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귀.천
"그런 좋은 육송은 참 흔치 않을 것이다. 나도 보고는 놀랐더니라. 수령이 한
이백 년 가차와 보이던데, 물고기 비늘 같은 노송의 송린은 차라리 용의 비늘이
라 하는 것이 옳더라. 그 둥치의 기상이 땅의 정기를 뽑아 올려 하늘로 토하는
용틀임 그대로인데 , 또 어떤 이는 화제에 적갑창발이라 쓰기도 했으니, 소나무
가 붉은 비늘 갑옷을 입고 그 머리를 검푸르게 두른 모양을 말한 것 아니냐. 예
전에 이영구라고도 하고, 이성이라고도 하는 사람은 뛰어난 소나무를 많이 그려
이름이 높았더란다. 항상 용반봉저로, 마치 용이 구불구불 굼틀거리며 몸을 서
린 것같이 몸통을 그리고, 봉황이 날개를 솟구쳐 하늘로 날으려는 것처럼 송엽
상서로운 머리를 그렸다 하더라. 본디 송이란, 유덕 심정한 단인정사의 품격으
로, 기개는 준초하고 자태는 잠룡이니, 이 속된 세상의 먼지 속에 서 있으나,
저 깊숙한 산속에 홀로 서 있으나, 그 나무 있는 곳은, 물 속 같은 유곡의 그윽
함을 느끼게 하지 않느냐. 비록 젊어도 예스러운 풍치를 저절로 지니고 있는 것
이 소나무지만, 또 해가 묵어 둥치가 늙어도, 늙을수록 그 자세와 기상이 힘있
고 젊어서 감히 범하기 어려운 것이 소나무인지라, 신묘한 풍모라 아니하랴. 무
릇 형체 가진 것 중에 그만큼 아름다운 모양과 기를 타고나기가 쉽지는 않을 것
이니라. 그런 소나무가 한 그루도 아니고 두세 그루도 아니고 오죽하면 내가 일
일이 세어 보았다. 마흔 몇 그루가 그리 똑같이 아름드리로 무성허드구나. 그
군송은 흡사 붉은 주칠 두리기둥들이 두뚝우뚝 무리를 지어 서 있는 것 같았는
데, 그 늠름 기품이라니. 어떤 것은 여윈 듯 메마르고 단단한 것이 위로 휘익
치솟다가 철장을 구부린 것처럼 목을 휘기도 하고, 어떤 것은 곧게 뻗어 직간
대송이 하늘을 찌를 것 같은데, 또 어떤 것은 살지고 윤택해서 풍모 넉넉하고,
어떤 것은 가지 꺾인 자리가 해묵어, 마원이 그린 파필의 노송인 양 고기가 울
연하더라. 그 나무들이 들어찬 기세 성만이 예사롭지 않은 것을 보고, 우리 집
안이 저처럼 가득 차서 창성한다면 얼마나 좋을 꼬, 탄식이 절로 나왔었다."
생전의 청암부인은 민촌 고리배미를 지나오다가, 그 경관에 놀라 가마를 멈추고
내려서 보났던 적송 수풀에 대하여 이기채에게 이야기 했었다. 그때 이기채의
나이는 스물하나였다.
"나는, 아깝다,했더니라. 저 볼 만한 군송 송림이 매안에 있었더라면 이 굽이
에, 아니면 저 굽이에... 그러면 창송취죽, 푸른 솔에 푸른 대가 어울려 참으로
보기 좋은 성관을 이루었을 터인데. 그랬다면 온 마을에 그 푸른 기운이 청청
가득차고 솔바람,대바람 소리도 언제나 소소하여 귀를 적시었으련만."
"그곳에 어찌 정자가 없으리까."
"여부가 있겠느냐, 좋은 이름 짓고, 좋은 글씨 현판해서 두렷하게 달어야지. 어
떠냐, 정자 이름은 네가 한번 지어 볼래?"
청암부인은 눈에 웃음을 머금고 지긋하게 이기채를 바라보았다. 반은 희롱삼아
해 보는 말이었지만, 반은 그 소나무 둘레를 그대로 떠다가 매안의 어디쯤에 옮
겨서, 절가의 경관을 만들어 놓기라도 한 것 같은 음성이었다. 그 말을 들은 이
기채는 잠시 묵묵히 있다가 이윽고 말했다.
"솔바람 소리 귀를 적시리란 말씀을 들으니, 문득 들을 청에 솔 송짜를 써서 청
송정이라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오호."
"솔바람 소리야 사시에 좋지만, 그 중에 일품은 역시 흰 눈 성성한 설송에 이는
바람 소리 아닐까요? 이는, 귀만이 아니라 뜻에까지 들릴 것이요, 뜻이라면 바
로 소나무의 선비다운 자태와 기상이 지닌 천품에서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좋은 이름이로구나. 가히 속으로 새겨들을 만하다."
"그곳에 서 있는 정자 이름은 무엇이던가요?"
"없었다."
"아예 정자조차도?"
"오냐."
"어찌 그러하리까? 정자가 당치않으면 모정이라도 있을 법한데."
"모르니 그러는 것 아니냐. 므릇 좋은 산수 가운에 당호 있는 것은 마치 사람의
얼굴에 미목이 있는 것이나 같이 당연한 일인데. 사람이 낯바닥만 있고 눈과 눈
썹이 없으면 맹라, 곧 눈먼 문둥이일 것이다. 산수 경관도 마찬가지니라. 모든
사람 눈에는 그저 거기가 거기같은 지형을 보고도, 명사 신안은 땅의 정기가 모
인 혈의 자리를 알어보고, 용한 의원은 표시 없는 신체에 침구를 놓을 때도 올
바른 혈을 귀신처럼 짚어내는 법. 산수 경관, 그 면목 생김새를 살피면 반드시
천연에 스스로 지닌 혈이 있느니. 고리배미 적송 수풀도 예외가 아니리라. 바로
그 숲자리 혈에 정자를 하나 단아하게 세운다면, 다 그려 놓은 용의 얼굴에 눈
을 그려 넣는 것같이, 멍머구리 눈먼 풍경에 점정이 되련만. 그 정자 한 점이
지어져 눈으로 찍혀야 비로소 적룡의 무리 등천하려 하는 풍경이 완성될 것인
데. 우선은 보는 눈이 뜨여야 이런 저런 무엇을 갖출 수가 있는 것이다. 안고수
비라는 말이 있어서, 마음은 크고 눈은 높아도 재주가 모자라 손이 눈을 따르지
못하는 것을 탄식하기도 하다만, 수비는 나중 이야기고 우선은 안고가 되어야
한다. 보는 눈이 먼저 열려야 분별을 하게 되고, 눈에 격이 생겨야 그 격에 이
르려고 부지런히 손을 익힐 것 아니냐. 타고난 재주가 아무리 출중허고, 일평생
익힌 솜씨가 아무리 능란해도, 눈이 낮은 사람은 결국 하찮은 몰풍정을 벗지 못
할 것이다. 그러니, 다른 무엇보다, 사람은 눈을 갖추어야 하느니라. 우리 사람
의 정신 속에도 반드시 정신의 눈이라 할 혈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올바른 곳
에 제대로 있고, 그 혈을 보는 눈이 밝은 사람을 세상에서는 '어른'이라 하지.
허나 쑥대강이 어거진 더벅수풀 뒤범벅인 정신 가진 사람 보고는 '미쳤다'하고,
정신 속으로 난 길이 항상 어수선하여 무슨 사지곡직을 제대로 구분 못하는 사
람을 보고는 '정신이 없다'고 하느니. 허지만 애초에 그 사람들이라고 그런 정
신을 타고났겠느냐. 물론 그 중에는 남보다 부실한 정신을 타고난 사람도 없지
는 않겠지만, 그보다는 제 정신 간수를 잘못해서 그 모양이 되었을 것이니라.
혹은 방심하고, 혹은 게으르고, 혹은 몰라서. 아니면 헛군데 정신을 다 쏟아 버
려서. 아무리 칠흑같은 비단 머리라도 단 사흘만 안빗고 방치해 두면 금방 짚북
더미 되는 것이나 같지. 그러니 사람은 제 정신 돌보고 가꾸기를 날마다, 아침
에 일어나면 세수를 하는 것처럼 부지런히 하고 거르지 말어야 한다. 그렇게 단
정하고 맑은 정신을 갊아 놓고, 밝은 눈으로 들여다보면 거기 혈이 어찌 보이지
않으랴. 이제는 바로 그 자리에 꼭 알맞은 모양의 당호를 앉혀야 하리라. 집이
든 정자든. 그런다면, 그 정신의 경치가 수려,우미함이 어찌 빼어난 산수보다
아름답지 않겠느냐. 그런 정신은 저 자신의 아름다움으로 둘레를 두루 향기롭게
만들고, 제 몸 담은 주변 풍경까지도 귀격으로 높여 놓으니, 어느 누가 그것을
고귀하다 하지 않으리.
수양산 그늘이 강동 팔십 리라 하는데, 큰 정신 하나의 그늘이야 어찌 기껏 팔
십 리에만 미칠 것인가. 세월을 넘어 팔백 년, 팔천 년을 뻗어오는 정신가진 분
을 우리는 성현이라 하지만, 그만은 못하다 할지라도, 구슬같이 영롱한 제 정신
의 눈을 바로 뜨고 있어야 비로소 산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헌데, 그뿐이냐. 한 사람의 인생에도 역시 형이 있을 것인즉, 그 형을 찾고 다
루는 일이, 정신에 그리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제 인생의 맥 속에서 참다운 혈
을 못 찾는 사람은 헛되이 한평생 헤맬 것이요, 어뚱한 곳에 집착한 사람은 헛
살았다 할 것이다. 사람마다 제 인생의 결혈을 찾는 간절함이, 채금하려는 자가
광혈을 찾아 산천을 누비고 다니는 것만큼 절실하다면, 비록 폐광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그 노정이 결코 헛된 것만은 아니리라. 하물며 제 혈을 제대로 찾은
경우에야 . 오직 혼신의 힘을 다하여 채굴을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꼭 알맞은
정자를 짓는 일이나 같다. 즉 그것이 인생의 경영이니라. 만일에 정신이나 인생
에 그 형이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아무것도 모르
고, 설혹 안다 해도 못 찾고, 또 찾았대도 그 자리를 그냥 방치하여 비워 둔 채
쓸모없이 버려 둔다면, 이는 제 정신이나 제 인생을 눈먼 문둥이로 만드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아니, 눔먼 문둥이는 그대로 눈의 시눙이나 있지, 아예 민
투름한 살덩어리에 구녁도 뚫리지 않은 얼굴 형상을 생각해 보아라. 불구가 아
니냐. 어찌 참혹다 하지 않으리. 그러니 사람이라면 마땅히 제 자신이나 인생에
꼭 갖추어야 할 모양이 있는 것이다. 갖추어야 할 것을 갖추지 못하면 '비었다'
하는데, 빈 것은 허하지. 허한 것은 힘이 없느니."
그때 이기채는 오직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비록 취처하여 장가는 들었다 하나,
아직 스물을 막 넘긴 나이로, 어머니 청암부인의 말씀을 깊은 속으로 알아듣기
에는 어린 때였던 것이다.
"허나, 이처럼 귀하고 아름다운 눈일지라도, 그것은 귀하고 아름다워서 오직 있
을 만한 곳에만 있어야 하니라. 사람의 얼굴에도 눈과 눈썹이 아주 없어도 안되
지만, 거꾸로 너무 많아서도 안되지 않겠느냐. 가령, 아무리 오색 광채 찬란한
눈이라도, 어떤 사람이 얼굴 사방에 눈이 달려 있고, 또 그것도 모자라 온몸에
다닥다닥 눈이 달려 눈투성이라면 어떻겠느냐.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괴물일 것
이다. 마치 산수 너무 찬란하여 여기도 아깝고 저기도 아까워, 군데군데 층층
누각을 겹쳐서 상첩하게 짓는다면, 그 경치 단상하기보다는 오히려 소란하기 시
정 같지 않으리. 그곳에는 잡배들이 끓기 마련이라, 바쁘고 시끄러울 뿐 도무지
고졸한 맛이 없고, 주인 많은 나그네 밥 굶는다고, 실이 없느니, 사람이 뜻이
너무 많고, 뜻마다 착수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면 성공투성이여서 좋을 것 같지
만, 한 군데 정신을 쏟아 정진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하고, 복도 또한 그러해서,
복투성이 인생이란 어쩌면 눈투성이 몸뚱이처럼 오히려 기괴한 것일는지도 모르
지. 경치고, 정신이고, 인생이고, 결혈의 묘처는 오직 한 군데 아니면 많아야
두 군데에 불과할 것인즉, 이 자리를 수중하게 아끼고 잘 갊아서 제 새애를 다
한 집을 세워야 하리라. 그래야만, 생애는 이 집을 바라보고, 집은 생애를 돌아
보는 묘미가 있지 않겠느냐."
청암부인은 미소를 지었다.
"그만한 적송의 무리를 동네 어귀에 수풀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고리배미 사람
들은 그저 범경의 범백사물로 그것을 대하니, 그 무심을 순박하다 하랴, 어리석
다 하랴."
"허면, 정자를 앉힐 만한 자리에는."
"소를 매 놓았더라."
"무엇을요?"
"제 소똥을 깔고 앉아 새김질을 하는 황소였다."
"저런."
"사람이 자기 정신의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한다면 그 정경이 꼭 그와 같지 않겠
느냐. 눈이 밝아야 세상이 바로 보이는데, 눈구녁 자리에 소똥을 범벅해 놓고
짐승이 짓이기게 해 놓는다면 그 인생이 걸어가는 앞길이 오죽할까. 차라리 가
련하다고 해야 하리. 눈이 없어 어둡고 미련한 사람이 한낱 무지랭이라면, 저
혼자서나 미물로 굼벵이처럼 구부린 채 뒹굴다 가지만, 만일 한 집단의 어른이
나, 남을 이끄는 자리에 있는 사람, 또는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 가진 사람이 그
런 눈을 하고 있다면, 온 집안, 온 나라를 미욱한 어둠 속으로 캄캄하게 처박으
면서, 온통 짐승들이 횡행하는 똥밭으로 만들고 말 것이니. 얼마나 겁나고 무서
은 일이냐. 눈은 곧 빛인데, 빛이 밝으면, 저 혼자서만 제 것을 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빛에 의지해서 모인 다른 사람들 것도 잘 볼 수 있게 해준다.
나랏님도 다를 바 없지만, 아무쪼록 너는 한 가문의 종손이니, 부디 이런 말을
명심하거라."
"어머니, 잠깐 다른 생각이온데, 그 고리배미 송림이 타고난 제 값을 못하는 것
은, 그 주변 경관 탓도 있지 않을까요? 만일, 금 송곳으로 돌을 쪼고 학의 부리
로 무래를 그은 것 같은 절묘한 풍관 속에 그 수풀이 앉았더라면, 그런 무지몽
매한 대접을 받을 리 있겠습니까? 고리배미야 그저 민틋한 동산 아래 두리두리
멍석을 펴 놓은 것 같은 마을일진대, 송림 홀로 울연 창창하다 하나, 그런 범하
지골의 풍경 속에서는 제격이 제대로 드러나기도 어렵고, 심지어는 개발의 편자
처럼 제 격을 갖추었다 하기도 어렵겠습니다."
"옳다. 내 그래서, 그 붉은 용의 무리 같은 육송들을 바라보면서 한탄했더니라.
어쩌다 저만한 귀골의 씨앗들이 이런 민촌으로 날아와 떨어졌을까. 그 풍향의
곡절은 알 리 없었으나, 자리를 잘못 앉은 것만은 분명하고, 애석했었다. '삼밭
의 쑥'이라고 옆구리로 기어 크는 구불구불한 쑥도 곳곳하게 위로 크는 삼밭에
들면, 저절로 반듯하게 자라나지만, 거꾸로 쑥밭에 떨어진 삼씨는 제 본성도 다
잊어 버린 채 쑥을 따라 구불구불 땅바닥으로 크는데, 그것이 하찮은 풀뿌리라
서만 그렇겠느냐. 아무리 크고 좋은 유자라도 강을 건너 다른 나라 땅으로 가면
탱자가 되고 만다 하더라. 그래서, 저 적송, 귀문의 종자들이 한미하고 변변치
못한 민촌 어귀에 잘못 앉아, 하릴없이 그 격으로 되고 말았구나 싶었다. 주위
경관하고 격에 맞게 어우러지지도 못하고, 누가 제대로 알아보는 이도 없어, 자
연히 마땅한 대접조차 못 받으니, 저 무성한 군송의 기개와 풍자가 참으로 속절
없지 않으냐, 하였다. 사람이라고 무엇이 다르랴.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있
지만, 용은 개천에서 살 수 없다. 개천에 빠진 용은 제 비늘도 다 못 적시는 개
골창 물 속에서 뒤척이며 몸부림치다 죽든지, 아니면 굳이 그렇게라도 살아야겠
으면 미꾸라지가 되어야 하리. 눈에 보이는 세상살이도 그렇지만 안 보이는 정
신 자리, 사는 자리도 똑같다. 그것을 천한 곳에 두면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이
다. 그러니 사람이 내 마음을 추리고, 추리고, 또 추려서 균형을 잡고, 훌륭한
스승의 지도를 받아 그 자리를 밝혀 가는 수련을 하는 것이 바로 '공부'니라.
부디 이 갈고 닦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오직 자기를 돌아보는 것이 숨
쉬는 일처럼 몸에 익어 일상이 되도록 자신을 건사하고, 이재를 하듯이 정신을
관리해야만 정신의 토양이 비옥해 질 것이다."
그리고는 한동안, 세운 무릎 위에 한 손을 얹은 채, 청암부인은 허리를 곧추세
우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러더니 이윽고 말했다.
"하기는 무엇이 귀한 것이고, 무엇이 천한 것이랴. 또한 양반은 무엇이고 상늠
은 무엇이겠느냐. 귀천에, 반상에, 격조와 운치를 아는 풍류나, 도무지 그런 것
이라고는 모르는 몰풍이나, 모두다 사람이 만들어 낸 편견이요 생각의 오랜 관
습일 뿐, 본디 그 사물이 가진 본성과는 거리가 먼 것인지도 모르지. 소나무는,
그 종자가 무엇이든, 그것이 어대에 떨어져 어떻게 뿌리 박고 서 있든, 그저 오
직 소나무일 따름, 저한테 단아하고 어여쁜 정자를 지어 주든 소똥 깔고 앉은
황소를 누렇게 매어 놓든, 거기 따라 소나무 자체의 본성이 변하는 것은 아닐
테니까 말이다. 그러다면 사람은 또 사람대로 천연인으로서 다만 사람일 뿐, 무
슨 무슨 분별이란 다 헛된 것이 아니겠느냐."
청암부인은 이기채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하오나, 소나무라 하지만 그것도 하나하나보면, 해송, 육송, 적송, 백송, 거기
다가 다박솔. 성질도 다르고 생김새됴 다른데, 사람 또한 조상 따라 근본이 다
른즉 후에 태어난 자손도 다 달라서 분별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씨가 다르
니..."
"씨라. 그 씨의 근원은 또 무엇일꼬. 어느 누구라도 선조를 따져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애초에 미련한 선조가 어디 있겠느냐. 허나, 어진 현조의 자손들은 그 조
상이 밝힌 정신의 등을 받어서 불을 댕기어다른 등으로, 또 다른 등으로 연방
옮겨 붙여 고금에 이어 내려오면서 훤하게 불울 밝힌 집안을 이루겠지만, 아닌
경우에는 상어오는 중간에 못난 사람이 생기고, 무식해지고, 선대와의 끈도 끊
어지고 집안가지들도 흩어져 각동백이가 되면서 빈곤해지면, 발등 비출 등불조
차 어두워져 상놈들이 되겄지. 그러다가 죄를 짓고 등불이 아주 꺼지는 일을 당
허면 천인이 되고 말아 그 인생이 깜깜한 밤중을 헤맬 것 아니냐. 저 하나만 그
러고 마는 것이 아니라 대대손손 엄하고 혹독하게 서러운 굴레를 써야 하니, 불
행히도 그런 사람을 선조로 둔 후손은 누구를 원망할 것이냐. 상고에서는, 살인
한 죄인을 참수하고 그 처자를 몰수해서 노비로 삼었다는데, 백제에서는, 간음
한 여자를 노비로 만드는 형법이 있었다더라."
그러니 죄의 씨가 종인가.
이렇게 죄를 지어 그 벌로 한번 노비가 되면 그는 종의 조상이 되었다. 그리하
여 그 신분을 물려받은 신분 노예가 생기고, 또 다른 곳에서는 지은 빚 때문에
몸이 잡힌 부채 노예가 생겨났으며, 나라가 멸망하면서 끌려 간 포로들이 노예
의 멍에를 쓰기도 하였다. 또한 역모를 꾀한 자의 집안 가솔들도 공천,사천노비
로 곳곳에 박히었다. 심지어 몹시 곤궁한 집에서는 제 가족을 노비로 팔기도 하
였으며, 일반 양인의 붙이라 할지라도 어쩌다 가족을 잃고 저 혼자 떨어져 궁글
어 다니다가, 할 수 없이 누구네 종으로 주저앉는 경우도 있었다. 그 연우 곡절
이야 어떤 것이든, 한번 사내 종 노와 계집 종 비가 되어 신분에 낙인이 찍히면
그들은 그날로 저의 주인 상전의 마소나 전답과 마찬가지가 되었다. 그리고 세
습되었다. 백 년, 이백 년이 아니고, 천 년, 이천 년만이 아닌 기나 긴 세월을
두고, 일찍이는 고조선에서 만든 법인 범금팔조에
살인한 자는 사형에 처하고
남을 상하게 한 자는 곡물로써 보상하며
남의 물건을 도독질하면 그 주인의 노예가 되는 것이 원칙인데,
만일 속죄하고자 한다면 매인당 오십만 전을 내놓아야 한다.
고 밝힌 그때로부터, 노비의 수가 크게 늘어난 고려에 이르러, 원래 양민이었다
가 노비로 된 자를 해방시켜 주려는 노비안검법에, 해방되엇던 노비들을 다시
노비로 만드는 노비환천법이 엎치락뒤치락 하던 시절을 지나 조선 시대에 이르
기까지, 노비 제도는 깊고도 오랜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조선의 노비는 칠반천
역, 팔반사천에 드는 천민으로, 칠천,팔천 중에서도 가장 낮은, 이름만 사람일
뿐 사람이라 할 수 없는 신분이었다. 이들을 다시 공노비인 공천과 사노비인 사
천으로 나뉘었다. 장례원에서는 이들의 호적을 철저히 조사하여 노비안을 작성
해 두었는데, 공노비는 장례원에서 직접하고, 사노비는 지방의 수령이 삼 년마
다 속안을 만들어 변화 정황을 적은 뒤에, 이십 년마다 정안을 기록하여 본조,
의정부,장례)원,사섬시,본사,본도,본읍에 보관하였으니. 이렇게 숨통을 조이는
신분의 족쇄로부터 달아난다는 것은 주먹속에서 뛰는 벼룩과 같은 일이었다. 그
래도 집안에 묶인 노비로 꼼짝못하는 사천보다는, 밖에 나가 살면서 제 식구와
가계를 꾸려 갈 수 있었던 공천은 처지가 좀 나았다. 궁중에서 쓰는 미곡,포목,
잡화와 노비 들을 맡아 보는 내수사에 속하였다 하여 내노비, 혹은 궁노비라 부
르던 공노비를 비롯하여 관아에 소속된 관노비, 역에 박힌 역노비, 그리고 향교
에 딸린 교노비, 또 고려의 사찰에 있었던 노비들을 조선 초기에 나라를 세우면
서 모조리 몰수하여 공누비로 만든 사노비들은 공천이었는데, 이 공노비 공촌
중에서도 선상노비와 납공노비는 서로 일이 달랐다. '선상'은 서울에 있는 각
관아의 사역에 종사시킬 사내 종을 지방 관아에서 뽑아 바치는 일이었다. 일년
에 여섯 달씩 교대로 고되게 노역하는 이 경중 공천 선상 노비는, 일년에 일곱
번씩 교대하는 지방 관노보다 훨씬 무거운 일을 하는 셈이어서, 이들에게는 시
중드는 봉족 두 명을 붙여 주었다. 이 봉족꾼은 선상 노비를 위해서 해마다 두
필씩 포를 바쳐야만 했다. 입역이 고달픈데다가 선상 노비들을 대부분 지방에
늙은 부모와 그리운 처자식을 떼어 놓고 온 처지라서 몹시 괴로워하던 끝에 죽
음을 무릅쓰고 도망을 하거나, 포 열두 필에서 열다섯 필이나 되는 막대한 선상
대립가를 치르고 피역을 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엄청난 금액이어서 아
주 특별한 노비의 경우말고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몸으로
신공을 바치던 선상 노비가 아닌 납공 노비는 신역 대신 매년 자신이 노비인
값, 노비공을 사섬시에 현물로 바쳤다. 이 납공 노비가 짊어진 부담은 실로 무
거워서, 해마다 사내 종이 포 한 필에 저화 스무 장이고, 계집 종이 포 한 필에
저화 열 장씩이었다. 저화는 닥나무 껍질로 만든 불환 지폐인데, 정화와 바꿀
수 없는 이것을 사람들이 기피하여 나중에는 저화 석 장에 쌀 한 되로까지 그
가치가 떨어졌지만 처음에는 한 장에 오승포 한 필이나 혹은 쌀 두 말에 맞먹는
값이었으니, 저화 스무 장이면 오승포 스무 필이거나 쌀 네 가마에 해당하는 것
이었다. 제 몸뚱이 가릴 베 조각 하나 변변치 못하고, 제 입에 넣을 좁쌀 한 숟
가락 넉넉지 못한 노비들에게는 연자맷돌같이 무거운 납공이었지만, 피할 수 없
이 목을 조이고 있는 톱니이기도 하였다. 선상,납공말고도 공노비들은 제가 속
한 관아의 음식을 만들어 올리는 공궤를 담당해야 했고, 노비 공물우ㅢ 부가세
로 작지를 납입해야만 했다. 작지는 호조나 광흥창같은 수세창고에서 징세 사무
를 보는 데 필요한 종이를 마련하기 위하여, 공세를 받을 때, 공세미 한 말에
종이 다섯 장, 열 말에는 스무 장이 한 권인 종이책 두 권씩을 덧붙여 내게 하
였다. 세금으로 내는 공세미에만 부과시키던 작지는 때로 논밭이나 임야, 가옥,
노비들을 사고 팔 때 증명 신청자로부터 수수료로 밭기도 했는데, 나중에 무당
한테는 무격세, 산간의 화전민한테는 화전세같은 잡세와 더불어 공사노비공에도
부가 징수 하던 세목이었다. 이런 것을 못 견대어 도망하는 노비들은 추쇄도감
을 두어 철저히 잡아서 막았는데 사노비, 즉 사천은 공노비보다 그 수가 훨씬
많았다. 사액서원에 딸린 원노비와 양반가에 딸린 반노비도 사천이었지만 거의
대부분의 사노비는 저의 주인인 상전의 집안에 붙박여 살면서 대를 물려 가내노
복으로 잡살뱅이 온갖 일을 다 하였다. 사노비는 자신의 호적단자를 따로 가질
수가 없었다. 입적자는 반드시 호적을 가져야 하는 법령을 따라 삼년에 한 번씩
호구 조사를 할 때, 각 호의 가장은 본인의 거지와 성명, 본관, 나이, 직역, 그
리고 부의 직역과, 위로 사대조에, 외조부의 성명과 본관을 적은 다음, 처의 나
이와 본관, 처의 부,조부,증조부,고조부,사대조와 외조부를 쓰고, 그 옆에 함께
거느리고 사는 자녀의 나이와 이름을 적은 뒤. 말미 아래 한쪽 귀퉁이에 가내노
비의 나이, 이름을 소상히 적은 호적단자를 관아에 보냈다. 관아에서는 이 단자
대장을 정리하여 호조,한성부,본도,본읍에 비장하였는데, 노비의 호적은 장례원
의 노비안에 올랐다. 신분이 미천하여 이름 하나 사람답게 얻지 못한 채, 키가
건드렁하니 크다 하여 '키녜', 작달막하고 톰방하게 생겼다고 '돔발이', 얼굴이
넙적한 생김새 그대로 '넙댁이'라 불리던 노비들은 단자에 발음이 비슷한 글자
'기래', '동발', '여덕' 등으로 적히기도 하였다. "어미가 종이면 그 소생은,
아버지의 신분이 무엇인가를 묻지 않고 어미의 신분에 따라 종으로 삼는다." 는
종모법을 따라 세습되는 노비의 이름은 어미 아래 낳는 대로 적히었으니, 아들
은 노가 되고 딸은 비가 되었다. 매안 이씨 선대의 문서에 적힌 종의 이름은 이
백 년 세월이 흘렀으나 아직도 먹빛이 선명하다.
솔 비 귀매 년 경인생
일소생 노 영득 년 경신생
이소생 비 영근 년 갑인생
삼소생 비 삼매 년 계해생
사소생 노 귀득 년 병진생
오소생 비 계덕 년 계유생
경인생인 계집종 귀매가 낳은 소생은 아들 둘, 딸 셋 다섯으로 이들은 모두 종
이 되었다. 그 첫 번째 소생은 사내종 영득으로 경신생이며, 두 번째 소생은 계
집종 영근으로 갑인생, 세 번째 소생은 역시 계집종 삼매로서 계해생이다. 네
번째 소생은 사내종 귀득으로 병진생이며, 다섯 번째 소생은 계집종 계덕으로
계유생이다. 그 중에 둘째 배에 낳은 갑인생 계집종 비 영근이 비부를 얻어 다
시 자식을 낳으니, 그의 소생은 모두 또 종이 되었다. 그러매 숨 한 칸 쉴 틈도
없이 바로 이어서 그 새끼의 이름을 단자 끝에 촘촘이 단필로 적어 나갔다.
비 영근
일소생 비 명금 년 병신생
이소생 노 명길 년 을묘생
삼소생 비 명분 년 갑신생 부 사노 박흥대
계집종 영근이의 첫 번째 소생은 계집종 명금이로 병신생이며, 두 번째 소생은
사내종 명길이 을묘생이고, 세 번째 소생은 계집종 명분이로 갑신생이다. 명분
이는 사내종 박흥대를 비부로 얻었다. 그러니 '귀매'라 하는 계집종 하나의 뱃
속에서 다섯 노비가 나왔고, 노비의 자식은 또 노비가 되는 법을 따라, 귀매의
딸 영근이 한테서 낳은 자식 셋까지 모두 종이 되어, 새끼 종만 여덟으로 불어
났다. 문서에 적히지 않은 나머지 종들은 여러 자손들이 분가하거나 출가할 때
딸려 보내 노나 주었을 것이다. 어미와 딸이 제 소생들을 데불고, 대를 물려 함
께 한 집에서 종을 살고 있는 이 이름들 아래, 또다른 노비의 가족이 비끌어맨
발목을 붙들고 있다.
비 선임 년 경술생
일소생 노 일룡 년 갑신생
이소생 노 후룡 년 병술생
비 양례 년 갑인생
일소생 비 다옥 년 신묘생 부 사노 유승진
노 시능 년 무술생 비 만업 년 갑신생
계집종 선임이는 경술생인데, 그 첫 번째 소생은 사내종 일룡이로 갑신생이며,
두 번째 소생은 사내종 후룡이로 병술생이다. 또한 계집종 양례는 갑인생으로
그 첫 번째 소생은 계집종 다옥이 신묘생이고 다옥이의 비부는 사노 유승진이
다. 또다른 사내종 시능이는 무술생이며 계집종 만업이는 갑신생이다. 그런즉
이 숫자는 모두 여덟이다. 도합하여 열여덟 명 종들의 이름을 이기채는 낱낱이
세어 본 일이 있었다. 그리고 그 얼굴들을 짐작해 보았다. 그들을 이미 오래 전
에 죽고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거기 또렷또렷 생생하게 적혀 있는 이름들이 꼭
살아 있는 눈구녁들 같아서 그는 전율을 느꼈었다.
"그래, 나는 이 한 많은 세상에 종이었다."
