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 만에 만난 제자들
요즘은 스승도 없고 제자도 없다고 했습니다.
학생들은 배우고 선생님은 가르치는 의무적인 학교생활과 사제 간에 오가는 정이 너무 야박하기만 한 시대를 비꼬아 나온 말인 거 같습니다.
흑백으로 찍힌 한 장의 사진 속에 담겨진 젊은 내 모습이 메일로 왔고 이어 찾아뵙겠다고 조르는 아이들을 2014년 7월 5일 창원 상남동에 있는 일식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습니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 아이들에겐 꽤 부담스러울 법도 한데도 당장 만나자는 걸 내가 좀 한가한 토요일에 날을 잡았습니다.
'그리움'이란 단어는 얼마나 아름다운 말입니까.
'그리움'이란 단어에선 비에 젖은 재스민 꽃향기가 납니다.
고향집의 저녁연기가 보이고 해질녘의 강물 소리가 들립니다.
'보고 싶다는 말'은 또 얼마나 따뜻하고 사랑스럽습니까.
"선생님 우리 언제 만나요. 정말 보고 싶은데요.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데요.
라고 영선이가 전화를 했습니다.
6학년2반 여자 반 모두 58명. 그 중 15명 정도가 틈을 낼 수 있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습니다.
여학생들이라 부드럽고 말 잘 듣고 애교 잘 부리던 그 아이들이 이제 쉰 살의 여인이 되었습니다.
11시 50분경 식당에 들어서니 옹기종기 여학생이 아닌 여인들이 있어 “얘들아”하고 부르니 일제히 일어나 “선생님”하고 외쳤습니다.
알아보겠냐고 하니 선뜻 “선생님 이시잖아요”한다.
날씬했던 내가 뚱뚱하게 변했는데도 지들 선생님이라고 알아보니 고마울 수밖에 없었답니다.
정작 나는 아이들을 알 수가 없었는데 아이들은 알아봅니다.
요리조리 뜯어 맞추다 보니 조금씩 옛 모습이 되살아났습니다.
37년 전의 모습 그대로인 아이들도 있고 많이 달라진 모습도 보입니다. 수줍어하기만 했던 지성이는 예쁘게 변했습니다. 부끄럼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수다를 떨어댑니다.
야외에서 자주 학습을 했던 게 참으로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고 합니다.
"선생님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이 너무 좋아요. 우리들 모두 선생님을 연인으로 생각했어요.
지금도 안늦다고 농담으로 던져주기도 했습니다.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나봅니다. 37년이 그렇게 긴 시간인 가봅니다.
중간에 띄엄띄엄 만났으면 이토록 생소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내 마음은 아직 20대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은데 말이다. 아이들이 변했으니 내가 청년인 것 같은 착각입니다.
그 시간들을 되짚어보며 지성이가 내민 사진 한 장을 바라보았습니다.
사진에서는 전혀 이름도 모르겠고, 얼굴마저 기억에서 어렴풋한 아이들입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더 마음을 주지 못해 그런지도 모르겠다며 속으로는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통영에서 동피랑 벽화를 그린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서양화가 숙희
창원에서 모임 장소를 물색한다고 고생한 수자
경기도에서 한달음에 달려 온 양수
고성에서 열혈적인 삶을 사는 은숙이
지금은 수다쟁이로 변한 부끄러움 쟁이 지성이
제주도에서 농장을 꾸려나가는 영란이
밀양 무안에서 역시 농장주의 안주인 한선이
통영을 지키며 TV에서 수화로 통화를 하는 영선이
늦게 도착한 부산에서 사업한다는 춘단이
모두 아름답게 자라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에 역시 스승의 길을 걸은 보람이 일었습니다.
내가 이 아이들의 연모의 대상이었다니 정말 두근거리는 일입니다.
선물까지 준비해서 손에 쥐어주니 고마움에 나도 모르게 뭉클해짐을 알았습니다.
영원히 나에게 되돌아오지 않을 37년 전 나를 발견하는 감격이 있었고 오랜 시간 추억을 간직해온 아이들의 마음이 무척이나 고마웠습니다.
"선생님, 제가 꼭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 세 사람이 있었는데 그 중의 한 명이 선생님이에요."
"정말? “
너무 오랜 세월이 흘러 서먹서먹할까 생각했는데 만감이 교차하고 ‘스승의 은혜’ 노래와 함께 안겨진 꽃다발 속으로 스며드는 정감으로 나를 통영 산양의 어린 시절로 되돌려 놓았습니다.
제자를 가르쳤다는 보람과 함께 한편으로 제자가 스승을 능가한다는 후생가외(後生可畏)라는 말이 떠오르고 가슴깊이 스며오는 꽃향기처럼 나를 즐겁게 만들었습니다.
경험도 철학도 제대로 잡혀져 있지 않은 그 시절엔 형편없는 교사였을 텐데.
보잘 것 없는 선생의 작은 마음의 일면들을 고스란히 간직해 준 데에 큰 선물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변한 선생님을 변함없이 즐거이 맞아주고 그 때 그 마음으로 대해주어서 고마웠습니다.
나의 오래된 시간들의 작은 기억들을 놓칠세라 사진들을 내 카메라로 다시 담아두었습니다.
마음은 훈훈해졌습니다. 밝게 자라서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제자들에서 보았습니다.
더욱 많은 것들을 누리고, 행복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내게 주어진 아이들, 한 교실에서 지냈던 아이들을 떠올렸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나는 여전히 부족한 사람이고 더 나아진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아이들에게 좀 더 마음을 주지 못하는 나를 되돌아보았습니다.
지나고 나면 더 따스하게 아이들을 품어주지도 못하고, 진지하게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려주지도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사실 지금의 아이들은 예전과 비교해서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요즘 아이들에겐 나의 작은 마음이나 베풂 들이 너무도 작게 여겨질 것 같고 내가 주는 것들이 아이들에게 소중하게 간직될 거라는 착각도 점차 옅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댓가에 길들여진 때문인지 종종 몇 아이들은 보상을 요구하기도 하는 요즘 아이들에 비해 얼마나 순수하게 자란 아이들인지 모릅니다.
좁다란 나의 마음은 더욱 좁아져 그만 아이들을 사랑할 힘을 잃어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종종 기대합니다.
그래도 누군가는 보잘것없더라도 선생의 마음을 알아주겠지.
마음으로 던진 나의 말 한마디, 마음 한 조각 건져 기억해주는 아이가 있겠지.
나와 함께 지내며 즐거워하는 아이가 있겠지.
다가 아니어도 좋아. 단 몇 명이라도 나와의 시간들에
의미를 담아주는 아이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하고 오히려 감사해야할지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현명한 사람은 늘 배우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고
가장 겸손한 사람은 개구리가 되어서도 올챙이 적 시절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가장 넉넉한 사람은 자기한테 주어진 몫에 대하여 불평불만이 없는 사람입니다.
첫댓글 축하드립니다.
저도 글과 사진을 보면서 흐뭇하게 웃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관심있게 봐 주셔서
사진속의 넉넉하신 미소속에
성실하신 모습이 보이십니다..
얼마나 흐믓하셨을지
제가 더 신이나지 뭡니까 ?
갈수록 스승역할도 버겁다 하시는 데
정말 좋은일 많이
잘하셨습니다..
선생님의 노고는 아무리 되풀이 감사해도
부족한것은 사실입니다..
고맙습니다. 외길을 걸어오면서 제자들이 잊지않고 불러줌에
보람을 느낍니다.
가치기준을 어디에 두던
사람사는 세상에서
사람만큼 더 중요한 것이 어디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