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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그럴리가 있나.
[총통]kweassa 추천 0 조회 746 09.05.25 02:04 댓글 17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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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5.25 03:56

    첫댓글 정설로 받아 들여지지 않은데는 다 이유가 있었군요 좋은글 고맙습니다. 근초고왕의 마한정복설이 무너졌다는건 무슨 소리죠?

  • 작성자 09.05.25 11:13

    ↑↑ http://orumi.egloos.com/214221

  • 09.05.25 12:35

    그런데 백제의 요서경략시기를 광개토대왕이 깡패짓하던 그 시기로 바로잡는건 약간 무리가 있는듯 싶네요. "고구려가 요동을 뺏으니까 낙랑(중국애들이 백제와 낙랑을 흔히 혼동하니 백제로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애들도 진평군을 가져갔다" 라고 양직공도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게 고구려와 백제가 시간대를 약속해서 5분 간격으로 할리는 없을테고, 길게 보자면 1~2년의 시간간격이 아니라 20~30 간격일수도 있는 것이거든요. 확실히 백제는 광개토대왕한테 굴복하고 난 뒤로도 계속 고구려에게 저항을 해 왔고

  • 09.05.25 12:52

    후대 왕들도 외교에 힘을 쏟아부으면서 대외관계 개선에 노력했고(그당시 배띄워서 사신 보내는것도 엄청난 일일겁니다), 개로왕도 고구려의 필살 라이트훅에 당해서 그렇지, 참살 이전에는 도성 정비와 거대한 토목공사를 여럿 시행하며 국력을 과시하는 치적(?)을 남긴것을 보니 광개토대왕의 정벌이 개로왕 죽음 이후 문주왕이 웅진으로 천도하면서 궁성도 제대로 짓지 못하고 빌빌거렸던 정도는 아니었던것 같습니다. 물론 개로왕대까지는 70년이 지난 시간이지만 말입니다.

  • 09.05.25 12:51

    게다가 광개토대왕 이후 후연은 확실하게 정변에 내분에 나라 말아먹기 스킬트리를 착실하게 타고 있는데다 후연이 망하고 북위가 후연이 지배하던 일대를 홀라당 간단하게 편입했을리는 없을 것이니, 만약 백제가 요서를 경략했다면, 구이신왕과 개로왕대 사이, 그리고 더 가까이 가자면 후연멸망 이후 10년 이내에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그리고 상당한 규모의 영토일지는 미슷헤리지만 북조 사서에 아무런 내용도 없는것을 보니 (있다는 전제하에) 북위가 볼때 별로 신경이 안쓰이는 지역, 아니면 백제가 영유한 후 친선도모를 위해 반환했을 가능성도 있겠죠.

  • 09.05.25 13:04

    물론 관련 유물이 지역에서 나오지 않는 데다가, 진평군은 어디인지(한조에는 진평군이 있긴 합니다만 그게 남북조까지 유래되진 못하고 완전 내륙 노른자땅이라=_=), 그리고 그 역사적 의의를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는 도통 미스테리입니다. 게다가 고구려가 중국내 세력과 요동을 주거니 받거니 한것도 사실이니 "백제가 언제 요서로 진출했을까요?"도 추정이 어렵고, 낙랑을 그냥 낙랑군으로 보자면 양직공도에서 어떤 의도로 백제국사쪽에 (백제아해들이랑 하등 상관이 없는) 고구려와 낙랑군을 같이 기입했는지도 아리송하니 당췌 끝까지 수렁속으로 빠져드는 문제이지 말입니다.

  • 09.05.26 03:23

    음. 이런 반박 자료도 올려주시고...잘 읽었습니다.

  • 애초에 반박할 가치조차 없는 주장이었어요.

  • 작성자 09.05.26 13:05

    원래 카페 방침은 환Q들은 상대조차 안하고 씨를 말려버린다..는 것이지만, 원문을 올려주신 분이나 Highly 님의 경우에는 골수 환Q라기 보다는 환Q적인 것에 '혹하는' 단계에 있는 정도라고 판단되어 따로 답글을 작성한 것입니다.