이름들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애초에 그들은 어찌 종이 되었을까. 난신적
자의 자녀 중에 아들은 목을 베고 딸은 관에 잡아들여 먼 변두리 고을 관아의
관비로 만들었으니, 이 관비가 낳은 소생들은 어쩔 수 없이 관노, 관비가 되지
만, 그 핏속에는 세월을 잘못 만난 양반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볼 수 있으리라.
또 양민의 딸이라도, 세금을 제대로 내지 못하여 체납으로 더 이상견딜 수 없게
되었을 때, 그 부모가 밀린 세금 대신 울면서 딸을 관비로 바치기도 하였다. 관
비는 비자와 기생으로 나뉘었다. 둘 다 관가에 매인 종이기는 마찬가지였지만,
한쪽은 용모와 재능에 상관없이 허드레 궂은일,잡일에 물일을 하는 계집과 아낙
이고, 한쪽은 자색이 분통 같고, 가야금,비파를 타며, 교태 아양과 춤과 노래에
몸이 익은 관기, 기생이다. 그냥 기생이라 하여도 여덟 가지 천민 중에 하나라
그 신분이 미천한데, 그나마 종이면서 기생이니 관기는 비록 그 모습이 해당화
같이 아름다워도 한낱 창기로, 해당 주읍에 객이 올 때마다 객고를 풀라고 내주
어 간하게 하였다. 관가에 출입하는 양반 중에는 이 관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다투어 끝내는 틈이 벌어지고 마는 일도 생겼다. 그리고 관기가 낳은 아들
은 관노가 되고 딸은 다시 어미를 이어 관기가 되는 것이 법이어서 모두 함께
관아에 매어 있을 때, 모녀,자매의 기생이 한 양반과 더불어 희롱하는 일이 잦
아, 풍교를 말하기가 무색한 일이 많았다. 관기 가운데는 침기가 있었다. 보통
때는 기생 노릇을 하고 내아에서 부르면 대답하고 응하여 바느질을 하는 것이
다. 여염의 안살림을 해 본 일 없는 기생에게 바느질이 당치 않은 일이었지만,
웬만한 것은 게발을 건너뛴다 하더라도, 가는누비 같은 것을 맡기면, 그 누에씨
보다도 작은 바늘 땀에 촘촘히 박아가는 선이 한 땀이라도 어긋나면 안되는 누
비 바느질, 그 중에도 가는누비를 무슨 재주로 해낼 것인가. 솜씨는 그만두고
속에서 열불이 나 못할 일이었다. 도대체 어떤 얌전한 기생이, 솜 놓은 저고리
나 바지나 두루마기 감의 온 바닥을 개미가 지나가듯 좁은 걸음으로, 한 줄도
아니요, 두 줄도 아니요, 석 줄, 넉 줄도 아닌, 수수 백, 수수 천 줄을 누벼야
하는 누비 바느질을 하고 앉아 있겠는가. 당치않은 일이었다. 그것을 알며서도
내아에서는 일감을 주는 것이다. 할 수 없이 이 기생은, 행음을 해서 얻은 비녀
나 노리개, 팔찌와 반지 같은 것을 주고 바느질 집에 가서 해 왔다. 이래서 원
성이 높았다. 이들 관비 중에 양반의 눈에 들어 그에게 속신하게 되면, 양반은
그 관비를 집으로 데려가고, 대신 자기 집에서 부리던 사비를 보내 자리를 채웠
다. 그리고 양반에게 몸이 속한 관비는 비록 종의 신분이지만 그의 천첩 노릇을
하기도 했다. 또 관기를 데리고 나왔을 경우에는 집에 가두어 가비를 만들었는
데, 노래 부르는 계집 종 가비는 사대부의 집에서 붙어 살며, 손님을 접대할 때
가창으로 봉사하였다. 이러한 공비, 사비들은
"날마다 지아비를 바꾸어 개, 도야지와 같으니, 소생은 단지 어미 있음을 알고
아비 있음을 알지 못한즉, 아비를 묻지 말고 어미를 따르는 수모의 법을 펴야
하겠다"
고 세종 13년에 말하여진 것이다.
노비의 신분 세습에 관해서 조선 전기에는, 부모 양쪽 중에 하나만 천인이어도
그 자손은 천인이 된다고 했다가, 한때는 종부법이 시행되어 양인과 비 사이의
소생은 양인을 만들기도 했는데, 아버지의 신분을 따라 종의 자식 신분이 바뀌
는 것은 옳지 않다는 양반층의 반발로, 얼마 안가서 이 종부법은 폐지되었다.
그리고는 어미의 신분을 자식이 따른다는 종모법이 시행되었는데, 말하자면 아
무리 사내 종이라 할지라도 만일 양민의 딸과 혼인하면 그들의 소생은 어미의
신분에 따라 양민이 되는 것이었고, 또 계집 종이 아무리 사대부의 자식을 낳았
다 할지라도 그는 어미의 신분을 따라 노비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외 모두
노와 비인 경우에는 할 수 없이 그 소생들도 모두 노비가 되었지만, 그 소생들
가운데 아들인 노는 양민의 딸을 만나면 그 자식들부터 양인의 신분으로 바뀌었
다. 그러나 노비의 딸은 아무리 양민의 남정네와 혼인한다 해도 하릴 없는 일이
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그 또한 아들을 낳으면 부디 양민의 새악시를 만나
그 자식 대에서부터는 부디 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빌었다. 물
론 그 간절한 소망대로 부지런히 일하거나 남다른 수완을 발휘하여 제 몫의 재
산을 지니고, 머리도 깨어, 양녀와 혼인한 공,사노들도 있었지만 그리하지 못한
경우들이 더 많았다. 그러니 나이가 차서 짝을 맞는다는 것은 종이 종을 만나
다시 더 많은 종을 낳는다는 말이나 한가지였다.
이만한 숫자의 노비를 거느리고 있는 사람이라면 벼슬도 높고 살림의 규모도 크
겠지만, 종모법에 따라 저절로 늘어난 노비의 수효가 이 사람의 재산을 늘려 주
었다는 말이 옳을 것이다. 논 열마지기를 주어야 살 수 있는 노비를 얼마나 많
이 가지고 있는가가 곧 재산의 정도를 말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많은 노비들은 오직 저의 주인인 상전의 손발이 되어 일했다. 아무리 노비라
하여도 사람인지라 제각기 타고난 성격이나 재주가 다를 것인데, 어떤 사노는
상전의 농사를 맡아서 경작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노는 상전의 이익을 위하여
장사판에 종사하기도 하였으며, 농지의 장리를 관장하는 자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노들은 농사짓는 일에 뼈를 바쳤고, 나무를 해 오거나 물을 긷거나,
집 안팎의 잡일 중에서 계집종이 할 수 없는 온갖 궂은 일들을 하였다. 그리고
계집종들은 상전의 가까이에서 몸 심부름을 하는 몸종이 되거나, 혹은 침비가
되어 바느질을 하거나, 혹은 상전의 눈에 들어 천첩이 되기도 하였지만 대개는
정지 일과 빨래, 쓸고 닦는 소제며 끊임없이 생겨나는 일들에 손바닥이 나무 껍
질같이 터지고 갈라지기 예사였다. 그리고 혹 가다, 상전과 한 집안에서 살지
않고 따로 나가 밖에 살면서, 몸으로 일하여 바치는 신역 대신 노비공을 바치는
경우도 있었다. 이 노비공은 사노가 매년 면포 두 필이고 사비는 면포 한 필 반
이었다. 그런데 사천의 노비공은 상전들의 월권으로 점점 부과액이 늘어나 드디
어는 노비들의 살가죽을 벗겨다 바쳐도 모자랄 만큼 엄청나게 가혹해지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가 영조 31년, 무거워진 노비공에 깔려 빈사 상태에 이른 사천들의 공납
품을 반절로 줄여, 사내종은 면포 한 필, 계집종은 반 필로 감하는 노비공감의
영을 내린 뒤, 엄격하게 통제하여 절대로 더 받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아예 계집 종의 노비공은 면제를 해 주어 버렸다. 뿐 아니라 영조는 노
비의 호적인 노비안과 그에 관한 문서가 비치되어, 노비로 인한 송사를 맡아 보
던 장례원을 끝내 폐지하고 말았다. 그것은 한평생 동안 무엇으로도 지울 수 없
었던 외가의 피에 대한 뼈저린 증오와 저주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종의 아드님이었다. 비록 아버지는 한 나라의 제왕이었지만 어머니는 전라
도 땅 임피의 천노 최씨의 딸로, 후일데는 임금을 낳은 숙빈이 되었으나, 처음
에는 숙종비 인경왕후가 혼일할 때 교전비로 사가에서 따라 들어온 모종이었으
니, 만일 노비 종모법을 따른다면, 아무리 아버지가 임금이라 하여도 자신은 종
의 자식인즉 사노가 되어야 마땅할 것이 아닌가. 다만 천행으로 임금은 그 어떤
일에도 부끄러움을 묻지 않는 무치여서, 종의 아들이 왕위에 올랐지만, 그는 언
제나 거꾸로 흐르는 외가의 피와 맞부딪쳐 소용돌이를 일으키곤 하여, 비 정성
왕후를 일생 한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달성부원군 서종제의 따님을 꽃 같은 배
필로 맞이하여 마주앉은 첫날밤의 첫 마디 때문이었다.
"참으로 손이 곱기도 하오."
신랑은 밀촛불 휘황히 타오르는 신방에 들어, 어루만지기에도 아까운 신부의 흰
손을 잡고 하염없이 들여다보며 찬탄하여 말씀하였다.
"본곁의 어머니가 저를 귀엽게 여기어, 시집보낼 때까지 곱게 기르노라고 일을
한번도 안 시켜서 그런가 보옵니다."
고개를 수그리며 말한 신부의 이 한 마디에 신랑은 손을 놓았다. 그리고 다시는
잡지 않았다. 평생을 두고.
저것이 내 어머니가 미천한 종인 것을 빗대어 하는 말이구나.
저것이 내 어머니 갈라터진 손을, 제 말 하며 비웃는구나.
저것이 나를 모욕하는구나.
저것이 내 피를 조롱하는구나.
깊은 수모를 느낀 영조는 다시는 돌이켜지지 않는 원통하고 분한 마음을 가라앉
힐 수가 없어, 공방으로 그 심정을 갚았던 것이다. 결국은 장례원을 폐하여 종
의 명부를 다 치워 버렸지만, 수천년을 두고 내려오던 누습은 결코 없어지지 않
아, 임금의 성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노비 제도는 깊이깊이 뿌리를 박은 채 성
하였다.
노비와 상전의 관계는 마치 서리를 튼 나무 뿌리와 견고한 지반처럼 서로 엉키
어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어떤 나무의 씨앗이 어떤 땅에 떨어
져 뿌리를 벋을 때 버슬버슬한 모래흙이라면 빨아들일 수분도 넉넉지 않거니와
지반이 실하지 못하여 작은 바람에도 뿌리가 뒤집히며 지나가는 빗줄기에도 사
태가 날 것이다. 또 너무나 박토여서 온통 메마른 흙투성이 큰 돌 작은 돌이 옹
이같이 박혀 있는 땅 속에서는 뿌리가 제대로 자랄 수 없을 것이요, 만일 목슘
을 부지하여 살아 남으려면, 제 앞을 가로막은 이돌멩이 저 바위덩어리를 비틀
어지게 외틀어지게 감으며, 그것에 눌리며, 한 모금의 물을 찾아 벋어 나가야
할 것이다. 또 썩은 웅덩이를 품고 있는 땅이라면 뿌리도 따라 썩기 쉽고, 우물
같은 암벽에 갇힌 뿌리는 벋어도 소용없이 저희끼리 뒤얽히고 꼬이다 말 것이
다. 그뿐인가, 독충이 살고 있는 땅이라면 뿌리가 벋어 나가기는커녕 중독으로
죽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지하의 어둠은 무궁하고, 토질은 비옥하여 풍요로
운 물을 머금은 땅에 뿌리의 발이 닿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반촌이라면 반궁, 즉 성균관을 중심으로 그 근처에 있는 주변 동네를 말하는데,
이를 반중이라고도 하였다. 반촌은 큰 길을 경계로 동,서 반촌으로 나뉘었다.
동반촌 언덕 위에는 유생들의 선비다운 기상 배양을 위하여 숙종조에서부터 의
논되어 영조 원년에 이루어진 숭절사가 있었다. 이곳은 불의에 저항하여 높은
기상과 절개를 보여 준 중국의 모범 태학생인 서진의 동양과 당의 하번, 송의
진동, 그리고 구양철을 숭모하여 제사하던 곳이었다. 또 동반촌의 큰 길가에는
병자호란 당시 오성 십철의 위판을 받들고, 남한 산성의 행재소(거둥때에 임금
이 머무는 곳)로 들어간 성균관 수복 정신국, 박찬미 등을 표창한 정문이 영조
3년에 세워졌다. 수복이란 조선의 단, 묘, 능, 사, 원, 전, 서원 등에서 분뇨오
물을 청소하던 미천한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반촌에 살고 있는 반인들은 주로
성균관에 소속된 하예들로 흔히 '관 사람' 이라고 불리었다. 이들은 대개 본시
개성에서 옮겨 온 고려 국학 소속 노비의 후손들이다.
고려 중기의 명신이요, 큰 학자였던 찬성사 안향은 일찍이 섬학전이라는 육영재
단을 설치하고, 국학대성전을 낙성하여 학교를 크게 부흥시키고자 사재와 사노
비 백명을 국학에 모두 들인 일이 있는데, 조선 성균관의 하예들이 바로 그 노
비의 후손들인 것이다. 이 반인들의 인구가 날이 갈수록 점차 불어나 성균관 일
을 하는 것만으로는 살기가 어렵게 되자, 조정에서는 이들에게 쇠고기 전매권을
주었다. 그래서 생긴 푸줏간을 현방이라고 하였다. 이들은 또 곡예와 가무, 음
곡을 일로 삼던 재인 백정이기도 하여, 궁중의 잡희나 탈춤 광대놀이 같은 산디
놀음에 우인으로 나가기도 했는데, 이 반인들은 어음과 곡성이 송경(고려의 서
울인 개성) 사람과 같아서, 여자가 슬프게 흐느껴 곡할 때는 마치 노래를 부르
는 것처럼 들렸다고 한다. 남자들은 의복이 매우 사치스럽고 혈기가 있어 죽음
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왕왕이 싸움을 벌일 때는 곧잘 가슴이나 다리를 찌르는
버릇이 있으매, 서울 본토막이 사람들과는 아주 다르다고 했다. 이들 중에 관비
소생은 성균관의 재직이 되고, 타비 소생은 서리가 되었으며, 재직이 장성하면
수복이 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반촌 북쪽에 단을 모시어 두고, 해마다 안향의
기일이 오면, 가기 돈과 포목을 내어 제수를 융숭하게 차리고 정성껏 제사를 지
냈으며, 안향의 후예로 성균관에 입학하는 이가 있으면
"보라, 이분이 우리의 주인이시다."
고들 했다고 한다.
실로 무엇이, 조금도 쉬지 않는 충정으로, 조금도 줄지 않는 수량으로, 몇 백
년의 세월을 두고도 변함없이 그 상전을 그리워하게 하랴. 그리고 그 길고 오랜
강물을 혈온으로 따뜻하게 할 수가 있으랴.
연재 송병선은 구한말 사람으로, 소선 숙종조의 거유이며 노론의 머리인 우암
송시열의 팔세손이다. 그는 고종 임금을 가르친 왕사였는데, 아우 심석 송병손
과 나란히 그 인품과 학문을 널리 나라안에 떨치었다. 그러다가 광무9년, 일본
이 한국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을사조약을 체결하자, 나라의 자주권을 잃은 비
분과 원통함을 억누르지 못하고 분연히 독약을 마시어 자결하였다. 의관을 정제
하고 임금 계신 곳을 향하여 북향 사배 무릎을 꿇은 채, 갈아입은 흰 옷 위로
선혈을 쏟으며 숨이 지는 연재 송병선의 발치에는, 맨 처음 이 자결을 준비할
때부터 소리없이 시중을 들던 사노 복남이가 애절하게 엎드려 있었다. 생시에야
어디 감히 차마 상전의 손을 잡아 볼 수 있었을까만, 이제 비장하고 의롭게 목
숨을 끊은 주인 마님의 발을 어루만지며 오로지 눈물로 그 발등을 적시던 복남
이는, 드디어 터지는 설움으로 상전의 몸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산발한 머리를
그 몸에 묻었다. 검붉은 원형이 송병선의 가슴을 물들이고, 복남이의 앞자락을
물들게 하였다. 피투성이가 된 상전의 몸을 제 두 팔로 감싸서 가슴으로 보듬어
안은 복남이는, 어질고 따뜻한 어버이를 잃은 애통으로 사뭇 서럽게 울면서 마
지막 가는 원혼을 배웅하였다. 그리고는 이윽고, 복남이의 품안에서 숨을 거둔
송병선의 머리를 내려놓고, 피에 물든 옷자락을 여미어 드린 뒤, 그는 상전이
미처 다 못마신 약사발의 독약을 기울여 마셨다. 창자가 끊어지는 통곡으로 상
전의 죽음을 슬퍼하며, 그릇에 묻은 약을 다 혀로 핥고 핥아 그는 상전의 뒤를
따르고자 하였다. 송병선의 시신 발치에 붉은 피를 토하고 죽은 복남이는, 죽어
서도, 생전에 그리하였듯, 상전의 묘서 발부리 아래 이만큼에, 두 손을 공손히
맞잡고 고개를 숙인 시늉으로 봉분도 나지막이 묻히게 되었다. 밤이나 낮이나
멀리 가지 않고, 꼭 부르면 바로 대답할 수 있는 그 자리에서 상전의 존체를 우
러르는 복남이 무덤 위로는, 그 상전의 손길같은 어질고 속 깊은 바람결이 언제
나 흐르고 고이고 하였다.
시공을 넘어 함께 있는 이 종을 위하여 송병선의 후손들은 연재의 묘서에 벌처
를 할 때면 꼭 잊지않고 복남이 무덤도 돌보았다. 그리고 연재 송병선의 기일이
돌아오면, 제사가 한날 한시인 복남이의 제상도 조촐하게 보아 개다리 소반에
나물 몇 가지를 차려서 송병선의 제상 아래 들여놓았다. 몇 십 년이 지난 오늘
까지도. 마치 어미의 태안에 든 태아처럼, 상전의 제상 다리 아래 감싸이듯 놓
여 복남이는 제몫의 조그만 개다리 소반을 받았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주종의
혼백을 하자리에 모신 은진 송씨 송병선의 후손들은 엄숙한 감회로 제사를 올리
었으니.
그들이 제상 앞에 기라성처럼 서서 의롭게 빛나는 조상 송병선에게 엎드리어 재
배를 할 때, 살아서나 똑같이 죽어서도 그 옆에서 상전을 무덤을 지키고, 이렇
게 제사에 혼백까지 따라 와 모시는 만고 충복 복남이가, 한자리에서 같이 그
귀한 절을 받는 것이었다.
11 무엇을 버리고
"무얼 그렇게 골똘히 생각허냐? 아까부터."
아마 강태는 집짓 모르는 척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봉천에 도착할 때까지는 한
번도 뜨지 않을 것처럼 날카롭고 무겁게 감은 눈을 실같이 열고 강모의 안색을
훑으며 강태가 묻는다.
"아니요, 아무것도."
어느결에 전주역을 벗어나 버린 기차가 덕진을스쳐 동산촌을 지나서 삼례 한내
다리 가까이 처꺼덕 처꺽 처꺼덕 처꺽, 철궤를 따라 달린다.
"착찹하겠지."
강태의 목소리가 웬일로 눅다.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르게 잠긴 그의 음성은 묵
득 그가 형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거기도 다 사람 사는 데 아닙니까."
강모가 대수롭지 않은 듯 대꾸한다.
"제법인데? 도련님. 난 또 네가 젖 떨어진 아이모냥 혹시."
"형님도 참. 내가 무슨 어린앤가요?"
"아니라니 다행이구나."
"점점...?"
엷은 웃음을 띄우는 강태한테 무안한 김에 발끈 말꼬리를 치킨 강모가, 목소리
를 낯추며
"심진학 선생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무질러 내뱉는다.
"그래?"
의외라는 표정으로 눈을 휘둥글 떠 보인 강태는 고개를 갸웃한다.
"네가 그 선생 이야기를 하는 건 좀 뜻밖인걸."
"왜. 나는 뭐 화류항 잡사나 들먹여야 격에 어울립니까?"
"언사가 곱지 않구나."
"다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것이죠."
"쓸데없이 자비하는 건 좋지 않아."
"자긍할 게 있어야지."
달리는 기차의 차창바깥으로 겨울 새벽 하늘이 희푸른 회색빛 기적에 놀라 칸칸
마다 휙휙, 어둠을 거두며 물러앉는 것이 보인다.
"자각을 하면, 자긍이 생긴다."
내가 과연 누구인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살아야 할 것인지 깨닫는 그 순간부
터, 인간은 존귀한 존재가 된단 말이다. 역사도 마찬가지야. 이미 지나간 시대,
죽은 자들의 넋두리라고 휴지처럼 구겨서 쓸어내버리면 시간의 밸설물, 한 더미
두엄만도 못한 것이 역사고, 그것이 몇 천 년 혹은 몇 백 년 전의 이야기 일지
라도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근본이요, 과정이라고 믿는다면 결코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 역사지. 그러나, 역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오늘이야. 오늘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오늘의 '나'다. 강태는 진진하게 말을 하다가 주먹 쥔 오른
손 엄지손가락을 펴 자기 가슴팍을 쿡쿡 찌르며 가리켰다.
"오늘은 역사가 될 현실이거든."
기차는 공중에 떠 강 바닥을 드러낸 한내의 다리 위, 철교를 지난다. 나는 이상
해. 왜 오늘이라는 현실, 현실이라는 오늘은 늘 그렇게 몽상적일까. 삶이 실감
나지 않아요. 내 몸이 구체적으로 그 어떤 사건을 겪고 있을 때에도, 그것은 꼭
감각 없는 껍데기가 저 혼자 몽유하는 것 같고, 그 몽유 혼몽의 무감각 안쪽에
오히려 눈뜬 내가 또 하나. 냉소로 나를 바라보는 것만 같으니. 그 두 사람이
서로 일치해 본 일이 나는 없어요.
유체와 신체 사이. 그 중간에 나는 떠 있습니다.
"막막해요."
"무엇이...?"
"이 몸과 저 몸 사이가."
"꿈을 꾸냐? 무슨 소리야? 갑자기 뚱단지 같이."
속으로 혼자서 한 말을 들었을 리 없는 강태가 핀잔처럼 강모를 샛 눈으로 본
다. 강모는 대꾸를 삼킨 묵묵함으로 창 밖을 본다. 삼례 한내 희고 맑은 모래밭
에 기러기 열을 지어 내려앉는 모습이 하도 아름답고 정취로워서 예로부터 이
고장에 일컬어지기를
"비비낙안."
이라고 '완산팔경' 중에 하나로 손꼽는 그 한내. 언제 하번 이 승경 보기를 마
음에 원하였으나, 이미 기러기 자취 끊어진 강기슭에 얼음을 이빨같이 허옇게
물고 있는 자갈밭, 을씨년스러운 엄동, 버리고 달아나며 내다보는 명승은 무정
하리만큼 삭막하였다. 전에 강모가 아직 소년이었을 적, 매안의 사랑에서 남평
할아버지 이징의가 하던 말이 새삽스럽게 되살아난다.
"그 비비낙안이 말이여, 기러기떼 나란히 푸른 물 흰 모래 백사장으로 날개를
치면서 날아와 앉는 정경을 말허는 것인가아, 안그러면 앉았다 날아가는 기러기
떼 날개들 그림자 지는 모래밭에, 댓잎같이 푸르게 남은 취죽의 새 발자국을 이
르는 말인가아. 나는 그걸 생각해 보누만."
그때 한자리에 앉아 있던 동계 할아버지 이헌의는 흰 수염을 은실뿌리처럼 드리
운 채 가느소롬 눈을 감은 듯 뜨고서, 윗몸을 천천히 좌우로 흔들더니, 웃으며
"글자그대로 읽는다면 전자가 맞겠고, 문자향을 새긴다면 후자가 맞겠고."
하였지.
창호지 덧문을 싸르락 싸락 스치는 바람 소리가 오히려 적막한 안온을 느끼게
하던 사랑의 아랫목에 옥판선지 한 장이 마치 삼례 한내 백사장처럼 하얗게 펼
쳐져 있었는데, 남평 할아버지는 거기 갈필로 메마른 노엽을 몇 잎을 쳤다.
"과시!"
동게 할아버지가 붓자취에 흡족한 탄성을 발하고, 아버지 이기채는 심중한 시선
을 모으며 종이에 찍힌 댓잎을 들여다보았다.
"젊은 잎보다 노엽이 더 칼칼하고 힘이 있어. 축축한 것 쫙 빠진 기상이 서슬이
거든. 이 댓잎 좀 봐라. 그냥 쇳소리가 나잖느냐?"
멋모르고 덩달아 곁에 앉아만 있는 강모한테, 상기된 낯빛으로 흥겨운 마음을
드러내던 동계 할아버지는, 그 대를 큰사랑 벽장문에 붙여 두라고 했었다.
"남평의 대 중에서도 이놈이 아조 일품이겄어. 동지 섣달 눈바람 아랑곳없이 외
나 설한풍 받어서 꼿꼿이 곧추선 이 기색이 참 헐 말 있게 생겼다."
이런 것이 곧 풍죽이어니.
댓잎 같은 기러기 발자국 흔적조차 느낄 수 없는 삼례 한내 겨울 강, 사위어 쓸
쓸한 모래톱이 저만큼 지워질 듯 내려다보이는데. 하이얀 눈을 머리에 인 설죽
의 늙은 잎을 솟구치게 일으키는 높새바람 부는 대신, 검은 기차화통이 가쁘게
내뿜는 연기와 증기만 빈혈의 모래사장을 장막으로 가리운다.
"백제가 망하고, 후백제가 망하고, 고려에는 사무치는 미움을 골수에 받은 땅.
마한의 옛터. 이 전라도 백성들이 왜 이처럼 반골 야인의 기질로 한세상에 저항
을 하며 풍류에 몸을 싣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도 있으리라."
심진학 선생은 말했었다.
저항과 풍류.
"어쩌면 이 두가지는 아주 상반되어 보인다. 그러나 이미 이루어 가진 자는 저
항하지 않으며, 억울할 일 없는 자, 혹은 세상을 거머쥐려는 욕망으로 들끓는
사람의 검붉고 걸쭉한 혈관에는 풍류가 깃들지 못한다. 풍류는 빈 자리에 고이
고, 빈 자리에서 우러나며, 비켜 선 언덕의 서늘한 바람닫이 이만큼에서 멀리
앉은 세상을 바라보는마음이 아니면 울리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들은 한 바탕 한 뿌리에서 뻗은 두 가쟁이다."
이명처럼 맴도는 선생의 음성이 뙈애액, 기적의 비명에 먹힌다. 아, 나는 지금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새로운 땅 만주로 가고 있는데, 왜 지나간 날 들었던 멸망
의 옛이야기만을 이다지도 끝없이 떠올리고 있는 것일까. 한번도 실체로서 오늘
을 살지 못한 채, 오늘이 어제가 되면 그제서야 비로소 그 어제에 발목이 묶여,
헤어날 길 없는 어제를 오늘 사는 어리석음. 그것이 싫다.
강모가 머리를 털어내는데, 강태가 별안간 거칠게 팔꿈치를 툴 쳤다. 깜짝놀란
강모가 엉겁결에 눈을 둥그렇게 뜨고
"왜?"
하며 강태를 바라본다.
강태의 눈딱지가 꺾이며 모가 섰다.
"왜 그래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ㄹ한 강모를 금방이라도 내리찍을 듯한 시선우로 콱 누른
강태가 음성을 낮추어 죽인다.
"저쪽을 봐."
거두절미를 한 그 말을 듣는 순간 강모는 저도 모르게
"들켰구나."
생각했다. 가슴이 퉁 내려앉으며 우끈우끈 뛰기 시작했다. 틀림없이 수천 숙부
기표나 이기채가 뒤쫒아 그를 잡으러 온 것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의 몸이 긴
장으로 덜멩이처럼 뭉쳐 웅크러든다. 자, 이제 어떻게 하나. 그냥 이 길로 튀어
달아나는 방법과, 점잖은 두 분이 중인환시리에 큰 소리 내어 망신은 시키지 않
으실 터이니 우선 rq게 따라 내리는 방법, 둘중에 하나밖에 다른 묘리가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누굽니까?"
강모는 강태가 시키는 대로 그의 눈끝을 좇아 제 등뒤를 돌아보는 대신, 먼저
숨소리로 나지막이 물었다.
"돌아보면 안다."
꽁지를 누르는 그 목소리에 실린 힘이 암만해도 의아하다. 만일 강태가 가리키
는 사람이 강모의 짐작같이 기표나 이기채라면 이처럼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턱
짓을 하고만 있을 리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나한테 불리한 사람이 분명한
모양인데, 대체 누구인가?
비로소 돌아본 강모는 사람들 틈에서 쉽게 아는 얼굴을 찾지 못했다. 이제 막
부유스름 깨어나면서 웅성웅성 부산해지는 기차칸 뒷문 쪽 좌석 언저리를 눈으
로 더듬는데, 마땅찮은 기색이 뒷목에까지 뻣뻣하게 차 오른 강태는 미동도 하
지 않고 꼿꼿이 앞만 바라보고 있다.
"누가 있길래."
하다가 그만 강모는 악, 벌린 입을 닫을 수가 없었다. 아연실색을 하고 만 것이
다. 기차칸 저쪽 끝 문간에 달린 변소 옆 의자 안쪽에 허름한 차림으로 동그맣
게 앉아 있는 것은 오유끼였다. 냉큼 강모가 그네를 알아보지 못한 것은 너무나
뜻밖이었던 탓이리라. 강모는 은연중에 기표나 이기채임직한 사람을 찾고 있었
으니까. 여자한테는 아예 눈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인가.
오유끼라니. 일단 강모는 오유끼한테서 시선을 거두고 앞쪽으로 몸을 돌렸다.
사태가 하도 어이가 없어 저절로 한숨이 터져 나온다.
"약속을 한 거냐?"
애써 참는 빛이 역력한 강태의 말에 강모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가 차서 중
치가 막힌다.
"나도 지금 놀라지 않습니까아."
"그럼 아니란 말이냐?"
차가운 눈으로 강모를 노려보는 강태의 억누른 어조에, 염치가 없고 무색하여
강모는 귀밑까지 벌겋게 달아오른다. 그는 부끄러웠다.
"모욕하지 마십시오."
잇바디 사이로 겨우 이 한 마디 밀어내고는 더 말이 안 나와 어금니를 물어 버
린 강모에게 강태는 종주먹을 댄다.
"누가 누구한테 화를 내는 거냐, 지금. 무얼 잘했다고?"
"아 내가 세 살 먹은 어린애요? 아무리 화류항 청등홍가 주색에 쩔었대도, 이런
길에 계집을 차고 갈 넋빠진 놈이 어디 있겠소?"
"말인즉슨 그러한데, 시방 눈앞에 실제로 벌어진 일은 네 말같이 안돼 있어, 그
렇지?"
"그럼 자초지종을 물어나 보고 건너짚든지."
"말 잘했다. 그래, 좀 물어보자. 대관절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나도 모릅니다."
"뭐?"
무지른 강모의 대꾸에 강태도 기가 막힌지 역시 입을 다물어 버린다. 아니, 저
년이 도대체. 무슨 마음을 먹고 저렇게 천연덕스럽게 저기 앉아 있는 것일까.
