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5일 초대
한 지인이 나라에서 특별하게 관리하는 숲을 다녀왔는데 황홀했다고 했다. 그곳은 사람의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하며 수십 년 동안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놓아둔 숲이다. 사전 예약도 안 되고 그날 거기에 온 사람 중 선착순으로 몇 명만 안내자를 따라 구경할 수 있는 곳이다. 정말 참 부러웠다. 사람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고 오직 하늘과 땅 그리고 시간이 만들어놓은 작품을 보다니. 그 숲은 하느님의 원시적인 손길을 가장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곳일 거다.
어떤 잔칫집에서 예수님과 한 상에 앉은 이가 말했다. “하느님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사람은 행복합니다(루카 14,15).” 음식이 꽤 푸짐하게 차려지고 맛도 있었나 보다. 그 당시 먹고 사는 생활 환경을 생각하면 그렇게 맛있고 귀한 음식을 먹을 기회를 얻는 사람은 극히 적었을 거다. 그 숲을 구경했던 그 지인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 사람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하느님 나라가 아니라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완전한 나라를 상상했을 거다. 그런 나라는 유토피아처럼 그저 상상 속에나 있고, 인류 역사가 끝나는 날까지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 것이고,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니 그 나라는 하늘에 있다. 그 나라를 한 사람이 땅으로 가져왔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순하고 고분고분하고 평화로운 사람은 아니었다. 악령을 쫓아내는 모습을 보면 아주 담대하고 용감한 분이었고, 바리사이나 율법 학자들과 정면으로 대립하셨으니 강성 진보고, 하느님 말씀은 한 점 한 획도 바뀌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셨으니 지독한 보수다. 거기에 인간은 가질 수 없는 신비로운 능력과 수천 명이 따라다닐 정도로 카리스마가 넘치는 분이었다. 그런 인격과 재능이면 요즘 말로 큰 기업 총수는 말할 것 없고 대통령이 되고도 남았을 거다. 그런데 그분은 몇몇 권력자들의 음모에 처형당하셨다.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으시고 마치 털을 깎이는 어미 양처럼 그 불의한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이셨다. 그분은 우리 사람은 알 수 없는 어떤 것을 보고 계셨다. 그것이 하늘나라고,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신 하느님이셨다. 세상에서 보다 많은 사람을 이롭게 하는 거보다 죄인으로 죽더라도 하느님 뜻을 따르는 게 그분에게는 더 중요했고 또 그것이 그분이 세상에서 사시는 유일한 목적이었다.
우리는 모두 그 나라로 초대를 받았다. 하느님은 당신 나라가 사람들로 가득 차기를 바라신다. 오늘 예수님 말씀에서 그 초대를 정중하게 거절하는 이유는 악하거나 너무 세속적이라고 비난할 것들이 아니다. 새 사업을 막 시작해서 바쁘고, 새 차를 마련했으니 한 번 몰아봐야 하고, 공장에 새 기계를 들여놨으니 돌려봐야 하고, 신혼여행 가야 하고 또 새 가정을 꾸몄으니 그 잔치에 갈 수 없었다(루카 14,18-20). 눈이 부시게 푸른 하늘, 눈물이 저절로 흐르게 하는 붉은 저녁노을, 향수 냄새를 부끄럽게 하는 아침 숲 향기, 이런 걸 만드신 분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어쩌다 보니 사느라고 바빠서 이런 분이 나를 초대했다는 사실을 잊고 지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그분을 마주 뵈면 그 후회와 괴로움이 얼마나 클까.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쓰레기라고 했고(필리 3,8), 위대한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환시로 하느님을 뵌 후에 그분에 비하면 자기 작품이 지푸라기 하나도 안 된다고 하며 저술 작업을 멈췄다. 초대받았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 어느 날 성체조배 중에 천사가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주 만물을 지어내신 분이 이런 일 하나 못하실 거 같으냐?’ 성체성사 교리를 알지만 마음은 뜨겁지 않았고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빵이 주님이 되게 하시고, 저처럼 쓸모없는 죄인도 주님 일을 하게 하십니다. 먹고 사는 일, 선교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왜 사는지 잊지 않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수시로 이 이콘 앞에서 기도하면서 하느님의 초대를 잊지 않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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