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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불이(誓死不二)
맹세와 죽음은 다르지 않다는 뜻으로, 올바른 판단과 바른 길이면 죽어도 자기 주장을 바꾸지 않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誓 : 맹세할 서(言/7)
死 : 죽을 사(歹/2)
不 : 아닐 불(一/3)
二 : 두 이(二/0)
출전 : 사기(史記) 순리열전(循吏列傳)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하는 것이 바로 정직(是謂是, 非謂非, 曰直)이란 말이 있다. 중국 고전 순자(荀子)에 나오는 말이다.
어린애도 알 수 있는 이 말이 더 어려운 것은 바른 말을 하는 것도 어려울 뿐더러 남을 판단하는 것은 더 어렵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은 완전하지 못하면서 남과 비교하거나 판단하는 것은 모든 것이 부족한 사람이란 말이 있다. 그러니 남의 운명을 바꿀지도 모르는 재판은 그 중요성이 무엇보다 더하다.
돈에 따라 흑을 백으로 바꾸는 기술이란 혹평이 따르더라도 자신이 잘못내린 판결로 목숨까지 끊는 이야기에는 숙연함이 더한다. 한번 서약했으면 죽어도 바뀔 수 없다. 죽어도 결심을 바꾸지 않는다면 그 의지가 결연함을 보여준다.
사기(史記) 순리(循吏)열전에 나오는 춘추시대(春秋時代) 진(晉)나라 이리(李離)란 사람이 그러했다.
문공(文公)때 형벌에 관한 일을 심리하는 옥관(獄官)이었던 이리는 공정한 일 처리로 이름났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규정에 따라 똑 같이 죄를 따지고 벌을 주었다.
어느 때 이리는 사건 기록을 살피다 부하의 보고만 믿고 자신이 잘못 판결하여 무고한 사람을 처형한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사형에 해당되는 죄였다.
이리는 부하들에게 자신을 포박하여 왕에게 데려가도록 했다. 문공은 이리에게 부하 관리가 잘못했다고 하여 상관이 죄가 되는 것은 아니라며 그렇다면 왕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했다.
그래도 이리는 조금도 굽히지 않고 ‘잘못 판결한 죄는 자신의 죄이며, 무고한 사람을 사형시킨 것은 자신도 사형입니다(失刑則刑, 失死則死)’라 말하며 칼에 엎드려 목숨을 끊고 말았다.
잘못 판결했더라도 죽음으로 규정을 지킨 의지의 이리에게서 서약과 죽음(誓死)이 다르지 않다(不二)는 말이 나왔다.
우리나라서도 이에 못지않은 사람이 있다. 조계종 종정을 역임했던 효봉(曉峰)스님이다. 그가 일제 강점기 때 법관을 하던 중 한 피고인에 사형을 내렸다가 심한 가책과 회의감을 느끼고 엿장수로 유랑 걸식하다 출가했다 한다.
독립된 법관이 정치의 눈치를 본다거나 상급 행정처의 협조 요청에 응한 판결이라며 거센 항의를 받는 일이 얼마 전까지 시끄러웠다. 재판이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여 법관이 소신을 굳게 지키는 판결만 있어야겠다.
■ 서사불이(誓死不二)
맹서와 죽음은 다르지 않다는 뜻으로, 죽어도 결심은 바꾸지 않는다. 올바른 판단과 바른 길이면 죽어도 자기 주장을 바꾸지 않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출전 : 사기(史記) 순리열전(循吏列傳)
인간의 본성(本性)은 태어날 때부터 선(善)하다는 맹자(孟子)의 성선설(性善說)과 본래부터 악(惡)하다는 순자(荀子)의 성악설(性惡說)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회상해보면 과거 공동체의식이 중심을 이룰 때는 성선설이 설득력이 있었으나, 개인 중심으로 사회가 변해감에 따라 오히려 성악설의 설득력이 우위를 더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인간이 살아가는 공동체인 사회생활은 정의(正義/올바름)가 우선이요, 그 다음은 정직(正直)과 신뢰(信賴)가 될 것이다. 따라서 부정부패(不正腐敗)와 거짓이 자행(恣行)되어서는 안 되며, 이는 인간으로서의 참다운 가치의 삶이라고 할 수가 없다.