강모가 다시 목을 틀어 뒤를 돌아보았을 때, 오유끼는 옆자리 노인네 한테 고구
마를 한 개 목어 보라고 껍질까지 벗겨 주며 권하고 있었다. 아마 기차칸에서
요기를 하려고 집에서부터 쪄 온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복장도 전혀 평소의
오유끼 같지가 않았다. 아까 어쩌면 그래서도 얼른 그네를 못 알아보았는지 모
른다. 그 차림은, 어디 전주 매안간같이 가까운 거리가 아니라 먼 길 가려고 작
정한 사람처럼 아예 펑펑한 몸뻬를 터억 꿰어 입고, 윗도리는 솜놓은 핫저고리
풍신하게 입은 위에다, 중늙은이가 몇 년 입었다 벗은 것 같은 고동색 마고자를
아무렇게나 걸친 것이었다. 그런데도 태생이 있는지라 자르르 어딘지 모르게 아
양스럽고, 눈웃음 치는 몸짓 탯거리가 여염의 아낙하고는 다른 것이 한눈에 멀
리서도 보였다. 고구마 얻어먹은 노인네가 합죽한 입시울을 연신 호물거리며 오
유끼한테 무어라고 자꾸 말을 붙인다. 오유끼가 웃는다.
"어디까지 가느냐."
"누구랑 가느냐."
"혼자 가느냐."
"무엇 하러 가느냐."
입 모양이나 말하는 품이 아마도 이런 따위 질문을 하는 것 같다. 그것은 정말
강모가 오유끼한테 묻고 싶은 말들이었다. 설마 네가 나를 따라오는 건 아니겠
지? 안면 있는 사람들끼리 우연히 같은 기차를 탈 수도 있는 일 아닌가. 오유끼
는 오유끼대로 솝리(이리)나 어디쯤 갈 일이 생기지 말란 법도 없으니. 이제 곧
내릴는지도 모른다. 기차는 전라선 가냘픈 지류에서 호남선 물목으로 들어서려
한다. 그러나 그네는 이리에서 내리지 않았다. 내리기는커녕 단팥죽 장수가 손
수레를 밀고 복잡한 차내의 승객과 봇짐 사이를 용케도 누비고 다니면서, 구슬
픈 듯 독경하듯 단팥죽을 사라고 외자, 두 손을 까불어 그를 부르더니
"머가 맛나요?"
묻는 모양인지 생긋 웃기까지 하면서 장수와 몇 마디 나누고는 고개를 갸오록
빼밀고 손수레 선반에 얹힌 군것질감을 이것 저것 사는 것이었다. 그러는 모양
은 조금도 급할 것이 없어서 누구를 서둘러 찾으려는 것 같지도 않아 보였다.
오유끼의 모습이 하도 태연하고 느긋하여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강모가 초조해
졌다. 그렇지만 강모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굳이, 저 여자와는 이제 무
관하다, 고 생각을 누르며, 공연히 긁어부스럼으로 그네 앞에 나타나 일을 키우
는 것보다 조금만 참아 보자, 대전쯤에서 내릴는지도 모르지, 눈을 감았다. 하
지만 오유끼는 대전에서도 내리지 않았다. 호남선 지선에서 기차는 경부선 간선
으로 빨려들어 경성을 바라보며 철컹 처끄덕, 쉬임없이 달리는데 오유끼는 대관
절 어디로 가는 것일까. 만일에 자기를 따라 나섰다면 행여라도 강모를 놓칠까
두려워 벌써 아는 체를 몇 번이나 하고도 남았을 오유기가, 눈길조차 이쪽으로
는 흘리지 않는 것을 보면, 아예 강모는 처음부터 그네의 안중에 없는 것도 같
았다. 나는 너한테 과히 섭섭잖게 계산을 해 주었다. 그리고 분명히 우리는 헤
어졌다. 이제 와 우리가 다시금 이 좁은 기차칸에서 설령 마주친다 하여도, 그
것은 이미 관계를 정리한 장부를 우연히 넘기다 시선이 머문 것과 무엇이 다르
리오. 청암부인의 마지막 임종을 받쳐 준 그 베개 아래 눅눅한 습기가 눈물같이
배어 있던 돈 삽백 원. 명주 수건은 노르끄름히 청암부인의 체취를 머금은 채,
마치 이서러운 삼백 원을 품에 안아 감싼 듯 돈을 감아 싸고 있었지. 운명 앞에
바치는 공물처럼 그것은 가련하고 경건했었다. 나는 그 돈을 너 오유끼한테 다
주었다. 그것이 단순한 돈 아닌 것을 너는 꿈에도 모르겠지만, 나도 끝내 말하
고 싶지 않지만. 그리고 전주천 냇물가 다가정의 살림살이 온갖 호화로운 가재
도구와 가지각색 패물이며 비단 이불, 비단 옷, 집값 들을 그대로 다 두고
"네가 남아 살기에 그다지 불편치는 않을 것이다."
오로지 빈 몸 하나 신발 신고 떠나온 강모였으니. 노류장화 길거리에서 어다가
다 만난 여인, 그 꽃은 스치는 손님도 많을 터이니 꼭 강모가 아니라도 사람만
새로 바꿔 들이면 그네로서는 또 새정 붙이며 얼마든지 연명할 수 있을 법했었
다. 더구나 그 살림살이를 다 그대로 두고 처분도 하지 않은 채 무조건 강모를
이처럼 다급히 따라 나서기에는, 그간 오유끼가 보인 가구 집기 애착이 탐욕에
가까웠으므로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너, 저 여자를 어쩔 셈이냐?'
"아마 나하고 상관없을 겁니다."
밑둥을 자른 이 말에 강태 낯색이 노여움을 못 이겨 노랗게 질린다.
"이 세상에 계집질하는 사내가 너 하나냐? 허지만 너같이 우유부단, 그 꼴을 당
하고도 맺고 끊지를 못해서 질질 끌려 다니는 위인도 몇 안될 거다."
"누가 맺고 끊지를 못해요?"
"저 여자 꼴을 보면서도 그런 말이 나와?"
"나는 진즉에 다 맺고 다 끊었습니다. 제 발 가진 계집이 제 돈 주고 표 끊어서
제 갈 곳 어디를 간단들, 그것이 무어 그리 대숩니까?"
"그랬으면야 오죽이나 좋겠는고."
강태가 전주부청 파면 사건까지 밑바닥에 깔면서 비아냥대는 것이 강모의 비위
를 발칵 뒤집었다.
"내, 가서 속시원히 물어 보고 오지요. 만일 형님 말씀대로 나를 따라가는 것이
라면 멱살을 잡아 비틀어서라도 기어이 끌어내 버릴 터이니, 짐 될까 걱정은 미
리 하지 마시오."
"되는가 보자."
그런데 꼭 이말을 멀리서도 듣기나 한 사람같이 조금 머칫거리더니 옆엣사람한
테 무어라 중얼거린 오유기가 부시럭부시럭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이었다. 그러
면 그렇지. 내 짐작이 옳았다. 저도 모르게 강모는 마음이 놓여 긴 숨을 내쉬었
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주춤거리며 아장아장, 덜컹거리는 변소에 들어가 한참
이나 있다 나온 오유끼는, 강모가 노려보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시 아까
그 자리에 아주 깊숙이 들어앉았다. 저 애가 혹시나 경성에라도 가는 것 아닐
까? 어차피 떠도는 몸인데 새 일자리를 찾아서 기왕에 큰 물로 나가 보는 것일
는지도 몰라. 그렇지 않다면 여기까지 오도록 저렇게 딴전만 피울 리는 없지.
허나, 오유끼는 경성에서도 내리지 않았다. 평양을 지나 신의주를 향하여 차창
이 온통 눈얼음에 뒤엎이도록 달리고 달리는 기차가 밤이 찾아왔지만, 오유끼는
아까 처음 그 행색 그대로 여전히, 지나가는 손수레를 불러 세워 군것질거리를
사고, 장수와 몇 마디 새실새실 웃으며 농짓거리를 주고받고, 옆자리 노인네한
테 양갱을 권하며 지칠 줄 몰랐다. 지친 것은 강모였다. 오유끼는 강모의 존재
를 전혀 모르는 것 같은데, 강모의 신경은 온통 오유끼한테로 쏠려 팽팽히 곤두
선 줄이 금방이라도 툭, 터질 것처럼 아팠다. 아아, 내가, 너보다 더한 것을 다
버리고 지금, 나조차도 버리고 떠나가는데, 네가 감히 무엇이라고 나를 따라오
는 것이냐. 절대로 그럴리 없겠지마는, 만일에그렇다손 치더라도 나는 켤코 너
를 데리고 살지는 않으리라. 네 인생과 나는 별개다.
"기독교인들 성경책을 보면, 예수를 처형해야 하는 본디오 빌라도가 집행장 한
쪽에서, 나는 이 일과 상관이 없다는 표시로 대야에 물을 떠오라 하여 손 씻는
장면이 나오지. 은대야에 손을 깨끗이 씻고 씻으면 그 피와 무관해질 줄 알았던
모양이야.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빌라도의 이름은 씻어지는 대신 몇 천 년 동안
기독교의 중요한 기도문에 각인되었단 말이다. 사도신경이라는 걸 일거 봤냐?
거기, 예수가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라고 나와 있거든. 명문화된 거지. 너도 마찬가지야. 빌라도가 손 씻는 것마냥
너는 저 여자를 모른 체하기로 한 것 같은데. 소용없는 짓이다. 내가 보기엔 저
여자는 널 따라가는 거야."
왜, 무엇 때문에. 나는 모든 것을 다 버렸는데. 이제는 가진 것도 없는데.
이때였다. 마침 기차는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들어서는 참이라 검표를 하려고
차장이 두 사람 들어섰다. 기차칸이 술렁거리며, 누군가 표없는 사람이 무임승
차를 했던가, 우두두둑, 화적 튀듯이 눈 깜작할 새 건너칸으로 달아난다. 젊은
차장은 고막이 찢어지게 호각을 불며 짐보퉁이와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헤치고
구둣발로 뒤쫒아 뛴다. 사람들이 불안하게 힐끗힐긋 웅성인다. 나이가 좀 든 차
장은 그런 일에 이골이 난 사람답게 그들이 사라진 쪽을 일별하더니, 노련한 솝
씨로 터각, 토각, 조사한 차료에 구멍을 뚫는다.
"표 잘 뒀지?"
"예."
하는데, 바로 귀밑에서 표 끊는 소리가 금속성으로 차갑게 들린다. 그 순간, 이
게 어찌 된 일인가.
"아저씨, 저 표 정말로 끓었단 말이에요. 사람들도 아까 다 봤어요오. 할아버
지, 말 좀 해 줘요. 아이, 어떻게 해애."
울음에 목이 메어 어쩔 줄 모르면서 발을 동동 구르는 목소리는 오유끼의 것이
었다. 아마 검표할 때 표가 없어 걸린 모양이었다.
"아 글세 가만 좀 있어요. 시끄럽게 하지 말고."
멱을 틀어쥔 음성으로 오유끼를 한 대 후려칠 것처럼 윽박지른 차장은, 사나운
눈초리를 부릅떠 퉁방울을 굴리며 한 손으로 오유끼 등을 떠민다.
"허튼 수작 부리지 마."
윽박지르고는 오유끼 앞 좌석에 앉은 숭객에게 그는
"손님, 표 좀 봅시다."
하였다. 그 손님은 중절모 모자테에 꽂아 둔 차표를 뽑는다. 이제 더는 모른 척
할 수가 없어 강모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오유끼를 뚫어지게 노려보았
다. 강태는 이쪽에 대하여 아예 아는 체하지 않고 그냥 차창 바깥만 내다본다.
바깥은 칠흑이다. 압록강을 건너고 있는 것일까. 오유끼는 강모가 벌떡 일어나
제 앞을 가로막는데 조금도 반가워한다거나 놀라지 않는다. 오히려 강모의 시선
을 피하며 고개를 떨군다.
"어떻게 된 거야?"
강모가 쥐어질러 묻는다. 미처 무어라고 오유끼가 대답도 하기 전에 차장은 오
유끼의 등을 다시 툭 밀어뜨리며, 앞으로 가라고 턱짓을 한다. 차장은 나이 한
사십여나믄 되어 보이는 남자로 체격이 건장한데다가 제복에 모자에 붉은 완장
에 자못 기세가 등등하여 몹시 위압적이었다. 오유끼는 비척 넘어질 뻔 하면서
뒷발굽 차는 염소처럼 뒤로 발을 뻗댄다.
"가요, 얼른."
거친 손길로 왁살스럽게 오유끼 팔을 낚아챈 차장이 , 난처하여 벋장대같이 서
있는 강모를 힐끔 쳐다본다. 비키라는 시선이다.
"이 사람이 무얼 잘못했습니까?"
강모가 오유끼의 한쪽 팔을 보살펴 잡는 시늉으로 물었다. ]
"당신은 누구요?"
"예, 제가 좀 아는 사람인데요."
"그래요오?"
차장은 강모를 위아래로 휘익 마실러 보더니 잘라 말했다.
"보면 모릅니까? 무임승찹니다."
"왜, 표 안 끊었어?"
강모가 오유끼를 보고 물었다. 오유끼는 거의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이었다. 아
니 한쪽 눈구녁 눈귀에서는 벌써 참느라고 충혈된 눈물이 빠짓이 배어나오고 있
었다.
"전주서 분명히 끓었는데, 없어졌어요."
"여태까지 검표할 때마다 어떻게 했어? 차표 검사 여러 번 했잖아."
"그게 이상해요. 내내 있었거든. 아까 변소 갔다 올 때 빠졌는가?"
"어디다 뒀는데?"
"여기."
오유끼는 몸뻬 허리춤 안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또 한번 잘 찾어봐."
"응."
이 여자는 참 놀라운 데가 있다. 강모는 생각하였다. 버리고 떠나는 계집이 뒤
쫒아 질기게 따라오는 것이 결코 혼감할 일 아닌데다가, 구경 만난 뭇사람들이
수군수군, 사태마저 이처럼 망신스럽고 난감하게 되어 버린 마당에, 칠칠치 못
한 계집의 차표값까지 벌금 몇 배로 얹어 엄청나게 물어 주어야 할 판인데. 오
유끼는 이 같은 위기에서 강모를 만났다고 하여 구원이나 받은 것처럼 호들갑스
럽게 원정을 하지도 않고, 저를 버리고 가는 사내를 뒤쫓다 당하는 이 봉변을
원망하지도 않고, 전주에서 신의주까지 가까운 거리도 아니언만 그 동안 내내
강모한테는 기척 소리 하나 내지 못한 채 숨죽이고 오는 수모와, 끝내 강모도
국경을 넘도록 자기한테 아는 체 안하는 모욕을 푸념하지도 않고, 그 모든 것들
이 살 속에 스며 흔연한 얼굴로
"또 한번 잘 찾어봐."
라고, 무뚝뚝하게 나무라는 강모에게 그네는 그냥 아무런 경계도 없이
"응."
이라고 한다.
그 방심의 '응'이 주는 무장 해제. 그것은 아무도 흉내낼 수가 없다. 오직 이
여자만이 그렇게 오탁의 뒤엉킴 속에서도 순간 천진무구한 어린아이처럼 마음에
찌꺼기 한낱 끼이지 않은 본빛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강모는 물끄러미 오유
끼를 바라보았다. 오유끼는 마고자 겉주머니 속주머니부터 차근차근 뒤져 나가
다가 구려서 쥐어 보기도 하고 털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차표는 없었다. 이번
에는 찬찬히 몸뻬 겉주머니부터 더듬어 들어갔으나 역시 차표는 나오지 않았다.
"기차 똥통에다가 빠뜨렸는가 봐."
느닷없이 강모가 나타나는 바람에 잠시 지체했던 차장은, 용수만 씌우지 않았지
영락없이 포승 묶은 죄인 몰 듯이 큰 소리로 주변 이목을 집중시키며, 오유끼를
기차칸 꽁지에 붙은 역무실 쪽으로 밀고 갔다. 강모는 어쩔 수 없이 주춤주춤
그네 곁을 따라가고 있었다.
"할 말 있으면 역무실로 오시오."
라고 차장은 강모한테도 명령조로 말했던 것이다. 그 꼴을 냉정하게 지켜보던
강태는 혀를 한번 차고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깎아 놓은 대나무처럼 시퍼렇게
날을 세우고 곧추앉은 강태의 꼿꼿한 자세가, 강모한테는 울컥 모멸감을 느끼게
하였다.
죄 없는 죄.
라는 말이 밑도 끝도 없이 얼음칼처럼 강모 가슴에 꽂힌다. 형님은 죄 없어서
나를 이렇게, 내 죄로 무안하게 하십니까. 그리고는 이상하게도, 내 죽을 때까
지 기어이 오유끼를 데리고 다니리라, 잘난 형님 보라고 아주 꼭 형님하고 붙어
살면서 이 꼴을 다 보이리라, 싶은 앙심이 부글부글 고이면서 소리없이 끓어 올
랐다. 결국 오유끼는 전주에서 신의주까지의 기차 요금 세 배를 불고, 미농지로
만든 간이 차표를 한 장 신주단지같이 모시어 받아든 뒤 제 자리로 돌아갔다.
물론 그 돈은 강모가 냈다.
"이 돈도 있는데."
하면서 오유끼가 미안하다는 낯바대기로 남 앞에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몸뻬 고
의춤을 헤집어 꺼낸 것은, 명주 수건에 싸인 삼백 원 이었다. 그것을 본 강모는
그만 오장이 뒤집혀 하마터면 오유끼의 뺨을 후려 칠 뻔하였다. 기왕에 주어 버
린 돈인데,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일생 동안 다시는 그걸 내 눈앞에 보이게 하지 마."
어금니가 부스러지리만큼 악물고, 강모는 다만 그렇게 말하였다. 그리고 봉천에
서 그들은 내렸다. 아아, 나는 과연 무엇을 버리고 여기까지 떠나 온 것일까.
12 그을음 불꽃
"쯧.꽃니야."
그을음이 길게 오르면서 일룽거리는 등잔불 밑에 꼬부리고 앉아 붉은 헝겊 조각
을 만지고 있던 계집아이는, 여남은 살이나 되었을까, 제 어미가 혀를 차며 부
르는 이름에 움찔하여 손짓을 멈춘다. 소리를 누른 어미의 음성에 나무라를 기
색이 역력한 때문이었다. 손짓만 멈추었을뿐 그대로 쥐고 있는 다홍색 헝겊말고
도 계질아이의 무명 치마 앞자락에는 남색, 노랑, 진분홍, 초록의 헝겊쪼가리가
세모, 네모, 여러 장 놓여 있었다. 그 중에 어떤 것은 제법 길고 넓었지만 아닌
것은 그저 제 손바닥만큼씩이나 자잘하다. 그 색색 가지 헝겊 조각들은 어둠을
머금은 주황의 등잔 불빛을 받아 말록달록 요기를 띠어, 본디 제 색보다 오히려
더 요려하게 보인다.
"너 멋 허냐. 시방. 오밤중에. 잠 안자고."
헝겊 조각이 수북한 계집아이 꽃니의 무릎 옆에 놓인 색동 실패를 집어 반짇고
리에 담으며 어미 우례가 묻는다. 말이 묻는 시늉이지 미리 하는 짓을 다 알고
오금을 박는 소리다.
"기양."
"기양?"
"상보 맹글라고."
"왜. 누가 상보 없어서 밥상 못 채린다고 허디야?"
"아니."
"아닌디 왜 꼭 지금 허니라고 그리여? 그거이 무신 숨넘어갈 일이간디. 아무리
에린 거이라고 그렇게 때를 모르냐, 긍게."
어미는 혀를 한 번 더 차고는, 묶어 둔 주둥이가 벌어져 풀린 채 쑤석거려진 헝
겊 보따리를 웃목에서 꽃니 앞으로 끌어 당긴다.
"얼릉 치워라."
그 말에도 계집아이는 아직 미련이 덜 가신 듯 손을 머뭇거리다가 마지못해 제
치마 앞자락의 헝겊 조각들을 가지런히 챙겨 보따리 위에 올려 놓는다. 쓰다 남
은 자투리 헝겊을 채곡채곡 쌓아 모아 놓은 보따리 속에는, 넓고 좁고 길고 짧
은 쪼가리들이 물색도 선연하고 종류도 각색으로 섞여 있다. 도톰한 비단 바탕
에 윤이 반드르르하고 무늬가 정교한 요홍 모본단이며, 그보다 얇고 보드라워
손에 감기는 명주로 수화주, 왜주와 화방주에, 진보라 가지색, 쑥색, 북청, 자
줏빛 조선명주, 그리고 치자물 오련한 항라와 청, 홍 갑사, 연두 숙고사, 연분
홍, 옥색의 모시 조각들. 두껍고 엷어 사철이 두루 섞인 감이나 가위질한 자리
로 보아. 이것들은 한두 해가 아니고 여러 해를 걸려 바느질감이 있을 때마다
남은 것을 한 조각 한 조각 정성스럽게 모은 것인 성싶었다. 단정하지만 몸때가
가무름하게 밴 바람벽에 대나무 횃대가 가로 걸리고, 큰 세간이라고는 묵은 소
나무 반닫이 하나와 낮은 장이 웃목 한 쪽에 나란히 있을 뿐인 부들자리 방아네
그 물샐 고운 비단 헝겊들은 얼핏 가당치 않게 보이기도 하였다. 서른의 문턱을
넘어선 어미 우례는 그만주고라도, 남들 같으면 한참 앙징맞게 예쁜 옷을 입고
자랄 나이의 꽃니도, 검정 물들인 무명 돔방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는 것이 고작
인지라, 꽃니는 아주 어려서부터도 유난히 어미의 헝겊 보따리를 좋아하였다.
우례도 그랬지만, 본디 노비는 색 있는 옷을 입지 못하니, 꽃 니는 이제 나이
먹어 처녀가 되고 혼인하여 아낙이 된 뒤에도 그렇게 검정 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을 것이었고 긴 앞치마를 두를 것이었다. 그것이 종의 옷이었다.
늘 자고 새면 날마다, 궂은일, 거친일, 물 만지는 일을 해야하는 종의 흰빛이면
누가 당해 낼 수 있겠는가. 금방 거먹투성이가 되고 마는 것을 그때마다 바꿔
입을 옷도 없거니와, 일일이 뜯어서 빨래하여 풀 먹이고 꿰매야 하는 바느질을
할 겨를 또한 없으니, 겨우 저고리나 흰 것으로 입고, 치마는 일 속에서 뒹굴어
도 검는 줄 모르는 검정으로 입게 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그런 실용의 뜻 말고
도, 색은 신분을 나타내는 중요한 징표가 되기도 하였으니.
백제에서는 법으로 복색을 정하여, 육품 이상은 자의, 십일품 이상은 비의, 십
육품 이상은 청의를 입게 하고, 왕은 소매가 넓은 자포에 청색 비단 바지를 입
었다. 또 관인은 붉은 관복에 품위별로 각각 다른 색대를 띠게 하였는데, 칠품
은 조(검정), 구품은 적, 십품은 청, 십일,십이품은 황, 십삼,십사,십오,십육품
은 모두 백색띠를 띠었다.
또 고루려에서는 자비, 천비, 녹으로 색의 순위를 정하고 품계에 따라 입게 하
였으며, 악공들은 연주할 때 자색 비단으로 지은 모자 자라모에 자색 얇은 비단
으로 만든 띠를 허리에 감아 둘렀고, 신라에서는 자의, 비의, 청의, 황의로 색
의 순위를 정하였다.
비색은 약간 황색이 감도는 홍색이다. 이 삼국이 모두 자색을 가장 높고 귀한
색으로 숭상한 반면에, 황색은 낮은 것으로 여기어, 신라에서는 심지어 귀족인
진골녀와 육두품녀는 그 옷에 자황색 쓰는 것을 금하고, 오두품녀에게는 자황과
황색을 금하였다. 그것은 하위색인 때문이었다. 그러던 것이 오히려 고려에 와
서는 거꾸로 바뀌어, 백성이 황색 옷 입는 것을 금하고, 귀족들이 그 색을 입었
으며, 포에 황색을 쓰고 치마에도 쓰도록 하였다. 그러다가 조선에 이르러서는
다른 모든 색을 제압하고, 황색이 최상위의 중앙색이 되었다. 드디어 왕의 곤룡
포를 비롯하여, 왕가에서 황색과 황지색을 사용하게 되니, 세종 10년 이월에는
나라 안 백성들의 대소,남녀를 막론하고 황색 의복 입는 것을 금하였는데, 다시
세종 26년 시월에는 황색에 가까운 색조차도 모두 입지 못하게 금하고는, 그 이
듬해 팔월, 또다시 모든 신하 된 자의 황색 사용 금지령을 내렸다.
그러니 색은 이미 다수난 물이나 빛깔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 법이 그어 놓은
금 아래 사는 한, 입으라 한 색을 거역할 수 없고, 입지 말라한 색을 제 마음대
로 입을 수는 없는, 이 색에서 저 색으로 넘나들 수 없는 경계선을 날 세우고
있는 한세상이었다. 왕은 오채 찬연한 색의를 입고, 대신들은 머리에 푸른 비단
을 곱게 입혀 만든 청라관이나 진홍색의 얇고 고운 명주로 만든 강라관을 쓰고
노란 가죽으로 지은 황혁리를 신던 고규려 시절, 범민 서인들은 거무스름한 주
황빛의 거치로 굵은 베옷 갈의를 입었다. 그래서, 너절한 옷을 입은 천한 사람
을 불러 갈부라 했다. 이렇게 색을 엄중하게 세워 규제하는 것은, 입은 옷만이
아니라 일상에 쓰는 보자기에 까지 적용되었는데. 조선의 태종 8년에, 전사재감
이진이라는 사람이 일이 있어 한양으로 입경할 때, 데리고 가던 그의 노복이 황
색보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을 본 사헌부의 하금 이속 김을지가 그 보자기를
빼앗으려고 덤벼들었다. 당시에 황색은 중국 천자의 전용 색깔이라 하여 사용이
금지되어 있는 때문이었다. 관아의 일개 아전에 불과한 김을지가 조정의 조관인
이진의 종이 들고 있는 보자기를 내놓으라 고함치는 것을 보고, 같이 있던 사윤
김조가
"무엄, 방자하다."
고 크게 나무라며 그를 꾸짖었으나
"법이 더 지엄하오이다."
하며 끝내 물러서지 않고 버티었다. 행인들이 오가는 길목에서 김을지와 실랑이
를 하던 이진, 김조는 결국 노복조차 보는 앞에서 봉변만 당하고 하릴없이 보자
기를 빼앗기고 말았는데, 이 일이 위에 알려져, 두 사람은
"금령을 어겼다."
하여 각각 평주와 수원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고, 김을지는 하급 이속으로서 감
히 조신을 모욕했다 하여 곤장을 맞고 멀리 쫓겨난 일이 있었다. 그로부터 육십
년이 지난 예종 원년에는, 서민이 붉은 물 들인 옷과 붉은 물 들인 보자기를 입
고 쓰는 것을 금하는 영을 내렸다. 그러다가 세종 28년 의정부가 복색을 어찌
정하여야 할 것인지 조정에 상계한 것을, 집현전에서 말하기를,
"대홍색 염색은 값이 비싸 민간에서는 갖추기 어려우나, 혼례지가와 대소,남녀
는 서로 다투어 대홍색 의상을 착용하고, 가난한 사람까지도 이를 따르고 있으
므로, 일품벼슬부터 유음자제의 복장이나 부녀자의 속옷, 그리고 그 외에도 홍
색 겉옷 착용을 금하고, 대소,남녀 의상에도 금하고, 의복 속에 단목으로 염색
한 소홍도 금하게 한다."
하였다.
그런데도 사대부에서부터 말단 이속의 천인에 이르기까지 홍색 옷을 좋아하여,
점차로 홍색 입은 사람은 늘어만 갔다. 홍색 중에도 그 빛이 투명하면서도 깊고
선연한 색을 내는 홍화색은, 누구라도 소원을 하는 색 중의 색이었다. 홍람이라
고도 하며 홍화라고도 하고, 그냥 잇꽃 혹은 이시라고도 하는 붉은 꽃, 여름이
면 주황색 꽃을 가지마다 줄기마다 피우는 이년초 국화인 홍화를 따서 만드는
이 홍화색은. 꽃잎을 도꼬마리 잎으로 덮어 구더기가 나도록 삭혀서 말린다음,
항아리에 연수를 붓고 여기에다 말린 홍화를 넣어, 짧게는 너댓새, 아니면 오래
둘수록 좋은 물이 우러나오니 길게는 두어 달 가까이 담그어 두었다가, 그 꽃물
을 고운 체나 무명 겹주머니에 밭쳐, 위에 떠오르는 누런 빛깔의 황즙을 걷어
낼 때, 끓는 물을 조금씩 넣어가며 황미를 완전히 제거해야 붉은 빛만 걸러지는
홍화색. 그러나 그것은 아직 홍화색이 아니다. 명아주나 쪽풀 대궁 혹은 홍화줄
기를 태운 재나 콩깎지 재의 깨끗한 재즙을 꽃물에 넣어, 첫물은 빼버리고, 다
시 끓인 맹물을 부어 따로 받았다가. 두 번째 재즙을 칠 때에만 비로소 고운 홍
색이 나온다. 여기에 다시 또 끓인 맹물을 넣어 홍색을 만드는데, 아직도 한 번
더 재즙을 넣어야 한다.
세 번째 재즙을 넣을 때는 끓인 물이 아닌 냉수를 넣은 후에, 끝으로 오미자즙
을 알맞게 넣으면 드디어 선명한 홍화색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이 홍화색을
무명에 들이려 할 때는 먼저 엷고 맑은 담홍색으로부터 시작해서 짙고 깊은 농
색이 될 때까지, 뜨거운 온도로 몇 번이고 염색을 하면 되지만, 아무래도 홍화
색은 곧바로 젖은 물을 들이는 것보다는 연지로 만들어서 물에 풀어 염색하는
빛깔이 더 곱고 선명하다. 홍화색을 만들 때, 홍화 한 근에 오미자 한 근의 비
례로 오미자를 같이 마련하여, 따로 옆에다가 항아리를 하나 놓고, 거기에 연수
를 부어 오미자를 담그어 두는데, 날짜는 홍화꽃과 마찬가지로 잡는다. 이윽고
홍화꽃물 밭칠 때, 오미자도 체로 쳐서 고운 물을 항아리에 받아 놓고는, 홍화
두 번째 재즙으로 만든 가장 고운 홍색에 냉수를 넣은 다음, 금방 밭쳐 둔 오미
자 첫물을 거기에 부어 저으면, 거품이 일면서 오미자에서 우러난 노란 비치 황
수는 위로 뜨고, 붉은 연지는 아래로 가라앉는다. 이 항아리를 기울여 위에 뜬
황수를 조십스럽게 따라 버리면, 거기 붉은 연지가 남는다. 그러면 곱게 두드려
다듬이질한 종이를 소쿠리에 펴고 이것을 쏟아 한참 있다가 웬만큼 수분이 빠져
꼬독또독해지거든, 종이를 그대로 우그러서 주둥이를 묶어 매달아 둔 뒤, 바짝
마르면, 사기 그릇에 담아 보관하는 연지.
이 연지는 보통, 홍화 한 근에 한 보시기 정도가 나왔다. 모든 염색 가운데 제
일 비싼 홍화색은, 홍화가 많이 들어가 색이 선명하고 고운 것일수록 그 값은
엄청났는데, 그것은 홍화가 비록 나라안에서 자생하여 그 염재가 난다 하나 몹
시 희귀한 때문이었다. 이 홍화꽃 한 근 값은, 순조 8년에, 중급 정도의 쌀 강
원미 한 섬이었다. 그때 쌀값이라면 중등급이 한 섬에 열닷 냥인데, 홍화색 물
들이는 값은 모시 한 필에 서른넉 냥이었으니, 모시 한 필 홍화색으로 염색하자
면 쌀 두섬이 조금 더 들어가는 셈이었다. 그것이 아주 짙고 붉은 대홍색일 경
우에는, 두꺼운 바닥에 빛깔이 노르스름한 명주인 백토주 한 필이 스물한 냥인
데 비하여, 홍화로 물들여 놓은 대홍토즈는 아흔한 냥이어서, 무려 일흔 냥이나
더 비쌌다. 염색값인 것이다.
