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증거의 노래와 율법 보관
신 31:14-30
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죽을 기한이 가까웠으니 여호수아를 불러서 함께 회막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에게 명령을 내리리라 모세와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회막에 서니
15 여호와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에서 장막에 나타나시고 구름 기둥은 장막 문 위에 머물러 있더라
16 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조상과 함께 누우려니와 이 백성은 그 땅으로 들어가 음란히 그 땅의 이방 신들을 따르며 일어날 것이요 나를 버리고 내가 그들과 맺은 언약을 어길 것이라
17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버리며 내 얼굴을 숨겨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할 것인즉 그들이 삼킴을 당하여 허다한 재앙과 환난이 그들에게 임할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이 재앙이 우리에게 내림은 우리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에 계시지 않은 까닭이 아니냐 할 것이라
18 또 그들이 돌이켜 다른 신들을 따르는 모든 악행으로 말미암아 내가 그 때에 반드시 내 얼굴을 숨기리라
19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르쳐 그들의 입으로 부르게 하여 이 노래로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20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후에 그들이 먹어 배부르고 살찌면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기리니
21 그들이 수많은 재앙과 환난을 당할 때에 그들의 자손이 부르기를 잊지 아니한 이 노래가 그들 앞에 증인처럼 되리라 나는 내가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기 전 오늘 나는 그들이 생각하는 바를 아노라
22 그러므로 모세가 그 날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르쳤더라
23 여호와께서 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인도하여 내가 그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하시니라
24 모세가 이 율법의 말씀을 다 책에 써서 마친 후에
25 모세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사람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26 이 율법책을 가져다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곁에 두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27 내가 너희의 반역함과 목이 곧은 것을 아나니 오늘 내가 살아서 너희와 함께 있어도 너희가 여호와를 거역하였거든 하물며 내가 죽은 후의 일이랴
28 너희 지파 모든 장로와 관리들을 내 앞에 모으라 내가 이 말씀을 그들의 귀에 들려주고 그들에게 하늘과 땅을 증거로 삼으리라
29 내가 알거니와 내가 죽은 후에 너희가 스스로 부패하여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길을 떠나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너희의 손으로 하는 일로 그를 격노하게 하므로 너희가 후일에 재앙을 당하리라 하니라
30 그리고 모세가 이스라엘 총회에 이 노래의 말씀을 끝까지 읽어 들리니라
신 31:14-30 / [후계자가 되는 여호수아]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네가 이제 죽을 날이 가까이 왔다. 여호수아를 불러 함께 천막으로 오너라. 내가 그를 네 후계자로 임명하겠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모세가 여호수아를 데리고 회막에 서자 15) 여호와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에 나타나시고 구름 기둥은 회막의 문지방 위에 머물러 있었다. 1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제 곧 네 조상들과 함께 잘 것인데 네가 죽은 다음에는 이 백성이 내게 반역하고 일어나서 그들이 이제 들어가 살 저 땅의 다른 신들을 쫓아다니며 음행을 저지를 것이다. 그들은 나를 버리고 떠나서 이미 나와 맺은 언약도 깨뜨릴 것이다. 17) 그때에는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버리고 떠나겠다. 내가 그들에게서 얼굴을 가리고 숨어 있겠다. 그러면 그들이 다른 민족들의 밥이 되어 온갖 재앙과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그들이 비로소 `우리의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이 모든 재앙을 당하게 되었다.' 하고 말할 것이다. 18) 그때는 내가 그들에게 내 얼굴을 철저히 숨겨 그들이 다른 신들을 쫓아다니며 저지르는 온갖 죄악에 대하여 보복을 하겠다. 19) 너는 이제 내가 일러주는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라. 그들이 이 노래를 배우고 따라 부름으로써 앞으로 내가 그들을 책망하는 증거로 쓸 수 있게 하여라. 20) 내가 이미 그들의 조상들에게 약속한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데리고 들어가면 그들이 잘 먹어서 배가 부르고 살이 찔 것이다. 그러나 그때에는 그들이 다른 신들을 쫓아다니며 섬기고 나를 무시하며 나와 맺은 계약을 깨뜨릴 것이다. 21) 그래서 그들이 많은 재앙과 고통을 당하게 되면 이 노래가 그 고통의 원인을 그들에게 깨우쳐 줄 것이다. 그들의 후손들은 그때까지도 이 노래를 잊지 않고 부를 것이기 때문에 이 노래가 그들의 죄악을 폭로하는 증거 자료가 될 것이다. 내가 아직 그들을 약속한 땅으로 인도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들의 생각을 알고 있다.' 22) 이리하여 모세가 그날 여호와께서 알려주신 노래를 받아 써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쳤다. 23) 그때에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이처럼 분부하셨다. `너는 강하고 담대하여라! 내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맹세하면서 약속한 땅으로 그들을 데리고 들어갈 사람이 바로 너다. 그러므로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겠다.' 24) [증거가 될 율법책] 모세가 이 율법의 말씀을 끝까지 책에 다 써놓고 25) 여호와의 계약궤를 메어 나르는 레위 사람들에게 이렇게 지시하였다. 26) `여러분은 이 율법책을 가져다가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의 계약궤 옆에 두어 주께서 앞으로 이 책을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폭로하는 증거 자료로 쓸 수 있게 하십시오.' 27) 그리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이 자주 반항을 한다는 것과 고집이 세다는 것을 내가 잘 압니다. 내가 아직 살아서 여러분과 함께 있는데도 여러분은 지금까지 언제나 여호와께 반항하였습니다. 그런데 내가 죽은 다음에는 어떻겠습니까? 28) 여러분은 이제 각지파의 장로들과 관리들을 내 앞에 불러 세우십시오. 내가 그들에게 이 말씀을 다시 한 번 들려주고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우겠습니다. 29) 내가 죽은 다음에는 여러분이 틀림없이 악을 행하고 내가 지시한 길에서 떠나리라는 것을 내가 이미 다 압니다. 여러분이 그 마지막 때에는 여호와께서 악하게 보시는 짓들을 하고 사람이 손으로 만든 우상들을 섬겨 주님의 진노를 폭발시킴으로써 무서운 재앙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30) [모세의 노래] 그러고 나서 모세는 그곳에 모인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가르쳐 주신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낭송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노래를 지어주십니다. 이 노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증거가 될 것입니다.
