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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집중은 전쟁이다!”
탁월하게 산만하고 유난하게 집중한 사람들의 이야기
산만함은 현대인의 문제만이 아님을 밝히는 책. ‘집중의 선배’인 중세 수도자들은 우리보다 한발 앞서 산만함을 상대해왔다. 그들은 집중을 구원의 문제로까지 여겼다. 당연히 목숨을 걸다시피 이 문제에 몰두했으니, 깊은 좌절과 찰나의 성공이 반복되는 지난한 과정이었다. 인류의 영원한 맞수를 대하는 태도로서 그들의 꺾이지 않는 마음은 시대를 초월한다.
👨🏫 저자 소개
제이미 크라이너
미국 조지아대학교의 역사학 교수다. 중세 초기의 생활사를 주로 연구하는데, 당대인들이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상호작용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고 극복했는지에 관심이 많다. 아울러 오래전부터 ‘집중’을 삶의 화두로 삼아왔다. 학부생 시절 겨우겨우 짬을 내 참여한 클라리넷 수업의 강사가 해준 말이 그 계기였다. “딱 두 시간만 집중해 연습하면 충분합니다.”
이 책은 얼핏 동떨어져 보이는 두 주제, ‘중세’와 ‘집중’을 연결한다. 여느 때처럼 중세의 바다를 누비던 저자는, 현대인의 ‘파리 떼’인 SNS와 유튜브가 없던 당시에도 집중은 어려운 문제였음을 깨닫는다. 특히 가장 고요한 삶을 살았을 것으로 생각되는 수도자들조차 평생 산만함에 시달렸고, 그래서 각종 집중법을 개발했다!
저자는 우리와 같은 문제를 앞서 겪은 ‘선배’들의 지혜와 태도에 주목한다. “수 세기에 걸친 그들의 분투와 성공담은 경고이자 안내자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그러니 자꾸 산만해져 고민이라면 이 책을 ‘딱 두 시간만’ 펼쳐 보자. 출간 직후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뉴요커》 등 유수의 언론에서 추천한 이 책을 통해, 집중의 다음 스텝을 밟게 될 것이다.
📜 목차
머리말
프롤로그│가장 고요한 곳에서 끊임없이 흔들린 사람들
원치 않는 생각으로 굴러떨어지다│“모든 사악함의 핵심은 방황하는 생각”│내부에 도사린 적│산만함의 징후, 호기심│악마 때문인가, 의지 탓인가│근원적 분열과 오염된 마음│수도자의 탄생│출가와 고행부터 명상과 메타인지까지
1장 세상: 세상을 끊어내는 끊임없는 과정
평생을 바칠 첫걸음│가장 쉽지만 가장 어려운 일│소유냐 집중이냐, 그것이 문제로다│“수도자의 사랑은 수도실에만 있으니”│머물거나 떠돌거나│고수는 환경을 따지지 않는다│사회 안에서 사회와 씨름할 것│때로는 도움이 필요하다│누구나 변할 수 있다
2장 공동체: 말은 홀로 달리지 않는다
은수자부터 SNS까지, 어떤 기만의 역사│분리된 채 연결된 공동체│단순하게 함께하기│마음을 다스리는 육체노동│“누구나 군중 속에서 기도할 수 있다”│지도자의 역할│자신을 통제하거나 서로를 감시하거나│약이 되는 고난, 독이 되는 고난
3장 몸: 몸이 고요하지 않으면 마음이 고요할 수 없다
범죄 파트너이자 구도 파트너인 몸│몸단장과 산만함의 관계│몸이 아닌 열정을 죽일 것│천 가지 수면법│포기할 수 없는 침대│성욕, 그 지독한 동반자│“천국에 가기 위해 스스로 거세한 남자들”│폭풍의 눈은 고요하다│부른 배는 마음을 짓누른다│즐기는 것이 아니라 연료를 채우는 것│금식의 두 얼굴
4장 책: 무엇을 읽느냐보다는 어떻게 읽느냐의 문제
책을 개발하고 실험하고 퍼트리다│읽으면 읽을수록 산만해지는 이유│내면화의 힘│쇠처럼 단단한 독서법│읽는 동시에 쓰기│집중을 돕는 텍스트 디자인│더 많은 책, 더 다양한 독서, 더 깊은 이해│형식이 메시지를 강화한다
5장 기억: 수동적 기억과 능동적 몰입
감각과 기억의 관계│육체적 상상력을 자극하라│기억의 지름길이 되는 이미지│승천의 사다리와 여섯 날개 달린 천사│현대에도 유효한 중세 천년의 몰입법, 명상│상호 참조와 조합의 기술│방황함으로써 명상하기│개인적 통찰을 돕는 집단적 노력│마음이 원하는 것│“속히 나를 도우소서”
6장 마음: 생각을 생각하는 메타인지
생각을 듣고 조사하고 살피는 일│알고리즘 이전 시대의 분별력│“그 생각이 나를 괴롭힌다”│생각을 가두는 마음속의 울타리│자아성찰과 자아망각│따라서 죽음을 생각할 것│미시적인 동시에 거시적인 시야│집중의 궁극적 상태│예상치 못한 명료함│생각이 존재하지 않는 곳│집중이라는 창조적 파괴 행위
에필로그│또다시 산만해진 사람들을 위해
인류의 영원한 문제, 산만함│집중의 천년 고수들조차│그러니 함께 맞서라│끊임없이 시도하는 태도
감사의 말
주
📖 책 속으로
산만함은 현대 세계와 경험에 국한되지 않는다. 산만함에 대한 우려도 마찬가지다. 신경과학자 애덤 개절리(Adam Gazzaley)와 심리학자 래리 D. 로즌(Larry D. Rosen)이 말했듯이, 우리에겐 “고대의 뇌(ancient brain)”가 있다. 그래서 산만함의 신경학적 역학은 공통된 조상에 의해 우리에게도, 근대 이전의 수도자들에게도 똑같이 부여되었다.