그러니, 고운 빛깔 하나 얻는데 쌀이 여섯 섬이요, 돈으로 백 냥을 넘보는 대홍
명주란, 꼭 법으로 금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서민이나 노비들한테는 참으로 꿈
같은 것이었다. 더욱이나 홍화는 꽃의 성품이 성덕스러워서, 그 황정색 꽃은 피
를 잘돌게 하는 약재로 쓰이고 씨앗은 기름을 짠다. 이 기름으로 등불 켜서 나
오는 그을음을 받아 만든 먹 홍화묵은 최고의 먹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귀하고
비싼 홍화말고도 복숭아로 붉은 물을 들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빛깔도 미미하고
또 금방 색이 바래 버려 홍화와는 비교할 수도 없었으나, 그런 물빛도 노비한테
는 당치않은 것이었다. 속이 시린 남색을 만들 때는 육칠월의 도톰한 쪽잎을 따
서 돌로 갈아 얼음을 넣고 색을 빚어 내며, 그보다 엷은 푸른색은 닭이장풀로
하고, 또 자색은 지초, 자초의 뿌리를 찧어 만들며, 황색은 치자, 황백, 울금을
우려서 물들이지만, 이 모든 빛깔이 노비에게는 다만 아득하게 먼 것들일 뿐이
었다. 고달픈 이승을 하직하고 저승으로 떠나는 길에 입고 가는 수의는 치자물
을 들인 마포로 짓는다 하나, 비천한 신분 노비의 죽은 몸에 오련히 우러나는
치자 물빛 은은한 수의를 어찌 감을 수 있으랴. 그만한 것을 누릴 수 있다면 이
미 이승은 그렇게 서러운 곳이 아닐는지도 몰랐다. 노비는 세상의 색 바깥으로
쫓겨나 아무런 색도 없는 카맠ㅁ한 옷으로 제 몸뚱이를 두른 채, 그것으로 저의
세상을 삼았으니. 기껏해야, 칠팔월 복더위에 감나무 아래 웬일로 떨어져 버린
시퍼런 풋감을 주워 먹다가, 아직 단물의 기미도 돌지 않는 떫은 물이 어쩌다
그만 저고리 앞섶에 묻으면, 마치 살 속으로 스미듯이 무명 베올 사이로 배어든
감물, 그것이나 노비의 색이었다. 한번 들면, 아무리 해도 빠지지 않으면서 날
이 갈수록 점점 녹슨 쇠빛을 띠다가, 끝내는 죽은 피빛으로 가슴 언저리에 남는
갈물. 그것은 그냥 감물이 아니라, 마치 가슴 어디 안 보이는 데를 깊이 다쳐
멍든 울혈이 그리 거멓게 배어 나온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아이고, 저 땡감 먹은 손, 옷에 딲지 말어, 물들어. 옷 베리능고만."
하고 어미 우례가 으름장을 놓아도, 종종머리 꽃니는 어느결에 땡감을 베어 물
다가 끈적이는 손을 저고리 고름이나 앞섶에 닦아, 무던히도 얼룩얼룩 감물을
범벅하여 놓더니만. 이제는 열 살이 넘었다고 제 어미한테 바느질을 배우기 시
작하여, 틈만 나면 어미의 보따리를 헤집어 알록달록 헝겊 조각들을 추려 내곤
하였다. 그리고 제 마음에 드는 색들을 골라 서툰 바느질로 이어 붙여 가며, 난
양대로 조각보 만드는 시늉을 해 보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아까운 헝겊을 조무
락거리거나 쪼작거려 못 쓰게 만들어 버리기도 했지만, 우례는 그런 것들을 평
소에는 별로 나무라지 않았다. 매안 원뜸의 종가에 씨종의 소생인 꽃니가 평생
을 두고 두르거나 입을 날은 없을 비단이나 명주, 모시였지만 그래도 어미가 침
비인 덕으로 바라보기 저리게 눈부신 오색이 영롱한 헝겊 자투리라도 몫으로 가
질 수 있으니, 꽃니한테 그 색깔만이라도 여한없이 실컷 만지고, 가지고, 놀게
해 주고 싶은 마음이 우례속에 있는 탓이었다.
색깔의 강물에 멱 감고 놀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만일 꽃니가 다행히 어
미의 찬찬한 솜씨를 닮아 제법 바느질을 해낸다면 침비가 될 수도 있겠지만, 아
직은 나이도 어리고, 계집 종이 해야 할 이런 저런 일들도 안팎에 많아, 꽃니는
노상 부엌과 뒤안과 중문, 대문간을 팔랑거리고 뛰어다니며 심부름을 하였다.
엉덕 밑이 꽃니야아 해 넘어 간다 밥 히라아 밥 헐란다 불 띠라아
나그네 들온다 밥 채리라아 상 물린다 그륵 싯쳐라아 잠 잘란다 방 닦어라
아
꽃니야아 꽃니야 애기 운다 업어 줘라 아이고오 다리야아 콕
꽃니보다 몇 살 더 먹은 열네 살 계집종 콩심이는, 꽃니를 보면 곧잘 흥얼흥얼
그렇게 노래를 부르다가, '콕'할 때는 알밤 주먹으로 꽃니 머리를 쥐어박기도
하였다.
콩심이는 효원이 대실의 친정에서 매안으로 데리고 온 교전비인데, 저 혼자 제
머리 빗기에도 서투른 아홉 살 코흘리개이던 것이 이제 제법 나이꼴이 나고, 남
원 말도 혀에 돌게 잘했다. 남원말은 다른 곳과 달라 전라남북도와 경상도, 삼
도 접경 지역의 여러 고을 사투리 억양이 묘하게 섞이어 있었다. 맨 처음 콩심
이가 남도 말로
"워찌 고렇코롬 생겼다요?"
했을 때 안서방네는 손질하던 빨래 홑이불에 푸우, 물을 뿜어 내다 말고 웃음을
터뜨렸다.
"고렇코롬? 그거이 무신 말이여? 긍게, 그렇게, 그 말이냐? 느그 동네는 그 말
을 그렇게 허냐?"
하며 웃었다. 반면에 콩심이가 이상하게 생각한 말은
"하아."
였다. '하'가 높고 '아'가 낮은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무슨 뜻인지를 몰라
어리둥절하였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콩심이도 얼마든지 경우에 따라 쓸 수
있게 되었는데, 웃어른한테는 못 쓰는 것으로, 무슨 말에 대답을 할 때 주로 썼
다. 그러나 그 쓰임새는 결코 단순하지가 않았다.
"너 밥 먹었냐?"
"하아."
같은 것은 알아듣기 쉽지만, 긍정, 맞장구, 너무나 당연하다는 뜻, 감탄, 노여
움 들은 모두 그 곡조로 알아들어야 했다. 그 곡조는, 말하는 사람의 감정이나
내용, 상황에 따라서 얼마든지 무궁무진 변조가 되었고, 미끄러지거나 채올리거
나 툭 자르거나 미묘하게 출렁이는 말의 가락은 마치 노래 같은 생각이 들게 하
였다. 콩심이는 그것이 재미있었다.
이제는 어느덧 여러 해가 지나 처녀꼴이 박인 콩심이는, 저 혼자 있을 때나 물
을 길러 갈 때, 흥얼흥얼 노래를 잘 읊조리었다. 콩심이는 효원의 교전비이니,
효원에게 딸려서 잔심부름을 하는 것이 주된 일이었다. 그래서 콩심이는 항상
아침 저녁으로 효원의 세숫물을 떠다 놓고, 요강을 비우며, 수건을 깨끗하게 빨
고, 효원이 쓰는 건넌방을 쓸고 닦고 소제하였다. 궁중에도 교전비는 있었는데
왕비가 가례때 친정에서 데리고 들어온 계집종을, 본방나인이란 이름으로 왕비
곁에 가까이 두었다. 이 나인은 왕비의 다시 없는 심복으로 그야말로 충심을 다
하여 기쁜 마음으로 성심껏 순중하는 종이니, 왕비의 사사로운 정으로야 대하는
마음이 각별하겠지만,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고 다른 궁녀들과 같이 부렸는데,
이들이 하는 일은 아침 저녁으로 왕비가 본댁에 보내는 문안편지에 쓰는 풀을
쑤는 것이었다. 본댁이라 해도 한집이 아니며, 봉투까지 같은 종이로 붙여서 만
들기 때문에 풀이 많이 필요하기는 했을 것이다. 그러나 빨래와 다듬이, 다림질
을 도맡은 세답방의 나인들하고야 그 일의 고단함이 비교될 수 없을텐데, 세답
방에서는 평상시에도 늘 그렇지만 만일 국혼이나 진연같은 큰 경사가 있을 때면
비단과 명주 다듬이가 몇 십 필씩 되어 일이 끝날 때까지 잠을 못 이루며 이곳
처소 나인들은 손바닥이 부르텄다 한다. 그리고 왕과 왕비가 일상 생활에 머물
면서, 먹고 자고 앉고 눕는 살림집을 '지밀'이라 하여, 대궐에서 제일 깊은 곳,
가장 지엄하고 중요한 곳으로 알았는데, 귀한 분을 직접 받들고 있는 곳이라 여
러 처소 중에서도 가장 격이 높아, 이곳 소속 나인들은 애기나인까지도 까다로
운 조건으로 엄선하여 뽑았다.
그리고는 침방이 있어, 소속된 전각과 궁전의 주인, 그러니까 대전이면 왕과 왕
비의 의대를 짓고, 동궁전이면 세자와 빈궁의 옷을 짓는 곳으로, 이처소의 나인
들은 맡은 일의 성격상 나인의 서위가 지밀 다음이었으며, 치마도 사대부 부인
들처럼 특별히 외로 입었다. 그 다음에 수방과 세숫간, 생과방, 소줏방 들에서
도 다 각각 하는 일이 정해져 있어, 궁중의 안살림을 이 일곱 부에서 맡아 하였
다. 그런데 지밀은 워낙 높은 곳이라 제외하고, 나머지 여섯 곳을 가리켜 '육처
소'라고 했다.
대궐의 살림하고야 비길 수 없지만, '살림'이란 대궐이나, 사대부의 집이나, 서
민의 것이나, 신분과 재산의 규모와 형평에 따라서 종류는 더 다양하거나 단출
한 것이 서로 다르겠지만, 기본 골격 뼈대는 똑같은 것인즉. 노비를 많이 거느
리는 집에서는 일의 대소,경중,완급을 따라 세밀하고 규모있게 분담을 할 것이
며, 노비가 적은 집에서는 꼭 그렇게 네 일 내 일 가를 수가 없이 자기 맡은 책
임말고도 웬만큼은 서로 거들어야 할 것이고, 그나마 단비로 노비가 하나뿐이면
그는 한 몸에 그 일을 다 해야 할 것이다. 만일 단비조차 부릴 수 없는 처지의
형세라면 반상을 막론하고 본인이 직접 하나에서 열까지 다 일해야 하지 않겠는
가.동네 사람들은 오례 잡아 서리쌀, 풋돔부, 풋콩 까서, 밥을 짓네, 송편하네,
창 앞에 대추 따고, 뒤안에 알밤 줍고, 논귀에서 붕어 잡고, 두엄에 집장 띄워
먹을 것 많건마는, 가련한 우리 신세 먹을 것 바이없네. 세상에 죽는 목슘 밥
한 덩이 누가 주며, 찬 부엌에 굶은 아내 조강인들 볼 수 있나. 철 모르는 우
는 자식, 배를 달라 밥을 달라, 무엇으로 달래 볼까. 우리는 저 박을 타서 박
속은 지져 먹고 막적은 팔어다가 한 끼 구급하여 보세. 하고는 탄식을 하며, 동
네 도끼를 얻어 들고 지붕 위로 올라가 박꼭지를 찍어 마당에다 내려놓고, 하도
큰 박이라 동네 대목의 큰 톱을 얻어다가 박통을 켜는데, 기껏 부린 욕심은 박
속이나마 배불리 먹고, 바가지는 쌀도 일고 물도 떠먹는다는 것이 고작이었으
나. 이것이 왠일인가. 슬근슬근 탁, 타 놓은 박통 속에서 푸른 옷 입은 동자 한
쌍이 썩 나서며, 흥부 앞에 절하고 드리는 온갖 진기한 약재부터 시작하여, 타
는 박마다 쌀 나오고, 돈 쏟아지고, 휘황 찬란 금은보패, 일광단, 월광단에 산
더미 같은 비단, 포목이 노적가리처럼 쌓인데다, 수백 수천 가재 기물이 꾸역꾸
역 다 나오는데. 심지어는 뒷간 똥치우는 가래조차, 다른 나무는 무겁다고 오동
으로 정히 깎아 나주칠을 곱게 하여 나올 지경이었다. 사흘 나흘을 예사로 굶
어, 뱃가죽이 등에 붙고 갈빗대가 따로 나서, 두 눈이 캄캄하고 두 귀가 먹먹하
여, 누웠다 일어나면 정신이 어질어질, 앉았다 일어서면 다리가 벌렁벌렁, 말라
죽게 되었으되 찾는 이 전혀 없고, 밥이라고는 냄새조차 안 맡히던 흥부 내외
가, 서 말 여덟 되밥을 한 번에 지을 적에 솥이 적어 못하고는, 동네에서 쇠죽
솥 그 중 큰집을 찾아가 밥을 짓고, 씻도 안한 쇠죽통에 밥 두통을 퍼다 담아
놓으니, 뭉게뭉게 뜨거운 김, 밥 냄새에 숨막힌다. 스물다섯 명이나 되는 아들
을 떼죽으로 몰아 앉혀 제 양껏 먹인 후에, 식구대로 비단 한 필씩을 통으로 휘
감아, 흑공단, 백공단, 붉은 비단, 꾀꼬리색, 청색 비단, 해오라기 백설 같은
흰 비단을 둘러쓰니, 이런 기이한 일이 세상에 어디 다시 있으리오. 흥부 마누
라가 하도 좋아 춤을 추며 마지막에 놓인 박을 타는데, 메나리 목청으로 낙랑하
게 소리를 메기고, 흥부는 뒷소리를 받았다.
노비는 말 그대로 오직 주인의 손과 발이니 많을수록 상전의 손은 편해지고, 노
비가 적을수록 그만큼 상전의 손은 고달프기 때문에, 노비야말로 불어날수록 좋
은 재산이었다. 그러나 상전의 형편이 여의치 않고, 뜻밖에도 가세가 기울어 끼
니를 끓이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는 수도 있었다. 비록 가난한 사람이라도 부모
한테 물려받은 종이 있다거나 또 무슨 연유로든지 종이 생기게 되면, 그것을 부
릴 수는 있었지만, 그러나 종은 오직 신분이 천하여 종일 뿐이지, 오장육부 먹
는 것 입는 것은 다른 사람과 똑같으니, 극5jt을 감당하여 먹이고 입히기 힘든
상전은, 자기 집 문서에 매인 종이나 대대로 물려 내리는 씨종이라 할지라도
"자, 너 가고 싶은 데로 가거라."
하고 남한테 파는 대신 속량을 해 주어, 그가 종의 멍에를 벗고 한 양민이 되게
하는 일도 있었다. 기르던 강아지도 오래되면 정이 드는데 하물며 노비이랴.
조선의 영조 때에 장례원을 없애고, 정조 때에는 도망하는 노비를 막고 잡아 들
이던 노비추쇄법을 폐지했으며, 순조가 즉위하고는 내수사 각 관방의 노비원부
를 전부 폐지하면서 인신 매매를 엄금하였으나, 누천 년 동안 삶의 골에 깊이
박혀 뿌리를 내린 노비 제도는 결코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또 속량을 받은 노
비들도 대개는 어디로 가지 않고, 상전의 집 근처, 살던 고을에 그대로 머물러
여전히 옛 상전의 살림을 돌보며 일을 하곤 했다. 다만 이제는 매인 종이 아니
라는 것만 다를 뿐 변함없는 생활을 하는 것은, 아주 못된 상전만 아니라면 서
로 정리가 깊어 떠나지 못하는 것이 이유의 하나요, 또 하나는 낯선 곳으로 떠
나 보았자 아는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고, 일가 친척 집안붙이 하나도 없는
산세로 떠돌다가 결국은 다시 남의 집 종이 되거나 아니면 거지 되기 십상이어
서, 양민이 된 노비는 살던 곳에 그대로 사는 것이 여러모로 더 이로운 때문이
었다.
"개중에는, 제 앞길 가릴 만한 총명한 노비도 있어서, 봇짐을 싸들고 저 먼 곳
어느 두메 산골이나 아무도 알아보는 이 없는 동에로 가서 양반 노릇을 하며 사
는 경우도 있다더라."
"본 데 있는 집 종은 어설픈 양반보다 낫다."
고 하는 말이 있을 만큼, 도덕과 학문이 높은 집의 종은 상전의 하는 것을 보아
서 배운 범절이나 지식, 그리고 솜씨 같은 것이 나무랄 데가 없어서, 어디 모르
는 곳, 민촌으로 가서는 양반 노릇을 하고도 남았다.
우례는, 매안 원뜸의 종가 씨종인 막손의 소생이었다. 청암부인과 율촌댁과 효
원이 각기 그 친정인 청암과 율촌, 그리고 대실에서 데리고 온 교전비나, 사는
중간에 들어온 종들하고는 씨종은 아무래도 좀 달랐다. 상전이 대하는 품도 더
각별하고 씨종도 비록 신분은 다르다 하나, 바로 이 마당, 이 방안에서 아비와
할아비 그 할아비를 낳았을 것이니, 이곳이 뿌리요, 이곳이 자신의 세상이었기
때문에 상전의 운명과 자산의 운명을 따로 생각할 수가 없었다. 씨종 막손이 내
외가 낳은 소생 셋 가운데 우례는 맨 위, 첫배였다. 낳아 놓았을 때부터 살빛이
보얗고, 생긴 것도 도렷해서 "종의 자식으로 아깝다." 는 말을 들었는데, 성질
도 그저 안순한 편이라 청암부인은
"이 애한테 바느질을 가르치라."
고 침모하테 일렀다. 침선이라면 사대부의 따님이나 양반의 여식이라도 부덕으
로 반드시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이며, 사정이 생기면 삯바느질을 하기도 하므로
노비로서 침비가 된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그리고 궁중에서나 마찬가지로
하는 일이 그러해서 늘 상전 가까이에 있고, 대우도 달라, 어미 모자를 붙여 침
모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알어야 종을 부린다고 안 그러대? 상전이 솜씨가 있어야 죙이 보고 딸체. 하루
는 마님이 종한테 보손 맨들어라아 그랬다고 허자. 암만 해바도 당최 이뿌게 안
된단 말이여? 에이 안되겄다, 마님하테 가서 여쭤보자, 허고는, 마니임, 마님,
이 보손 맨드는 것 좁 갈쳐 주시요오, 했는디. 마님이 조께 지달러라, 그래 놓
고는 한참 있다가, 아나, 보손. 허는디 기양 보손이 어뜨케나 큼지막헌지, 쌀
차두(자루)만이나 허다아, 그러먼 어쩌겄냐? 우숩겄지? 종이 상전보고 웃어 불
먼 상전은 상전 노릇 다헌 거이다. 그렇게 상전은 종보다 더 바뻐. 머이든지 알
랑게, 종은 한나만 알먼 되지마는, 상전은 다 알어야 헝게. 긍게 양반은 맨나
무신 생각을 요러어고 허고, 책을 늘 디다보고 안 그러냐? 근디, 우리 아씨랑
마님이랑은 어찌 그리 아능 것도 많고 솜씨도 좋으시까잉. 옛말에도 기왕에 종
을 살라면 대갓집이 가 살라고 했는디. 일리가 있니라. 보고 배우능 거이 다르
그더엉. 긍게 너는, 신세 한탄을 허들 말고, 채라리 머 한나라도, 앉고 스는 거
이라도, 말허는 법 하나라도 배와야 히여. 배우먼 다 니껏 되고, 넘들이 너보고
빤듯허다고 칭송허제. 그러고 바느질 잘 배우고."
우례하테 바느질을 가르쳐 준 침모는 그렇게 말했었다. 옷을 모양 있게 마르고,
실을 바늘에 꿰어 바고, 감치고, 공그르며, 휘갑을 치고, 상침을 뜨는 우례의
솜씨를 보고
"천상 너는 바느질 허겄구나."
하고 칭찬하는 침모는 수도 아주 곱게 놓았다. 그래서 우례는, 수본을 뜨고 본
에 따라 수를 놓아 보곤 하였다. 집안의 어른인 청암부인은 비록 여자라 하지만
언제 한가히 들어앉아 침선을 할 만큼 틈을 내기 어렵게, 추려야 할 안팎 대소
사가 많았고, 연갑도 있어서 손수 바느질을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며
느리 율촌댁은 바느질 솜씨가 남달리 좋아서, 특별히 날렵하면서도 부드럽게 돌
아가는 깃을 잘 달았다. 그래서 율촌댁의 저고리는 우아하였다. 이 깃과 섶을
날아갈 듯 아름답게 다는 솜씨란, 다른 바느질을 안 보고도 가히 짐작할 수 있
는 일이었다. 그래서 귀한 옷감으로 만드는 좋은 옷은 율촌댁이 손수 지었지만,
그네 역시 집안의 어른으로서 거두고 살필 일이 많은지라, 식구들의 옷을 일일
이 손댈 수는 없었다. 청암부인과 츌촌댁, 그리고 이기채와 소년 강모의 옷은
율촌댁 혼자서 다 하기 어려웠다. 이 옷은 아무리 공들여서 지었다 할지라도 한
번 물에 들어가면 모두 흩어져 처음부텨 새로 지어야 하는데, 여름 같은 때는,
어제 밤 새워 지은 옷을 오늘 하루 입고 벗어 내놓으면 다시 빨래하여 내일 밤
을 새우고 지어야 할 지경이었다. 구겨진 옷을 입지 않는 단아한 상전들을 위하
여 우례는 침모와 더불어 많은 밤을 새웠다. 그리고 앞앞의 이부자리와 베개,
보료, 안석, 방석 등을 모두 도맡아 손질하였다. 이부자리는 그만 두고 베개만
보더라도 일이 많았다. 좁고 납작한 판자 나무를 상자 모양으로 만들어 조그만
서랍을 단 퇴침, 여름에 서재에서 잠깐 잠이 들 때 베는 시원한 도침이야 손 갈
것이 없었지만, 둥글고 가늘고 긴 주머니에 쌀겨를 넣어서 만든 것으로 양쪽 끝
마구리를 아름답게 만들어 장식을 다는 곡침, 골이 여섯 개, 혹은 여덟 개가 나
도록 누비어, 골마다 수를 놓고 속에는 겨를 넣어 베개깃을 씌운 화사하고 미려
한 골침, 늦은 가을에 국화꽃을 많이 따다가 말려서 붉은 베 주머니에 넣어 만
드는 국화 베개, 결명자로 베갯속을 넣는 결명자 베개, 그리고 어린아이가 베면
머리가 맑아지고 눈이 밝아지며 풍이 없어진다는 녹두 베개, 또 갓난아기에게
베어 주는 좁쌀 베개. 이것들을 늘 새것처럼 정갈하게 건사하는 것은 여간 마음
이 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머리란 기름이 오르기 쉬운 것이어서 금방 잇을 시쳐 놓았는가 싶으면 금방 갈
아 씌울 때가 되곤 하였다. 옷가지와 이불호첨, 베갯잇을 뜯어 빠는 것은 우례
의 바로 아래 계집동생 소례의 일이었다. 지금은 소례도 비부를 얻어 행랑의 저
쪽 방에 살지만, 그네의 손은 언제나 허옇게 물에 불어 있어, 건드리면 손바닥
이 물이끼처럼 덩클거리며 흩어져 버릴 것같이 보였다. 그래도 소례는 비시시
잘 웃었다. 그런 것을 본 날은, 우례의 속이 바늘에 찔린 것보다 더 저며들어
바느질감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우례는 그 떨어진 눈물위에 바늘을 꽂았다. 때
로 눈물은 수 놓던 꽃잎위로 번졌다.
"이 아이한테 바느질을 가르치라."
는 청암부인의 말이 없었다면 우례의 손도 소례와 하나 다를 바 없이 물에 퉁퉁
불어 잇을 것이었다. 그렇지만 천행으로 이렇게 고실고실한 비단, 명주의 현란
한 색깔들을 만지고 있으니, 부인데 대한 감사가 뜨겁게 치밀다가도 문득 수례
와 부딪치면 그만 손바닥에 눈물이 배듯 땀이 돋았다. 바느질하는 손은 습기만
끼어도 안되는데도.
그런데다가 몇 년 전, 강모가 혼인하면서 효원의 옷이 늘어나고 또 얼마 후에는
그들의 아들, 이 집안의 종손 철재 도령의 옷이 새로 생기게 되었다. 날이 갈수
록 도령은 자라 옷의 품을 자꾸 늘리는데, 집을 떠난 새서방님 강모의 옷은 언
제나 다시 짓게 될 것인지. 착잡하였다. 그리고, 마님 청암부인의 옷은 이제 영
영 지을 일이 없게 되었다. 그런데도 철 없는 꽃니는 오밤중까지 등잔불 밑에
앉아서 가슴이 섬뜩하게 고운 옥색의 색색 가지 헝겊 조각을 늘어 놓고 노는 것
이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내버려 두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무시로 곡성이
들리는 때라서, 색 있는 것을 삼가야 하기에 우례는 꽃니는 나무란다. 그것이
헝겊 자투리에 불과한 것이지만 웬일인지 망인에게 송구스러운 탓이었다.
"너 열 살 먹은 지가 언제라고 아직도 그렇게 속이 없냐. 눈치로도 그만헌 것은
알겄다, 원. 바누질도 다 헐 때가 있고 안헐 때가 있는 거이여. 더군다나 이런
무색 것, 상중에는 안 만치는 거이라고 내가 안그래애? 말을 허먼 어디로 듣능
고오. 마님 초상이 나서 모다 안팎으로 베옷 입고 통곡을 허는디, 머어이 좋다
고 한가허게 청실 홍실 치키들고 앉어서 울긋불긋 색 바누질을 헌다냐, 아랫것
들이."
"지금은 안 뵈이는디 머."
"아이고, 저 말허는 것 좀 봐, 꼭. 상전은 눈이 열두 개단다. 본다고 알고 안
본다고 몰라? 두 눈 다 깜고도 속까지 훠언히 알제. 종 부리는 디는 이골이 난
양반들인디."
우례의 목소리에 그을음이 스며든다. 눈발 없는 동짓달의 마른 바람이 무겁게
캄캄한 밤 한복판을 베폭 찢는 소리로 날카롭게 가르며 문풍지를 후려 친다. 그
서슬에 놀란 등잔불이 허리를 질려 깝북 숨을 죽인 채 까무러들더니 이윽고 길
게 솟구쳐 오르며 너훌거린다. 방안으로 끼쳐든 삭풍 기운에 소름을 털어 내듯
흔들리는 불 혓바닥이 검은 그을음을 자욱하게 토한다.
"이노무 심지가."
우례는 헝겁 보따리를 묶어 웃목으로 다시 밀어 놓고는 귀이개를 뒷머리에서 뽑
아 들고 등잔 심지를 건드려 본다. 대가리가 어수선하게 뭉친 심지는 들쑤셔져
아까보다 더 매캐한 그을음을 거멓게 토해 냈다. 불이파리 끝에서 긴 꼬리를 끌
며 위로 오르는 그을음은 우례의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리고 그것은 숨
을 들이쉴 때마다 속으로 스며들어 매웁게 한다. 한 심지에 붙은 불이 왜 어뜬
것은 화안허고 고운 불꽃으로 타고, 또 왜 어뜬 것은 저런 시커먼 끄시럼이 되
능고. 우례는 귀이개를 놓고 우두머니 등잔 불꽃을 들여다 보았다. 불꽃 한 가
운데 심지가 뭉친 덩어리는 귀이개 꼭지보다 조금 더 클 뿐이었지만, 거기서는
끝도 없는 그을음이 번져 나오고 있었다. 마치 그것은 불꽃의 가슴에 박힌 어둠
의 검은 옹이 같았다. 그 형상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우례는 까닭 모를 깊은 한
숨을 무겁게 내쉬었다. 그리고 반닫이 위에 놓인 헌 가위를 집으려고 엉거주춤
일어선다. 아무래도 심지를 후려 불꽃을 고르게 잡으려면 뭉친 덩어리룰 자라내
야 할 것 같아서였다. 막 반 몸을 일으키는 울례의 그림자가 바람벽에 시커멓게
드리워지는가 싶었는데 그것은 벽 쪽으로 돌아누워 잡든 꽃니 아비 정쇠의 구부
린 몸뚱이 위로 어둡게 덮인다. 이제 마흔에 이르는 그의 고단한 숨 소리가 그
림자에 눌리어 잦아드는 것처럼 들리는데, 그것은 무엇에 숨 한가닥을 찝힌 채
밖으로 내뱉지 못하고 삼키는 소리 같기도 하였다. 우례는 몸을 일으키다 말고
정쇠를 돌아본다. 그리고는 제 커다란 그림자에 먹힌 정쇠 옆에 잠들어 있는 열
다섯살 장정이 다 된 아들 봉출이 얼굴을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어미의
그림자가 덮인 아들의 얼굴은 무거운 어둠속에 가라앉아 겨우 희끄무레 낯이나
분별할 수 있을 뿐 그 모색을 확연하게 드러내지 못한다. 마치 짙은 그을음에
가리워진 것처럼.
그런 아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우례는 어금니를 물었다. 너는 어쩌든지,
꼭. 하고는 그 다음 말을 어금니로 깊이 사려 문 것이었다. 그것은 한두 번 벼
른 말이 아니었고, 하두 해 벼른 말도 아니었다. 뼈에 새기게 문 이빨 틈바구니
로 그네의 폐장에 고여 있던 그을음이 피가 배어나듯 배어났다. 그 그을음은 우
례의 가슴 한복판에 심지로 박힌 아들 봉출이의 응어리가 그렇게 불꽃에 싸인
채 토해 내는 것이었다. 우례는 문득 등잔 불꽃 한가운데 박힌 심지가 무슨 일
로 덩어리가 되어 끝도 없이 그을음을 태우고 있는 것이, 꼭 제 속인 것만 같다
는 생각을 하였다.
너는 어쩌든지 꼭.
하고 아들 봉출이를 바라볼 때마다, 어김없이 한 얼굴이 떠올랐다. 그 얼굴을
너무나 뚜렷하고 단단해서 오히려 이쪽이 주춤 물러서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
러나 물러선 그만큼의 치수로 우례는 그 얼굴 쪽으로 딸려 갔다. 그 기우뚱거리
는 거리를 바로 잡으려는 것처럼 우례는 늘 어금니를 힘주어 물었다.
꽃니가 잘란다고 이불 밑으로 파고들어가는데, 봉출이는 잠결에도 이불을 턱밑
으로 끌어올린다. 아마 꽃니가 이불을 들추는 바람에 찬 기운이 끼친 모양이었
다. 그런데 벽 쪽으로 누운 정쇠는 여전히 우례의 컴컴한 그림자에 눌리어 숨
한쪽을 찝힌 듯한 소리로 잠이 들어 있었다.
"꽃니 아범."
사람들은 정쇠를 그렇게 불렀다. 우례가 사노 정쇠와 혼인하여 몇 달 후에 봉출
이를 낳았을 때, 사람들은 아무도 정쇠를
"봉출이 아범."
이라고는 부르지 않았다. 그리고 정쇠도 그것을 조금도 탓하지 않았다. 봉출이
는 어느 누가 한눈에 보아도 정쇠를 닮지 않았는데, 그 대신에 어느 누가 보아
도 한눈에 "닮았다."고 말할 얼굴이 었었다. 그냥 얼핏 닮은 구석이 있는 정도
가 아니라, 마치 선명한 붉은 인주로 도장을 찍어 놓은 것처럼 얼굴의 모색도,
두상도, 체형도, 그리고 쉰 듯하면서도 칼칼한 음성까지도 영락없이 닮은 얼굴
이었다.
"봉출아, 너는 어쩌든지 꼭, 니 성을 찾어라. 내가 나중에 죽고 없드라도. 너는
추가가 아니고 이씨다. 잊어 부리지 말그라. 너는 이씨여. 추봉출이 아니라 이
봉출이여, 이. 어쩌든지 꼭, 너는."
우례는 봉출이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며 주문처럼 말했다. 그리고 청암부인을 남
모르게 가리키며 말했다.
