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10. 28. 큐티
누가복음 8:40 ~ 48
예수님의 옷에 손 댄 여자
관찰 :
1) 거라사에서 예수님이 돌아오심
- 40절. “예수께서 돌아오시매 무리가 환영하니 이는 다 기다렸음이러라”
a. 예수님이 거라사에서 돌아오시자 “무리가 주님을 기다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볼 때, 자신을 추종하는 많은 무리들이 있었음에도 주님은 거라사의 광인들을 만나러 갔다 오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많은 무리가 예수님과 그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시 말하면 거라사에서 귀신들린 광인을 만나신 것은 의도적이셨다는 것입니다. 거라사의 이방인이던 귀신들린 자를 위해서 예수님은 일하신 것입니다.
b. 또한 거라사의 광인을 치유하신 예수님이 오셔서 자신들을 위하여 일하여 주시기를 기대하는 것들이 있었다는 것을 또한 알게 되는 말씀입니다.
2) 죽어가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
- 41절. "이에 회당장인 아이로라 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
a. 당시의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 제자장 그룹 모두가 예수에 대해서 반대적인 입장을 견지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관리이면서 회당장인 야이로가 예수님께 호의를 베풀어도 구설수에 오를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b. 그러나 야이로는 예수님께 딸의 중병에서, 그 아이의 죽음에서 구원을 베푸시길 간구하고 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체면을 다 내려놓고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리어 자신의 집에 오실 것을 간구한 것입니다. 딸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자신의 체면보다 우선임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 42절. “이는 자기에게 열두 살 된 외딸이 있어 죽어감이러라 예수꼐서 가실 때에 무리가 밀려들더라”
a. 그의 딸이 마태복음에서는 방금 죽었다고 표현되고, 다른 본문에서는 죽게되었다(막 5:23), 열 두 살 된 딸이 죽어가더라(눅 8:42)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12년을 앓아 온 딸이 이제 거의 사경을 헤매고 있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b. 죽은 것과 일반인 상황을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모든 노력을 다 기울였지만 당시의 의술로는 소망이 없고, 오직 소망은 예수님 뿐인 상황이었습니다.
c. 예수님이 그 집에 도착했을 때 이미 피리 부는 자들, 떠드는 무리들이 있었다는 것은 야이로의 딸이 죽을 것을 예상하고 이미 장례치를 준비를 다 하고 있던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즉 이 아이가 갑자기 죽은 것이 아니라 오래 앓았고, 이제는 손 쓸 도리없이 죽을 것이라는 것이 모두에게 너무나 확실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정황을 말하고 있습니다.
3) 열 두 해 혈루증 앓는 여인
- 43절 ~ 44절. “이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옷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a. 많은 무리들이 회당장 야이로의 집으로 예수님을 따라서 몰려가던 상황이었습니다. 많은 죄인들과 세리들, 세례 요한의 제자들, 바리새인들, 예수님의 제자들이 엉켜서 사경을 헤매는 야이로의 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긴박한 상황에서 엉켜서 이동하는 중이었습니다.
b. 이 여인은 의도성을 가지고 예수님의 뒤로 접근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옷깃을 ‘믿음으로’ 몰래 만졌습니다.
c. 이 여인은 부인병의 일종인 만성자궁출혈병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야이로의 딸이 열두 해 살아오면서 시름시름 앓아왔듯이 이 여인은 이 혈루증으로 죽음 같은 질병의 고난 가운데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 결혼 했다면 남편과 잠자리를 할 수 없었기에, 또한 자녀를 출산할 수 없기에 버림받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여인이었습니다. 그 고난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으로 취급받지 못하는 사정이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d. 원래 이 여인은 레위기의 유출병의 규례에 의하면 다른 사람을 접촉해서는 안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여인이 다른 사람을 만지면 그 사람이 부정하게 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만지는 것은 매우 악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예수님을 따라와서 의도적으로 옷깃을 만졌습니다. 그 이유는 이 여인에게 예수님은 자신의 질병을 낫게 해 주시고 구원해 주실 것을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예수님을 부정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기에 본인으로 예수님을 더럽히는 악한 행동일 될 것이었습니다.
e. 이 일로 하나의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이 여인으로 인해 야이로의 집으로 가는 일정이 지체되어 예수님이 야이로의 집에 도착하기 전에 야이로의 딸이 그 사이에 진짜로 죽게 된 것입니다.
4) 혈루증 여인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
- 45절 ~ 4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하시니 다 아니라 할 때에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무리가 밀려들어 미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 하신대”
a. 주님은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조절하시는 분이십니다. 비인격적으로 그냥 스치기만 해도 예수님도 모르게 질병이 치유되는, 그런 기계적인 역사가 일어나도록 일하시는 것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의 의지가 있어야만 예수님의 통치가 일어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 47절 ~48절. “여자가 스스로 숨기지 못할 줄 알고 떨며 나아와 엎드리어 그 손 댄 이유와 곧 나은 것을 모든 사람 앞에서 말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
a. 예수님의 반응에 깜짝 놀라고 두려워하고 있을 여인에게 예수님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b. 예수님이 보시는 것은 여인의 괘씸한 행동이 아니라 낫고자 하는 여인의 믿음이었습니다. 주님은 그것으로 도리어 이 여인을 칭찬하시고 혈루증의 근원을 깨끗이 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구원으로 표현하셨습니다. 여인은 그 즉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가르침 :
1) 주님은 자신이 다가간 이들 뿐 아니라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들도 모두 구원해주시는 분이십니다.
2) 야이로의 딸이 살아나는 것과 혈루병 여인이 구원받는 상황에서 중요한 공통점은 믿음입니다. 주님은 야이로가 믿음이 떨어지려고 할 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50) 하시면서 믿음을 유지하라고 권고해 주셨습니다. 혈루증 여인에게도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주님께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3) 누가는 왜 열두 해 혈루증 앓는 여인과 열두 해 죽음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아이를 대조해서 기록을 하고 있을까? 질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며, 바람과 바다도 순종케 하시는 분이 영의 세계도 통치하시고, 죄사함의 권세가 있으심을 누가는 이미 설명했습니다. 이제 누가는 예수님이 질병과 죽음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이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왔을 때 깨끗케 해 주시고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심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죄인의 죄를 사하시는 그리스도의 권세가 죄의 더러움을 씻어 정결케 하시는 것과 죽은 자를 살리시는 것을 포함하는 중대한 권세라는 사실을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4) 예수님의 죄 사함의 권세야말로 하나님 아들로서의 권세 가운데 가장 크고 중대한 권세임을 우리에게 알려주시고자 누가는 누누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영향을 받은 누가가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이 귀한 관점을 견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적용 :
1) 주님 앞에 나아가는 자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옷깃을 만졌고, 스쳤지만, 믿음으로 그 옷깃을 만진 것은 혈루병 여인 뿐이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이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을 명심해야 합니다. 나의 주님에 대한 자세가 그래야 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나를 통하여 보다 영향력 있는 지도자로 세우시고, 주님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보다 영향력 있게 분명히 사용하실 것을 믿습니다. 무엇보다 내가 주님을 더 깊이 사랑하고 주님을 닮아가는 존재가 되도록 주님이 이끌어 주실 것을 더 믿어야 할 것입니다.
2) 주님은 실로 죄 사함의 총체적은 은혜를 베푸시는 권세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하루의 또 이어지는 시간 속에서 나의 구원자 되신 주님을 나를 통하여 은혜가 드러나는 일이 있게 되기를 주님께 간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