이라 하면 사람들이 예와 봉몽의 이름을 함께 떠올릴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봉몽은 스승을 질투하는 욕심 많은 사내였다. 결국 그는 스승을 죽이고 자신이 최고의 실력자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첫 번째 시도로 그는 활을 쏘아 예를 죽이려 했으나 예가 설족법(齧鏃法)으로 제자의 화살을 잡아내고 만다. 봉몽은 울며 용서를 빌고 예는 설족법도 모르냐고 나무라며 호통만 치고 말았다. 봉몽은 활쏘는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스승을 죽이기로 결심한다. 그는 복숭아나무를 깎아 만든 몽둥이로 스승을 때려죽이고 만다.
예가 죽은 뒤 백성들은 그를 신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 예는 종포신(宗布神)으로 숭배되었는데, 이 신은 귀신의 우두머리로서 나쁜 귀신을 쫓는 역할을 한다고 전해진다. 오늘날까지 제사상에 복숭아를 올리지 않는데, 이는 복숭아나무 몽둥이에 죽임을 당한 예 때문이다. 신들의 우두머리가 두려워하는 복숭아인데 어떤 신인들 기꺼워하랴는 생각에서이다.
이 시기는 중국의 드넓은 대륙에 수많은 종족이 공존하면서 앞으로 시작될 거대한 역사의 씨앗을 심는 시기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두 종족은 동방의 동이계(東夷系)와 서방의 화하계(華夏系)였다. 이 중 동이계 종족은 은(殷) 민족을 세웠고, 화하계 종족은 주(周) 민족을 세웠다. 다음은 《사기(史記)》에 전해지는 은(殷) 민족의 시조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주 옛날에 유융씨(有戎氏)라는 신분이 높은 사람이 있었다. 그에게는 세 명의 딸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아름다웠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그들이 나들이를 갔다가 어느 강가에 이르게 되었는데, 맑은 강물은 너무도 시원해 보여 세 자매는 부끄러움도 잊고 목욕을 하게 되었다. 그들이 한참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검은 빛의 새, 현조(玄鳥) 한 마리가 날아오더니 오색찬란한 알을 떨어뜨렸다.
어머, 이게 뭐지? 그 빛깔 한 번 곱구나.
유융씨의 큰 딸인 간적(簡狄)이 알을 집어 이리저리 쳐다보다가 뭐에 홀린듯 자신도 모르게 입에 넣어 보았는데, 그 순간 알이 미끄덩하고 목으로 넘어가 버렸다. 그 후 간적은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갖게 되었고,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설(契)이라고 했다. 설은 장성해서 요임금 때 교육의 책임자인 사도(司徒)가 되었다가 그 후 상나라 땅의 제후로 봉해져 은민족의 시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