너희 생각을 아노라(14-23) 하나님은 모세와 더불어 여호수아를 부르십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부름받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할 지도자로 여호수아를 세우려 하십니다. 여호수아도 모세처럼 하나님과 더욱 친밀한 관계 속에 사역을 감당하게 됩니다.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이방 신들을 음란하게 섬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환난과 재앙이 임합니다. 그 때 여호수아가 감당해야 할 사명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환난과 재앙이 임한 까닭을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신앙적으로 올바른 해석과 진단을 내려 주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노래를 써서 가르치게 합니다. 노래의 가사와 멜로디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메시지가 될 것입니다. 성경에는 많은 노래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먹고 배부르게 되면 돌이켜 이방 신들을 섬기려는 생각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죽은 후에(24-30) 모세는 율법의 말씀을 책에 써서 마친 후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사람에게 명령합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언약궤 곁에 두어 이스라엘 백성에게 증거가 되게 합니다. 모세가 살아 있을 때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패역하고 목이 곧았습니다. 모세가 죽은 후에 그들이 얼마나 더 할지 염려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각 지파의 모든 장로들과 관리들을 모이게 하고 이 말씀을 그들의 귀에 들리고 하늘과 땅으로 증거를 삼으려 합니다. 또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패역하게 행하면 재앙을 당할 것을 분명하게 경고하십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총회에게 하나님께 받은 노래의 말씀을 끝까지 읽어 들려주었습니다. 그는 이 노래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패역과 목이 곧은 것을 증거하였습니다. 그것은 이미 신명기 9장 6-7절에 증거 된 바 있습니다. “그러므로 네가 알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 아름다운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이 네 공의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너는 광야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격노하게 하던 일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
적용: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노래를 지어 주셨습니다. 그 노래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십니다. 당신의 신앙생활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된 은혜의 찬양을 나누어 봅시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종교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자신의 저서 '나와 너'에서 '참된 삶은 만남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인격적인 만남이 이뤄지기까지는 항상 고독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만남은 '나와 너' 즉 사람과 사람의 만남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나와 그것'의 만남일 될 때 인생의 불행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내가 만나고 있는 것이 그 사람이 아닌 그 사람의 돈, 권력, 배경에만 집중된 것이라면 그것은 진정한 만남이라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좋은 사람을 만나서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도 축복이지만, 나를 만남으로 행복하다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 더 축복된 인생입니다.
< 설 교 >
우리가 불러야 할 노래
신 31:19 / 양인국 목사
1. 우리는 2020년 여름성회를 통하여 이루고자 하는 한 가지 거룩한 소원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오늘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합당한 신명기를 다시 쓰는 것이었다. 물론 이것은 신명기가 출애굽기로부터 민수기까지 주신 말씀들을 다시 살피며 이스라엘로 하여금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영원히 잘되는 길을 재확인하고자 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오늘의 우리 시대에 합당한 신명기를 다시 쓰기 원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성경 66권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의 핵심을 살펴서 그것을 마음에 새기고 이정표로 삼고자 하기위함이라는 의미다.
2.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을 들어 주셨다. 여름성회 기간에 주신 말씀을 통하여 믿음의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말씀해 주셨다.
준비하는 수양회를 통해서는 우리가 회복의 은혜를 누리기 위하여 극복해야할 세 가지를 말씀해 주셨다. 그것은 두려움이고, 불행이고, 소외이다. 즉 두려움에서 샬롬으로, 불행에서 행복으로, 소외에서 더불어 사는 삶으로 나갈 때 회복의 은혜를 누릴 수 있다는 의미다.
본수양회를 통해서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라는 주제 말씀을 주심으로 회복의 은혜 가운데 살고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어떤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말씀해 주셨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능력 있는 자로 믿고 살아야 하고, 부요한 자로 믿고 살아야 하고, 섬기는 자로 믿고 살아가야 한다. 우리가 이렇게 믿고 사는 것은 만유의 주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며 능력이 필요할 때 능력을 주시고,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필요한 때 주시기 때문이다. 물론 이와 같은 은혜들을 베풀어 주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 안에서 서로를 섬김으로 더불어 살도록 하려 하심이다.
하나님은 여름 성회 기간 중 수요기도회를 통해서도 특별한 말씀을 주셨다. 준비하는 수양회 기간 중 수요기도회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능력 있는 삶을 살도록 주신 은혜의 수단들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다. 이 은혜의 수단들은 기도와 믿음의 고백과 그리고 나눔이다. 즉 우리는 기도할수록, 믿음의 고백을 가지고 살수록,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이웃과 나눌수록 더욱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의미다.
