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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10. 27. 큐티
누가복음 8:26 ~ 39
거라사 광인의 별
관찰 :
1) 광풍과 험한 물결을 잔잔케 하신 예수님이 이방인이 모여사는 거라사인의 땅에 내리셔서 귀신 들린 자 하나를 만나셨다.
- 26절. “그들이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에 이르러”
a. “거라사”는 갈릴리 호수 동남쪽 데가볼리(Decapolis) 지역의 도시로, 성경에는 ‘거라사인의 땅’ 또는 ‘거라사 지방’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날의 위치는 요르단 북부의 제라시(Jerash)로 보기도 하며, 이곳은 로마 시대 데카폴리스의 주요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b. 마태복음은 가다라,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거라사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거라사는 갈릴리 해변에 있기에 가다라의 행정구역에 포함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이적 행하신 지점이 바로 거라사 지경인 동시에 가다라 구역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태의 기록도 맞고, 마가와 누가의 기록도 맞습니다. 최근에 가다라 화폐가 발견되었는데 거기에 배 형상이 새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이것을 보아도 가다라의 세력이 갈릴리 해변 각처에 미쳤던 것임을 반증하고 있습니다.
- 27절. “예수께서 육지에 내리시매 그 도시 사람으로서 귀신 들린 자 하나가 예수를 만나니 그 사람은 오래 옷을 입지 아니하며 집에 거하지도 아니하고 무덤 사이에 거하는 자라”
a. 예수님이 거라사인의 땅에서 귀신 들린 자를 만난 사건은 예수님이 의도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사역에 우연은 없습니다. 주님은 의도적으로 거라사 땅으로 가신 것입니다.
b. 예수님은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거라사 땅에 이 귀신 들린 사람을 알고 그 땅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귀신들, 군대 귀신들을 내어 쫓아내어 주셨습니다.
- 28절. “예수를 보고 부르짖으며 그 앞에 엎드려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하지 마옵소서”
a. 예수님의 제자들도 아직 ‘저가 뉘기에‘라며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분명하게 알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귀신들린 자가 예수님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귀신들린 자의 고백에 대해서 칭찬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귀신의 고백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합당한 고백이라 할지라도 칭찬하고 인용할 수 없는 합당한 고백이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그러한 것에 휘둘리시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b. 이 때 이 귀신 들린 자는 심각한 귀신이 들어가 너무나 그의 삶을 파괴하고 괴롭게 했습니다. 옷을 입지 않고, 누구도 그를 제어하지 못하고, 아무도 그와 상관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귀신이 예수님께 대해 자신을 괴롭게 하지 말아달라고 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합당한 증언을 했다고 그가 원하는 대로 괴롭게 하지 않는 것이 주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그렇게 귀신의 궤계에 휘둘리신 분이 아니십니다.
- 29절. “이는 예수께서 이미 더러운 귀신을 명하사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귀신이 가끔 그 사람을 붙잡으므로 그를 쇠사슬과 고랑에 매어 지켰으되 그 맨 것을 끊고 귀신에게 몰려 광야로 나갔더라)
a. 예수님은 그 귀신 들린 자의 불쌍한 상황을 바로 보셨습니다. 그는 쇠사슬에 매어놓아도 쇠사슬을 끊어버리는 괴력을 발휘했습니다. 누구도 그를 제어하지 못하는 슈퍼 파워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힘은 자신이 원한다고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귀신에 의해서 조정되었던 것입니다. 귀신으로 말미암아 어떤 힘을 소유하게 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자신을 위해서 사용되지 못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벌거벗고 광야로 가서 짐승처럼 살았습니다. 그런 불쌍한 존재를 예수님은 귀신으로부터 해방시키고자 나가라 명하신 것입니다.
b. 이토록 강력한 귀신이 사람이 나가라고 나갈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귀신이 고백한 대로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귀신이 예수님의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님은 귀신이 맞서서 싸울 수 있는 존재가 아니십니다. 사탄 마귀도 예수님과 맞상대하는 차원으로 싸울 수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작정하신대로 이 영적 전쟁을 흘러가는 것입니다.
2) 귀신들린 자의 수
- 30절. “예수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신즉 이르되 군대라 하니 이는 많은 귀신이 들렸음이라”
a. 귀신 들린 자의 숫자에 대해서 마태복음은 둘,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하나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성경의 오류를 찾았다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성경이 잘못됐구나 하는 시각으로 보는 것이 언제나 문제입니다.
b.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기에 성경의 기자가 기록한 그 원본 성경은 오류가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성경을 대해야 합니다. 이 귀신들린 자들의 숫자가 차이 나는 것에 대해서 칼빈은 귀신들린 자가 원래는 두 명인데 예수님과 직접 만나서 대화를 한 자가 한 명이기에 다른 본문에서는 한 명으로 묘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는 둘 중에 보다 괴악하게 귀신들린 자에게 집중을 한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c. 귀신들린 자의 수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관점에 따라서 씌여진 것이기에 오류라고 볼 수 없는 사안이 되는 것입니다.
d. 거라사 지방이 귀신 들린 자에게 들어간 귀신이 숫자가 몹시 많았습니다. 한 인간에게 많은 귀신이 들어가는 것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사람의 고통과 곤란함이 얼마나 컸을 것인지를 짐작해 보게 됩니다.