춘추시대(春秋時代) 진(晉)나라 문공(文公) 때 이리(李離)라는 옥관(獄官)이 있었다. 그는 매우 정직하고, 공정하였으며, 규정에 따라 형량을 정하였으므로 선량한 사람들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운 적이 없었고, 또한 악(惡)한 사람을 그냥 놓아준 적이 없었다. 그는 조정의 고관(高官)이거나, 일반백성들을 모두 똑같이 대하였으며, 항상 법(法)에 의거하여 죄를 따지고 벌을 주었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이 서명(署名)한 사건 기록을 살펴보다가 우연히 자신이 판결을 잘못 내려 무고(無辜)한 사람을 사형에 처하게 한 사실을 발견하였다. 당시 법률에 따르면 잘못된 판결로 무고한 사람을 사형하게 되면, 이 역시 사형 죄에 해당되었다.
이리(李離)는 자신의 잘못이 죽을죄(罪)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고 자신이 죽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이리(李離)는 부하들에게 자신을 포박하여 왕에게 데려가 주도록 명하였다. 그는 문공(文公)에게 사실대로 아뢰고 자신에게 사형을 내려 줄 것을 청하였다.
그러자 문공은 이렇게 말했다. "관직에 고하(高下)가 있듯이 형량에도 경중(輕重)이 있다. 아래 관리에게 잘못이 있다 해서 그것이 바로 그대의 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자 이리(李離)는 아뢰기를 "자신의 잘못된 판결(判決)로 사람을 죽게 하고서, 그 죄를 부하에게 돌린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 말을 들은 문공은 "그대가 스스로 죄가 있다고 한다면, 나에게도 죄가 있다는 말이 되지 않는가?"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이리(李離)는 조금도 뜻을 굽히지 않은 채 말을 했다. "옥관(獄官)에게는 지켜야 할 떳떳한 법이 있습니다. 잘못 판결한 죄는 곧 자신의 죄이며, 잘못 판결하여 무고한 사람을 죽인 것은 곧 자신의 죽음입니다"라는 말을 마치고는 문공(文公)의 말을 듣지 않고 칼로 찔러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현대인들은 강직한 이리(李離)의 죽음에 대하여 매우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정작 내가 속임수에 당하고도, 이유 없이 권력과 금력(金力) 때문에 피해를 본다면 생각은 달라질 것이다.
철저한 개인주의로 치닫는 현대의 사회생활은 남을 위할 줄 모르고, 나만 피해가 없으면 괜찮다는 것이 대체로 요즈음 일부 젊은 세대들의 생각이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의 교훈을 통하여 정의로운 사회가 중심이 되었을 때는 온 천하가 태평가를 부르며 평안한 삶을 누렸고, 포악하고 거짓이 판치는 세상은 백성들이 온갖 고초와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렸음을 잘 알 수 있다.
정관지치(貞觀之治)의 당태종(唐太宗)은 국가를 잘 다스려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그는 안으로 저 유명한 위징(魏徵), 방현령(房玄齡), 장손무기(長孫無忌), 두여회(杜如晦)등의 강직하고 현명한 인재를 널리 등용하여 제도를 정비하고, 부역과 세금을 경감하여 민생을 안정시켰으며, 밖으로는 돌궐(突厥)을 제압하고, 토번(吐藩)을 회유하는 등, 당(唐)나라의 기틀을 닦았다.
잠시 '자치통감(資治通鑑)'의 한 기록을 보면 그는 한 때 군신들과 도둑을 없애는 방안을 논했다. 어떤 신하가 무거운 법으로 엄하게 하자고 건의했다.
황제(태종)가 웃으며 말했다. "백성들이 도둑이 되는 까닭은 세금이 많고 부역이 무거우며, 관리들이 욕심스럽게 거두어들이기 때문에 배고픔과 추위에 떨어 염치를 돌아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짐(朕)이 사치를 없애고 경비를 절약하며, 요역(?役)을 가볍게 하고 부세(賦稅)를 경감시키며, 청렴한 관리를 선발하여 백성들이 의식에 여유가 있게 하면 저절로 도둑이 생기지 않을 것인데, 어찌 무거운 법(法)을 쓸 필요가 있겠는가."