"잘 바 두어라. 네 할머님 되시는 어른이시니라."
그을음은 이제 온 방안에 차 올랐다. 그것은 횃대의 옷갈피 속으로, 바람벽 속
으로, 그리고 이불이며 베개, 살 속으로 막막하게 자욱한 연기처럼 스며들어간
다. 숨 속으로도 스며든다.
우례는, 가위로 잘라 내야겠다고 일어서려던 무릎을 주저 앉히며 등잔불을 들여
다 본다. 아까보다 더 단단하게 뭉친 심지는 제 몸이 탄 덩어리가 뭉친 자리에
엉기어 더 커다란 옹이가 되어 있었다. 그 옹이는 검고 불길한 그을음을 끝도
없이 토해 낸다.
"어머이."
검정 무명 이불 아래 몸을 묻은 꽃니가 등잔불 앞에 앉아 있는 어미를 부른다.
어미의 그림자가 어둡게 진 등뒤에 대고 꽃니는 묻는다.
"헝겊데기가잉."
"잉."
"왜 어뜬 것은 색이 빠알거고, 어뜬 것은 노오러대?"
"물딜인 사람한테 가서 물어 보그라."
"그러먼잉, 같은 꽃, 같은 나문디, 왜 어뜬 꽃은 빨강이, 어뜬 나무는 노랑이,
어뜬 풀은 파랑이 나온대?"
"하누님한테 물어 바아."
"어머이."
"왜."
"근디잉, 헝겊데기는 지가 그 물을 들고 자퍼서 들고, 나무랑 풀이랑 꽃이랑은
지가 그 색 물 내고 자퍼서 내능 거이당가?"
"몰라."
"어머이, 근디잉, 아무 물도 안 나오는 꽃, 기양 물 못 딜이는, 아무껏도 아닌
풀, 잉, 그렁 건 왜 그렇게 타고났이까아. 그렁 것은 멋 헐라고 살으까잉."
꽃니는 어둠 속에서 눈을 까막까막 하며 한 마디 한 마디씩을 짚어 묻는데, 등
잔불의 심지는 더욱 덩어리진 그을음으로 불꽃을 길고 어둡게 에워싼다.
13 서러운 소원은
캄캄한 한쪽 구석에 모로 누워 잔뜩 몸을 움추린 채 꼬부리고 있던 우례는,
어둠이 천장까지 들어찬 방 밑바닥에 깔린 듯 눌리어 물 먹은 사람처럼 더는 참
지 못하고, 뭉친 숨을 후우우으 바트게 뱉어낸다. 안 그래도 칠흑인 방안에 우
례가 뱉어 낸 바튼 숨이 검은 멍울로 덩어리진다. 그것은 낮은 곳에 무겁게 떠
있다가 들이 쉬는 우례의 숨에 거멓게 엉기며 숨을 막는다. 그것이 갑갑하여 우
례는 입을 깊이 벌리며 숨을 삼켜 보려 하지만 오해려 숨은 명치에 거려 버린
다. 댓진 같은 숨이었다.
"우례 그거이 애기를 뱄담서."
"아이고, 사참해라. 거 무신 소리여? 가는 아작 댕기 꼬리 걷어 올리도 못했는
디, 누구 씨를 받었이까잉."
"받었능가, 뿌ㄹ능가."
"허기는, 가 생긴 거이 반드로옴 헝 거이 어찌 위태위태허드라."
"얼마나 되얐능고?"
"낯바닥이 뇌에러니 똑 가문 날 외꽃맹이로 시들어져 갖꼬 밥도 못 먹고 보대끼
능 거 보먼 서너 달 안되얐이까?"
원뜸의 종가 뒤안 마당에 돌아앉아 귓속말로 수군거린 말이 한 입 건너 두 입을
지나갈 때, 우례는, 그 말이 불어나는 그만큼 무거워지는 한숨을 이기지 못하여
가까스로 낮을 견딘 채, 밤이면 벌겋게 뜬 눈으로 참았던 순과 씨름하며 뒤척이
었던 것이다.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대문간의 양 옆으로 붙은 행랑채, 바깥 호
제 집들의 방방에 모두 불빛이 꺼지고, 먹장 같은 밤의 어둠이 물 밑바닥보다
더 깊어진 삼경. 됫박만한 방 두칸의 윗간에 잠든 어미 아비 막손이 내외의 숨
소리와 아랫간에 우례와 나란히 누운 소례, 그리고 저쪽에 작은 네 활개를 벌리
고 자는 머슴애 동생 막둥이의 된 숨소리가 우례를 더욱 막막하게 하여 캄캄한
천장을 바로 보고 누웠다가, 숨소리와 뒤섞이어 까우룩이 내리누르는 어둠을 밀
어내듯 후으으으 숨을 뱉으며 모로 누웠다가, 밀어낼 수 없이 밀려와 고여 있는
어둠을 피해 후으으으 다시 돌아누워도, 착찹하게 가로막는 어둠은 단 한 치도
물러가지 않았다. 물러가다니, 그것은 오히려, 뒤척이고, 모로 눕고, 돌아누울
수록, 엉겨 붙으며 조여 오는 차꼬 같았다. 돌아눕는다고 세상이 달라지랴. 어
찌하지 못하는 우례는 드디어 때묻은 무명 베개를 끌어안고 새우처럼 꼬부리며
엎드린다.
마을은 괴괴하고, 이따금 먼 곳의 개짖는 소리가 밤이 삼경으로 쓸려 들어간 것
을 절감하게 하는 시각, 우례네말고 다른 호제집들도 깊은 먹물 속에 잠기어,
오직 고단한 숨소리들만 어둠의 물살같이 채어 올랐다가 내리박히면서 이어지는
데. 우례는 저혼자 삼눈을 뜨고 있는 것이다.
대개의 노비들이 혼인하기 전에는, 상전 댁의 바깥 행랑방이나 안 행랑방에 기
거하다가, 혼인을 하고 나면 상전의 집 주위, 대문에서 한 걸음 나서는 바깥 좌
우쪽이나 후미진 뒷담 언저리, 혹은 담 옆구리들과 그 아래 올망조망 세워 주는
집으로 솔가하여 살게 되는데, 이 집을 그냥 '호제집'이라고 하였으며, 여기 사
는 사람들은 '호제것'이라고 말 끝에 꼭 '것'자를 붙여 불렀다. 이 호제것들은
비록 대문 바깥에 딴채를 얻어 살게는 되었지만, 겨우 이곳에서 잠만 잘 수 있
을 뿐, 먼동이 버언히 터올 무렵이면 벌써 상전의 집 마당이며 헛간, 외양간,
나뭇간, 정지, 뒤안, 제 일할 자리에 들어가 있어야 했다. 신분이 낮아 사람 대
접을 못 받고 하는 일이 험한 이들의 집은, 상전의 인품이나 살림 규모, 또 노
비 대하는 도량에 따라 모양새도 다 각각 조금씩은 달랐다. 명색이 집이라고는
하지만 거칠고 보잘 것 없는 황토 흙벽에 볏짚이나 얼기설기 얽어 놓은 움막에
돼지 우리 한가지로 통간의 방 한 칸이 전부여서 우굴우굴 온 식구가 들어앉은
곳도 있고, 장지로 칸을 막아 위아랫간 분별을 두어 내외 거처는 따로 할 수 있
도록 해 준 곳도 있으며, 규모는 비록 손바닥만하나 안방, 건넌방에 마루까지
갖추어 집의 시늉만큼은 다른 서인의 것이나 별반 다를 바 없는 곳도 있었다.
모양이나 좌향이야 어떠하든 그들은 상전의 집 주위 코 닿는 곳에 도래도래 모
여, 주인이 마당에서
"아무개야아."
부르면 하시라도 달려가 대령하고, 만일에 무슨 위험한 일이 있을 때에는 주인
댁을 보호하는 방패막이가 되면서 상전의 집을 에워싸고 있었는데, 거처만 따로
하지 한 집에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중로 이하의 사람들로 신분이 미천하고 가진 재주 없는데다가, 집도 절도 없이
궁박한 처지여서제 살림은 그만두고 목에 풀칠하기조차 어려운 형편의 상민들
이, 어느 양반의 행랑이나 혹은 그 집 발치에 붙어 살면서, 종도 머슴도 아니지
만 그와 마찬가지로 주인네 일을 하는 호제들이 사는 집도 '호제집'이고, 혼인
한 노비들이 저희 식구끼리 나와 사는 집도 '호제집'이라고 두루 불렀다. 살림
이 근동에 울리는 대갓집이라면, 남노여비에 호제들, 그리고 상머슴, 중머슴과
소 먹이고 꼴을 베는 깔담살이, 물만 긷는 물담살이들을 욱근욱근 불리었지만,
같은 문중의 양반 집안이라도 물려받은 것 여의치 않고 처지가 곤란한 집에서는
잘사는 일가의 집으로 가서 안팎일을 거들기도 하였다. 매안 고을 이씨 문중의
종가 이기채의 솟을대문 지척에 엎드리고 있는 여남은 호제집들 중에서도, 씨종
막손이의 집은 바로 대문 바깥 발치에 바싹 붙어 있었다. 막손이 내외와 그 소
생들은 우례, 소례, 그리고 끝엣놈 막둥이가 모두 눈만뜨면 상전에게로 가서 하
루 종일 일을 하고, 날이 어두워져야 집이라고 돌아와 겨우 잘 뿐이니, 삼시 세
끼를 모두 그 댁 정지에 쪼그리고 앉아 먹지마는. 그래도 솥단지 걸린 제 정짓
간이 따로 있고, 단지와 항아리도 몇 개 놓인 이집의 허술한 뒤안에는 철따라
심심치 않게 일년초 풀꽃들이 피고, 여름이면 봉숭아나 맨드라미가 붉은 꽃잎을
피우기도 하였다.그것은 우례가 씨를 뿌리거나 모종을 옮겨 심은 것들이었다.
물이 차 오르던 그 봉숭아 꽃봉오리가 막 연한 꽃송이를 터뜨리고 꽃대를 솟구
친 맨드라미는 선홍색 여린 혀를 수줍은 듯 내어밀 때.
"아무개 양반이 막손이네 뒤안에서 우례 허리를 담쑥 감어 보듬고, 그 집 아랫
간으로."
들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았다는 말이 생겨나고
"대낮에, 모다 일허로 나가서 빈 집인디, 더운 여름날에 방문은 다 함봉을 허고
닫혔드만, 들마루 밑이가 신짝들만 기양 엎어지고 뒤집어지고."
한 것을 지나가다가 힐끗 보았는데
"짚신 두 짝은 우례꺼이 분명허고 까마구 등허리맹이로 윤이 자르르헌 구두는
아무개 양반 것 아니겄느냐."
는 말이 수군수군 돌기 시작하였다. 아무리 다 떨어진 짚신짝일망정 이제 물이
오르는 열여서 살 처녀꼴이 박이는 큰애기 짚신은 그 꼴의 모양새가, 헤벌어진
제 어미의 마당발과는 같을 리가 없었고, 온 마을 문중에서 맨 먼저 머리를 깍
고 구두를 신은 개명 양반은 말 안해도 누구인지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으니.
그것은 기표였다.
따갑게 익은 햇빛이 사람의 기척 없는 빈 집의 지붕과 마당을 조청같이 숨막히
게 누르고, 제 물에 겨운 봉숭아, 맨드라미의 꽃시울이 한낮의 정적 속에 자지
러지는데, 닫은 방문이 무색하게 온 몸뚱이를 맨살로 드러내고 있는 신발 네 짝
은, 어쩌면 굳이 숨기려 할 것도 없는 행색으로도 보였다. 그것이 벌써 십오륙
년 전 일이었다. 그 여름, 농부들이 '미끈덩 유월'이라고 부르는 계하에, 소서
대서의 절기를 당하여 더위가 극심해질무렵, 이따금 큰 비가 내려 초목은 검푸
른데, 날파리에 하루살이 모기들은 앵앵거리며 모여들고, 무농에서는 왁 그악
와악, 엉머구리 우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날만 새면 너나 없이 남정은 논으
로 나가고 아낙은 밭으로 가서, 긴긴 하구 해가 다하도록 김을 매야하는 오유월
일에, 유난히 손이 많이 가는 면화밭이나 콩밭을 매는 날은 으레 놉을 불러 부
리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규모가 큰 청암부인의 논이나 밭에는 그 넓은 면적만
큼 많은 놉이 늘 필요하여, 마을 안의 타성바지나 물 건너 거멍굴 사람들, 그리
고 더 저 아래 고리배미, 심지어는 매안의 문중 집안에서도 무세 곤궁한 사름은
호미를 들고 이 밭으로 일을 하러 왔다. 하여 자연히 뒤섞인 사람들의 입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튀어나오고, 그것은 꼬리를 물어 퍽퍽하게 뒤집히는 흙에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과 범벅이 되었다. 화덕같이 달구어진 햇볕에 정수리가 까
맣게 타는 옹구네는 제 옆에서 묵묵히 손을 놀리는 평순네한테 낮은 소리로 말
을 붙인다. 그때는 옹구네도 평순네도 명색이 남정을 만나 시집이라고 온 지 얼
마 안되어 옹구도 평순이도 낳지 않았을 때였다.
"양반 참 존 거이여잉."
"깨소금이 묻었네."
"내 말에? 아따, 안 듣는 디서는 나라님 숭도 본다는디, 내가 머 없는 말을 잣
어 냈능가, 안헌 일을 했다고 허능가아."
"어찌 그리 잘 아능고, 자개는 재주도 좋등만, 무신 소리 줏어 딛기도 잘히여.
귓구녁이 비암구녁이드라고. 이런 사람 귀 같으면 기양 지내갈 말도 똑 그 귓구
녁으로는 파고 들으가데. 쪼르르 미끌어짐서."
"오냐, 나는 그런다. 들오기만 혀? 또아리 틀고 앉는다. 어쩔래?"
홍시처럼 붉게 익은 낯바닥을 평순네 쪽으로 들이민 옹구네는, 도톰한 아랫입술
한가운데 마치 검뎅이 한 점을 찍어 놓은 것같이 박힌 검은 점을 웃이빨로 앙다
물어 심사가 틀어진 표를 낸다. "아이고오, 더워. 내 속으다 불때지 마. 글 안
해도 입이서 단내가 풀풀 낭게."
평순네는 매운 연기 쫓는 시늉으로 호미 쥔 손을 쳐들어 휘흔든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매양 그런 식이어서 한쪽이 이빨을 내밀면 한쪽이 뒤로 물러앉았다.
구러나 평순네가 그런다고 하고 싶은 말을 삼킬 옹구네도 아니고, 평순네도 그
성질 속을 익히 알고 있었다.
"아, 요런 노래도 못 들어 밨당가?"
꽃 좋다아 탐내지 마오
모진 손으로 꺽지를 마아오
모진 손으로 꺽어나 버리시이니
장부 행신이 그 뿌운이인가아
얼시구 좋네에 저절시구
아니 놀지는 모옷허겄네
혼자아 자는 큰애기 방으
웬 숨소리가 둘이다냐아
오랍시도 그 말 마오
동지 섣달 기인 긴 밤으
문풍지 떠는 소리이로오다
얼씨구나 좋네에 저절시구
아니 놀지는 모옷허겄네
목통에서 울리는 찰진 가락이 자랑인 옹구네 노래는 훅훅 끼치는 지열의 화덕
기운을 잠시 잊게 해주는 때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 이죽거리며 부르는 이 민요
는 왠지 평순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였다.
"옛날 옛적으도 수천양반맹인 사램이 있고 우례맹인 사람도 있었등게비여. 아
그러게 꽃모가지 똑 뿐질러 놨으면 내불지나 말어야제."
원아앙침 진 비개느은
혼자 비고 누워었이니
잼이 옹가 임이 오옹가아
요 내 눈물 솟아 나와
비개 넘고 강이 되에야아
오리 한 쌍 거우 하안 쌍
피양 대동강을 어엇다 두고오
요 내 눈물강으로마안
둥실 둥시일 떠어나 오오네
눈물 비개에 원앙이 뜨네에
에헤이야아 에이야아
흥얼거리며 가락을 빼는 옹구네 소리 끝을 물고 때마침 점심 광주리를 머리에
인 키녜와 돔바리가 둥구나무 아래로 나타났다. 둘 다 '정지것'이라고 불리는
계집종들인데, 키녜는 키가 건드런하니 크고, 속이 빈 듯한 성격에 서글서글 모
난 데가 없는 편이고, 돔바리는 키가 작고 똥똥한 모통이 바라져 앙바틈하데다
가 성격도 꼼꼼한 편이었다. 나이 엇비슷한 이 들이 나타나자 밭 매던 사람들은
반갑게 일어섰다. 매미가 목청껏 울어 젖히며 날개를 비비는 아름드리 둥구나무
그늘은 여기 앉고 저기 앉아 풋고추 된장에 점심밥 한 그릇 먹기에는 살로가게
오진 곳이었다. 그 두터운 나무 그늘 그림자에 들어앉아 허기진 배를 채운 뒤에
잠깐 포만으로 방심하며, 따갑게 내리쬐는 뙤약볕을 저만큼 바라보는 놉들의 머
리위로, 둥구나무 무성한 이파리마다 매미 소리가 물 소리를 내며 쏟아지는데,
때 맞추어 건 듯 불며 물 소리를 쓸고 내려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이런 바람이
한 줄기 스쳐 주면 등허리에 달라 붙은 삼베 적삼이 어느결에 고실고실해지고,
그 바람에 고달픈 근심까지도 일순 잊혀지면서 잠시나마 낙낙해지는 것이다. 이
만한 낙이라도 없다 하면 무슨 재주로 그 허구한 날을 남의 밭에 어푸러져 살
수 있으리. 웅기중기 끼리끼리 모여 앉은 사람들은 저마다 한가롭게 웃음엣소리
도 하고 새로 들은 소문둘도 이야기 하였다. 아까 하던 이야기의 끝을 못 보아
말꽁지가 근지러운 옹구네는 바가지로 동이의 물을 떠서 벌컥벌컥 마시고는 손
등으로 입술을 훔쳐 냈다.
"아이고오, 시끄러라. 사발 그만 뚜디려. 밑구녁 뚫어지겄네."
옹구네 말에, 밥 사발 밑바닥을 긁고 있던 평순네는 밥티 하나 남지 않은 그릇
을 아쉬운 듯 내려놓았고, 그 옆에 앉은 공배네는 벌써 나이보다 앞질러 새치
같은 횐 터럭이 돋아나기 시작한 머리에 무명 수건을 고쳐 쓰고 있었다. 옹구네
와 평순네는 서로 마주치면 티격거리지만, 나이 훨씬 더 먹고 속이 무른 공배네
가 이쪽 저쪽 성질을 잘 아는지라, 때로 다둑거리고, 때로는 대신 받어주고, 또
때로는 이일 저일 모르는 척도 하면서
"이우제(이웃)서 짚시락 코빼기 맞대고 삼서, 친동구간 못잖게 가차이 지내야제
잉. 우리 같은 처지에 어디 큰집이 있어어, 작은집이 있어. 각동백이가."
하고 한숨을 쉬기도 하였다. 그래서 이렇게 남의 밭에 놉일을 나와도, 미우나
고우나 앉고 보면 옆자리인 것이다.
"오빼미는 성허까? 그것도 하매 열예닐곱 되얐을 거인디."
옹구네는 기어이 더 참지 못하고 말문을 연다. '오빼미'란 눈이 똥그람하고 손
이 굼뜬, 수천양반 기표네 가내 노비로, 늘 목이 쉬어 있어 말을 할 때면 그억
그억 소리가 걸려 나왔다. 그래도 성질의 안팎이 항상 한결같아서 변통이 없는
것이 수더분하여, 수천댁은 큰소리 별로 안내고 오빼미를 부렸다. 그런데 그 오
빼미 이야기를 서두로 꺼낸 것은 아무래도 우례 말을 더 하고 싶은 때문이었다.
"오빼미야 수천양반네 종잉게 잡어먹든 구어먹든 누가 머라고 못허지만, 우례는
율촌양반네 매인 종인디 말이여. 긍게 그거이 넘으 밥 아니냐고. 왜 자개 밥 두
고 넘으 밥끄장 먹으까잉."
"큰집 작은집 성지간 새이에 니 밥 내 밥이 어딨당가. 말을 허자면."
평순네는 옹구네한테 지나가는 말처럼 대꾸를 한다. 그리고 그 끝에
"영웅 호걸은 열 손구락 첩 갖꼬는 모지랜담서? 양반이 풍채있고 세도 있겄다.
열두 첩을 마다까?"
덧붙인다.
"그건 그리여."
감물 바랜 것 같은 낯색으로 공배네도 한 마디 옆에서 거들었다.
"그 착허디 착헌 흥부도, 박 속으서 나온 천하 일색 양귀비를 첩으로 삼었다등
만, 금은 보화 다 좋지만 흥부한테는 그거이 일등 선물이라."
동네 사람들은 오례 잡아 서리쌀, 풋돔부, 풋콩 까서 밥을 짓네, 송편 하네, 창
앞에 대추 따고, 뒤안에 알밤 줍고, 논귀에서 붕어 잡고, 두엄에 집장 띄워 먹
을 것 많건마는, 가련한 우리 신세 먹을 것 바이 없네. 세상에 죽는 목숨 밥 한
덩이 누가 주며, 찬 부엌에 굶는 아내 조강인들 볼 수 있나, 철 모르고 우는 자
식, 배를 달라 밥을 달라, 무엇으로 달래 볼까. 우리는 저 박을 타서 박 속은
지져 먹고, 박적은 팔어다가 한 끼 구급하여 보세. 하고는 탄식을 하며, 동네
도끼를 얻어 들고 지붕 위로 올라가 박꼭지를 찍어 마당에다 내려놓고, 하도 큰
박이라 동네 대목의 큰 톱을 얻어다가 박통을 켜는데, 기껏 부린 욕심은 박 속
이나마 배불리 먹고, 바가지는 쌀도 일고 물도 떠먹는다는 것이 고작이었으나.
이것이 웬일인가.
슬근슬근 탁, 타 놓은 박통 속에서 푸른 옷 입은 동자 한 쌍이 씩 나서며, 흥부
앞에 절하고 드리는 온갖 진기한 약재부터 시작하여, 타는 박마다 쌀 나오고,
돈 쏟아지고, 휘황 찬란 금은보패, 일광단, 월광단에 산더미 같은 비단, 포목이
노적가리 처럼 쌓인데다, 수백 수천 가재 기물이 꾸역꾸역 다 나오는데, 심지어
는 뒷간 똥 치우는 가래조차, 다른 나무는 무겁다고 오동으로 정히 깍아 나주칠
을 곱게하여 나올 지경이었다. 사흘 나흘을 예사로 굶어, 뱃가죽이 등에 붙고
갈빗대가 따로 나서, 두 눈이 캄캄하고 두 귀가 먹먹하여, 누웠다 일어나면 정
신이 어질어질, 앉았다 일어서면 다리가 벌렁벌렁, 말라 죽게 되었으되 찾는 이
전혀 없고, 밥이라고는 냄새조차 안 맡히던 흥부 내외가, 서 말 여덟 되밥을 한
번에 지을 적에 솥이 적어 못하고는, 동네에서 쇠죽솥 그 중 큰 집을 찾아가 밥
을 짓고, 씻도 안한 쇠죽통에 밥 두 통을 퍼다 담아 놓으니, 뭉게뭉게 뜨거운
김, 밥 냄새에 숨막힌다. 스물다섯 명이나 되는 아들을 떼죽으로 몰아 앉혀 제
양것 먹인 후에, 식구대로 비단 한 필씩을 통으로 휘감아, 흑공단, 백공단, 붉
은 비단, 꾀꼬리색, 청색 비단, 해오라기 백설 같은 흰 비단을 둘러쓰니, 이런
기이한 일이 세상에 어디 다시 있으리오.
흥부 마누라가 하도 좋아 춤을 추며 마지막에 놓인 박을 타는데, 메나리 목청으
로 낭랑하게 소리를 메기고, 흥부는 뒷소리를 받았다.
"여보소, 세상 사람, 내 노래를 들어 보소. 세상에 좋은 것이 부부밖에 또 있는
가."
"어기여라 톱질이야."
"우리 부부 만난 후에 서런 고생 많이 했네. 여러 날 밥을 굶고, 엄동에 옷이
없어, 그 신세를 생각하면 벌써 아니 죽었을까."
"어기여라 톱질이야."
"가장 하나 못 잊어서 이때까지 살았더니, 천신이 감동하사 박통 속에 옷 밥 났
네. 만복 좋은 우리 부부, 이 금슬을 변치 말고 호의호식 즐겨 보세."
"어기여라 톱질이야."
"한 상에서 밥을 먹고, 한 방에서 잠을 잘 제, 부자 서방 좋다 하고 욕심 낼 년
많으리라. 암캐라도 얼씬하면 내 솜씨에 결딴나지."
"어기여라 톱질이야."
흥이 나서 목청을 돋우며 스리슬근 박을 탁, 타 놓으니
"아이구머니나."
천만 뜻밖에도 화용월태 미인 하나 교태로 무르익어 미소를 머금고 나오는데,
구름 같은 머리털로 낭자를 곱게 하여, 쌍룡 새김 밀화 비녀 느직하게 질렀으
며, 매미 머리 나비 눈썹, 은근한 정을 담뿍 머금은 눈빛에, 연지 뺨 앵두 입
술, 박씨같이 고운 잇속, 삐비같이 연한 손길, 버들같이 가는 허리에 곱게 수놓
은 비단옷을 호리낭창 걸쳐 입고, 연꽃이 나부끼듯, 해당화 조으는 듯, 모란화
벙그는 듯, 옥을 씻는 고운 소리로 아리잠직하게 말한다.
"놀라지 마옵시고 내 말씀 들으시오. 당 명황 천보간에, 눈동자 살며시 내리뜨
며 한번 웃음 머금어 지으면, 백 가지 아름다움 아양스레 피어나서, 육궁의 후
궁들이 무안 무색하던 양귀비를 모르시오. 제가 그 향혼이로소이다. 마의역 말
앞에서 칼날아래 죽은 후에 천하를 주유하여 임자를 구하더니, 제비 편에 듣자
온즉 흥부씨의 적선 행인이 부자가 되었다니, 천자 서방 내사 싫으이, 육군 분
발할 수 없데. 이제 강남 부가옹 당신의 첩이 되어, 봄을 따라 밤을 새며 즐거
이 노닐고자 하오니, 저와 더불어 무궁행락 하사이다."
흥부가 이에어이 아니 미치리. 제 식구 새까만 흑각 발톱, 냉기로 검붉어진 다
목다리만 보았다가 이런 일색을 보아 놓으니, 오죽이나 좋겠는가. 손목을 그만
덤벅 쥐다가 깜짝 놀라 탁, 놓으며
"어디 그것 다루겄냐, 살이 아니고 우무로다. 저런 것 한창 좋을제, 잔뜩 안고
채긋시면 뭉그러질텐데 어찌할꼬."
서로 보며 농탕치니, 무슨 좋은 보물이나 나올 줄 알고 소리까지 메긴 것이 분
하고 원통하다. 흥부 마누라가 못 볼 꼴을 보고 말아, 부정탄 손님같이 고개를
외로 틀고 뒤로 돌아앉으면서
"저것들 지랄하지, 박통 속에서 나온 세간 뉘 것인 줄 채 모르고 양귀비와 농탕
친고. 당 명황은 천자로되 양귀비에 정신 놓아 망국을 했다는데, 누구를 망치랴
고 네가 여기 찾어왔냐. 이까짓 박통 세간이 다 무엇이야. 나는 열 끼를 곧 굶
어도 시앗 꼴은 못 보겄다. 나는 지금 당장 나가니 양귀비랑 물고 뜯고 천년 만
년 잘 살어라."
자리를 차고 일어서며 발을 구르고 가슴을 두드려 강새암을 부리는데 잔뜩 독이
올라 있다.
"여보소, 아기어멈, 이것이 웬일인가. 자네 방에 열흘 자면 첩의 방에 하루 자
지. 저렇게 양귀비가 나 같은 사람 보려 하고 만리 타국에 박을 타고 왔으니,
사람의 인정상 어찌 도로 쫓아 보내겠나."
흥부가 사정하고, 달래고, 빌어서, 결국은 안채에 쌀가마니 같은 본처 두고, 별
당에 혀끝이 녹아나는 양귀비를 곱게 앉혀 밤낮 보며
"재미야 재미야 허고 살었다잖등게비. 사나들 속이란 게 다 그렇지 머. 지 먹구
녁으 풀칠도 못헐 때는 헐 수 없지만 사림만 피여 바. 맨 몬자 얻는 것이 쳅이
여, 첩. 그 짓 못허는 사램이 외나 팔불출이제."
"성님 엇다가 바 둔 각시 있소? 오입허실랑게비."
옹구네가 가스르며 비양거리자 공배네는
"씰닥쟁이 없는 소리."
하며 헛심 팽긴 듯 웃고 만다.
"그나저나 우례가 애기를 뱄능갑등만. 인자 배는 불러오고 어떨랑고. 가 심사가
까까압허겄네. 신세 한탄도 절로 나고."
평순네가 걱정스럽게 한 마디 섞었다.
"섣달에 들온 머심이 안주인 속곳 걱정 헌다드니. 넘의 일에 어쩐 일로 걱쟁이
많네?"
입술을 비죽이는 옹구네한테 평순네는 혼자말처럼 덧붙인다.
"여자 속은 다 같제. 몸 베리먼 죽고 싶고."
"옛날부텀도 그런 일은 많이 있었당게 기양 비첩을 삼을랑가. 종이라도 이뿌먼
데꼬 살잖이여 왜."
공배네도 한 마디 거들어 세 사람은 저마다 수군수군 우례 말들을 하였다. 그것
은 어쩐지 남의 일 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건너짚다 팔 분질러져. 첩은 무신 노무 첩. 기양 한번 건드러 보고 첫물 입맛
만 다신 것일랑가도 모르는디, 거그다 대고 언감생심 허다가는, 무단히 일만 꾀
이제."
암만해도 일이 수월치 않을 것 같은 예감에 평순네가 말끝을 떨군다.
"헤기는 수천양반 쳅이 되기만 험사, 그 양반 가문에 풍채 식견에 머이 빠져?
외나 우례한테는 홍자(횡재)지. 한펭생 종년으로 허드레 천역만 허능 것보담이
야 백 번 낫제. 그런대 그거이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이당가? 성님 동상 새이라도
이 집 저 집이 문서가 달른디, 아나 너 가져라, 호락호락 줄랑가. 혹시 몰르지.
그 가이내는 낯바닥이 반드로옴 헝게로 수천양반이 기연히 내가 데꼬 살라요,
나 주시오, 그럴랑가. 그러기만 험사."
옹구네는 무슨 궁리를 골똘히 하는 사람처럼 고개까지 배틀치고 말했다. 그런
옹구네 하는 양을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던 평순네가
"아이고, 수천양반 첩으로 못 가서 한잉가? 입 가생이 거품끄장 물고는 헌다는
소리마동."
"갈라먼 가제. 이러고 사능 것만 못허까? 쳅이면 어쩌? 삼승 보손에 볼 받어 신
고, 놋 요강에 떠르르르 오좀 눔서, 할랑할랑 부채질 허고 사는 세상, 쳅이라도
나는 좋겄다."
"죄로 간다, 죄로 가. 무단히 입빠른 소리 허고 저러다가 저 예펜네 꼭 주딩이
값 허고 말 거잉만."
"체, 호강이 싫은 년 있으먼 나와 보라고 그려. 늙으나 젊으나. 내 손꾸락에 장
을 지지게"
"안해 본 호강, 동티난다, 넘보지 말어. 사램이 호강보담 더 몬야 도리를 찾어
야능 거이여, 도리."
"꾀 벗고 장도칼 차네. 동낭치 박적에 수실을 달제. 다 떨어진 상것들이 도리?
아이고오, 도리? 그거 머에다 쓰는 거잉고."
"그러고 막 상게 양반들이 우리 보고 상것, 상것 헌단다."