---「프롤로그」중에서
어떤 공동체는 물건에 ‘내 것(mine)’이라는 소유대명사를 쓰지 말라고 수도자들에게 가르쳤다. 심지어 의복마저도 공유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다른 공동체는 수도자들에게 의복을 배정해주었고, 시리아에선 자기 물건에 이름을 써놓도록 허용한 곳도 있었다. 일례로 갈리아의 하마게(Hamage)수도원 소속 여성 수도자들은 음료수 잔에 문구를, 특히 적어도 한 명은 대문자로 자기 이름 ‘오길드(AUGHILDE)’를 새겨 넣었다.
---「1장 세상」중에서
일부 은수자는 동굴이나 텐트, 심지어 허허벌판에서 잤다. 마케도니우스(Macedonius)는 어디를 가든 땅에 구멍을 뚫고 사는 것을 선호해 ‘구덩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다른 은수자들은 마을 변두리, 교회나 수도원의 탑, 빈 수조의 바닥에 거주했다. 심지어 음식물을 제공받을 도르래가 달린 기둥 꼭대기에서도 살았다. (…) 나일강을 기준으로 룩소르(Luxor) 바로 건너편에 있는 서부 테베에서는 프랑주 말고도 파라오 무덤과 고대의 여러 안치소를 수도원으로 개조해 사용하는 수도자가 많았다.
---「1장 세상」중에서
(수도자들의) 엄격한 일과는 농담 소재로 쓰일 만큼 유명했다. 일례로 5세기에 베이루트의 한 법학도가 신앙생활과 업무를 병행할 수 있도록 완벽하게 짜인 일정을 제시하자, 동료 법학도는 “설마 나를 수도자로 만들려는 건 아니지!”라고 비꼬았다.
---「2장 공동체」중에서
5세기, 또는 6세기 초에 수도원장에게 순종하면 위안을 얻는다고 생각한 노바투스(Novatus)라는 라틴 설교자가 한 수도공동체에 이를 적용하려고 시도했다. (…) 또한 납득이 잘 안 되는 명령이라도 묵묵히 따른 이야기를 공유하며 순종을 옹호하려 애썼다. 사막 교부인 마르코(Mark)에 관한 이야기를 예로 들면, 스승인 실바누스(Silvanus)가 멧돼지를 보고 들소라고 하자 그는 순순히 동의했다. 또 리코폴리스의 요한(John of Lycopolis)이 땅에 죽은 나뭇가지를 꽂고 물을 주라고 하자, 그의 제자는 순순히 물을 주었다.
---「2장 공동체」중에서
어떤 수도자는 전쟁마저 불사할 각오로 덤볐다. 사막 교부인 도로테오스(Dorotheos)는 자기 몸에 대해 “몸이 나를 죽이고, 내가 몸을 죽인다”라고 말했다. 그의 운명론적 견해를 공유하는 듯한 수도자들의 기상천외한 이야기가 나돌았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등 잔인한 방법으로 속죄했다. 하나님의 노예가 되겠다는 정신으로 스스로 낙인을 찍었고, 밧줄이나 체인을 살이 파일 만큼 칭칭 감았으며, 작은 우리에 갇혔다.
---「3장 몸」중에서
일부 수도자는 거세까지 하면서 논쟁을 유발하기도 했다. 그들은 〈마태복음〉 19장 12절에서 영감을 얻었는데, 여기엔 그리스도가 “천국에 가기 위해 스스로 거세한 남자들”을 칭찬했다고 나와 있다. 그들은 또 정자가 부족하면 성욕이 고갈된다는 갈레노스(Galenos)파의 의학 이론을 따르기도 하고, 거세하면 신체가 죄를 짓지 않게 된다는 금욕주의자들의 속설에 이끌리기도 했다. 가령 신체 일부가 “당신을 무절제한 상태로 이끈다면, 전체를 망치느니 그 부위를 잘라낸 채 절제하며 사는 게 낫다.” 이처럼 거세는 수도자를 지옥에 떨어뜨릴 수도 있는 산만함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3장 몸」중에서
수도자들은 또 책의 여백에 메모하는 식으로 독서에 몰두했다. 그들이 지루하거나 산만해져서 그렇게 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때로는 진짜로 그렇기도 했다. 특히 아일랜드의 필경사들은 책 내용과 상관없는 글을 끼적이곤 했다. 일부는 수도자였고 상당수는 전문직 종사자였는데, 바깥 날씨나 새들에 대해 적기도 하고, 춥다거나 아프다거나 숙취에 시달린다는 둥 신변잡기를 적기도 했다.
