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국전쟁 발발 63주년이다. 박명림 교수의 말마따나 한국전쟁은 "세계시민전쟁이자 내전화한 국제전이었기 때문에 한국민들의 피해와 비극은 끝없이 커졌고 한국의 평화와 통일의 길은 아직도 멀리 있다."
우리 가계도 한국전쟁의 참화를 고스란히 받았다. 무엇보다도 53년 7월 정전협정을 앞두고 금화지구 전투에서 포로로 잡혀가 수십년을 탄광노동자로 살아온 큰아버지와 그 가족이 북한에 있다.
그러나, 그 당시 할아버지는 큰아버지가 금화지구 전투에서 전사했다는 통보를 접하고, 받은 위로금을 통음해서 모두 소진한 후 밭두렁을 아랫목 삼아 주무셨다고 한다.
큰아버지가 생존해 계시다는 소식은 소련이 해체된 직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날아 들었다. 큰아버지께서 회갑을 맞아 정년 퇴임한 후 고향에 가서 일가들을 보고 싶다고 매일 하소연하면서 우셨다며, 건설기술자로 6개월간 러시아로 파견 나간 큰사촌이 고향마을 이장 앞으로 옆서를 보내왔다.
옆서는 아버지 기제사 날 우체통 깊숙히 꽃혀 있던 것을 내가 우연히(어쩌면 필연일지도...) 발견했고, 알아보니 도착한지 열흘 쯤 됐는데, 동네 사정을 잘 아는 우체부가 우리집에 배달하고 간 것이었다.
이후 6개월내에 1번씩의 서신왕래가 있었다. 큰 사촌은 답신에서 우리가 보내 준 가족사진 중 큰아버지는 할아버지 모습과 흡사하고, 형제들은 평소 큰아버지가 세세히 묘사한 모습과 똑같다며 매우 좋아했다.
그 뒤로는 큰사촌이 북한으로 귀국했기 때문에 서신왕래가 두절되어 큰아버지와 그 가족들의 생사를 알지 못한다. 94년 7월 김일성이 죽었고, 그 이듬해에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어 굶어 죽는 이들이 속출했다고 한다. 아버지 세대는 80전후인데, 이산의 세월만 하염없이 흘러 가고 있다.
첫댓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6.25동란으로 국군이 14만, 미군이 4만 합이 18만이 사망하였고, 민간인이 36만여명, 실향민 200만을 합하면 우리들 모두 전장의 희생자일 뿐입니다. 전쟁은 종식되어야 하고 더 나이드시기 전에 이산가족의 조금이라도 더 빨리 아픔을 해소하는 시기가 어서 왔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8촌 고모뻘 되시는 분이 이화여전을 다니다 남북되어 황해도에서 도여성위원장인가 하는 것 때문에 연좌제에 묶여 75년전까지 일가친척이 모두 해외는 물론 국영기업에 얼씬도 못했지요.
안타까운 사연 잘 읽었습니다. 좋은 날이 어서 오면 좋겠지요.
민초들의 슬픔...
유난히 올해는 전쟁의 아픔이 더 진하게 느껴집니다.ㅠ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