또한 하나님은 본수양회 기간 중 수요기도회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세상에 이루기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말씀을 주셨다. 그것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이고, 주님의 증인으로서 사는 것이고, 주님의 모된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우리가 여름 성회를 통하여 주신 말씀들에 따라 산다면 믿음의 사람으로서 합당한 삶을 살게 될 것이고 이렇게 사는 것이 회복의 은혜 가운데 사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여름성회를 통해 주신 말씀은 성경66권을 통하여 주신 말씀들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고 또한 오늘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합당한 신명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신명기를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신명기의 말씀들을 주신 후 모세에게 그 말씀들을 노래로 만들어서 이스라엘에게 가르쳐 줌으로 그들로 하여금 그 노래를 부르며ㅛ 살도록 명하셨다. 다음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명하신 목적에 대하여 말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르쳐 그들의 입으로 부르게 하여 이 노래로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후에 그들이 먹어 배부르고 살찌면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기리니 그들이 수많은 재앙과 환난을 당할 때에 그들의 자손이 부르기를 잊지 아니한 이 노래가 그들 앞에 증인처럼 되리라(시31:19-21)”
이스라엘은 이 노래를 부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할 수 있을 것이고 또한 이로 인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세상에 미혹되어 그릇 행하고 있을 때에도 이 노래를 통하여 마음에 새겨진 말씀들로 인하여 그릇됨으로부터 돌이켜 하나님께 향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들은 이스라엘이 했던 것처럼 우리도 수양회를 통하여 새롭게 받은 신명기 말씀들(오늘의 시대에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답게 살 수 있도록 주신 말씀들)을 노래로 만들어서 불러야 할 것을 말해 준다. 물론 이것은 주신 말씀들을 마음에 새기고 반복하여 묵상하며 삶의 이정표로 삼고 사는 것을 의미한다.
특별히 믿음의 사람의 관점에서 볼 때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내외(內外)적인 문제들로 인하여 영적 삶을 사는 일이 쉽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 내적 문제란 그리스도인들이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로서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하여 오해”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오해로 인하여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무엇이 믿음의 삶이고 무엇이 세속적인 삶인지 분별력을 상실한 채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안디옥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답게 삶으로 인하여 그들이 속해 있는 사회로부터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을 들었던 것처럼 동일한 의미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우파” 또는 “극보수”라는 말을 듣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당시 이스라엘 가운데서도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마땅히 불려야 할 이름으로 불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안타까움을 나타냈던 것이다. “내가 중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히 있으나 지식을 좇으것이 아니라(롬10:2)”
안타까운 일들 가운데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오해다. 이런 태도는 그리스도인이나 세상 모두에게 유익을 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런 오해 가운데 살 때 그리스도인과 세상은 항상 충돌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늘의 시대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이 생각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은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진리를 수호하기 위한 명목(名目)으로 사회와 투쟁하고 있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보지 않고 오히려 자기 종교의 교리만을 주장하고 자신과 다른 사회 구성원들과 더불어 살 줄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들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더해 갈수록 교회는 세상에서 외면당하고 있는 안타까운 일이 현실화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진리를 보존하고 전파하는 일은 세상이 아니고 교회에 위임해 주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교회가 세상에게 진리에 따라 살도록 강요함으로 진리를 수호하도록 하신 것이 아니고 먼저 교회로 하여금 진리에 따라 삶으로 삶으로서 진리됨을 입증하여 세상에 감동을 줌으로 그들로 하여금 자원하여 진리에 따라 살도록 하셨다는 의미다. 이와 같은 사실은 그리스도인이 진리를 수호하고 전파하는 일을 하고자 한다면 먼저 자신이 진리의 말씀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리스도인이 오늘의 시대에서 영적 삶을 사는 일이 녹록치 않은 이유들 가운데 하나는 외적 환경을 들 수 있다. 현재 사회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외면하고 있고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욕하고 조롱하고 있다. 이것은 세상이 무지로 인하여 범하는 오류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들의 불만이나 불행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린다. 그래서 세상에는 언제나 희생양이 필요했고 또한 실제로 희생양이 존재해 왔던 것이다. 오늘의 교회가 사회로부터 조롱을 당하고 외면당하고 있는 것은 교회가 어떤 이유로든지 빌미를 제공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희생양을 찾는 대중들의 타깃(target)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더라도 현재 우리가 피부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와 같은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얻기 위하여 우리는 올해 여름성회를 통하여 오늘의 시대에 필요한 신명기 말씀을 다시 받기를 원했던 것이다. 언급한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간구를 들어 주심으로 여름성회를 통하여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말씀해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든지 그리고 사회가 우리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든지 여름성회를 통하여 주신 말씀에 따라 묵묵히 살 때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고 교회의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로 환경을 초월하여 능력이 필요할 때마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고백을 새롭게 하고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가 기도하자.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두려움에서 샬롬으로, 불행에서 복된 삶으로, 소외됨에서 더불어 사는 삶으로 나가자. 무엇보다 섬기는 삶을 실천함으로 더불어 사는 일에 힘쓰자. 우리가 주신 말씀에 따라 이렇게 산다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 수 있을 것이다.
특별히 여름성회를 마무리 하면서 “이정표”라는 말과 “묵묵히”라는 말을 노래로 부르기 원한다. 그리하면 변하는 환경 가운데서도 여름성회를 통하여 받은 말씀들을 삶의 이정표로 삼고 그 말씀에 따라 묵묵히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우리는 회복의 은혜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3. 함께 기도하자. 주님! 주님께서 변하는 환경에 동요(動搖)하지 않으시고 오직 부르심에 따라 묵묵히 골고다까지 걸어가셨던 것처럼 우리도 여름성회를 통해 주신 말씀들을 삶의 이정표로 삼고 그 말씀에 따라 묵묵히 걸어가게 해 주옵소서. 이로 인하여 우리에게는 회복의 은혜를 누리게 해 주시고 세상은 우리를 통하여 진리를 알 수 있게 해 주옵소서.