"병 주고 양 주제. 존 것은 양반들이 다 허고 상것들은 요렇게 살 수 배끼 없게
꽉 쥐여서 맨들아 놓고는, 그랬다고 또 숭을 바? 그러면 자개들은 왜 숭잽힐 일
을 허능고? 대낮에 계집종 찌고 보란 디끼 자빠져서 홍야 홍야."
"양반 세도에 계집종 조께 밨다고 그거이 머 숭이겄어? 상것도 못되는 종년이
아직 임자할라 없는디."
"신이나 안 뵈이게 허든지. 헤기는 머이 무서서 신을 슁키겄능가잉."
평순네와 공배는 한 자락을 덮어 놓고 말하는데 옹구네는 쌍지팡이를 곧추세웠
다.
"임자? 임자 있으먼 멋 헌다요? 있다고 참간디? 상놈의 예펜네는 제쳐두고 중로
라도, 제 서방 버젯이 있는 아낙을 샛거리로 맛 다시는 양반이 어디 하나 둘잉
게비? 멩색 없는 목숨들이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갔지 어쩔 거이여? 서슬이 호랭
이맹이로 시퍼런 양반들한테 앙탈을 해밨자지. 호랭이 개 빰 우시디끼 헐 거인
디?"
"한 뱃속으로 난 새끼도 아롱이 다롱이라고, 한 말로 양반, 그러지만 성정도 행
세도 다 각객이라, 이 양반 저 양반이 서로 같든 않제. 다 달러."
"다르고 말고."
"그래 밨자 오백 자 한 또래여. 거르서 거그. 초록은 동색이란 말도 못 들어 뵈
겼소? 아이고."
옹구네는 평순네도 들으라고 공배네 말끝을 잡아 누른다. 아름드리 둥구나무를
둥그렇게 에워싸고 그 둥치에 등을 기대어, 드러난 뿌리 위에 걸터앉거나 혹은
풀밭에, 아니면 맨땅에 이만큼 저만큼씩 앉아 잠시 한가롭던 사람들은
"일어나세."
하는 말에 궁둥이에 묻은 그늘을 털어 냈다.
"당허고 나먼 당헌 속이나 씨리고 에리제 엇다 대고 따질 수도 없고."
그쪽에서도 우례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 건넛마을의 타성바지 쇠여 울네가 같이
일어서는 아낙에게 말했다. 아낙이 그 말을 받았다.
"따져? 종이?"
"중로라도 갬히 못헐 일이제잉."
"온 식구 다 쪽박 차고 거라시맹이로 동네 배깥이로 쬐께날라고?"
"그리여. 종이라먼 직사허게 매타작이나 당헐 거이고, 중로 상놈 같으면 괘씸허
다고 트재기잡어서 뚜들고 소작도 뺏어 부릴 거인디. 쬐께 나야지."
"아 생각해 바. 가진 땅 없어서 대를 물려 그 집이 논 부치고, 그 집이 놉 허
고, 허드렛일 걷어 험서 게우 먹고 사는 처지라먼, 누가 거그다 대고 대가리 쳐
들 수가 있겄능가? 꼭 매인 종이 아니라도. 앙 그리여? 또 머 꼭 무신 양반한테
만이 아니라 말이여. 말을 허자먼."
"옛날 같으먼 사실 이렁 것은 말꺼리도 안되야. 시방은 그래도 시상이 많이 달
러져서 콩이야 퐅이야 허지마는, 그 전보단 눅어진 셈이제."
뙤약볕으로 걸어 나가는 사람들의 등뒤에서 키녜와 돔바리는 광주리에 그릇과
숟가락들을 챙겨 담고, 물담살이 붙둘이는 밭으로 논으로 새물을 길어다 동이에
부어 주었다. 논에서도 일꾼들은 점심을 먹고 난 후에 보리 단술 막걸리를 한
사발씩 마시고는 얼근해져서 쌈지를 꺼내 곰방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밭일은 주
로 여자가 하였지만 논일을 하는 것은 주로 남자들이었다. 살림과 농사가 큰 집
에서는 상머슴, 중머슴, 담살이를 다 두고 부리지만, 보통은 하나 아니면 둘을
두는데, 담살이는 그 중 나이가 어려 열두어 살부터 열일곱 정도의 사이에 든
소년 일꾼으로, 땔나무를 장만하거나 소를 먹이고 꼴을 베는 깔담살이, 물 긷는
일을 전담으로 맡는 물담살이가 있어, 주인집에서 먹고 자며 옷을 얻어 입고,
새경으로는 한 해에 쌀 한 가마니를 받았다.
"붙들아. 너 진새헐 때 아직 안되얐냐?"
물지게를 지고 일어서는 붙들이에게, 담뱃대를 두드려 떨던 일꾼 하나가 말을
건넸다.
"되얐지맹. 그러지야?"
붙들이 대신 옆에서 말을 받은 장정이, 나이치고는 가녈가녈한 붙들이의 허우대
를 위아래로 훑어 보더니
"야 야, 넘 다 자는 오밤중에도 너는 자지 말고 살째기 나와서, 거들독 지는 연
습 좀 허그라. 젊은 놈이 어찌 노상 매가리가 그렇게 없냐? 너도 인자 내년 단
오에는 진샛날 받고 중머심 새경 받어야 안히여? 그래야 이뿐 각시 얻어서 장개
도 가제. 근디 너 그래 갖꼬 어디 심 쓰겄냐?"
한다. '진새'란, 담살이의 애티를 벗고 드디어 '온 일꾼'으로 인정되는 한판의
잔치였다. 그러나 이것은 생일이나 명절처럼 날짜 되었다고 치르는 것이 아니었
다. 이 진새를 하기 전에 담살이는 반드시 한 절차를 거쳐야만 했던 것이다. 그
것은
"내가 이만한 힘이 있소."
하고 보여 주는 증거로, 마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정자나무 근처에 놓인 쌀
가마니보다 크고 무거운 돌을 불끈 들어 짊어지고 나무 주위를 도는 일이었다.
그 돌을 '들돌'이라 했다. 온전한 일꾼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는 자질의 바탕은
힘이었던 것이다. 이 일을 거뜬하게 해내면, 모여 선 사람들이 장하다고 함성을
질렀다. 그 동안 송아지도 소도 아니었던 어중간한 어석이소가 이제 떡 벌어진
황소로 때를 벗는 뿌듯한 순간인 것이다. 그러면 담살이의 주인집에서는 바로
진새 잔치를 할 날을 잡았다. 그리고 푸짐한 술과 음식을 준비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명절인 단오를 전후해서 벌어지는 이런 잔치는 머슴들에게 몹시 흥겨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날은 기양 온 동네 머심들을 다 불러 갖꼬, 술을 막 동우째 엥기고, 닭죽 쒀
주고, 있는 입이서는 돼야지 괴기 먹고 남게 내주고."
당사자에게는 장정이 된 축하의 뜻으로 옷 한 벌씩을 해 주었다. 나이가 차고,
황소라도 들어올릴 만한 힘이 넘친다 할지라도, 진새를 치로지 않으면 다른 집
일꾼들이 품앗이 상대로 삼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날 이후에는 온 일꾼 대접
을 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부터는 새경도 달라졌으니, 중머슴은 한 해에
쌀 열 가마나 열한 가마, 그보다 더 나이 많고 능력이 있는 상머습은 열세 가마
를 받았다. 주인집에서는 머슴이 기거하는 머슴 사랑을 따로 주고, 사철 의복도
물론 다 해 주었는데, 봄, 가을로는 무명 중의, 적삼, 여름에는 베 잠뱅이, 등
거리에, 겨울에는 솜 바지, 저고리였다. 옷과 새경만 해도 그렇지만, 머슴이 먹
는 양식도 수얼치 않아서, 삼 시 세 끼 끼니마다 단지 만한 바바 사발에 고깔
봉우리를 한 고봉밥을 담고, 샛거리 먹을 것을 고프지 않게 주어야 하는데
"한 되 쌀을 씻어서 머슴 밥을 지으면 한 그릇 밥이 좀 모자란다."
고 하였다. 그러니
"한 해 농사 지으면 머슴이 절반은 가지고 간다."
는 말이 저절로 나옴직도 하였다. 그러나 그만큼 머슴의 일은 고되고 힘도 많이
쓰는 것이어서, 만일 실하게 먹이지 못하면 배가 고파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우선 기운이 없어서 무슨 일을 하려 해도 힘이 닿지 않는 것이다. 또 심정이 상
해서도 배곯은 머슴이 공력 들여 일할 리가 없으니, 인심 박한 집 머슴은 건둥
건둥 건너뛰어 일을 하거나 번연히 일을 보고도 건성으로 지나쳐 버리기 일쑤였
다.
"머슴 먹일 것 아끼다가는 그해 농사 다 망친다."
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만에 하나 게으르고 못된 머슴이 들
어온다면, 아무리 잘 먹이고 잘 입혀도 허사라, 주인으로서는 어떤 머슴이 들어
오느냐에 따라 농사 성패가 정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 해의 일이 마무리되
는 동짓달의 동짓날을 기준으로 일꾼을 들이거나 내보낼 때, 주인들은 모쪼록
정직하고 일 잘하는 머슴을 구하기 위하여 널리 사람을 놓아 알아보고 수소문을
하였다. 물론 머슴이 모두 해마다 들고 나는 것은 아니었다. 한 번 정해진 집에
서 서로 마땅하여 몇 년씩 머슴을 살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부자 형제들
이 같은 집에서 연이어 머슴을 살기도 하였다. 머슴은 제 농사를 못 짓고 남의
집에 고용되어 새경 받고 일해주는 것이 고달픈 처지이기는 하지만, 농사에 관
한 한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머슴손에 맡겨진 것이어서, 주인이 된 심정으로 이
일 저 일 스스로 알아서 추려 나가야 했다. 그 중에 상머슴이 하는 일이 제일
중요했다. 언제 잠깐 손놓고 앉아 있을 틈이 없는 그는 쟁기, 가래, 괭이, 쇠스랑
과 작두, 호미, 낫에서부터 잿박에 오줌장군, 개똥 삼태기까지 몇 십 가지 농기
구 연장을 제 살같이 다루고 손보면서, 정월이면 한 해 지을 농사를 계획한다.
봄철에 모내고 여름철에 김매며 가을철에 온갖 곡식 추수를 할 때, 아무리 일
잘하고 힘 좋은 머슴이라 할지라도 혼자나 둘, 셋이서 그 일을 도저히 다 해낼
수는 없으니 놉을 부리게 되는데
"어느 날."
"어느 논에."
"몇 사람을 부르며."
"누구를 오라고 할까."
"일은 어떻게 시킬까."
를 주관하여 여축없이 해야 하는 것이 상머슴이었다.
"원래 글 읽는 선비는 아무리 가난해도 일하러는 나가지 않는 것이고, 주인은 일
꾼을 감독하려 하여도 한번 둘러보면 그때뿐."
이어서, 일꾼들이 눈을 속이기로 하면, 주인이 하루 종일 지키고 앉아 있는 것도
아닌데, 볼 때만 하는 척하고 안 보이면 해찰을 해 버려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
었다. 일에 닳아지고 꾀만 남은 일꾼들을 요령것 다루기 위해서는 상머슴의 남
다른 수완이 있어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큰 수완은 일꾼들이 따라 하지 않을 수
없게 부지런히, 열심히 일하는 것이었다. 남을 시키려면 자기는 그보다 열 배를
더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머슴은 어쩌든지 밑이 가벼워야 했다. 이 머슴을 두는
것이 형편에 벅차서 혼잣손으로 머슴이나 다를 바 없이 농사를 짓는 집도 많았
다. 또 그것이나마 자기 논이면 다행이었지만, 소작을 부치는 집이나, 몹시 가난
하여
"오늘 우리집에 일허는 데 오실라요?"
부르면 꼭 빠지지 않고 나오는 집이 문중에서도 여럿 있었다. 그러나 이들을 아
무래도, 다른 일꾼들과 마구 섞여 함부로 말을 부고 받지는 않았다.
"썩어도 준치."
라고 처신을 조심하는 까닭이었다.
이삼십 명 일꾼들이 지게로 지어 온 점심밥을 다 먹고 나서 삼삼오오 둘러앉아
잠시 이야기로 꽃을 피울 때도 이들을 절대로 거멍굴이나 고리배미 사람들과는
섞이지 않았다. 눈 내리는 엄동 한철을 빼놓고는 으레 매안으로 올라와, 오늘은
이 집 내일은 저 집의 놉으로 일하는 공배는, 걷어부친 베 잠뱅이에 소매없는
등거리를 걸치고, 다른 일꾼들 틈에 어울려들어, 남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
다.
"시상이 달러졌단디."
"무신 시상이?"
"아, 사람 사는 시상."
"그래서 시방 자네 머이 달러징 거이 있당가?"
"넘들이 그렇다고 헝게 그렁갑다 싶은 거이제."
"나 원, 시상이 달러졌다, 달러졌다, 허드라만 그거이 다 말뿐이제 실상 머 달러
징 거이 있능가? 그대로제. 쥐뿔이나 가진 거이 있어야 재주를 넘든 용을 쓰든
달러지제, 아 손바닥 뻘그런디, 쥔 것 없는 맨손 바닥에 하대 받고 살든 그 자리
서 하루아칙에 달라지면 대관절 머이 달러진당 거이여? 안 달러져, 그대로여. 나
라가 망해 부러도 양반은 양반이고, 상놈은 상놈, 종은 종이여. 무단히 넘의 불
에 개 잡을라고 말어. 그러다가 매급시 지 머리크락이나 꼬실르제."
"시방은 상감님도 종을 산다는디."
"온 백성이 다 종을 살제, 그렁게."
말하던 사람이 발등으로 불불 기어 올라오는 왕개미를 툭, 발을 굴려 떨어트린
다.
"그러면 양반도 종이란 말인디, 참말로 그렇다먼 그께잇 거 이판사판, 헐 말 못
헐 말이 어디 있어? 너냐 나냐 체다보고, 개릴 것은 개렐바야겄네."
"왜 머 개릴 일 있능가?"
"무신 일이 꼭 있어서가 아니라, 머이 달러졌단디 내 손에가 잽히능건 암껏도 없
잉게 무단히 까깝허고, 멀 좀 알먼 좋겄는디 알든 못헝게 보손 신고 발등 긁고,
넘의 다리 긁는 것맹이라."
"오장에서 불 낭가?"
"저 사램이 어디서 우례 소문 들었능갑다. 쩍 허먼 입맛이제."
"오, 그렇고만? 애돌와서 그렇제? 아까부텀 밥도 못 버고 애돌애돌 허드라니. 아
서라, 애초에 넘으 꺼이여. 여소, 자네가 조강지처 내부리고 대그빡에 흰 털 돋
느디 비부쟁이로 갈 것도 아님서, 우례가 이뿌먼 멋 허고 고우먼 또 멋 헐랑가?"
웃음엣소리로 여기저기서 몰아 붙이자 당사자 얼굴이 벌개져서 무슨 말을 얼른
못하는데 다른 사람이 한 마디 한다.
"첩을 삼제."
그는 재담도 잘하고 아는 이야기도 많은 아랫몰 타성 임서방이다. 생김새 자그
마하나 다부져 보여 물에 잘 씻긴 돌멩이 같다. 그의 조부 대에, 매안에 있는 사
액서원인 매안서원의 원지기를 하다가, 대원군의 훼철령으로 서원이 헐려 버린
다음에도 어디로 가지 않고 그냥 마을 끄트머리 아랫몰에 남아 눌러 살면서 대
를 물린 그는. 비록 타성바지지만 행동거지 눈밖에 나지 않게 처신할 줄 아는데
다가 남다른 붙임성도 있고, 손재주까지 곰살가워 박대를 받지는 않았다. 그보다
는 오히려 지붕을 새로 잇거나 무너진 담을 다시 쌓을 때, 혹은 벽을 바르고 구
들을 놓을 때면, 문중의 이 집 저 집에 놉으로 빠짐없이 불려 다니곤 하였다. 이
상하게 그의 손이 닿으면, 같은 일을 해도 태깔이 나고 야물었다. 그래서 마을에
는 그가 할 일이 얼마든지 있었다. 본디 재바른 그는, 이런 일을 하러 간 집의
비복들과도 허물없이 쉽게 사귀었지만, 주인을 대하면 주인의 걸음걸이와 말씨,
그리고 얼굴표정까지도 세심하게 보다 두어 그 양을 배우려 하였다. 임서방이
던진 '첩' 소리에, 아까 몰리던 사람이 말을 받았다.
"첩을 삼어? 사흘 굶어도 따러 산단 쳅이 있이까?"
"굶어? 이런 손. 이러니 무신 첩을 두겄능가. 아 멕일 생각을 해야지 왜 궁길 생
각을 몬야 허능고? 사램이 다 생각대로 되는 것이당만."
"그렁게 환장허겄제. 다 같은 대장부로 나서 누구는 지 목구녁 풀칠도 제때 못허
는디, 누그는 처첩을 쌍나란히 줄세우고."
그 말 끝에 누가
"샘현육각을 불제."
하였다. 그러자 그 옆에 앉았던 어서방도 볼멘소리를 한 마디 했다.
"오만 일을 다 우리가 허는디, 새비맹이로 등쌀이 꼬브라져 갖꼬 모심고, 김매서,
추수끄장 다 해 줘도, 우리한테 떨어지능 것은 품삯 ㅁ 전이여."
"공으로 일해 중가. 밥 먹고, 새참 먹고, 담배 술 다 줘서 먹고, 품삯도 받고, 놉
이란 게 그렇제 그러먼."
볼멘소리를 누르는 것은 그보다 나이 조금 더 먹은 공배다.
"있는 양반은 손에다 흙 한 보래기 안 묻히고 그 농사를 다 둘러 먹는디, 떡은
고물이 묻어서 어뜨께 자시능고."
"물팍에 앉인 쳅이 백옥 같은 섬섬옥수로 입 속으다 너 디리제."
"깍 물어 부러."
"멀?"
"손구락을."
"아야."
"아야? 아나, 아야. 시방 참말로 속 아푼 것은 우롈 꺼이네, 우례. 그거이 시방
막 이쁠 때라 기양 날로 씹어도 빈내 한나 안 나게 생곘등마는, 아이고. 어디다
대고 말도 못허고, 나 어쩔라요. 가서 물어 볼 수도 없고."
"죽은 디끼 엎어져서 처분만 바래야지 누가 엇다 텍을 쳐들고 무신 소리를 묻고
자시고 헐 수가 있겄어? 그러다 베락 맞어 죽을라고."
"죽을라먼 상감님 턱을 못 차냔 말도 있기는 있드라만."
"엉? 상감님 턱을 차? 발로? 아이고, 옹골져라."
"긍게 쫓아가서 베락 맞는 거이여. 가만 있으먼 안 죽을 거인디."
"기왕지사 그렇게 된 노무 일이먼, 천헌 신세를 한탄헐 배끼, 무신 재주로 꺼꿀
로 돌리 수는 없는 거이고, 종들이 머 양반들맹이로 남녀 칠세 부동석 내외를
허능 것도 아닝게, 무신 숭될 거 있당가?"
공배가 혀를 차며 하는 말을 임서방이 받았다.
"어차피 종의 자식, 개 짐생 다를 거 없이 새끼를 낳는 거이라면, 이럴 때, 그 존
양반의 씨 받은 김에 달라들어 죽을 꾀를 낼 거이 아니라, 차라리 정승 판서 유
자광이를 낳야제. 유자광이를 나 부러야여. 그 냥반도 종의 자식이였단디."
그러자 아까 개미 떨어 내던 사람이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유자광이는 간신 아니여?"
"영웅 호걸이제. 그런 양반 보고 이인, 기인, 그러그덩. 아 세도 있고 지조 있고
문서 있고 내림 있는 양반들이야 유자광이 보고, 간웅이네 난신이네, 소인배, 천
하 몹쓸 놈이네 허지마는, 그거 다 가진 거 있는 양반들 이얘기고. 우리 같은 사
람들 맘속에는 그런 영웅이 다시 있으까 싶으데. 아 그게 어뜬 세상이라고 계집
종의 자식이 재상이 되야 긍게. 났제, 났어. 났고 말고."
"아 요 바로 여그 남원읍 왕치에 누른대 있잖이여? 그 동네가 유자관이 그 냥반
탯자리여. 거그서 났잉게."
"우리 에레서 들으먼, 원래 그 동네가 고죽리라는디 , 옛날부텀 대가 많었든 모
냥이라, 그 무성허게 새애파런 대나무들이 자광이를 딱 나 놓으닝게 하루아침에
기운 없이 실들시들 허드니만 메칠 못 가서 온통 누우러니 말러 죽네 기양. 인
걸은 지령이라, 땅의 정기를 싹 뽑아 자광이가 생긴 탓이란 말이여, 그게. 그래
서 동네 이름이 황죽리, 누른대가 되얐드리야."
"이 근방에서야 그 이얘기 다 알제 아먼."
"근디 그 태몽 말이여, 임서방. 그 태몽 어뜬 거이 맞능가. 유자관이 아부지가 꿈
을 꾼디, 낮잠을 자다가. 근디 누구는 남원산성 그 거창헌거이 입 안으로 옴시레
기 들왔다고 허고이, 누그는 또 호랭이 집채맹이로 큰 백호가 입 속으로 쑥 들
왔다고도 허고. 또 하나 있어. 내가 고리배미 솔밭 삼거리 주막에 앉었다가 운봉
권포리 덧멀서 산다는 붓장시를 만났는디, 그 사람은 그러등만. 그 아부지가 밤
에 꿈을 꿍게, 달이 , 아니 해가 훤허니 뜨더니 문구녁으로 후르르 들어온단 말
이여. 하, 그거 요상허다, 허고는 다시 잼이 들었드리야. 근디 아 해가 또 훤히
자기 목구녁으로 스르르 넘어와. 머이 맞능 거잉가?"
"본래 영웅이 날 때는 이얘기가 많은 거이라. 태몽부텀도."
임서방은 그렇게 말하고는 곰방담배를 물었다.
"유자광이 종의 자식 얼자라. 정실 부인 마나님의 소생이먼 적출이고, 그만 못해
도, 첨한테서라도 났이먼 서자는 된디, 유자광이는 종한테서 났어. 생모가 종이
여. 참, 사람으로 나서는 제일로 천헌 거이 종 아닝가. 그러고 종은 아부지를 안
따르고 어머이를 따릉게, 신분을 말여, 내비두먼 유자광이는 그대로 종이 되는
거이여. 그런 처징게 에레서부텀 설움, 멸시, 천대, 몸썰나게 많이 받었제. 기구
헌 운멩이여. 그러먼, 아부지는 누구냐."
조선 초기 태종 원년에 나서 세종 8년에 무과에 급제한 뒤 여러 벼슬을 역임하
고, 호조참의를 거텨 나중에는 지중추부사에 올랐다가 성종 4년에 세상을 뜬 무
신 유규였다. 그가 경주 부윤으로 있을 때, 소송자 중에 뇌물을 바친 자를 치도
곤으로 호되게 쳐서 때려 죽인 일로 사단이 나서 파직당하고는 향리인 남원의
고ㅈ리로 와서, 어느 날 한가로이 낮잠을 자고 있었다. 한참 자노라니 비몽사몽
간에 목젖까지 보이게 붉은 입을 쩌억 벌리어 천지가 진동하도록 허흐어으어어,
표효하는 백호가 휘익 나타나 그의 입 속으로 바람처럼 내달리며 들어온다. 엉
겁결에 그것을 꿀꺽 삼키기는 삼켰으나, 소스라쳐 놀라 깨어 보니 그것이 꿈이
었다. 그는 어찌나 놀랐던지 상기도 가슴은 벌떡벅떡 뛰는 데, 마치 꿈에 삼틴
백호가 꼭 뱃속에 있는 것만 같았다. 곰곰이 생각하니 이는 참으로 놀라운 태몽
이라, 이럴 때 아이를 낳으면 큰 인물이 날 것인데, 이런 꿈은 평생에 한 번 얻
어 보기 어려운 꿈, 또 아무나 꿀 수 있는 꿈이 아니지 않은가. 이런 큰 길몽을
얻었을 때에는 무슨일이 있어도 입을 딱 다물고, 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 만일
입을 열어 버리면 뱃속에 삼킨 정기가 그만 새어 나가 흩어지게 되니, 꿈의 효
력이 없어지고 마는 탓이었다. 그리고, 서둘러 꿈의 정기를 생명으로 맺히게 해
야만 한다. 만일 한 집안에 있는 다른 사람이나 마소나 개, 도야지라도, 한 발
앞서 아차 일을 하게 되면, 이 정기를 고스란히 따 가 버리는 때문이다.
이게 어떤 꿈이라고 잃을 수가 있느냐. 마음이 다급해진 유규는 안방으로 달려
들어가 손짓 발짓 하면서 부인에게 시늉으로 이야기 하였으나, 입은 함봉을 하
고 눈은 불길이 번득이는 영감의 이 해괴한 작태에, 짐작은 가지만 점잖치 못한
일이라.
"양반의 집안에서 허구헌 밤 다 두고 대낮에 이 무슨 망령이신가요? 아랫것들
보기 민망합니다. 어서 사랑으로 나가십시오."
유규의 뜻을 엄숙하고 단호하게 거절한다. 딴은 옳은 말이라서 무안해진 그는
거기 더 있지 못하고 안방에서 나와 대문간에서 서성거렸다. 여전히 속에서 벌
떡벌떡 호랑이의 거친 맥이 뛰고 있는 것만 같아서 숨이 가쁘고 진정하기가 어
려웠다. 그런데 이것은 또 무슨 일인가. 대문 밖 공터에서 유규가 아끼며 기르는
숫말과 옆엣집의 암말이 서로 가까이 서서 희롱하는 것이 눈에 띄인 것이다.
"아, 이런. 큰일났구나. 저것들이 만일 내 꿈을 따 가 버리면, 관운장이 타고 다
녔다던, 그 하루에 삼천 리를 달린다는 적토마를 낳으리라. 그러나 안될 말이다.
적토마 한 필을 얻으려고 내가 아들을 잃을 수 있겄느냐. 내 꿈은 반드시 천하
에 위용을 떨치고 만인 위에 호령하는 아들을 낳을 수 있는 큰 태몽인데."
유규는 순식간에 낫을 뽑아 들고 쫓아 나가 두 말을 떼어 놓았다. 이때였다. 들
에 갔던 계집종이 나물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아장아장 부엌으로 들어가는 모습
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옳지, 됐다. 할 수 없지, 너한테라도."
그는 쏜살같이 부엌으로 따라 들어가 문을 안으로 걸어 잠그고, 맨바닥에서 하
녀를 안았다. 계집종은 속으로 무한히 놀랐으나, 상전이 하시는 일이라 다만 참
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해서 유규는 꿈에 얻은 백호의 정기를 계집종의 뱃속
에 심어 놓으니, 과연 그로부텨 종의 몸에 태기 있어 열 달 후에는 옥동자를 낳
게 되었다. 이가 곧 유자광이었다.
"애기를 나 노니 이것 또한 예삿일이 아니였드라지. 산모 방에는 기양 항상 오색
무지개가 아롱아롱, 서기가 감돌고 향내가 자옥히여."
"애기는 무럭무럭 잘도 크는디, 칠칠은 사십구, 일곱 이레를 지내고 낭게 눈은
호안으로 번갯불이 번쩍허고 울음을 한 번 울라치먼 산이 무너지게 우렁찼드랑
만, 그러드니 한 달이 못 되야서 일어나 앉고, 두 달이 못 되야서 일어스고, 석
달이 채 못되얐는디 걸어 댕기드만, 백일을 딱 채우고 나서는 뛰어 댕겠다대. 그
렁게 이런 사람허고는 달체. 우리 같은 사람허고는 말이여."
"세 살 때부텀 글을 배왔는디 그렇게 영리해서, 다섯 살에는 대학을 배우고, 일
곱 살에는 시문을 짓드니, 열 살 먹음서는 글방에서 항상 장원을 헝게로, 누구라
도 그 재주를 따를 사람이 없었제잉."
"문장도 문쟁이지만, 심이 장사라, 열 살 먹응게 벌세 키는 육 척이 넘어서, 씨름
판 송아지는 다 자광이 꺼이였는디, 날이 갈수록 누가 당헐 사램이 없어, 당최,
아아고 어런이고 간에. 그렁게 사방에 소문이 자자허게 날 거 아니여? 인재 났
다고이. 그래서 모다 귀경들을 왔어. 흐윽허게 몰려와. 대나무 누우러니 된 것도
보고, 소년 재사 소년 장사가 대체나 어치케 생겠능가 신기헝게 좀 볼라고."
"근디, 마을에 대나무가 누레지먼 머 안 존 일 생긴다고 안허요? 그게 원래 새파
러니 겨울에도 그렁 거인디 본색을 변허게 했잉게 무신 변괴가 난다고. 흉허다
고."
"그런 말도 있제."
하이튼지간에 유자광이는, 누른대 동네 앞에, 나도 가서 봤그만, 그 아름드리 정
자나무, 시방도 그대로 있데이, 그런디 그 정자나무 아래 바우 욱에 걸터앉어서
날마동 하루 삼천 자를 외왔대. 그러고 나서는 그 앞에 요천수에 가서 은어 삼
백 수를 금새 잡어. 그러고는 나무 삼백짐을 헌단 말이여. 그거이 자광이 일과
라. 그런디 큰물이 나서 요천수가 북적물이 삐이러게 요동을 침서 내리와도 유
지광이는 맨발 멋고 물 욱으로 징검징검 걸어 댕기고 허는 대인이여. 그 냥반이
축지법도 허고, 그게 소축, 대축, 그러네이. 대축은 한 발짝에 삼십 리를 가고, 소
축은 시오리배끼 못 가. 유자광이는 대축을 했제. 그렁게 얼매나 야망이 크겄능
가이.
"천하를 호령허고 싶었겄지맹."
이러한 자광이 일곱 살 때, 하루는 유규가 그의 재주를 시험해 보려고 큰 바위
를 가리키며 글을 지으라 하였다. 어린 자광은 즉석에서
근반구천하니 세압삼한이로소이다.
"반석의 뿌리가 구천에 벋으니, 그 기세는 삼한을 누릅니다."
하고 썼다. 이에 놀란 유규는, 과연 자광이 장차 큰 인물이 될 것임을 알아봤다.
그러나 그는 비첩의 소생이라. 제 아무리 하늘을난다 해도 쓸데없다 하고 사람
들은 자광을 멸시, 천대하였다.
"아깝다. 모처럼 세상에 인재가 났는가 했더니 하릴없는 일이구나. 기왕이면 적
자로 나지. 얼자는 차라리 세상에 안 나느니만 못해. 차라리 어수룩하든지. 그러
면 모나지나 않지. 미천한 심준에 재주 비범하고 야망이 하늘을 찌르면, 울분을
못 이기어 병이나기 쉽고, 경박하거나 방자해지기도 쉬우니, 일을 저질러 오히려
화를 부르지."
그러나 그는 타고난 기를 죽이지 않고 혈혈단신 서울로 올라가, 건춘문을 지키
는 갑사로부터 시작하여, 세조의 특채로 병조정랑이 되었다가, 세조 14년 무자년
에 문과 금제 장원을 하였다. 문과 급제후, 그의 벼슬은 자꾸 올라가 병조판서를
거쳐 좌찬성에 이르렀으며, 성종 24년 팔월에는 예조판서, 대사헌을 지낸 명신
성현과 더불어 악학궤범을 편찬, 완성하였다.
이렇게 조정에 굳은 기반을 가진 기성 세력 훈구파의 한 사람이었던 무령군 유
자광은 영남 출신인 사림파들과 항상 사이가 좋지 못하였다. 결국 연산군 4년에
는 무오사화를 일으키어 사림파를 한 손으로 쓸어 무참하게 죽이니, 조야에 적
이 많았다. 그러나 그 자신의 일신으로만 본다면, 이일로 감히 누가 그 뜻을 어
기는 사람이 없을 만큼 큰 위세를 떨치게 되어 큰 권력을 누리었다. 그가 나중
에 대간, 홍문관, 예문관의 탄핵을 받고, 훈작을 빼앗긴 채, 유배되어 쓸쓸한 적
소에서 처량하게 죽었다는 이야기는 임서방도, 둘러앉은 사람 누구도, 아무도 하
지 않았다.