이로부터 수년 후에 천하가 태평해지고 길에 떨어진 물건을 줍지 않았으며, 밤에도 문을 잠그지 않았고, 상인과 여행자들은 노숙할 정도가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정관(貞觀)의 '치(治)'는 성인(聖人) 정치시대와 더불어 중국 역사상 모든 분야에서 찬란한 시대를 대표한다. 이는 위징(魏徵)을 포함한 훌륭한 신하들의 서사불이(誓死不二)의 정신으로 황제를 보필했고, 황제는 그 간언(諫言)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이제 대한민국의 또 다른 5년의 미래가 대통령 선거로 결정이 날 것이다. 누가 되던 국민을 우선으로 하는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 아직도 국민을 속일 수 있고, 권력이 국민보다 더 소중하다고 여길 수 있다고 믿는 자가 선택되면 대한민국은 다시 5년의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한다.
한 국가를 다스림에 훌륭한 신하도 필요하다. 그러나 나아가 이를 수용할 수 있는 큰 그릇의 지도자 또한 매우 중요하다. 대한민국의 영광스런 재도약을 위하여 국민 모두는 올바르게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야 할 것이며, 부정선거나 부정개표를 두 눈 부릅뜨고 막아야 할 것이다.
▶️ 誓(맹세할 서)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말씀 언(言; 말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정하다의 뜻(定)을 나타내기 위한 折(절, 서)로 이루어졌다. 말로 약속을 정하다, 맹세(盟誓)의 뜻으로 쓰인다. ❷회의문자로 誓자는 ‘맹세하다’나 ‘서약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誓자는 折(꺾을 절)자와 言(말씀 언)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折자는 나무를 도끼로 갈라 두 동강 낸 모습을 그린 것으로 ‘꺾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고대에는 誓자가 전장에 나가기 전에 승리를 다짐한다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래서 誓자에 쓰인 折자는 나무를 두 동강 낼 정도의 강한 의지를 표현하는 것이고 言자는 다짐을 ‘말하다’라는 뜻을 전달한다. 그래서 誓(서)는 ①맹세(盟誓)하다, 서약(誓約)하다 ②경계(警戒)하다 ③고(告)하다, 아뢰다(말씀드려 알리다) ④(마음에)새기다 ⑤(벼슬을)받다 ⑥(군령을)내리다 ⑦삼가다(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다) ⑧맹세코 ⑨반드시 ⑩맹세(盟誓), 서약(誓約) ⑪경계(警戒) ⑫군대(軍隊) 편제(編制) 단위(單位)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맹세 맹(盟)이다. 용례로는 맹세하여 소원을 세움 또는 그 소원을 서원(誓願), 맹세하고 약속함을 서약(誓約), 맹세하는 말을 서사(誓詞), 맹세하는 말을 서언(誓言), 여러 사람이 모여서 맹세하는 곳을 서소(誓所), 마음 속으로 굳게 맹세함 또는 굳게 맹세한 마음을 서심(誓心), 맹세를 쓴 종이를 서지(誓紙), 서약하는 마음을 서의(誓意),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맹세하여 말함을 서고(誓誥), 장래를 두고 다짐하여 약속함을 맹서(盟誓), 공개적으로 맹세하는 일을 선서(宣誓), 기원하여 맹세함을 기서(祈誓), 서약하는 말을 책에 씀을 책서(册誓), 서원하는 뜻을 나타냄을 표서(表誓), 맹세를 다짐함을 기서(起誓), 맹세와 죽음은 다르지 않다는 뜻으로 죽어도 결심을 바꾸지 않다는 말을 서사불이(誓死不二), 죽기를 스스로 맹세한다는 말을 이사자서(以死自誓), 썩 굳게 맹세함을 이르는 말을 맹산서해(盟山誓海), 하느님에게 맹세한다는 말을 지천위서(指天爲誓) 등에 쓰인다.