위대한 리더가 되는 길
신명기 31:24-30 / 이한규 목사
1.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끌라
하나님의 명령대로 모세는 율법의 말씀을 다 책에 써서 마친 후에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사람에게 명령해서 그 율법책을 언약궤 곁에 두라고 했다(24-26절). 그 조치는 모세 말씀 중심적인 리더십을 잘 보여준다. 기독교 리더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잘 이끌도록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많이 알아야 한다. 다른 세상 소리를 듣고 따르지 말고 말씀이 지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라. 사람을 바라보지 말라. 서로를 마주 바라보면 실망할 일과 부딪칠 일이 많이 생긴다. 말씀을 바라보고 나아갈 때 참된 리더십이 나온다.
리더와 바른 원칙대로 리더십을 행사해야 한다. 특히 말씀대로 리더십을 행사하면 위대한 리더의 길이 펼쳐진다. 요즘 리더의 카리스마가 강조되지만 참된 카리스마는 말씀을 통해 나온다. 힘이 있거나 어깨에 힘을 준다고 카리스마가 생기지 않는다. 카리스마를 오해하면 독재자가 영웅으로 미화될 수도 있다. 기독교 리더는 나를 위해 남을 억압하고 군림하기보다 남을 섬기려고 나를 희생하는 존재다. 군림하는 리더보다 섬기는 리더가 존경받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려면 말씀대로 이끄는 리더가 많이 나와야 한다.
2. 기록을 남기고 보관하라
모세가 율법책을 언약궤 곁에 두어 백성에게 증거가 되게 한 것은 후대들이 말씀 중심적인 리더십에 이끌리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모세가 이스라엘을 기적적으로 출애굽시키고 광야에서 수많은 기적을 통해 이스라엘을 이끈 일도 위대한 일이었지만 하나님의 율법을 받게 된 역사와 그 율법을 기록으로 후대를 위해 남긴 것도 그에 못지않게 위대한 일이다. 고대에 모세오경처럼 놀라운 권위가 담긴 기록을 쓸 수 있었던 것 자체도 위대한 일이고 그것을 기록으로 오래 보존하도록 명령을 남겨 오래 보존시킨 일도 위대한 일이었다.
기록의 힘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 위대한 영향력이 위대한 기록을 통해 나온다는 것은 모세가 기록한 성경 외의 수많은 구약 성경과 바울이 기록한 성경 외의 수많은 신약 성경이 잘 말해준다. 그런 놀라운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면 모세와 바울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중의 하나로 여겨지지 못했을 것이다. 위대한 문서를 철저히 언약궤 옆에 보관하게 하여 후세에까지 남긴 모세의 마지막 행동은 진실로 위대한 행동이었다. 왜곡하지 않고 바르게 기록을 남기고 보관하는 일은 위대한 리더가 되는 필수적인 요소 중의 하나다.
3. 선견지명을 가지고 행동하라
모세가 율법서 기록을 써서 남기고 보관하게 한 것은 역사적인 위대한 문서를 만들려는 목적이 아니었다. 다만 후대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편해지면 금방 하나님을 거역할 것을 아시고 그런 일의 가능성을 줄이려고 남긴 것이었다. 어떻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거역할 것을 예상했는가? 출애굽의 지도자인 자신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절대 권력을 가지고 이끌며 하나님을 바라보게 했어도 거역했는데 자신이 죽으면 금방 하나님을 거역할 것이 당연히 예상되기 때문이다(27절).
남들은 120세가 되면 기억과 의식이 가물가물했을 텐데 그는 젊은이보다 더 총명하게 여겨질 정도로 선견지명을 가지고 백성들의 앞날을 대비시키는 모습을 보라. 리더는 미래에 일어날 상황을 미래 파악해서 대비하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리더에게 앞날의 목표가 있어야 한다. 겨냥이 없으면 명중도 없다. 인생의 비극 중의 하나는 목표가 없는 것이다.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지 말라. 그처럼 리더에게는 앞날의 목표와 더불어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 바로 앞날의 대비다.
4. 최후까지 신실하게 충성하라
죽기 직전에 기력도 크게 떨어진 상태에서도 모세는 최후의 조치로서 리더들을 자기 앞에 모이게 하고 그들의 귀에 말씀을 들려준 후 그들에게 하늘과 땅을 증거로 삼겠다고 했다(28절). 그리고 마지막 율법서를 기록한 노래 말씀을 이스라엘 총회에 끝까지 읽어 들려주었다(29-30절). 힘든 노구를 이끌고 후대의 장래를 염려하며 사려 깊은 조치를 끝까지 취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최후까지 신실하게 충성하는 리더의 모습을 보게 된다.
최후까지 신실하게 충성하라. 가장 가슴 벅찬 감동을 주는 사람이 누구인가? 최후까지 신실하게 충성하는 사람이다. 물질적인 일에만 너무 매달리지 말라. 세상은 물질로만 있지 않다. 보이지 않는 세상은 보이는 세상보다 훨씬 크다. 그래서 물질적인 일에만 집착하며 살면 아쉬운 삶을 살다가 언젠가 반드시 공허가 찾아온다. 하나님의 뜻대로 가슴 벅찬 감동을 가지고 최후까지 신실하게 충성하며 살라. 그래서 좋은 일에서는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는 거룩한 인물 리더가 되라.