종의 자식이, 비첩 소생으로서, 감히 목숨이랄 수도 없는 천대와 멸시 속에서 거
스를 수 없는 신분의 폭포를 거슬러 뚫고 위로 치솟아, 혼자의 힘으로 등룡을
하고 하늘을 얻어, 조선 영웅 나라 고관이 다 모인 조정의 권좌 꼭대기에서 얼
자 출신이라고 탄핵도 많이 받았지만 끝내 다 이겨내고, 정승 판서로서 종횡무
진으로 한세상을 주무르며, 세조, 예조, 성종, 연산에 이르기까지 여러 임금들을
모시어, 십 년을 두고 홀로 재상 노릇을 하였단다, 는 그 이야기만이 이들에게는
오직 꿈같이 여겨졌던 것이다.
"우례도 그렁게, 유자광이를 나야 히여. 암먼. 그리 못헐 거 머 있어? 아니 꼭 그
렇게 되야야지. 임서방. 자네 막손이 만나그던 이런 이애기 꼭 일러 주소. 딸내
미한테 가서 말허라고. 유자광이를 나라고."
그러던 것이 벌써 십오륙 년 전 일이었다.
14 별똥별
"긍게 아들 둬야네, 아들. 아들이 효자가 많에. 만고에 심쳉이 같은 효녀도 없는
것은 아닌디."
"머 엄동 시안에 객광시럽게 잉어 먹고 잪다, 죽순 먹고 잪다, 그러는 노부모 봉
양헌 이얘기? 나 맨날 그른 이얘기 들으먼 웃음이 나오등만. 충신 날라먼 나라
가 어지러야고, 효자가 날라먼 부모가 노망을 해야겄드랑게. 거 어디 맨정신 갖
꼬야 북풍한설 때 아닌 눈 속으서 그렁거 잡어다 도라, 캐 오니라, 허겄다고? 망
령이 나서 물색 없이 보채는 부모가 있어야 죽고 살고 해다 디리는 자식도 생기
제. 심봉사만 해도 그거이 어디 보통 속없는 늙은이여?"
"그게 아니라, 한겨울 잉어 죽순도 쉽든 않지마는 그보담 더 알짜 효자는 따로
있제."
"무신?"
"다리 놔 준 효자."
"아, 순창 한다리?"
"하아. 원래 거그 옹천골 냇물에는 다리가 없었다그덩. 기양 물이여. 냇갈. 그렁
게 누구라도 그 물을 건넬라면 보선 빼고 정갱이 걷고 징검 징검 맨발로 건네얀
단 말이여. 근디 시방은 넓적넓적헌 독이 여러 개 조옥 백ㅎ지, 그게 바로 한 효
자가 논 다리, 한다리여. ㅁ 백 년 되얐지 아매."
"그 동안에 큰물 한번도 안 났었등게비? 떠내리가도 안허고 시방끄장 그대로 있
게."
"아, 효심이 박음 독인디? 지심에 가 백힌 뿌랭이를 비 조께 온다고 뽑을 수 있
간디?"
"앗다 그리여이. 그렁게 한씨 성 효자가 논 다리라고 한다링가?"
"아니제. 그거는 찰 한짜 한다리라. 차다, 그말이여. 춥다."
"추워? 추운 다리여, 긍게?"
"그것도 다 사연이 있어. 내력 없는 이름이 어디 었겄능가?"
딸내미 앵두가 바가지에 담아 내온 찐 강냉이를 낱알로 뜯어 한 개씩 입 속에
던져 놓으며 임서방이 말했다. 멍석에 웅긋중긋 앉은 사람들 머리 위로 앵앵거
리며 날아들던 물것들이, 매캐한 생쑥 모깃불에 쫒기어 밀려난다. 머리가 벗어지
게 약오른 여름 해의 긴긴 뙤약볕 아래 살이 익어 벌겋게 타도록 엎드려 일하다
가, 그 해가 서산 노적봉 너머로 넘어가면 사람들은 허리를 펴고 일어서, 저무는
밭머리와 논두렁에 자우룩이 내려앉는 땅거미를 밟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럴
때면, 어스름에 잠겨드는 저녁 지붕 위로 솔가지 때는 푸른 연기가 이내같이 흩
어져 오르고, 주황의 아궁이에서 탁, 타닥, 불꽃튀는 소리가 고샅에까지 들리는
데, 그 소리에 놀란 듯 흰 박꽃이 깜짝깜짝 피어났다. 울타리에서 딴 호박나물에
가지 쪄서 무친 보시기 놓고, 풋고추 숭숭 썰어 양념한 간장으로 보리밥 한 그
릇을 비벼 먹은 뒤, 털럭거리는 부채 하나 손에 들고는 으레 임서방네 마당으로
마실을 오는 것은, 아랫몰에 사는 타성 몇집의 정해진 일거리였다. 여름에는 밤
이 짧고 낮일이 고되어서 그저 잠이 보약이지마는,
"나는 귀가 보배고 다리가 재산이라."
고 늘 입버릇처럼 말하는 사람답게 어디서 누구한테 들었는지 오밀조밀 알고 있
는 이야기가 많았고, 또 한가지를 들으면 마치 제 눈으로 열 가지를 직접 본 것
같이 실갑나게 말하는 것이 그의 큰 재주인 임서방네 멍석에 둘러앉아, 두어 땀
노는 재미도 단 밥맛 못지 않았다.
"대갓집 사랑에는 이얘기 해 주고 밥값허는 색객도 있다든디, 자네도 어디가서
밥 굶든 안허겄네. 외나 쌀밥 줄래 보리밥 줄래 그러제."
사람들은 간혹 그런 우스갯소리를 했지만 임서방은 저와 제 식솔들의 목구멍을
먹여 살리는 일에는 오직 자기 손과 다리만을 믿었다.
"그런 소리 말어라. 사당패 지집이냐, 재주로 밥을 얻어먹게? 재주는 기양 재주
고. 그걸로 너와 나 모다 질거우면 다 된 거이제. 밥은 일을해서 먹고 살어야 실
헌 거이여. 다리품 한 걸음에 밥 한 숟구락, 다리품 두 걸음에 밥 두 숟구락. 틀
려 본 일이 없어, 그 계산이. 하늘이 쪼개져도 발 개고 앉어서는 내 목구녁에 풀
칠 못허는 거잉게."
그래서 그는 제 발 떼지 않고 공으로 얻은 것도 없었지만, 그 대신 무단히 헛검
음을 하는 일도 없었다. 그러니 다리가 재산이라고 할 만하였다.
"저 순창 옹천골, 옥천동이라고도 허지. 거그 한씨 효자가 살었는디 마음이 천심
이여. 에레서부텀도 부모라면 지극 봉양을 허고 셍기는디, 하룻날은 즈그 아부지
가 득병을 해서 얼마 있다 기양 죽어 번졌네. 늙도 젊도 안헌 불로불소지년의
즈그 어머이를 냉게 놓고 돌아가세 부렀어. 느닷없이 혼자 되야 분 즈그 어머이
가 적막 강산에 절벽을 앞에 논 사람맹이로 시름없이 하루하루 지내는디, 저그
저 옹천골서 서쪽으로 광주, 담양 가는 쪽에 강천사란 절이 있어, 계곡이 구비구
비 아조 조오체, 그 절에 중이 어찌 언제부턴가 즈그 어머이를 보고 댕긴단 말
이여. 보러와. 꽃 피는 봄이고, 비 오는 여름이고, 낙엽 지는 가을이고. 등에다
바랑지고 오는디, 강천사서 옹천골을 올라면 꼭 그 냇물을 건네야네이.발 멋고.
그거이 삼시에는 갠찮지만, 동지 섣달 엄동 설한에 올 적으는 그 물 건네기가
어디 쉬운 일잉가. 다리가 없잉게. 물은 건네야겄고, 벨 수 없이 보선 벗고, 바지
걷고, 칼로 싹 비어 내게 아푼 찬물에 맨발 당구고는 철벅철벅 건네얄 거 아니
라고? 발이 얼어 붙제, 얼어붙어. 그렁게 밤중에 그러고 와. 그럴 때 효자가 못
본 디끼 자는 디끼 기철을 안 내고 가만히 있으면, 중이 즈그 어머이를 보듬고
는 이빨을 딱딱 부딪치고 와들와들 떰서 아이고, 추워라, 아이고, 추워라. 그러고,
즈그 어머이는 중의 다리가 몸에 다먼 얼음뎅이맹이로 시렁게는, 아이고, 차구
라, 차이고, 차구라, 서럽게 그래. 이 소리를 들은 효자가 곰곰이 생각다가 아무
도 모르게 하룻밤에 한 개씩 그 무겁고 큰 독을 업어다가 징검다리를 놨제. 쭝
이 댕기기 쉬우라고, 찬 물에 보선 빼고 발 적시는 일 없게 댕기라고, 마른 발로
오라고. 중의 발이 시리먼 즈그 어머이 설움이 시링게. 그래서 그걸 한다리라고
그래. 지금도 그렇게 불러."
"하, 거 참."
이야기를 들으면서 모깃불을 헤집어 곰방대에 담뱃불을 붙이던 어서방이 말끝을
찼다.
"그게 효불효교네 그려. 즈그 어머이한테는 그런 눈물 나는 효가 없겄고, 즈그
아부지한테는 또 그런 야속한 불효가 없겄는디?"
그 말에 임서방은 대답 대신 웃으면서 다 뜯어먹은 강냉이 깡탱이를 강아지한테
던져 주었다. 실속 없는 먹이를 냉큼 물고 꼬랑지를 흔들며, 누가 빼앗기나 하는
것처럼 울타리 밑으로 달아난 강아지는, 어둠 속이라 보이지는 않지만 붉은 좁
쌀꽃이 까칠하게 돋아 핀 여뀌풀 더미 아래로 가, 무슨 고기 껴다귀 가지고 놀
듯이 주둥이를 흙바닥에 비비며 뒹굴었다. 그 옆에는 저녁에 피어나는 분꽃이
아까울 것 없이 흐드러져, 분홍 꽃은 먹물 머금은 검은 빛으로 더욱 어둡고, 흰
꽃은 하도 희어 얼핏 섬찟하기조차 한데, 그것은 캄캄한 밤의 한 귀퉁이가 흰
너울을 쓰고 있는 것같이도 보였다.
"자네, 귀신사 아능가?"
임서방이 어서방한테 물었다. 멍석 위에 앉아 있던 어서방네는 움칠하는 시늉을
일부러 지어 보이며 어서방 대신 말을 받는다.
"귀신사? 그게 머이다요예. 귀신 나온다 헐 때 그 귀신 말잉가?"
"그게 여러 가지 설이 있제. 맨 몬야 그 절을 세운 이는, 신라 문무왕때 사램인
의상대사란 고승이신디, 당초에 이름은 국신사였등게비데."
그러던 것이 무슨 연유에서인지 기괴하게도 귀신사로 바뀌어 불리다가, 다음에
는 구순사라고 하였는데, 나중에 다시 귀신사라고 글자만 바꾸어 지금까지 그
이름을 쓰고 있다는 이 절 입구에는
"홀에미다리라는 지댄헌 돌다리가 있제."
임서방은 마치 눈으로 본 듯이 말했다. 김제군 금산면 청도리에 있는 이 다리는,
원평으로부터 한참을 걸어와 제비산 기슭에 이르러 귀신사로 넘어가서 청도원을
지나 전주로 가는 길에, 제비산과 귀신사 사이의 계곡을 이어 주는 커다란 자연
석 돌다리였다. 그러니까 제비산 쪽에서 귀신사로 들어가는 입문 통로가 바로
홀어미다리인 것이다. 이 다리를 건너지 않고는 어디로도 귀신사로 갈 수가 없
었으니, 만일 이곳을 막는다면 절은 자연히 요새지가 되는 셈이었다. 그래서 나
라에 난이 있을 때는 승병을 양성하였다는 귀신사 주변에는, 거뭇거뭇 이끼옷
자욱한 산성이 더러 허물어진 채 아직도 남아 있었다.
"유서가 짚은 디여, 거그가. 그 귀신사 가는 질으 계곡에 걸쳐진 이 홀에미다리
가 명물이라, 언제 쩍에 놨는지 고색이 창연허제. 지댄허고 판판허기 똑 비석맹
이로 생겠는디, 이게 질이가 일곱 척이 넘고 폭이 한 석 자 가옷이나 되까 허는
다리여. 근디 이거이 하나가 아니고 두 개여. 그 다리 옆으로 짜란히 또 하나가
쌍을 지어 뇌였그던. 그것도 질이는 똑같이 일곱 척 좀 넘는디 폭은 조께 좁으
장해서 요마안치, 그렁게 한 자찜이나 될랑가 허제. 요렇게 다리 두 개가 무신
내외간맹이로 나란히, 다정허게, 허리 아래 흐르는 물 소리 두고 누워 있는 욱에
는 기양 ㅁ 아름이나 되는 고목 한 그루가, 수령이 한 오백 년이나 되얐이까, 넘
었이까, 어슷하게 기울어져 갖꼬 이 다리를 이불로 덮어 주는 것맹이라. 우거진
잎사구로. 만고 풍상의 늙은 가쟁이로는 홀에미다리를 보듬아 감싸는 것맹이고,
가련해서."
"머이 그렇게 가련허까잉."
어서방네가 고개를 갸웃하고 임서방 쪽을 바라보는데
"근디 왜 홀에미다리다요?" 내우간 다리가 아니고? 나란허담서."
임서방의 아낙이, 어미 무릎을 베고 잠든 어린 놈한테로 모기가 달려들지 못하
게 부채질을 털럭 털럭 해 주며 물었다.
"유래가 있제. 다. 그 동네에도 여그 순창 한다리 효자 못잖은 효자가 살었등게
비라. 마음이 천심이여. 이 효자가 즈그 아부지를 여의고는, 과수 되신 어머이를
지극 정성으로 뫼시고 사는디. 지게 지고 산에 가서 나무를 헐 때도, 어머이 방
에 불 땔 나무는 꼭 따로 해서 갖꼬 와. 잘 마르고 불땀 좋은 놈으로만 골라서.
그러고 저녁에 잘라면, 어머이 방으다가 꼭 손수 군불을 따땃허게 너 디리고는 ,
기양 휭 제 방으로 가부리는 거이 아니라, 받ㅇ이 따순가 어쩐가 손바닥으로 온
방을 이리저리 짚어 보고야 안심을 허고는 건네갔단 말이여. 그런디 어머이는
맨날 방이 춥다고 그리여. 아칙에 문안을 디리로 가머는, 추워서 못 잤다고. 대
체나 효자가 어머이 안색을 봉게로 퍼래. 이런 불효가 없구나 싶어서 저녁이먼
더 존 나무로만 더 정성껏 불을 너 디려도 아칙에는 꼭 방이 춥다고 그러네에.
같은 자리에 있는 효자는 앉어 있도 못허게 방부닥이 뜨거도.
그래서 효자가, 안되겄구나, 오늘 밤에는 내가 자지 말고 여러 번 군불을 때서
어머이 한속을 덜어 디리야겄다, 허고는 아궁이 앞에 지키 앉었는디, 밤이 짚어
이슥헌 때 홀연 어머이가 어디로 나가. 조심조심 따러가 봉게 귀신사로 가는 거
이라. 그 절에 불공을 댕기던 어머이가 귀신사 중허고 속이 맞은 거여. 그래서
그렇게 밤마둥 밤중에 물에 빠짐서 그 개울, 캄캄헌 계곡을 건느더란 말이여. 무
섭고 험헌 디를 그런 줄도 모르고. 그렁게 어머이는 늘 젖어서 돌아오고, 추울
수배끼. 참 괴로운 일이제. 이것을 안 효자가 즈그 어머이를 위해서, 고통을 덜
어 디릴라고, 남몰래 그렇게 탄탄헌 돌다리를 놓아 준 거이라."
"그렇게 크고 엄청난 독이먼 바웃덩어리만 허겄는디 그것을 어치케 혼자 들어다
다리를 놨이꼬? 한 개도 아니고 두 개씩이나."
"마음이 자상헌 거이제. 참 하늘이 준 효심 아니면 그렇게 못헐 거잉만. 그래서
사람들이 그 다리를 홀에미다리, 그런디야."
임서방 이야기에
"오오."
낯바닥이 둥그스름하고 늘 새실새실 웃는 상호를 하고 있는 그의 아낙 앵두네가
고개를 깊이 주억거리자
"오오?"
하며 임서방은 제 아낙의 말을 그대로 되받아 채올리더니, 이걸 그냥 가만 안
두겠다는 듯 눈까지 부릅뜨며 주먹 지르는 시늉을 해 보인다.
"머이 그렇게 오오여? 오오가."
"아이 왜 그리여? 이얘기 듣고 잘 들었단 표 허는디. 재밌구만."
"허허어, 이 여펜네. 아이고, 저 속에 무신 생객이 들었이까. 어이 어서방, 우리
죽지 마세. 개똥밭에 어푸러져도 금방석으로 알고 어쩌든지 오래 살어야여. 호성
암 여그서 코빼기 앞이고, 그 절에 중놈이 버르쟁이 사납다고 소문이 자자허든
디."
"호성암 중은 떡만 잘 달어 먹는 거이 아니라 또 잘허는 짓 있등게비네. 임서방,
자네는 아들할 요자등만 어쩔랑고. 헐 수 없이 오래 살어야겄네."
능청스러운 중에 가시를 박아 말하는 두 남정네의 수작에 앵두네는
"궁짝이 잘 맞아서 메구를 치겄소. 장구가 없어서 어쩌까."
하고는 샐쭉하여 돌아앉는 척한다. 그러나, 그래 보는 것이지 조금도 마음에 둔
것 같지는 않은 기색이다.
"우례도 기왕이면 아들 낳얄 거인디. 가이내 나먼 헛 거이고."
어서방이 문득 생각이 거기에 미쳤는지,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곰방
대 연기를 뱉어 냈다. 연기는 모깃불에 섞이어 흩어진다. 그것에 가리워져 하늘
한복판으로 흐르는 은하수가 더욱 아득해 보이는데, 그 반공으로 검은 능선을
뚜렷하게 긋고 있는 노적봉 수풀에서 쏙독 쏙독 쏙독 카로 무를 써는 것 같은
쏙독새의 목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둡고, 무겁고, 축축한 그 울음은, 깊은 밤
의 명치에 얹힌 한숨이 기침으로 터져 나오는 것이라고나 해아 할까. 아니면 밤
이 숨을 쉴 때마다 가슴에 걸린 응어리가 그르럭, 그르럭, 마치는 것이라고 해야
할까. 마침 전할 말이 있어서 임서방한테 왔던 우례 아비 막손이는
"좀 앉었다 가."
라는 말에 꺼부정하니 쭈그리고 멍석 끝에 앉았다가 이야기를 끼어 듣고 있었
다.
"개울이나 골째기라먼 효자 아들이 바웃뎅이든 통나무든 들어다가 다리라도 놔
준다고 허지마는, 우례한테서 수천샌님한테로 가는 질은 그께잇 징검다리, 외나
무 다리 갖꼬는 좀체 쉽게 못 갈걸? 노비 상전 신분이 어디 그렇게 냇물맹이로
발만 벗으먼 건넬 수 있는 거이라야제. 하늘허고 땅인디. 아이고, 언감생심. 더군
다나 수천샌님 성품 물라? 송곳 같고 칼날 같은디, 안광이 시퍼렇잖여. 그런디다
아들 나먼 멋 헐거잉고? 무신 소용이 있이까?"
자기가 한 말을 되받아 혼자말을 하는 어서방은, 불이 꺼져 뻑뻑 소리가 나는
곰방대를 몇 차례 빨더니 탁, 탁, 땅바닥에 대고 두드린다. 강냉이 깡탱이를 내
버리고 멍석 옆으로 와 맴돌던 강아지가 그 바람에 흠칫 뒷걸음을 치며 욜랑욜
랑 꼬리를 흔든다. 임서방은 고개를 꺽어 밤하늘을 올려다 본다.
"독으로 다리 논 것만도 하늘이 내린 효심이지만 지 몸뚱이로 다리논 효자도 있
고말고. 그것도 '효자다리' 그러는디, 그것은 전주 부성 배깥 한 사십리 이서
가
는 길 어디만큼이라등만. 거그도 다리가 하나 있제. 그저 쬐깐헌 개울 또랑물 졸
졸졸 흘러가는 물인디, 한 발에 건네기는 조께 널룹고, 휙, 뛸라먼 빠지기 좋은
디, 거그도 다리가 있어. 이얘기야 다 앞에 꺼이나 같은 거이지만, 그 이서 사는
효자는, 캄캄헌 밤 어둡고 무선 디를 어머이 혼자 물에 빠짐서 댕기는 것을 알
고는 엄동 설한 얼어붙은 물 속에 지 몸뚱이를 바우같이 꼬부려서 웅크려 당구
고 다리를 맨들어 어머이가 건너가시게 해 디렸지. 어머이는 속도 모르고 자식
등을 밟음서 밤길을 가고. 그걸 인다리 라고도 히여. 그렁게 우례도 효자 자식을
낳아서 다리를 놔야제. 독이나 나무말고, 인륜지 다리를 놀라면 지 몸뚱이를 뻗
어서 양 부모 새이에다 걸쳐 놔야겄지. 오체투지 허디끼. 그 등허리를 밟고 천허
고 서러운 즈그 어머이가 귀하고 높은 즈그 아부지한테로 건네갈 수 있게. 글
안허고는 질이 없어. 절벡이여, 그 새이는."
"그런 다리가 어디 아무나 맘만 먹는다고 되는 거잉가. 아 양반이 본 종의 자식
이 어디 하나 둘이여? 만고에."
"그렁게 날라면 유자광이 같은 아들을 낳얀다고. 나랏님한테는 양반이 적자라.
우리는 서자고. 아니제 서자도 못되는 종의 자식 정도나 될랑가. 쌍놈은 얼자여.
나랏님의. 그런디 유자광이가 영웅은 영웅이라. 나만 그렇게 생각허능 건 아닐
거이그만. 요런 쪼그막헌 바닥, 남원 귀영탱이 동네 누른대으 계집종 소생이, 얼
매나 무선 사램이먼, 일인지하에 만인지상으 정승이 되야 갖꼬, 쩌렁쩌렁 울리게
일국을 쥐고 흔들었겄능가. 엎었든 뒤집었든, 걸출 인물이제. 에지간히 잘나 갖
꼬는 그렇게 못되야. 적서 차벨이 어쩠든 세상인디, 조선이? 아매 나라 생긴 이
래로 그렇게 아들 크게 난 노비는, 자광이 즈그 어매말고는 다시 없을 거이네.
양반의 부인이라도 일산 쓰는 자식 낳기가 좀체 쉽잖은 거인디 말이여. 우례도
그런 아들 하나만 낳은다면, 더 말헐 것도 없제, 지 가심에 맺힌 설움, 원한이
한끕에 다 풀려 부릴 거인디."
"그리여."
어서방이 한숨 뱉어 내는 소리로 임서방 말에 맞장구를 쳤다. 비록 처지는 서로
다르다고 하지만, 소쿠리 같은 한 마을 안에서 날이 새면 얼굴 맞대고 상아온
이들이라, 원뜸의 종가 씨종 막손이나 그의 딸 우례한테 생긴 일에 저절로 마음
이 쓰이는 것이 사실이었다. 막손이는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컴컴한 등허
리를 어둠 속에 맡기고 아무 말없이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만 있었
다.
"그런디 유자광이 즈그 어매 원한을 참말로 풀어 준 것은, 종의 자식으로서 큰
베실헌 일이 아니라, 그 생모 죽었을 때 치상해 준 일이여."
"오, 그 냥반 적출 성님이 자광이 어매, 긍게 서모 초상에 머리 풀고 곡허게 헌
이얘기?"
"하아."
"나도 에레서 들었고만."
"그럴 거이여. 이 남원 근동에서는 그 이얘기 모른 사램이 없제."
"자광이가, 그 어매가 천해서 종이지, 아부지는 조정에 높은 베실허던 대감 아니
라고?"
"암먼, 그렁게 정실 부인 소생인 적형은 당당헌 양반의 자제라, 노비 자식인 자
광이허고는 애당초 지체가 다릉게로, 거그다 대고 '성님' 소리를 못히여. 아무
리 아부지가 같드래도. 헐 말이 있을 때는 '되렌님' 그리랸단 말이여. 그거이
벱이여. 그래도 손위 성님한테 그러는 것은 좀 낫제. 서손이란 것은, 늙은 영갬
이 되야도 삼척 소동배끼 안되는 손자 같은 적손한데 '되렌님예', '이러싱가요',
'저러싱가요', 험서 업고 댕기야잖헤? 그렁게 서손은 사람으로 안 본 거이제. 만
일에 그런 법을 어기고 불손허게 허먼 적손하테 뚜드러 맞어. 괘씸허다고 개 패
디끼 패지. 서얼의 신세란 그런 거이라. 더군다나 얼자는, 종 아니여? 바로. 이런
처지의 자광이가 자개 생모 초상에 서슬 퍼런 적형을 상주 노릇허게 했이니, 이
게 어디 보통 일잉가? 더군다나 그 적형으 생모인 마나님은 엄연히 살어 지
신디 말이여."
"없일 일이제, 없일 일이여. 그 냥반 재주 아니고는."
그것이 유자광의 나이 십오륙 세 소년 시절의 일이었다고 하였다.
관향이 영광이고, 자는 경정, 시호는 정숙공인 무신 유규의 적자 자환은, 서동
생 자광이보다 몇 년 앞서 남원읍 고죽리 누른대에서 났다. 그는 세조 때의 문
신으로, 초명은 자황이었으나 예종의 이름인 황을 피하여 자환으로 개명하였는
데, 어려서부터도 남다르게 총명한데다가 밤낮으로 글을 읽어 오직 학문에만 몰
두하니, 드디어 문종 원년에 문과 급제를 하는 광영을 안게 되었다. 이때 그의
나이는 홍안의 소년 열아홉이었다.
이로서 정칠품 주서가 된 유자환은 계유정난에 수양대군을 도운 공으로,세조 즉
위 후에 정난공신 삼등에 책록되고, 세조 6년에는 우승지를 거쳐, 이 년 뒤 세
조 8년, 이조참판, 호조참판으로 사은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그리고 나서 대사헌에 제수된 그는 세조 12년 오성군에 봉해졌다. 오성은 자환
의 관향인 전라남도 영광의 옛 지명이요, 또 그의 아호이기도 하였다. 훗날 익
대공신 일등에 무령군으로 봉해진 유자광의 호칭인 무령 역시 영광 땅의 옛 지
명이었다. 군이란 고려와 조선 시대의 종친이나 신하에게 주던 존호로서, 조선
에서는 종친의 경우에 서왕자, 대군의 적장자, 적장손, 세자의 여러 아들, 여러
손자 등에게 이 칭호를 주었으며, 신하도 공이 있으면 '군'으로 봉하였는데, 품
계는 정일품에서 종이품까지였다. 그리고 왕위에 있다가도 물러나면 '군'으로
강칭되었다.
오성군에 봉해진 유자환은 벼슬이 전라도 관찰사에 이으렀으나. 세조 13년, 뜻
밖에 몰하니, 그의 나이 아직 서른다섯이었다. 이에 나라에서 내린 시호는 문양
공이었다. 자환의 아우 유자광은 이로부텨도 마흔다섯 해를 더 살았다. 생전의
유자광은 하늘을 얻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미친 용처럼 거칠고 사나운 비바람을
휘몰고 다니는 자신의 과격한 성품과 처사를 잘 알고 있었다. 그 미친 용은 상
처 입은 용이었다. 상처를 못 이기어 길길이 뛰며 등천을 꿈꾸던 그는 무서운
독을 뿜으며 장애가 되는 사람들을 물어뜯은 탓에, 자기가 죽은 후에 반드시 그
보복이 닥쳐오리라는 것도 각오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권좌에 있을 때 은밀
히 사람을 놓아 자기와 모습이 비슷하게 닮은 하인을 구하였다. 그리고 이를 아
주 후하게 대접하여 길렀는데, 집안 식구들은 아무도 그 까닭을 몰랐다. 그러다
가 이윽고 그 하인이 죽으니, 자광은 슬퍼해 마지 않으며
"이 사람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하인이었다. 이는 나의 일에 참으로 많은 공로
를 세웠으니, 마땅히 공경 대부의 예로서 장사를 치르어야 하리라."
하고는, 은밀히 시체롤 오색이 찬란한 금관조복으로 염하고, 무덤 또한 석관으
로 할 뿐 아니라, 그 앞에 상석을 놓고 장군석을 세우며, 이품이상의 고관 무덤
에만 세울 수 있는 신도비까지 제일 좋은 석물로 갖추어, 무덤주변을 화려하게
꾸미었다. 그리고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하인을 그곳에 묻으니, 사람들은
모두 유자광이 생전에 자신의 묘를 미리 꾸며 놓은 줄로 알았다. 중종 7년, 일
세의 권세를 한손에 쥐었던 유자광이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다 잃고, 탄핵을 받
아, 멀리 강원도로 유배되어 울화로 눈이 먼 채 숨을 거둘 때, 그는 적소에서
처자에게 비밀스러운 유언을 하였다.
"내 죽은 후에 필연코 무덤을 파내어 부관참시를 할 것이니, 나의 시체를 전일
에 죽은 하인의 무덤 근처에 묻되 누구도 모르게 평장을 하고, 만일 금부에서
내 무덤이 어디냐 묻거든 하인의 무덤을 가리키시오."
극통한 중에 유자광의 말을 그대로 따른 지 몇 달 후. 아니나 다를까. 훈구파를
누르고 득세한 사림파가 자광의 시체를 찢고자 그 무덤을 찾으니, 사람들이 하
인의 것을 가리킨지라. 그것은 누가 보아도 권세 재상의 묘소가 분명하였다. 이
에 그들이 무덤을 파헤친 뒤 관 뚜껑을 뜯어 시체를 들여다본즉, 선연하게 붉은
생사로 얇게 짠 적초의에, 백초로 중단을 대어 입고, 운학 금환수를 늘이운데다
가, 무릎에는 폐슬을 달고, 허리에는 무소 뿔로 깎은 서각띠를 두른 채, 흰 버
선에 검은 가죽신을 신고 있는 시체의 수염과 머리털이 자광의 생시와 영락없이
똑같은 모습이었다. 이것을 살펴본 그들은 조금도 더 의심치 않고 달려들어 관
을 부수었다. 그리고는 시체를 끄집어내 단칼에 목을 잘라서 거리에 내다 걸고,
사지는 끊어 동댕이를 치며, 그 뼈는 형체도 없이 가루가 되도록 무참한 혹형을
가하였다.
"유자광이 그렇게 무선 사램이여, 긍게. 자기 사후의 일끄장 그렇게 치밀허게
딱 해 놓고 죽었어. 권세 잡고 있을 때부텀 그 준비를 미리 다해 논 거이라. 나
중 일을 짐작허고."
"그렁게 그 참사를 하인이 대신 당했고만. 유자광이는 무사허고."
"하아."
"아이고, 무섭네. 긍게 유자광이는 죽은 송장 써 먹을라고 그 하인을 평소에 그
렇게 잘 대접했드라 그 말이제?"
"아, 사램이 잔치에 쓸라고 지 돼야지 배 터지게 걷어 멕이는 거이나 한가지지
머."
"사램이 어찌 돼야지여?"
"돼야지보다 낫을 것도 없는 사람도 쌨어. 가만히 생각해 보먼 세상사, 나중에
지가 써 먹을라고 우선 저 사람 멕이는 일이 어디 하나 둘잉가? 더군다나 하찮
은 종의 목숨, 꺼리낄 거 머 있어?"
"아니, 유자광이 자개도 종의 자식임서?"
"그거이 사람 일이란 거이여."
"허긴 그리여. 긍게로 그 하인은 죽어서 송장 찢길라고 살어 있었던 거이그만.
목숨 붙은 목젝이 거그가 있었어. 그런 것도 모르고 살어 생전에 이게 무신 세
상이끄나, 잘 먹고, 잘입고, 편허게 지냄서 호강했던 거이네 그려. 아이고, 그
이얘기 들응게 나 매급시 팔짜에 없는 호강 누가 시키 준다까 겁나네, 겁나."
