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이야기 757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2 : 전라도 소록도가 있는 고흥군
보성 아래쪽에 고흥군이 있다. 본래 장흥부(長興府)의 고이부곡(高伊部曲)이었으며, 고려 충렬왕 때 흥양(興陽)으로 바뀌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땅이 기름지며 날씨가 따뜻하다”라고 기록된 흥양의 당시 호수는 157호이고 인구가 686명이며, 군정은 시위군이 8명, 진군이 46명, 선군이 59명이었다. 1914년에 지금의 이름인 고흥군으로 바뀌었다.
고흥반도 일몰고흥은 반도로 이루어져 아름답기로 소문 난 팔영산, 운람산, 천등산 등의 산과 함께 내나로도, 외나로도, 소록도, 시산도 등의 섬이 있다.
조선 초기의 문신 안숭선의 「기」에 고흥에 대해 말하길 “정통(正統) 10년에 내 사명을 받들고 남주로 가다가 흥양 지경에 들어가니 땅이 큰 바닷가에 있어 기름지다. 그러나 두 개의 내가 고을 한가운데를 가로세로로 흘러 여름철마다 장맛물이 넘쳐서 백성들이 수해를 입어 모두 흩어져 유리(流離)하니 고을에서 걱정으로 여겼다”라고 하였다. 고흥은 반도로 이루어져 아름답기로 소문난 팔영산, 운람산, 천등산 등의 산과 함께 내나로도, 외나로도, 소록도, 시산도 등의 섬이 있다. 뱀골재를 넘으면 지도상에 사람의 위 같기도 하고 주머니 같기도 한 고흥반도에 접어들고, 고흥의 야트막한 산 너머로 소록도가 보인다. 소록도를 두고 한센병 환자였던 한하운 시인은 다음과 같은 시 한 편을 남겼다.
······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붉은 전라도 길
육신이 짓이겨지는 절망과 한의 세월 속에 자리한 소록도를 배경으로 쓰인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내 말은 결국 같은 운명을 삶으로 하여 서로의 믿음을 구하고 그 믿음 속에서 자유나 사랑으로 어떤 일을 행해 나가고 있다 해도 그 믿음이나 공동 운명 의식은 그리고 그 자유나 사랑은 어떤 실천적인 힘의 질서 속에 자리 잡고 설 때라야 비로소 제값을 찾아 지니고, 그 값을 실천해 나갈 수 있다는 이야깁니다.
소록도는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 소록리에 속한 섬으로, 고흥반도 녹동항에서 남쪽으로 약 6백 미터 지점에 있다. 남쪽은 거금도와 인접하고, 그 사이에 대화도, 상화도, 하화도 등 작은 섬이 있다. 지형이 어린 사슴과 비슷하여 소록(小鹿)이라 했다 한다. 본래는 금산면에 속했으나, 1963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오마리와 함께 도양읍에 편입되었다.
소록도에는 한센병 환자들이 집단 수용되어 있는데, 그 기원은 대한제국 말 개신교 선교사들이 1910년에 세운 시립 나요양원이었다. 1916년에는 주민들의 민원에 따라 조선총독부에 의해 소록도 자혜병원으로 정식 개원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한센병 환자를 강제 분리, 수용하기 위한 수용 시설로 사용되면서 전국의 한센병 환자들이 강제 수용되기도 하였다. 당시 한센병 환자들은 4대 원장 스오마사히데(周防正秀)가 환자 처우에 불만을 품은 환자에게 살해될 정도로 가혹한 학대를 받았으며, 강제 노동과 일본식 생활 강요, 불임 시술 등 온갖 인권 침해 속에 살았다. 오늘날 소록도에는 일제강점기에 한센병 환자들의 수용 생활을 보여주는 소록도감금실과 한센병자료관, 소록도갱생원, 신사 등이 그대로 보존된 역사적인 건물과 표지판 등이 많이 남아 있다.
소록도 병원은 광복 후에도 한센병 환자의 격리 정책을 고수하여 환자들의 자녀들이 강제로 소록도 병원 밖의 학교에서 공부해야 하였으나, 이후 한센병에 대한 연구가 진척되고 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완화되면서 한센병의 치료, 요양, 한센병 연구 등을 기본 사업으로 하는 시설로 변모하였다. 또한 1965년에 부임한 한국인 원장에게서 과일 농사, 가축 사육에 종사하여 자신의 힘으로 살 수 있도록 경제적인 배려를 받았으며, 일부는 소록도 축구단을 결성하여 한센병 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완화되도록 노력하였다.
섬의 주민은 국립 소록도 병원의 직원 및 이미 전염력을 상실한 음성 한센병 환자들이 대부분이며, 환자의 대부분은 65세를 넘긴 고령이다. 환자들의 주거 구역은 외부인이 접근할 수 없게 차단되어 있다.
소록도는 삼림과 해변이 잘 보호되어 있어서 정취가 뛰어나며, 관광지는 아니지만 걸어 다니면서 섬 주변을 둘러볼 수 있게 길이 잘 닦여 있다. 2007년 9월 22일 고흥반도와 소록도를 잇는 1,160미터의 연륙교인 소록대교가 임시 개통하여 육상 교통로가 열렸다.
이곳을 무대로 소설가 이청준은 『당신들의 천국』을 썼는데, 일제강점기 말에서 1970년대까지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조선일보〉기자였던 이규태의 빼어난 취재를 바탕으로 하여 재구성한 이 소설은 살아 있는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박원형이 “솔바람 땅을 뒤엎으니 일천 산이 움직이고 매화, 비 서늘함을 나누어서 한 난간이 낡도다”라는 시를 짓고, “객사에 일 없어 술잔 돌리며 시편을 쓰노라. 붓을 휘둘러 벼루에 의지했네. 읊다가 한번 바라보니 바다 물결 면면이 펄럭이네”라는 시를 남겼던 고흥 북쪽이 조선시대에 순천도호부가 있었던 순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