이 노래의 말씀
신명기 31:14-30
1. 가난할 때와 풍요로울 때
사람은 사는 것이 너무 어려우면 범죄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범죄를 생계형 범죄라고 부릅니다. 이런 생계형 범죄는 대체적으로 소소한 것들을 어쩔 수 없이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훔치거나 거짓말을 하는 형태입니다. 그래서 생계형 범죄는 엄청난 범죄가 드뭅니다. 가난할 때 짓는 죄들은 대부분 세상을 경악시킬 만한 엄청난 범죄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저 소소하게 도둑질을 하고 속이는 정도에 그칩니다. 그러나 풍요로울 때의 범죄는 그 양상이 많이 다릅니다.
요사이 대통령의 탄핵이라는 흉흉한 민심아래 IMF이후 가장 최악의 경기침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태반주사, 비아그라 등등의 이야기가 끼어들어 수많은 풍자를 낳고 있습니다. 오래 전(2011.6.3.)국민일보에 이런 기사가 실린 적이 있습니다.
‘아(阿)! 비극’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기사입니다.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의 경찰이 ‘크로스 병원’이란 곳에 있는 ‘아기 공장’에서 32명의 임산부를 구출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크로스 병원 내에 아기 공장을 운영했다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아기 공장에 주로 15~17세의 소녀들을 납치해서 병원에 감금시켜놓고 아기를 생산하는 임신 기계로 사용했다는 말입니다. 이게 풍요로운 시대가 낳은 기막힌 범죄입니다.
그렇게 태어난 아기들을 20만원을 받고 병원 소유주에게 넘기고, 소유주는 다시 200~700만원에 팔았다고 합니다. 남자 아이들은 농장이나, 광산, 공장 등으로 불법 입양된 뒤에 노예 생활을 하고, 여자아이들은 윤락가로 팔려 가는데, 그 일부는 흑마술 의식의 제물로 쓰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흑마술 의식은 여자들은 더 매력적이 되고, 남자들은 더 강해지기 위해서 어린 아기를 제물로 드리는 주술 의식이라는 것입니다. 이게 풍요로운 시대에 일어나는 범죄의 한 유형입니다.
우리는 늘 더 풍요롭게 되기를 갈망하며 삽니다. 그리고 지금보다 풍요로워지면 훨씬 더 좋은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풍요로움이 항상 범죄와 연결되고 하나님을 떠나는 주범이라고 말씀합니다.
2. 하나님의 염려, 모세의 염려
14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수아를 불러서 함께 회막으로 나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와 모세가 함께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하나님께서 확실하게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세우신 것입니다. 만약 이 땅의 리더십이 이렇게 아름답게 이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무튼 그렇게 여호수아와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구름 기둥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은 모세에게 다시 확인하십니다. 너는 네 조상과 함께 눕게 될 것이고 이 백성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쉽지만 모세는 다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은 분복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 받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신 내용이 바로 이것입니다.
16절입니다. “이 백성은 그 땅으로 들어가서 음란히 그 땅 신들을 따르며 일어날 것이요 나를 버리고 내가 그들과 맺은 언약을 어길 것이라.”그럽니다. 20절입니다.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바 젖고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후에 그들이 먹어 배부르고 살찌면 돌이켜 다른 신을 섬기며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기리니”그럽니다.
하나님만이 아닙니다. 모세도 27-29절에 똑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의 반역함과 목이 곧은 것을 아나니 오늘 내가 살아서 너희와 함께 있어도 너희가 여호와를 거역하였거든 하물며 내가 죽은 후의 일이랴. 너희 지파 모든 장로와 관리들을 내 앞에 모으라 내가 이 말씀을 그들의 귀에 들려주고 그들에게 하늘과 땅을 증거로 삼으리라. 내가 알거니와 내가 죽은 후에 너희가 스스로 부패하여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길을 떠나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너희의 손으로 하는 일로 그를 격노하게 하므로 너희가 후일에 재앙을 당하리라 하니라”
이 두 구절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서 먹어 배부르고 살찌면 하나님을 더 잘 섬긴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희한하게도 하나님의 은혜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부자가 되고 잘살게 되었는데 부해지고 살이 찌면 돌이켜 다른 신을 섬기며 하나님을 멸시하고 언약을 내팽개치더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상황은 이루어진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것이요, 것이라고 하시면서 이루어진 일처럼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표현을 보십시오. 내가 살아서 너희와 함께 있어도 너희가 여호와를 거역하였거든 하물며 내가 죽은 후에 일이겠느냐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들은 그렇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나, 저주가 아닙니다.
