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던 진료실 밖이 갑자기 수런거렸다. "원장님, 강 할머니 오셨는데요, 너무 숨차 하세요. 먼저 진료를 보셔야 할 것 같아요." 간호사가 급히 들어와 사정을 이야기한다. 나는 어서 들어오시도록 했다.
오래전부터 우리 병원에서 진료받으시는 만성질환 환자다. 할머니 혈압부터 체크했다. 부종이 심했고 울혈로 인해 혈압은 오히려 매우 낮았다. 반면 맥박은 너무 빨리 뛰고 있었다. 이 상태로 여기까지 어떻게 걸어오셨지? 당장 119를 불러야 하나 응급처치부터 해야 하나, 순간 몹시 당황스러웠다.
우선 혈압을 회복하기 위해 주사액을 연결하고 산소를 공급했다. 할머니는 최근 며칠 동안 약은 물론 식사도 거의 못했단다. 가슴 사진과 심전도를 찍어 보니 환자의 지병인 심부전증이 악화된 상태였다. 두세 시간이 지나자 그런대로 환자의 상태는 안정돼 갔다. 다행히 큰 병원 응급실에 이송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한숨 돌렸다. 나는 약을 처방해 드렸지만 이 상태로는 보호자 없이 혼자 집으로 보낼 수가 없었다. 간호사에게 환자 가족에게 연락해 달라고 했다.
"인천 사는 딸이 한 분 있는데요. 전화를 했더니 바빠서 못 온다고 끊어버리네요." 난감해하는 간호사의 대답이다. 할 수 없이 할머니는 오후 늦게까지 병원에 계셨다. 길고 답답한 하루였다. 해거름이 다 돼 병원 문을 닫을 때가 되자 할머니는 "혼자 집에 갈 수 있다"며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셨다. 할머니 집과 방향이 같은 간호사가 부축을 해서 모셨다.
"오늘 눈을 감으면 내일 눈뜨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병원에 또 와서 신세만 지고 가네요." 식사를 잘하시고 약도 꼭 챙겨 드셔야 한다는 당부에 할머니는 옅은 미소와 함께 고마움을 표했다. 밤에 갑자기 현기증이라도 나면 옷부터 갈아입으신다는 분이다. 혹여 못 깨어나면 자식들에게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보이기 싫어서 평상복 차림으로 주무신다고 한다. 미수(米壽)를 바라보는 연세에도 한결같이 맑고 단정한 분이기에 더욱 연민이 느껴졌다.
병원 뒤쪽에 임대 아파트가 있어서 독거노인이 꽤 많이 거주하신다. 거동이 가능한 노인들은 노인정이나 복지관에 다니고 보건소도 정기적으로 방문하신다. 그러나 그분들이 몸이 아플 때 24시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집계된 국내 독거노인은 120만명에 이른다. 그런데 이들의 90% 이상은 실제로는 자녀가 있다고 한다. 함께 살기 불편해서, 자식의 사업이 잘 안 풀려서, 이민을 가서, 이런저런 이유들로 노인만 혼자 살고 있는 것이다. 환자 상태에 관해 의논할 일이 있으니 자녀분의 연락처를 달라고 하면 그냥 웃으며 입을 닫아버린다. 사랑하는 아들딸에게 부담을 줄까 봐 그 자체를 거절하는 분도 있다.
첫댓글 좋은실화 감상합니다.
잘 감상합니다.
고맙습니다
현실의 씁쓸함이네요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잘보고 갑니다.~~^,^~~
잘 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보고 갑니다.
長壽가 福이될수만 없는 하나의 事緣 이네요. 안타갑습니다.
안 늙을수도 없고 참 딱한 우리네 인생살이입니다.
많은 욕심을 버리면 노인들의 삶도 외롭진않은데
세월 앞에 장사 없지요
가슴이 아픔니다.
감사합니다.
공감이 갑니다.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