- 31절.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리”
a. "무저갱"은 하나님이 사탄과 귀신을 위하여 예비한 곳입니다. 인간이 사탄과 귀신을 주인으로 모시고 있으면 결국 함께 들어가게 될 곳입니다.
b. 군대 귀신들린 거라사 지방의 귀신 들린 자를 통해 귀신들이 예수님께 무저갱에 들어가게 하지 마시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비록 그들이 잠시 돼지떼에게 들어가 돼지들이 집단으로 죽게 되지만 그렇다고 군대 귀신이 무저갱 행을 면죄받은 것이 아닙니다. 잠시 동안만 무저갱에 떨어지지 않은 것일 뿐입니다. 이 귀신들은 지금도 한 영혼이라도 예수님의 품에서 떼어내 무저갱에 함께 들어가고자 모략과 궤계를 남발하고 있습니다.
- 32절. “마침 그 곳에 많은 돼지 떼가 산에서 먹고 있는지라 귀신들이 그 돼지에게로 들어가게 허락하심을 간구하니 이에 허락하시니”
a. 귀신들은 그냥 쫓겨나지 않고 돼지 떼에 들어가 호수에 들어가 몰사하게 만들었습니다. 귀신의 역사는 늘 이렇듯 악독한 것입니다. 그들이 하는 일의 결국이 이와 같습니다. 귀신을 통해 좋은 결과가 나오는 일은 없습니다. 이것은 말씀이 아닌 비기독교에서도 동일한 결과를 야기하는 것입니다.
b. 귀신들이 원한다고 자기들 뜻대로 행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허락하셔야 군대 귀신들이 되지떼에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권세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급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대적하려는 모든 시도는 어리석은 것입니다.
3) 예수님의 다스림
- 33절.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그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호수에 들어가 몰사하거늘”
a. 바람과 바다를 다스리신 예수님은 이제 영적인 세계도 다스리시는 분이심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기에 물질의 영역 뿐이 아니라 영적인 영역을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b. 예수님은 귀신들린 자의 간구에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구분하자면 허락이 아닌 허용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이루시기 위해 허락하신 것이 아니라 귀신들의 요구에 내버려 두시는 것 뿐입니다. 그것은 심판이 유보되는 것일 뿐입니다. 귀신과 예수님이 타협하시는 것이 아니셨습니다.
c. 그러나 주님의 ‘가라’는 다스리심이 있었기에 군대귀신은 귀신 들린 자들에게서 나와서 돼지 떼에게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때 주님의 다스리심이 임한 것이기에 여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이 떠나가게 되는 것은 올 세대의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대에 시간과 공간을 격하고 침노하게 되는 사건이 된 것입니다.
d. 마귀의 세력에 사로잡힌 인간을 그 세력에서 구원하시는 일은 천국 복음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
4) 거라사 지방 사람들의 고백
- 34절. “치던 자들이 그 이루어진 일을 보고 도망하여 성내와 마을에 알리니 사람들이 그 이루어진 일을 보러 나와서 예수께 이르러 귀신 나간 사람이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의 발치에 앉아 먹는 것을 버고 두려워하거늘”
a. 거라사 지방 사람들은 귀신을 쫓아내신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러한 예수님의 권능에 두려워서 떠나시기를 구했습니다.
b. 돼지 떼 값을 변상해 달라고 하지도 않는 것을 보면 정말로 두려워했던 것 같습니다. 그 두려움의 본질은 자신들이 믿는 신앙을 바꾸어야 하고, 자신들의 삶을 바꾸어야 한다는 부담이었던 듯합니다. 그들이 두려워한 것은 쇠사슬도 끊어버리는 거라사 광인이 구원받은 것에 기인하기 때문이었습니다.
c. 자신들이 믿는 신앙보다 더 큰 이가 오심에 자신들의 그릇됨을 포기하고 예수님께 나아오기보다 예수님을 거부하는 죄악에 물들어 있는 인생의 아픈 현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d. 그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믿는 신념과 신앙에 사로잡혀 참되신 예수님께 나아오지 못하는 모든 이들을 대변하는 모습입니다. 안타깝고 아픈 인생의 현실들입니다.