요사이 낭만닥터 김사부라는 드라마가 인기가 있다고 합니다. 저는 매주 챙겨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주에 우연히 본 장면이 이런 장면이었습니다. 낭만 닥터에 출연한 의사들이 6중 추돌 사고가 난 현장에서 사람들을 구조하는 장면입니다. 정말 눈뜨고 볼 수 없는 참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고의 주범이 누구냐 하니까 완전히 만취한 젊은 청년이었습니다. BMW SUV로 무장한 그 청년은 술에 떡이 되어 운전을 했고 원인 제공을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멀쩡하더군요.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까? 음주 운전을 하는 습관이 있는 사람에게 부모나 친구가 너 그러다가 사고 난다, 사고 난다 하면 거의 백 프로 사고가 나게 마련입니다. 그것을 고치지 않으면 반드시 큰일을 당하게 마련입니다. 이 본문은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지금까지 살펴온 신명기의 대부분의 내용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좋은 그리스도인으로 살라는 내용이었던 점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어떻게 변할 것인지에 대해 충분히 알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자유의지를 구속하시거나, 아니면 가나안 땅을 아예 없이하시거나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말씀 앞에 순종하는 것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모세의 설교들은 전부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종 되었던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셨는가, 홍해를 어떻게 가르셨고, 어떻게 40년 광야생활에서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셨으며,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이셨으며, 반석에서 생수를 먹이셨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축복과 저주의 선택이 있다는 사실을 말씀으로 그리심산과 에발산에서의 실제 연출을 통해서 축복을 선택하는 삶을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유언에서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그렇게 말씀하신 내용들이 무색할 정도입니다. 음란히 이방 신들을 따르며 하나님을 버리고 언약을 어길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눈에 기막히게 보이지만 이게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연약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그런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또 말씀하시고 이 노래의 말씀을 처방으로 내려주신 것입니다.
그런데요?
더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런 그들에게 진노하셔서 그들에게 얼굴을 숨기시는 상황이 생기게 되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입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징계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삼킴을 당하고 재앙과 환난이 그들에게 임할 때 뭐라고 말합니까? “이 재앙이 우리에게 내림은 우리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에 계시지 않은 까닭이 아니냐?”한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지 않느냐를 물어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는 관심도 없고 하나님이 안계셔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게 영적질병입니다. 나는 문제가 없고 하나님이 문제인 것입니다.
가장 심각한 질병에 빠진 사람이 자신이 잘못을 해 놓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경우는 여기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께서 징계하시고 침묵하시는 상황이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라 하나님이 안 계셔서 그렇다고 말합니다. 내 잘못은 모릅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는 잘못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영적인 질병은 정말 심각합니다. 대개 이런 질병은 세리와 같은 심정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나타나지 않는 질병입니다. 바리새인처럼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질병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떠나셨는지 왜 징계하시는지는 생각도 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잘못이 없는데 괜히 하나님께서 징계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적이나 우상이 아닙니다. 인격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올바르게 하지 않습니다. 하나과 인격적인 사귐 가운데 지내지 않았습니다. 잘못된 탐욕에 신앙생활을 내어주고서도 나는 늘 잘 하고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징계가 억울하고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돌이켜 다른 신들을 따르는 모든 악행 때문에 내가 내 얼굴을 숨겼다고 말입니다.
분명히 이루어지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이루어진 일로 계속해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대하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오래 참으심을 만납니다. 이런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영원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구약에서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멸망을 만납니다. 그리고 새로운 이스라엘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 즉 하나님의 백성들이 근본적으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의로운 것입니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풍요로운 시대를 잘 살아야 합니다. 여기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또 다른 처방을 내려 주십니다. 그것이 이 노래의 말씀입니다.
3. 이 노래의 말씀
19절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르쳐 그들의 입으로 부르게 하여 이 노래로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그러니까 이 노래는 무엇입니까? 32장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아마 지금까지 말씀하셨던 바로 그 말씀, 그들이 잊어서도 안 되고 삶의 자양분으로 삼아야 하는 발 그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도 말씀을 잊어버리고 음란하게 우상을 섬기기 때문에 노래로 지어서 매일 부르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21절입니다. 이 노래의 말씀의 기능은 이런 것입니다.
“그들이 수많은 환난을 당할 때에 그들의 자손이 부르기를 잊지 아니한 이 노래가 그들 앞에 증인처럼 되리라.” 핵심은 부르기를 잊지 아니한 이 노래의 말씀입니다. 부르기를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이 삶을 지배하는 능력이 되어야 합니다.
모세도 24절에서 율법의 말씀을 책이 기록한 다음에 25-29절에서 레위인들에게 지시합니다. “이 말씀을 그들의 귀에 들려주고 그들에게 하늘과 땅을 증거로 삼으리라”는 것입니다. 결국, 모세와 하나님의 염려에 대한 대책은 이 노래인데, 이 노래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말입니다. 그 말씀을 잊지 않게 하시기 위한 정말 적극적인 처방이 바로 노래로 지어진 말씀인 것입니다. 앞 단락에서는 말씀을 잊지 않기 위해서 매 친년 끝 해 곧 면제년의 초막절에 온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택하신 중앙 성소에 모여 초막절을 지키며 말씀을 낭독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방법은 없다는 것입니다. 풍요의 가나안에서 우상 숭배에 빠지지 않고 돌이켜 다른 신들을 따르지 않을 방법은 이 노래의 말씀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말씀밖에 없습니다.
전도서 5:1절 말씀입니다.
마치 선지서에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처럼 보입니다.
“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그러니까 하나님의 집은 예배하러 나갈 때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예배하러 가서 말씀은 듣지 않고 예물을 드려서 하나님을 달래겠다는 생각을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예배를 하나님은 악으로 규정하십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기독교지 예배에 와서 하나님을 헌금으로 달래고 다시 삶으로 돌아가 악을 행하는 신앙과 삶이 다른 것은 기독교가 아니며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악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생각하는 바를 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 노래의 말씀을 기록하고 노래를 지어서 가르치라고 까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29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스스로 부패하여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길을 떠나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너희의 손으로 하는 일로 그를 격노하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저는 스스로 부패했다는 말씀에 주목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닙니다. 말씀에서 멀어지면 자연스럽게 탐욕이 삶을 지배합니다. 탐욕은 무엇이든 가능하게 하는 힘입니다. 그래서 자녀를 인신번제로 드릴 수 있는 것이 바로 탐욕의 종교, 우상숭배입니다.