  • 작성자 09.05.26 13:06

    구제할 바 없이 넘어가버린 놈들은 상대조차 안하겠지만, 아직 완전히 넘어가지 않은 분들은 정성을 다해 진실을 알려주고 구제할 수 있도록 노력함이 당연한 것이겠지용.

  • 09.05.26 14:24

    광개토대왕때 두들겨맞은 백제긴 하지만 개로왕때도 제법 치고 올라가 예성강선까지는 다시 수복을 했다더군요. 그러나 해안가 각 방어선 복구가 안되고, 북한강-남한강 상류지역의 토착세력에 대한 영향력 회복도 안되 고구려는 예성강 라인까지 둘러쳐 놓은 백제 방어선을 그냥 무시하고 우회해 한성을 공략했다고 들었습니다.

  • 09.05.26 23:09

    Temuchin/ 저 네이트 글의 원작자로서(bnbm6이라는 분은 누구신지 모르겠습니다만) 제 생각을 말씀을 드리자면, 일단 후연이 망한 뒤에 그 영토는 북연에 승계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북위가 이 땅을 점거하기까지 여러 세력이 난립해서 백제도 한 몫 낄 수 있는 것 같은 그런 여지는 없었다고 여겨집니다. 북연 정권이 아예 망할 때 까지 기다린다면 너무 시간차가 길어지는데다, 그 때 진은 이미 망했으므로 진세라던가, 진말이라고도 할 수가 없어져 버립니다.

  • 09.05.26 23:47

    아, 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북연 정권이 망했을때 아마 난립했을까? 였습니다. 북연 멸망과 진조 멸망은 20년 내외로 완투쓰리로 같이 나가 떨어지는데, 제 생각엔 그것을 통틀어 진말이라 서술했을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유물이 없는점이나 북조 기록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점을 보면 뭐 이것저것을 먼저 가정한 후의 추측일뿐 무게가 실리는건 아니지요. 유물은 그렇다 치고 북조 사서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것은 데미지가 크지 말입니다.

  • 09.05.26 23:49

    원작자분이라고 하셨는데, 제 개인적인 의문점은 왜 양직공도 백제국사편에서 고구려와 '낙랑' 이라고 했는지 궁금합니다. 이미 백제라는 명칭으로 국제사회에서 불리는데, 어찌 그당시 (대방과 함께 흔히 붙는 백제의 책봉지이긴 합니다만 백제가 복속한적이 없고 오히려 고구려가 넉아웃시킨)낙랑을 백제와 혼동할지, 그리고 혼동이 아니라면 왜 백제와 전혀 상관없는 고구려와 낙랑을 백제국사편에 같이 기입했는지도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 그정도로 쓴 사람이라면 공부도 많이 했을것이고 국제사회 일도 빠삭할텐데 바로 옆동네인 백제와 낙랑을 혼동하는 쪼다짓을 해버리니;;

  • 09.05.27 00:29

    Temuchin /(1)엄연히 진이 망한 뒤이므로 진말이라고 쓸 수는 없습니다.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 작성자 09.05.27 00:44

    -_-a 어익후.. 저 bnbm6 이라는 사람이 쇼님 글을 무단도용 한 것이였군요... 잽싸게 원저자를 수정하겠심더.

  • 09.05.27 00:46

    Temuchin/(2)그 당시 남쪽 사람들은, 한반도의 정세에 대해 뭔가 잘못된 정보랄까, 인상이랄까, 그런 것을 갖고 있었던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수 있는데, 위에 제시한 진서 간문제기, 양서 제이전 신라, 그리고 건강실록의 기록이 어느 정도는 그 실상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사료에서 외국에 관한 기록은, 중국과 직접 교섭한 내용의 경우에는 사료적 가치가 높지만 그 나라의 내부 사정 같은 문제에 있어서는 종종 오류가 나타납니다. 이런 것은 당시의 교통 사정이나 통신 기술에 의해 정보력에 한계가 주어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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