"겁나제. 유자광이가 말이여, 저허고 똑같이 생긴 하인이, 살었다고, 마당으서
왔다갔다 허는 양을 체다보는 그 눈을 생각해 바. 오싹허제. 그거이 산 사람 보
는 눈은 아니였을 거라고. 또 기양 단순히 종을 보는 눈도 아니였을 거이고. 그
게 바로 저 아니여? 저. 죽은 저. 저 죽은 거이 살어서 시방 왔다갔다 하는 거
이라. 그걸 보는 유자광이 휴중에 든 생각이 머이겄냐 그 말이여."
임서방은 눈을 가느소롬하게 뜨고 어둠 속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마치 그 어둠
이 유자광의 흉중이거나 한 것처럼. 그리고 그 어둠의 갈피를 헤집어 무엇인가
를 찾아내려는 사람처럼.
"그러먼, 유자광이 무덤은 아직 그대로 남었능가, 어디?"
"못 찾제. 아무도. 감쪽같이 비밀로 허고 평장을 해 부렀는디 누가 어찌 찾을
것이여?"
"원한 많은 사람은 죽어도 안 썩는다고 그러등마는."
"그리여. 그런다고 허데. 그 냥반도 불세출의 인걸인디, 바른 디서 못 태어나
서, 날 디 가서 못 나고 종의 몸으가 나 놔서, 한 펭상으 포원포한이 짚어 갖
꼬. 그래서 현신이 못되고 난신이 되얐능가 싶으데. 같은 아부지 자손인디 그
적형은 문짜 시호를 받었잖이여? 문짜 시호."
조선 시대, 종친과 정이품 이상의 문무관이 죽으면, 그 생전의 행적에 의하여
나라에서 주는 호가 시호인데, 시호를 받을 사람이 운명하면 그 자손들은 먼저
자기들이 기록한 고인의 행장을 예조에 내는 것이 순서였다. 그러면 이 행장은,
나라의 제사와 시호에 관한 일을 보는 봉상시로 보내지고, 거기서 다시 삼사의
하나로 경적에 대한 일을 관할하는 옥당 홍문관으로 전하여졌다. 그런 다음, 봉
상시의 정과 홍문관의 웅교 이상이 한자리에 모여, 시호를 받을 만한 사람의 공
적에 대하여 의논하고 알맞은 글자로 호를 정하였다.
도덕박문의 문, 청백수절의 정, 경사공상의 공, 인사유공의 양, 관락영종의 정
을 비롯하여 온량호락의 양, 자혜애친의 효와 사려심원의 익, 그리고 장, 안,
경, 장, 경, 또한 충의고절의 충 등의 좋은 글자 백이십여 자 중에서 골라 정하
는 것이었다. 이 가운데 무엇보다 문자 시호가 으뜸이라. 문자 시호 받은 이가
한 집안에 나면 그의 성씨뿐만이 아니라 그가 살고 있는 한 지방이 파벽이 되는
것이다. 이는, 썩 드물어 아는 이 별로 없는 성씨 벽성이나, 아직까지 양반이
난 일 없는 고을 무반향이 이 한 사람의 인재로 인하여 여태까지 미천한 상태를
면하게 되는 것이니. 벽성은 이제 세상이 아는 양반이 되고, 무반향은 이제 사
방에 번듯한 반향이 되었다. 실로 이 글자 하나가 한 가문이나 고을에 끼치는
힘이 이만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또 그만큼 얻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였다. 그래
서 문자 시호 받은 이를 하나라도 배출한 고을은 문향이라 하여 존경하고, 아무
리 벼슬이 높아도 무관이 그곳에 지방관으로 부임하지 못하였다. 문관만이 문향
을 다스릴 수가 있었다.
"그렁게 유자광이 적형은 문짜 시호를 받었고, 유자광이는 난신으로 부관참시를
당했이니, 적서 형제지간에 그렇게 인생이 서로 판이헌 것은 다 출생 탓이라.
저 날 디 가서 난 씨허고, 날 디 가서 못 난 씨허고, 그만침 서로 달러진 거여.
그 냥반 집안을 보먼 아부지나 적형이나 다 나라에서 내려주는 시호를 받은 양
반들잉게 씨는 더 말헐 거이 없는디. 그거이 넘으 밭에 가서 떨어진 게 탈이라.
원통허고 분헌 일 아닝가. 자광이로는. 만약에 지밭에, 지 자리에 가서 제대로
났드라먼, 순리대로 장성해서 타고난 기량을 옳은 디다 크게 썼을 거 아닝게비.
그러먼 그 적형보다 더 출중허고 잘나서 천하를 울렸을랑가도 모르는디. 박토에
가 나 농게 꾸부러지고 삐틀어지고 터지고 찢어지고 헐 빼끼. 어쩌든지 살랑게.
아 저도 살어야겄는디, 뜻을 조께 이뤄바야겄는디, 뜻은 하늘을 찌르게 높은디,
재주도 불세출인디, 그것을 아무도 안 알아 주고는, 모다 손구락질허고, 천대허
고, 멸시허고, 오그려 앉혀서 종노릇이나 허라고 칼을 씌워 놓으니. 사램이 못
났다먼 모르까 잘난 사램이 누가 그런 시상을 살라고 허겄능가. 지 기운이 저절
로 뻗쳐서 뚫고 나가는 거이제. 그럴랑게 삐틀어지제. 그래도, 자광이 아부지
도, 그런 자광이 덕을 봤제. 자광이가 효도를 했어."
경주 부윤으로 있던 유규가 소송자 중에 뇌물을 바친 자가 있는 것을 알고는,
그를 때려 죽여 버린 일로 파직을 당했다가 예종이 즉위하던 해, 아들 자광이
익대공신이 되자 그 힘을 입어 행첨지중추부사에 올랐던 것이다. 이것이 유규의
연갑 예순여덟 때의 일이었으니. 사후에 영의정으로 증직될 만큼 우뚝한 아버지
가, 한때 잠깐 곤두박질쳤으나 비천한 계집종을 보아 낳은 아들의 덕을 본 셈이
었다.
"아까운 일이여. 얼자가 그만헐 때, 만얀 정실 부인 몸으로 났드라먼 그 인물이
어쩠으까."
임서방의 말꼬리를 타고, 은하수 옆에 박혀 있던 별 하나가 날카롭고 휘황한 빗
금을 그으며 떨어졌다. 그것은 마치 하늘을 가르려고 일도를 휘두르는 칼빛 같
았다. 그러나 그 빛은 순식간에 흔적없이 스러지고 말았다.
"별똥이로구만."
어서방은 낮게 중얼거렸다.
"저런 별은 왜 딴 놈들맹이로 하늘에 못 붙어 있고 저렇게 떨어징가 모르겄데."
그러자 임서방이 무심히 내뱉었다.
"별이라도 떨어지먼 똥이여."
이 말에 멍석 위의 사람들은 크큭, 웃으며 새삼스러운 듯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
다. 별무리 아득한 저쪽에서 유성이 또 하나 진다.
"그렁게 똥 안될라고, 거가 저렇게 매달려 있을라고, 온갖 짓을 다허능 거 아닝
가, 누구라도 말이여. 사램이."
별똥별이 허망하게 사라져 간 하늘에는 은하수가 가물가물 아득히 흐르고, 마치
반짝이는 모래 구슬을 흩뿌려 놓은 것 같은 별들이 아까보다 더 영롱하게 총총
하였다.
"저런 별들은 떨어지먼 어디고 가까잉?"
평순네가 고개를 젖힌 채로 혼자말처럼 말했다.
"은하수로 빠지겄지맹."
임서방의 아낙이 여전히 털럭털럭 부채질로 모기를 쫓으면 말을 받았다. 그 옆
에서 앵두는 고개를 젖히고 어미를 따라 별을 세어 본다.
"은하수는 참말로 있는 거잉가."
"있응게 겐우 직녀도 있겄지맹. 칠월 칠석날 저녁에는 까막까치 까마구 대가리
가 다 벗어진다고 안히여? 겐우 직녀 만나는디 다리 놔 주니라고. 그렁게 여드
렛날 아침에 보먼 그것들이 모다 대가리가 흐옇다데.밤 새도록 애쓰고는 기운이
없어서 다리 밑에 떨어져 죽기도 허고."
"아이고, 그러고 봉게 칠석날이 내일 모레 아니여?"
"까치 까마구들 큰일났네. 어쩌까. 대가리 씨릴 일 또 생게서."
"아니 그 겐우 직녀는 언제 쩍에 맺은 인옌이간디 아직도 애기를 못 낳대? 아들
하나 좀 낳제. 효자로. 그러먼 오직이나 좋은 독으로 골라서 오작교를 놔 디릴
거인디. 무지개맹이로. 아, 인간 세상으 아들도 효자는 한다리, 홀에미다리, 인
다리를 놓는디, 하늘에 선관 선녀 자손이야 오죽허겄어? 더 말해서 입만 아푸
지."
"대체나 그렇네잉."
"남원 광한루에 오작교가 바로 그 겐우 직녀 만나는 다리라든디."
"그러먼 요천수 강물이 은하수겄네."
"하아."
아낙들끼리 하는 말을 듣고 있던 임서방은, 요천수 물이 은하수보다 더 깨끗하
면 했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물이 그렇게 맑고 독이 그렇게 깨깟헌 강은 또 없을 거이네. 새애파러니 비치
는 물에 ㅁ 천 년이나 씻기고 씻긴 독이 둥글둥글 닳을 대로 닳어져 갖꼬 뽀오
얗제 기양. 분 발른 것 맹이로. 아, 그렁게 은어가 살잖능가, 은어가. 은어는
아무 물에서나 사는 고기가 아니여. 낙동강 같이 탁헌 물은 좋아허들 안허고 우
리 요천수모냥 깨깟헌 물에서만 살어. 그런 디서 상게 맛도 기가 맥히제. 그렁
게 임금님하테 진상을 했어. 유자광이가. 그 냥반은 축지법을 헝게로 남원 누른
대 자개 집이서 아침 먹고 서울 대궐로 조회를 허로 갔다가 저녁 때먼 집으로
와서 잤어. 긍게 이른 새복에 잡은 은어 펄펄 뛰는 놈을 그대로 수랏상에 올리
수가 있었제. 기인이라. 은어를 잡는 재주도 참 묘헌디, 은어란 고기는 백 마
리, 천 마리, 떼 몰려 댕기는 것 아니라고? 아조 날래고. 근디 어쩐 일잉가. 자
광이가 그 은어떼 복판으로 썩 들어스기만 허먼 은어들이 기양 딱 굳어서 움짝
을 못해 부리네. 맥을 못 추어. 그러먼 자광이는 고기를 잡는 거이 아니라 줏
어. 나무도막 줏디끼. 하루에 삼백 마리씩. 그렁게 그만침 유자광이 기가 셌든
거이여."
"그거 다 머 했이까잉."
"첨에는 신기해서 좋아허든 식구들도 날마둥 안 쉬고 ㅁ 해를 먹어농게 인자는
질려서 더 못 먹는디, 거진 다 혼자서 먹어 치웠제. 키는 칠 척 장신에 눈은 번
갯불이 타고 힘이 장사라, 먹는 것도 넘의 ㅁ 곱절이였응게."
"그런 사램이 요천수 물을 건넬 때는 물 욱으로 성큼 성큼 걸어 댕겠담서? 맨발
벗고. 아 왜, 자광이 생모 초상 났을 때도, 즈그 성을 업고 물 욱으로 걸어왔다
고 안 그러등게비? 그때 막 큰물이 나서 요천수에 붉덕물이 버얼그렇게 높은디,
그 물에다가 나무 이파리 하나 띄워서 타고 건넸다고도 허고, 나무깨(나막신)를
한짝 띄워 놓고 거그 앉아서 건넸다고도 안히여? 그렇제?"
"판대기를, 송판을 발으다 붙이고 걸어갔다등만."
"이얘기가 여러 가지네이?"
"그거이 아매 자광이 열대여섯 살 되얐을 때 일일걸?"
그때 자광의 생모는 자광의 생가요, 상전의 집인 남원읍 누른대에서 동쪽으로
낙고개를 넘고 요천수를 건너는 이백면의 작은 마을 '폐문이'에 살고 있었다.
자광을 낳은 덕분으로 유규의 비첩이 된 그네는, 신분은 여전히 노비였으나 계
집종이 하는 궂은 일만큼은 면하고, 이만큼 떨어진 폐문이에 조그만 오두막을
한 칸 얻어 따로 나와 살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외거노비인 셈이었다. 이런한
그네가 서른 중반의 나이에 자광을 남기고 세상을 뜨니, 남루한 집안에는 들여
다보는 사람 그 누구도 없고, 오직 자광이 혼자서 비통을 가누지 못하여 서럽게
울 뿐이었다. 아버지 유규는 벼슬살이로 멀리 외지에 가 있기도 하였지만, 설혹
집에 있다 할지라도, 일개 노비의 초상에 지아비로서의 범절을 갖추고 찾아와
울어 줄 리는 천만 없었으니. 노비가 죽으면 지게 송장으로, 아무렇게나 대강
묶어서 지게 위에 짊어지고 나가, 아무 곳이나 파기 쉬운 곳에 묻는 것이 고작
인데. 자광의 생모가 비록 상전의 몸에 한 점 인연이 있었다 하나 여전히 하찮
은 노비에 불과한지라. 그네가 죽었다 해서 특별히 슬퍼할 사람은 하나도 없었
다. 다만, 때는 마침 여름이어서 밤잦을 모르고 내리는 궂은 비만이 처량한 시
체의 식은 귀를 젖게 하고, 그 곁에 앉아 비루를 어금니로 물고 있는 자광의 설
움을 대신하여 무겁게 울어 줄 뿐이었다.
"어머니를 치상하려면 상주가 있어야 한다. 상주는 당연히 아버지가 되셔야 하
지만 불행히도 여기 계시지 않으니, 마땅히 장자인 형님이 상주가 되어야 한다.
지아비와 장성한 아들이 있는 시신이 이와 같이 개처럼 버려질 수는 없는 법이
다."
자광은 분연히 자리를 떨치고 일어났다. 그리고 그 적형 자환을 찾아갔다. 그
무렵 자환은 다음에 있을 과거 준비를 위하여 주촌방에 있는 조용한 절 용담사
서 밤을 낮 삼아 글을 읽으며 오직 공부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그는 얼자 동생
자광이보다 나이 두세 살 위였다. 그들에게는 엄격한 적서의 차별이 있어 자환
은 자광을 냉대하였고, 자광은 자환을 감히 형님이라고 부르지 못하였다. 그러
나 자환은 자광의 재주 비범한 것을 알고 있었고, 자광은 자환을 어떻게든 이기
려고 속이 썩도록 궁리하며 남모르게 이를 갈았다. 어머니의 시체를 방에 뉘어
놓은 채 용담사로 찾아가는 그의 손에는 편편한 송판 두어장이 들려 있었다. 큰
비가 내린 다음이어서 요천수물이 불어났을 것을 생각한 때문이었다. 자광은 요
천수에 이르러, 과연 제방을 곧 넘을 만큼 큰물이 성난 기세로 싯벌겋게 흘러내
려오는 것을 보았다. 요천은 강이라고 불러도 좋을, 넓고 깊은 하천이어서 붉은
흙탕물이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도도하게 흐르는 광경은 보는 사람을 어지럽고
무섭게 하였다. 그러나 자광은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없이, 들고 온 소나무 판
자를 발에 묶어 신고는 물 위로 올라서서 성큼 성큼 걸어가니. 사람들이 물구경
을 나왔다가, 헛것을 보았는가 하고 큰 소동이 났다. 이윽고 용담사에 당도한
자광은, 진흙 땅바닥에 엎드려 자환에게 큰 절을 하고는 참고 참았던 눈물을 쏟
으며 통곡을 하였다. 놀란 자환이 손에 든 시전을 내려놓고, 자광이 가슴을 뜯
으며 우는 까닭을 물었다.
"무슨 일이냐, 말을 해라."
"예, 도련님. 대부인 마님께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아니 그게 정말이냐? 엇그제 가서 뵈올 때 기력이 정정하시던데 뜻밖에 이런
소식 당키나 한 말이냐. 아마 네가 무엇을 잘못 알고 온 모양이다."
"세상에 대장부가 그래 어디 할 짓이 없어서, 안 죽은 어머니를 돌아가셨다, 거
짓말을 하오리까?"
자광이 주먹으로 제 가슴을 원통하게 두드리며 머리를 땅에 찧어 산발을 하고,
두 눈에 핏발이 돌게 목을 놓아 우는 모습이 심상치 않아, 자환은 드디어 그 말
을 믿고 그만 실성 대곡을 하였다.
"어서 가자. 앞장 서라."
자환은 신도 제대로 꿰어 신지 못한 채 비에 젖으며 눈믈 범벅으로 황망히 용담
사에서 내려왔다. 그러나, 요천수에 닿아서는 그 성난 물살에 막혀 더 못 가고
멈추어 서서 발을 구를 뿐이었다.
"도련님, 저한테 업히시오."
"너한테 업혀서 무슨 수가 있단 말이냐?"
"월천을 해 드리리다."
"너 이놈 누구를 놀리는 게냐?"
"돌에 채이고, 나무에 부딪치고, 개골창에 빠지고, 재를 넘고, 가다가 꼬부라지
고 허는 육지보다, 저는 물 위를 걸어 다니는 것이 훨씬 더 쉽습니다. 물 위에
는 높은 산도 없고 낮은 골짜기도 없어, 걸리고 막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
으니 이런 평탄한 길이 또 어디있겠습니까? 저는 세상살이가 이 물 위를 걷는
것만큼만 수월하다면 아무 근심이 없겠습니다. 자, 저한테 업히시오."
"장난 치면 우리 둘 다 죽을 것이다."
"누가 목숨을 가지고 장난을 친답니까. 저 같은 목숨을 가지고도 꼭 한 번 살아
보고 싶은 세상이 있습니다. 자, 저한테 업히시오."
결연한 태도에 자환은 더 머뭇거리지 못하고 자광에게 몸을 맡기었다. 집어 삼
킬 듯이 붉은 물살이 거센 혓바닥을 감으며 달려드는 요천수 한복판으로 거침없
이 걸어가는 자광의 걸음은 정신이 아찔할 만큼 빨랐다. 귓전에 찰박찰박 물 소
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분명히 물 위를 걷기는 걷는 것인데. 자환이 그만 눈
을 감아 버렸다.
참으로 요사스러운 일이다. 이럴 수가 있는가. 이것이 분명 자광일까. 자환은
덜컥 겁이 났다. 그때였다. 싯벌건 요천수 붉덕불 한가운데 이른 자광은, 자환
을 등에 업고 날아가듯 가던 걸음을 별안간 뚝 멈추었다. 자환이 번쩍 눈을 떴
다. 그러면 그렇지, 내가 무엇에 홀렸는가 보다. 내가 여기서 정신 차리지 않으
면 자칫 죽겠구나.
"도련님."
"말을 해라."
"사실은 대부인 마님이 돌아가신 것이 아니요, 저의 생모가 죽었습니다. 하오나
만일 처음부터 사실대로 여쭈오면 지체 다르신 도련님이 거들떠나 보시겠습니
까. 잠시 도련님을 속인 것은 잘못이오나, 저의 생모가 도련님의 서모도 되온즉
어미 모짜는 같으니 도련님의 어머니 돌아가셨다는 말씀이 아주 다 거짓은 아니
오니다. 자, 이제 어찌하시렵니까. 이 길로 가서, 세상을 버린 제 어미의 불쌍
한 시신을 거두어 주시렵니까, 아니면 여기서 하동으로 가시렵니까."
"하동으로 가다니?"
"요천수는 섬진강 상류이니, 이 물에 도련님을 놓아 버리면, 그 수중고혼은 하
동으로 흘러가시겠지요. 자, 상주가 되시려오. 귀신이 되시려오."
자환은 어이가 없었다. 엄연히 살아 게신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사부 반가의 자
제로서, 노비 서모를 어머니라 부르며 그 초상에 머리를 풀고 상주 노릇을 해야
한다니. 만고에 이런 괴이한 일이 어디 다시 있으리오. 그러나 자광의 등에서
뻗치는 살기는 결코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목숨이 받은 수모에 중오
의 옹이가 박혀 풀 길 없는 억울함으로 새파랗게 날이 선 것이었다. 기어이 설
분하고야 말리라. 자광의 등은 분을 뿜으며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베일 것 같은 칼날에 업힌 것처럼 아슬아슬한 자환은, 그 살기가 끼얹는 소름의
두려움을 이길 수가 없었다.
"알았다. 네 소원대로 해 주마."
자환은 가까스로 대답하였다.
"여기서 머리를 푸시오."
이 말에 자환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요천수 한복판 붉덕물 위에서 자광의
등에 업힌 채 상투를 풀어 머리를 흩었다. 난발이 된 자환은 이제 두려움 때문
이 아니라 부끄러움 때문에 온몸이 떨리었다. 그가 비록 스물이 다 못된 젊은
소년이었지만, 장부로서 대의가 아닌 일에 비루한 목숨을 비는 것이 어찌 정당
하고 떳떳한 일이랴. 자환은 차라리 자신이 물에 드는 것이 옳으리라 생각했다.
이 무슨 참혹한 몰골이란 말이냐.
"곡을 하시오"
자광이 말했다. 이에 자환은 크게 통곡을 하고 말았다. 그것은 자기를 우는 울
음이었다. 끝내 그 등에서 내려오지 못한 채 업혀서 물을 건넌 자환은, 거대하
게 붉은 몸뚱이를 뒤채며 핏빛 아가리를 벌리고 있던 요천수가 흡사 자광의 원
한인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승천하지 못한 용이 온몸에 상처를 입고 땅에
떨어져 몸부림을 치며 어디론가 굼틀굼틀 기어가는 모습 같기도 하였다. 자환이
자광의 생모 처상에 깎듯한 절차로 상주 노릇을 한 일은, 요천수가 그치지 않고
흐르는 것처럼 번지고 번져서 남원, 이백, 송동, 수지, 그리고 이 골 저 골 여
러 사람들의 이야기 갈피 속에 서캐같이 박혀 남게 되었다.
"유자광이가 그렇게 무선 사램이여, 긍게. 살어 생전 사람대접 단 한 번도 못
받은 즈그 어매를 죽어서 시체나마 제대로 대접 한 번 받게 해 줬어. 신원을 해
준 거이여. 아, 자광이 아니었으먼 누가 언감생심 그런 치상을 바랠 수가 있겄
능가."
"그렁게 우례도 꼭 그런 아들 하나 낳야겄그만잉."
"우리도 그런 귀경 조께 허게."
멍석 위에 앉은 사람들은 어둠 속에 꺼부정하니 앉아 있는 막손이를 돌아보며
말했다. 막손이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어둠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말이사 바로 말이제만, 나는 그렇게 못 살어도, 같은 처지에 남이 그렇게
살어 줬다먼 그것도 속이 티이는 일 아니여? 유자광이 이얘기 아니먼 어디 가서
누구한테 종의 자식이 재상 되얐단 이얘기를 들어? 디지게 뚜드러 맞었단 이얘
기나 듣제."
하지만 영광 유씨는 오대에 걸쳐 이름이 울리게 창성하였으나, 잘못 둔 서손 자
광 이후 참혹하게 몰락하여 그 일족이 모두 숨어 살거나 사방으로 흩어져 찾기
어렵게 되고 말았으니.
남원의 네 대문 중에, 자광이 태어난 누른대 동네는 정승이 났다 하여 입구에
홍예문까지 세웠지만, 종의 자식으로 그만한 광영을 누린 것을 장하다 할 것인
가, 그 한 몸의 역류로 온 집안이 멸문을 당하여 박살이 나고 바람에 티끌같이
흩어지게 된 것을 죄 많다 할 것인가.
임서방이 모깃불을 헤집어 보더니 꺼진 것을 알고는 일어나 발로 밟는다. 모깃
불조차 없는 마당에 별무리가 쏟아진다. 멍석에서 일어선 어서방네가 하늘을 올
려다보았다.
"은하수가 쩌어리 기울어진 것 봉게로 밤도 에지간히 되얐능갑다."
"대체나. 언제 그렇게 되야 부렀네. 노니라고잉."
임서방의 아낙은 한 손에 부채를 든 채로 아이를 추스려 안으며, 어서방네한테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머? 은하수가 요천수라고 그랬어어, 요천수가 은하수라고 그랬어?"
"아이고, 그것도 몰라? 요천수가 은하수."
"오오."
임서방의 아낙 앵두네가 고개를 주억거리자
"오오? 또 저노무 오오."
하며 임서방이 아까 생각이 나는 듯 제 아낙을 쥐어지르는 시늉을 한다. 아낙은
홱 피하는 시늉을 하면서 웃는다.
"아이 왜 그리여? 나는 시방 요천수가 은하수먼 우리는 머잉가, 허고 생각헝마.
은하수 옆으가 저렇게 별이 많응게, 요천수 옆으 사는 우리도 무신 별이나 될랑
가 아요? 저 별들에서 보먼 우리가 별이겄제."
앵두네는 아닌게 아니라 문득 아까, 하늘에 흐르고 있는 은하수가 요천수이고,
자기가 앉아 있는 멍석이 거꾸로 은하수 옆에 뜬 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
다. 그 실없는 생각에 웃음이 나오는 아낙에게 임서방은 툭, 한마디 던졌다.
"별? 우리는 똥이여. 별똥."
그날 밤에 사람들이 빌어 준 대로 우례는 달을 채워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 그
아들 봉출이는 지금 열다섯 살을 먹은 것이다.
15 박모
날이 저문다. 그렇지 않아도 진종일 낮은 잿빛으로 가라앉아 있던 하늘은, 구
름이 가린 볕뉘마저 스러지는 저녁이 되면서, 그 젖은 갈피에 어스름을 머금어
스산하게 어두워지는데. 하늘은 마치 아득히 펼쳐진 전지의 회색 창호지 같았
다. 아니면 담묵을 먹인 거대한 화선지라고나 할까. 검은 새 한 마리 날지 않는
동짓달의 빈 천공에, 노적봉은 메마른 갈필로 끊어질 듯 허옇게 목메이며 스치
어 간 비백의 능선을 굿고 있었다. 이 능선 너머 아숨한 곳으로 드리워진 한지
의 하늘 끝자락은 수묵의 연지에 닿아 있어, 거기 저절로 스며든 어둠이 서서히
그림자 누이며 번져 온다. 소설, 대설이 지난 겨울 저녁, 흐린 하늘의 박모를
노적봉은 제 가슴 쪽으로 지그시 모아들인다. 그 어스름이 검불의 가루같이 내
리며 모여 앉은 바위 벼랑 골짜기와 숨은 계곡 언저리는 어느새 어둠이 고여 검
은 빛으로 우묵하고, 희끗희끗 눈이 묻은 산마루와 흰 빛 씻긴 등성이는 호젓하
게 쓸쓸하여. 검댕이와 적소가 얼룩이 져 어스름에 저무는 산의 모경은 삭연하
기 그지없다.
몇 점 눈발이라도 금방 날릴 것 같은 하늘의 젖은 회색은 그 자락을 더욱 낮추
어 노적봉 능선에 걸리고, 문득 끼친 바람이 성긴 빗자루로 능선의 귀퉁이를 쓸
고 간다. 그 부서진 금으로 어스름은 스며들어, 칼칼하게 목마른 선을 천공에
곧추세우고 있는 붓자국을 적시며, 어르며, 지우는데. 그렇게 살 속으로 스며든
어스름은 어둠으로 가라앉아 산의 몸을 묵묵히 채우니, 산은 하늘보다 더 먼저
두렷하게 검어진다. 그래서 하늘은 오히려 희부츔하게 트이는 것처럼 보인다.
구름빛 무거운 노적봉의 눙선에 길게 걸린 그 하늘은 지폭의 끝자락을, 저 너머
어디 수묵에 담그고 있는 것이 아니라, 노적봉의 벼루에 적시고 있었다.
동짓달의 하늘과 겨울 산의 능선이 서로 그자락을 맞물고 스며들어 번지면서 조
금씩 더 어두워질 때, 산의 뿌리는 땅거미에 희미하게 지워지고, 산마루 등성이
는 전지의 담천에 날개로 떠올랐다.
가앙 가아아앙
그 산의 여윈 가슴 깊은 곳에서 범종 소리가 멀리 울려 왔다. 묵은 기와, 벌어
진 서까래의 고사 호성암에서 울리는 종소리이다. 그것은 골짜기의 마른 나무
형해와 찬 눈 이고 있는 청솔 바람 소리를 물살같이 쓸며 마을로 내려와 갈피
속으로 파고 들었다. 가라앉은 것들을 흔들어 일깨우는 것 같기도 하고, 뒤설레
어 떠 있는 것들을 하염없이 어루만져 쓰다듬는 것도 같은 이 종소리는, 차고
단단하고 날카로운 쇠붙이로 만든 것이련만, 그 쇠가 어찌 녹으면 저와 같이 커
다란 비애의 손으로 사바의 예토를 쓸어 주는 소리가 될 수 있으랴.
종소리는 잿빛으로 울린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단순히 잿빛이거나 회색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쓰다듬어 호히려 저며드는 그 소리에는, 마을의 뒷동산 밤나
무 숲을 지나, 골기와 지붕과 낮은 초가지붕, 그리고 검은 가지와 대나무 스풀
이며 저 아래 구부듬한 적송의 비늘을 에워 감고 있는 저녁 이내 빛깔이 배어
있었다. 구름이 덮어 가린 하늘 뒤에서도 해는 저 혼자서 지고, 그 해가 넘어간
땅 위에는 한동안 흐린 광명의 어스레한 기운이 남아, 운애의 두터운 막 이쪽에
노을로 비친다. 노을은 저녁 이내에 섞이어 엷은 보라를 띄우다가 이윽고 푸릇
한 목빛을 배앝고 있었다. 시리게 흰 옥양목에는 희다 못한 푸른 빛이 어리듯
이, 어스름도 겨우면 드디어 온몸에 형광의 인이 푸르게 돋아나는 것일까. 그
청린은 아주 잠시, 어스름과 어둠의 경계에서 얼비친다. 흐린 날에도.
옛말에, 뼈가 푸른 사람은 죽어서 신이 된다 하는데, 어스름은 어둠에 묻혀 무
엇이 되려고, 이렇게, 순간에 사라질 귀기의 푸른 놀빛을 전신에 뛰우는 것일
까. 치운 날씨 때문에 고샅에는 일찍이 인적이 끊기고, 빈 밭머리와 얼어붙은
논 위로 땅거미는 지는데, 마을의 집집마다에서는 저녁 연기가 뭉글뭉글 피어오
른다. 모연이 흩어지는 허공에 에이게 고적한 청동 빛깔로 습기의 가루처럼 떠
있는 어스름은, 집과, 길과, 나무와, 돌 속으로 스며들어, 그것들의 형상이 가
진 무선을 부비어 지운다. 각 지고 날 섰던 것들의 선명한 부리와, 견고하고 곹
은 것들의 강인한 뼈다귀를 일피로 긋고 있는 금이 스적스적 허물어지며 경계를
푼다. 그리고 그것들은 같은 빛깔 속으로 서로 묻어들어 침윤하다.
가아앙 가아아앙
녹이 돋은 호성암의 저녁 종소리는 문득 잊었던 듯 흥건한 구슬픔으로 멀리서
둥그렇게 울려 왔다. 그것은 누구를 간절히 부르는 울림이었다. 그 종소리에 시
린 지월의 삭풍이 후비는 울음 소리로 허공을 훑고 지나간다. 바람 끼친 어스름
은 창호지 버석이는 소리로 어둡게 얼어든다. 마지막 푸른 비늘이 가시는 어스
름은 어둠과 섞이면서 오류골댁 살구나무 묵은 둥치 검은 가지 끝으로 내려와
앉는다. 마른 잎사귀 하나도 달지 않은 살구나무 고목은 희부윰한 반공중에 굽
이를 튼 아름드리를 거멓게 드러낸 채 빈 가지를 뻗치고 있었다. 나무는, 그 까
칠한 가지가 우거진 그물 사이로 내리는 어스름을 마치 목마른 것처럼 깊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