▶️ 死(죽을 사)는 ❶회의문자로 죽을사변(歹=歺; 뼈, 죽음)部는 뼈가 산산이 흩어지는 일을 나타낸다. 즉 사람이 죽어 영혼과 육체의 생명력이 흩어져 목숨이 다하여 앙상한 뼈만 남은 상태로 변하니(匕) 죽음을 뜻한다. 死(사)의 오른쪽을 본디는 人(인)이라 썼는데 나중에 匕(비)라 쓴 것은 化(화)는 변하다로 뼈로 변화하다란 기분을 나타내기 위하여서다. ❷회의문자로 死자는 ‘죽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死자는 歹(뼈 알)자와 匕(비수 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匕자는 손을 모으고 있는 사람을 그린 것이다. 그런데 갑골문에 나온 死자를 보면 人(사람 인)자와 歹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시신 앞에서 애도하고 있는 사람을 그린 것이다. 해서에서부터 人자가 匕자로 바뀌기는 했지만 死자는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는 모습에서 ‘죽음’을 표현한 글자이다. 그래서 死(사)는 죽는 일 또는 죽음의 뜻으로 ①죽다 ②생기(生氣)가 없다 ③활동력(活動力)이 없다 ④죽이다 ⑤다하다 ⑥목숨을 걸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망할 망(亡)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있을 존(存), 살 활(活), 있을 유(有), 날 생(生)이다. 용례로는 죽음을 사망(死亡), 활용하지 않고 쓸모없이 넣어 둠 또는 묵혀 둠을 사장(死藏), 죽음의 원인을 사인(死因), 죽는 것과 사는 것을 사활(死活), 사람이나 그밖의 동물의 죽은 몸뚱이를 사체(死體), 죽음을 무릅쓰고 지킴을 사수(死守), 죽어 멸망함이나 없어짐을 사멸(死滅), 죽어서 이별함을 사별(死別), 죽기를 무릅쓰고 쓰는 힘을 사력(死力), 죽는 한이 있더라도 서로 저버리지 않을 만큼 절친한 벗을 사우(死友), 죽을 힘을 다하여 싸우거나 목숨을 내어 걸고 싸움 또는 그 싸움을 사투(死鬪), 죽음과 부상을 사상(死傷), 수형자의 생명을 끊는 형벌을 사형(死刑), 태어남과 죽음이나 삶과 죽음을 생사(生死), 뜻밖의 재앙에 걸리어 죽음을 횡사(橫死), 참혹하게 죽음을 참사(慘事), 쓰러져 죽음을 폐사(斃死), 굶어 죽음을 아사(餓死), 물에 빠져 죽음을 익사(溺死), 나무나 풀이 시들어 죽음을 고사(枯死), 죽지 아니함을 불사(不死), 병으로 인한 죽음 병사(病死), 죽어도 한이 없다는 사무여한(死無餘恨), 죽을 때에도 눈을 감지 못한다는 사부전목(死不顚目), 죽을 고비에서 살길을 찾는다는 사중구활(死中求活), 죽는 한이 있어도 피할 수가 없다는 사차불피(死且不避), 죽더라도 썩지 않는다는 사차불후(死且不朽),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이라는 사생지지(死生之地), 다 탄 재가 다시 불이 붙었다는 사회부연(死灰復燃), 이미 때가 지난 후에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죽고 사는 것을 가리지 않고 끝장을 내려고 덤벼든다는 사생결단(死生決斷), 죽어서나 살아서나 늘 함께 있다는 사생동거(死生同居), 죽어야 그친다로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사이후이(死而後已) 등에 쓰인다.
▶️ 不(아닐 부, 아닐 불)은 ❶상형문자로 꽃의 씨방의 모양인데 씨방이란 암술 밑의 불룩한 곳으로 과실이 되는 부분으로 나중에 ~하지 않다, ~은 아니다 라는 말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 때문에 새가 날아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음을 본뜬 글자라고 설명하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不자는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不자는 땅속으로 뿌리를 내린 씨앗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한 상태라는 의미에서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참고로 不자는 ‘부’나 ‘불’ 두 가지 발음이 서로 혼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不(부/불)는 (1)한자로 된 말 위에 붙어 부정(否定)의 뜻을 나타내는 작용을 하는 말 (2)과거(科擧)를 볼 때 강경과(講經科)의 성적(成績)을 표시하는 등급의 하나. 순(純), 통(通), 약(略), 조(粗), 불(不)의 다섯 가지 등급(等級) 가운데 최하등(最下等)으로 불합격(不合格)을 뜻함 (3)활을 쏠 때 살 다섯 대에서 한 대도 맞히지 못한 성적(成績) 등의 뜻으로 ①아니다 ②아니하다 ③못하다 ④없다 ⑤말라 ⑥아니하냐 ⑦이르지 아니하다 ⑧크다 ⑨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 그리고 ⓐ아니다(불) ⓑ아니하다(불) ⓒ못하다(불) ⓓ없다(불) ⓔ말라(불) ⓕ아니하냐(불) ⓖ이르지 아니하다(불) ⓗ크다(불) ⓘ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불) ⓙ꽃받침, 꽃자루(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否), 아닐 불(弗), 아닐 미(未), 아닐 비(非)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가(可),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움직이지 않음을 부동(不動),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일정하지 않음을 부정(不定), 몸이 튼튼하지 못하거나 기운이 없음을 부실(不實), 덕이 부족함을 부덕(不德), 필요한 양이나 한계에 미치지 못하고 모자람을 부족(不足), 안심이 되지 않아 마음이 조마조마함을 불안(不安), 법이나 도리 따위에 어긋남을 불법(不法), 어떠한 수량을 표하는 말 위에 붙어서 많지 않다고 생각되는 그 수량에 지나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을 불과(不過), 마음에 차지 않아 언짢음을 불만(不滿), 편리하지 않음을 불편(不便), 행복하지 못함을 불행(不幸), 옳지 않음 또는 정당하지 아니함을 부정(不正),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속까지 비치게 환하지 못함을 불투명(不透明), 할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것을 불가능(不可能), 적절하지 않음을 부적절(不適切), 부당한 일을 부당지사(不當之事), 생활이 바르지 못하고 썩을 대로 썩음을 부정부패(不正腐敗), 그 수를 알지 못한다는 부지기수(不知其數),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못한다는 부달시변(不達時變) 등에 쓰인다.