그런데요? 23절에 반복해서 이 노래의 말씀을 강조하다가 갑자기 여호수아를 모세의 후계자로 세우는 이야기가 뜬금없이 등장합니다.
“여호와께서 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인도하여 내가 그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니 강하고 담대 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하시니라” 이게 노래의 말씀과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하시는 말씀하셨습니다. “강하고 담대 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그럽니다. 그리고 실제로 모세가 죽고 여호수아가 그 리더십을 정식으로 위임받을 때 또 이 말씀이 등장합니다.
수1:5-9절입니다. 1절을 보면 모세가 죽은 후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죄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 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다시 여호수아에게 말씀합니다. 강하고 담대 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신명기의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노래의 말씀이 다르게 표현되어 있음을 주목해 보십시오. 8절입니다.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다 지켜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명기 오늘 31장에서 이 노래의 말씀의 다른 표현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광야 교회에서도 가나안을 정복하는 전투하는 교회에서도 풍요의 광야인 가나안에서도 성도의 유일한 승리의 비결은 이 노래의 말씀입니다.
가나안 정복의 사명을 짊어진 장군 여호수아가 강하고 담대하게 되는 비결은 군사력이나, 무기, 손자병법 같은 병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안에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늘, 항상 묵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지요. 묵상이라는 말은 하루 종일 중얼거리면서 되새김질하고 또 되새김질해서 말씀이 삶이 되게 하는 성도의 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은 이 말씀을 무슨 일을 해도 성경 구절을 갖다가 붙여 살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범죄를 하면서도 성경 구절을 인용하고 불건전한 삶을 살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만홀히 사용합니다. 여러분! 이 노래의 말씀이 의미하는 것은 외형적인 말씀의 암송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통독도 좋고 암송도 좋지만 그 말씀이 삶이 되지 못하면 그것은 죽은 말씀입니다.
저는 가끔 어떤 상황에 봉착하면 말씀의 원리를 내버리고 상황의 노예가 되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들에게 말씀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라는 것은, 항상 말씀을 생각하고, 그 말씀의 정신을 따라서 살라는 말입니다. 그것이 이 노래의 말씀이 가르치는 핵심입니다. 그냥 노래를 부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풍요의 가나안에서 타협과 변질의 위협 속에서 말씀의 원리를 붙들고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노래의 말씀은 우리가 늘 부르고 마음에 담고 실천하고 순종해야 할 생명의 말씀인 것입니다. 묵상하고 살아내기 위해 기도하고 몸부림쳐야 하는 말씀입니다. 이 노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풍요의 세대를 위해 특별히 처방하신 말씀입니다. 바로 우리 시대를 향해서 주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저와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이 노래의 말씀을 매일 부르고 또 부르며 묵상하고 살아가십니까? 그래서 매일 주의 말씀이 내 발의 등이요 빛 된 삶을 살고 계십니까? 그런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하면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기억하면서 두렵고 떨림으로 말씀 앞에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선민의 장래 반역과 언약궤의 증인
신 31:14-30
모세와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나아가서 회막에 섰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구름기둥 가운데서 장막에 나타나셔서”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여 내가 그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책임을 맡기시기 전에 장차 이스라엘이 배신함으로써 “재앙과 환란을”당할 것을 예언하시고 “이스라엘에 증거될”노래를 지으라고 모세에게 명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배신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도록 하는 것이며 배은망덕의 근원이 되는 불신앙을 드러내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위대하신 자리를 회상하게 하려는 것이고 나아가서는 백성들이 타락하여 고통을 받게 되지만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이스라엘과 그 족속들을 돌보시며 자비를 베푸실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모세는 레위 제사장들에게 그 율법책을 “언약궤”옆에 두라고 명합니다. 언약궤 옆은 율법책을 두기에 가장 적당한 곳입니다. 율법이 새겨 있는 석판은 궤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 율법책은 바로 석판에 새겨 있는 계명에 대한 통괄적인 주석인 것입니다. 모세의 노래가 백성에 대한 증거인 바와 같이 이 율법책은 백성에게 대한 경계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백성들이 기나긴 모세의 일생 동안과 마찬가지로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백성들이 반멱적이며 불신앙적인 태도를 칠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정의를 증명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증거와 경계에 대한 노래를 다 지어가지고 장로와 유사들을 모아놓고 그것을 읽어 들려줍니다. 이들은 장차 이 노래를 백성들에게 가르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1. 배신의 예고(14-23절)