- 35절. “사람들이 그 이루어진 일을 보러 나와서 예수께 이르러 귀신 나간 사람이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의 발치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a. 거라사 지방 사람들에게 너무나 유명했던 귀신 들린 자가 정신이 온전하여 옷을 단정히 입고 예수님을 섬기고 있는 모습을 본 거라사 지방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그런 귀신 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이 나가는 것을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간구와 자신이 원하는 바를 관철하기 위한기도는 사실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b. 예수님의 사역의 결과에 대해서 거라사 지방 사람들은 예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 36절 ~37절. “귀신 들렸던 자가 어떻게 구원받아는지를 본 자들이 그들에게 이르매 거라사인의 땅 근방 모든 백성이 크게 두려워하여 예수께 떠나가시기를 구하더라 예수께서 배에 올라 들어가실새”
a. 심각한 귀신 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주신 예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떠나실 것을 구했습니다.
b. 돼지를 쳤다는 것은 돼지를 먹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거라사 땅의 주민들이 대부분 이방인이었음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전통상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정하신 율법에 의해 돼지고기를 먹어서는 안되었습니다. 거라사 지방이 변방이기에 돼지 고기를 먹는 문제는 이스라엘의 율법을 어기는 문제로 여겼던 것입니다.
5) 이후의 귀신들린 자들은 별을 달았다.
- 38절 ~ 39절. “귀신 나간 사람이 함께 있기를 구하였으나 예수께서 그를 보내시며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를 말하라 하시니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를 온 성내에 전파하니라”
a. 거라사의 귀신들린 광인이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아픔이, 그의 고통이, 그의 눈물이 별이 된 것입니다. 귀신들렸었기에 주님을 만났고, 귀신들림 없이 귀신들린 자들을 흉보던 이들에게 주님의 복음을 증거하는 전도자가 된 것입니다.
b. 주님은 다른 이들의 경우 예수님이 치유해 주신 역사를 말하지 말라는 명을 받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 귀신들렸던 광인의 경우는 오히려 주님의 역사를 증거할 것을 명령받았습니다. 놀라운 주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가 받은 고통과 슬픔이 은혜가 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가르침 :
1) 예수님은 일부러 거라사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귀신 들린 바로 그 사람(들)을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귀신의 결박에서 풀어 자유케 하셨습니다.
2) 귀신은 예수님도 속이고 자신이 원하는대로 조정하고자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 들린 자로부터 나오라 명하셨고, 그렇다면 나와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 떼를 쓰며 무저갱에 보내지 말 것을 간구했습니다. 그리고 돼지 떼에게 들어가게 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허용하지 않으셨으면 그럴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귀신의 일이 매우 심각한 것임을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수천의 돼지떼에 귀신들이 들어가는 것을 허용해 주셨습니다. 귀신들의 행함은 파괴적이었고,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모든 상황을 통제하셨습니다.
3) 귀신 들렸던 사람(들)은 가족에게서도 배척받고 모든 사람에게 멀어졌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제자 일행에 속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게 예수님의 사역을 증거하는 증거자로서의 삶을 허락하셨습니다. 그의 일생은 이제 예수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것도 증거했을 것입니다. 망가진 인생이 다른 인생을 살리는 복음 전도자의 삶을 살도록 예수님께서 공식적으로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그가 겪은 고통의 시간이 오히려 그가 하늘의 별과 같이 아름다운 사역을 감당하는 배경이 된 것입니다.
4) 거라사 지방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신 일에 대해 두려움으로 반응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두렵게 한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두렵게 여긴 것입니다. 그렇기에 돼지 떼 수천 마리의 경제적 손실 보다 두려움의 원천이라 여긴 예수님이 떠나시길 구한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백성이 될 귀한 기회를 잃어버린 이유입니다.
적용 :
1) 주님의 역사를 두려움없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내 안에 예수님이 역사하심을 방해하는 어떤 것, 주님의 능력이 드러나는 것에 대한 어떤 부담이 있는 지를 꼼꼼하게 들여다 보아야 할 것입니다. 내가 나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 많아야 주님의 역사가 부담이 없어집니다. 그렇지 않으면 거라사 귀신을 좇아내신 예수님을 부담스럽게 받아들이는 불쌍한 백성들의 모습이 나 자신에게 오버랩 될 뿐입니다. 주님의 부르심, 주님이 원하시는 역사하심에 언제든지 순종하고 따르는 존재가 되길 간구드립니다.
2) 거라사의 광인의 아픔이 별이 되고 훈장이 되듯이 나의 부족과 연약함과 아픔이 별이 되고 훈장이 될 것을 기대합니다. 미얀마에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서도 그것이 결국에는 별이 되는 사건으로 흘러갈 것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