▶️ 二(두 이)는 ❶지사문자로 弍(이)는 고자(古字), 弐(이)는 동자(同字)이다. 두 개의 손가락을 펴거나 나무젓가락 두개를 옆으로 뉘어 놓은 모양을 나타내어 둘을 뜻한다. 수의 둘을 나타내는데 옛 글자 모양은 아래 위가 거의 같은 길이로 썼다. 위를 조금 짧에 쓰면 上(상; 위)이란 글자의 옛 모양이 된다. ❷상형문자로 二자는 ‘둘’이나 ‘둘째’, ‘두 번’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二자는 나무막대기나 대나무를 나열한 모습을 그린 것이다. 고대에는 나무막대기를 일렬로 늘어놓는 방식으로 숫자를 표기했다. 이렇게 수를 세는 것을 ‘산가지(算木)’라 한다. 그러니 二자는 두 개의 나무막대기를 나열하여 ‘둘’이라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참고로 한자에는 획이 나란히 나열된 글자가 있어서 간혹 二자가 쓰일 때가 있다. 이런 경우에는 단순히 모양자 역할만을 할 뿐 뜻은 전달하지 않는다. 그래서 二(이)는 수(數)의 이름. 둘. 이(貳) 등의 뜻으로 ①두, 둘째 ②두 번 ③버금(으뜸의 바로 아래) ④두 가지 마음 ⑤둘로 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두 겹이나 중복을 이중(二重), 검은 털과 흰 털을 이모(二毛), 벼슬의 둘째 품계를 이품(二品), 재물을 아껴 남에게 주지 못하는 것을 이간(二慳), 두 사람을 이인(二人), 두 층으로 지은 집을 이층(二層), 다시 없음이나 둘도 없음을 무이(無二), 이중으로 하는 것을 이중적(二重的), 차원의 수가 둘인 것을 이차원(二次元), 기구나 조직 문제 따위를 둘로 함 또는 둘이 됨을 이원화(二元化), 한 가지 사물에 겹쳐 있는 서로 다른 두 가지의 성질을 이중성(二重性), 군대의 가장 아래 계급의 사병을 이등병(二等兵), 한 경작지에 일 년에 두 가지 농작물을 차례로 심어 거두는 일을 이모작(二毛作), 두 가지 규율이 서로 반대된다는 이율배반(二律背反), 부부 사이의 정을 이성지락(二姓之樂), 성이 다른 남자와 여자가 혼인을 하는 일을 이성지합(二姓之合), 열여섯 살 전후의 젊은이로 젊은 나이를 이팔청춘(二八靑春), 절친한 친구 사이를 이인동심(二人同心), 센 털이 나기 시작하는 나이라는 뜻으로 32살을 이르는 말을 이모지년(二毛之年), 때를 놓침으로 절망 등의 뜻으로 쓰이는 말을 이십오시(二十五時), 둘 중에서 하나를 가려 잡음을 이자택일(二者擇一),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서로 맞닿은 쪽의 발목을 묶어 세 발처럼 하여 함께 뛰는 경기를 이인삼각(二人三脚)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