(1) 모세와 여호수아는 회막 문에서 하나님의 존전에 참예토록 부름을 받습니다. 거기서 모세는 자기가 곧 죽으리라는 말을 다시 듣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직접 나와야만 했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기꺼이 순종하였습니다. (2) 하나님은 자비를 베푸사 저들을 만나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구름기둥 가운데서 장막에 나타나셨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신명기에서 훗날 복음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도록 예언의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3)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가 죽고 나면 이스라엘과 저들의 하나님간에 그토록 고심하여 체결하였던 계약이 정녕 깨어지리라 말씀하십니다. 가나안인들의 잡신들을 경배하면 그것은 정녕 하나님을 버리는 것이니, 마치 간음과 같이 계약파괴로 간주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돈을 탐하는 자들은 결국 돈을 신으로 삼는 자들이니 저들을 지배하는 색욕으로 인하여 배를 자기들의 신으로 삼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반역하는 무리들이요 곧 그 사실이 드러나게 됩니다. 다른 신들을 좇는 자들은 본래의 자비를 저버립니다. 이런 저들의 배신은 그들의 번영의 결과일 것으로 예언되고 있습니다(20절). “저들은 먹고 배부를 것이라”이것은 저들의 식욕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먹는 것이 저들의 목격하는 전부이고 안일에 빠져 육욕에 들뜨게 될 것입니다. 저들의 태평함이 하나님에 대한 경외함과 하나님의 율례를 잊어버리고 우상을 섬기게 될 것이니, 이것은 육체의 정욕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육체의 양식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후에 저들이 배은망덕할 줄 알면서도 그들에게 많은 은총을 베풀어 주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날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실 것입니다. 그토록 부당하게 하나님을 버린 자들은 마땅히 하나님의 버림을 받아야 합니다. 17절에 “나의 분노가 그들에게 불살라져서 내가 그들을 버릴 것임이라”고 했고, 18절에 “저들에게서 당신의 얼굴을 숨기시리라”고 했습니다. 그 날에 하나님은 저들의 불행을 극에 달하게 하십니다. 만약 우리가 오직 하나님 얼굴의 광채만 대할 수 있다면 어떤 외적인 어려움 속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편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와 우리의 기도로부터 당신의 얼굴을 가리시면 우리는 파멸하고 마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은 모세에게 한 노래를 백성에게 가르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 노래는 모세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서 지은 것으로 저들에게 경고를 해 주시는 신실한 하나님께 대한 영원한 증거로 남을 것이었고 그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자기 자신에게 불충실한 사람들에게는 그들을 고발해 주는 영원한 증거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19절). 이 노래가 저들의 배신을 방지하지는 못한다 해도 저들을 회개시키며 그 배신으로부터 돌이키는 데는 도움이 될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비록 자기가 예비하신 긍휼을 입게 될 자들이 실족하도록 내버려 두신다고 하더라도 저들의 구제책을 마련하시리라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2. 증인이 될 언약궤와 노래(22-30절)
본문은 모세가 레위인들에게 언약궤 곁에 놓으라고 당부하는 내용을 적고 있습니다. 계약이 있는 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을 몰랐다는 핑계를 댈 수가 없게 됩니다. 법궤 안에는 십계명의 돌판이 보존되어 있고(출 25:16) 그 곁에 모세가 설교한 신 5-26장의 모세의 법을 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십계명과 모세의 법을 같은 권위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죽은 다음에는 모세의 법이 증거가 되어 이스라엘을 경고하게 될 것입니다. 본문에는 율법와 노래가 모두 증거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28절의 이 말씀도 32장부터 계속되는 모세의 노래로 이해되는 이들이 있지만, 문맥으로 보아서는 24절의 율법을 가리킨다고 봅니다. 28절에 “너희 지파 모든 장로와 유사들을 내 앞에 모으라 내가 이 말씀을 그들의 귀에 들이고 그들에게 천지로 증거를 삼으리라”고 했습니다. 이 문구는 고대 사회에서 대왕이 종속국의 영주들을 소집하여 그들의 잘못을 문책하는 법정 소송문과 유사한 형태를 처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특수 양식을 편집 비평에서는 리브(Rib)양식이라고 부릅니다. 히브리어의 리브는 소송을 뜻합니다. 29절에 “내가 죽은 후에 너희가 스스로 부패하여 내가 너희에게 명한 길을 떠나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너희의 손으로 하는 일로 그를 격노케 함으로 너희가 말세에 재앙을 당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귀절은 이스라엘의 잘못에 대한 여호와의 법정 기소문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던 그 명령이 여호수아에게 내려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실제로 모세가 그에게 내렸던 명령과 동일한데 강하고 담대하라(23절)는 것입니다. (2) 율법서를 레위인에게 엄숙히 전달하고 그것을 법궤 곁써 두도록 하라는 말씀이 여기서 다시 언급됩니다(24-26절). (3) 모세는 하나님의 영이 지어주시는대로 그것을 먼저 살고 나서 (22절) 모든 회중의 귀에 그것을 말해 주고(30절), 저들에게 가르쳤습니다(22절). 백성들이 원본을 베껴 두어서 그 노래를 암기하게 하도록 하라고 명령하였던 것입니다. 그 노래는 먼저 말로 전하여지고 후에는 써서 전하였으니 곧 각 지파의 대표자인 장로들과 유사들에게 가르쳐졌고 그들에 의해 저들의 여러가정과 문중에 전파되도록 하였습니다. 그 노래는 저들이 하나님을 배반한 치명적 결과에 관한 공정향 경고에 대하여 하늘과 땅의 엄숙한 호소와 더불어 전달되었습니다. 또 모세가 그 백성들에게 조금도 희망과 기쁨을 기대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 곁들어 선포되었습니다. 모세는 자기가 백성들과 함께 하는 동안에 그들로부터 얻었던 기쁨이란 얼마나 적었던가 하는 것을 선언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배신과 파멸을 미리 내다 본 이 선량한 노인에게는 틀림없이 많은 슬픈 생각들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에게 위안이 된 것은 그가 자기 임무를 다했다는 사실과 하나님께서 저들의 정착을 통해서는 못 얻으신다 하더라도 저들을 분산시킴으로써 영광을 받으리라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주님께서도 죽으심을 얼마 앞두고서 적 그리스도와 거짓 예언자들의 일어남을 예언하셨습니다(마 24:24). 그러나 후대의 모든 배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옥의 문들이 결코 교회를 이기지 못하리라”는 것을 믿을 수 있으니 “하나님의 기초는 튼튼하여 서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