---「4장 책」중에서
산만함을 다스리려면 책을 더 많이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현대의 비평가들은 그 옛날 집중하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갖가지 편집 기술을 고안했던 수도자들의 노고를 잊지 말아야 한다. 수도자들은 레이아웃과 본문 구성의 조정을 넘어, 천천히 읽기와 함께 읽기, 반복 읽기 등 기술이 따라잡을 수 없는 독서법도 개발했다.
---「4장 책」중에서
천사의 여섯 날개에는 각각 특정한 개수(흔히 다섯 개에서 일곱 개 사이)의 깃털이 달려 있었는데, 깃털마다 더 세부적인 특징이 부여되기도 했다. (…) 천사의 날개들은 각각 고백, 참회, 육신의 정화, 마음의 순결, 이웃에 대한 사랑, 하나님에 대한 사랑 등 영적 정화를 위한 수행과 연결되었다. 자연스레 각 날개에 달린 깃털은 그 하위 주제를 할당받았다. 가령 육신의 정화와 관련된 날개의 경우, 깃털은 오감의 억제를 상징했다.
---「5장 기억」중에서
서양의 기독교 수도자들은 구조화된 분석 방식으로서 명상을 이해했다. 그들에게 명상은 오늘날 학자들이 지시 기법(directive technique)과 주제 구조(thematic structure)라고 부르는 것들을 독특하게 조합하는 활동이었다. (…) 어떤 개념을 명상하기 위해, 즉 그것이 무엇인지, 또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하기 위해, 수도자들은 관련 자료를 찾고자 자신의 기억을 더듬었다. 그런 다음 연상을 바탕으로 다른 기억을, 또 다른 기억을 더듬었다. 그렇게 기억 덩어리를 점점 더 키우면 편협한 시각이 아니라 훨씬 더 폭넓은 관점에서 판단할 수 있었다.
---「5장 기억」중에서
홍해와 페르시아만 주변의 수도자들은 한 사막 교부에 관한 이야기를 즐겨 했다. 그는 자기 생각을 날마다 추적하기 위해 바구니 두 개를 사용했는데,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오른쪽 바구니에 돌을 넣고 나쁜 생각이 떠오르면 왼쪽 바구니에 돌을 넣었다. 저녁때까지 나쁜 생각 쪽 바구니가 좋은 생각 쪽 바구니보다 많이 차면, 저녁 식사를 거르는 식으로 자신을 벌했다.
---「6장 마음」중에서
이 상태에선 육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지므로 수도자 자신의 제한된 자아감(sense of self)도 사라졌다. 즉 인간을 제약하는 한계가 모두 사라졌다. (…) 그런 상태를 실제로 경험한 수도자들은 자신을 잊었다고 증언했다.
---「6장 마음」중에서
수도자들은 투쟁 과정에서 서로 지켜주는 법을 알고 있었다. 아울러 마음의 변화에 매우 낙관적이라 온갖 교훈을 따를 때도, 심지어 산만함이 결코 사라질 것 같지 않은 상황에서도 계속해서 교훈을 찾았다.
---「에필로그」중에서
🖋 출판사 서평
★ 집중에 대한 한 차원 높은 이해 _ [뉴욕타임스] ★
“인류는 단 한 번도 완벽히 집중해본 적이 없다!”
결코 완성될 수 없는 집중의 기술 대신
평생 가는 집중의 태도를 단련한
중세 수도자들의 조용한 분투기
전 세계적으로 ‘집중’이 화두다. 점점 복잡해지는 사회 때문이든, 쉴 새 없이 알람을 울려대는 스마트폰 때문이든 우리는 자주 집중에 실패한다. 그 원인에 대한 분석은 물론이고, 문제 해결을 위한 조언도 다양하지만, 결론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5년, 10년, 또는 50년 전보다 요즘 들어 더 산만해졌다고” 느낀다.
역사학자인 제이미 크라이너에 따르면, 1500년 전의 중세인들도 산만함에 시달렸다. 심지어 수도자들도 예외는 아니었으니, 그들은 가장 고요한 곳에서조차 끊임없이 흔들렸다! 한마디로 “산만함은 현대 세계와 경험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 현상을 신경과학과 심리학에선 “고대의 뇌”라 부르는데, 문제가 시대를 불문한다면 그 해답도 시대를 불문할 테다(19쪽).
사실 집중은 우리보다 수도자들에게 더 중요한 일이었다. 그들은 산만함을 “사악함의 핵심”이자 “악마의 꼬드김”으로 여겨 경계했다. 몇몇은 잠깐의 졸음조차 악마의 손길이 닿은 탓이라며 몸서리쳤다(25쪽). 하여 수도자들은 역사상 그 누구보다 집중에 진심이었다. 경전을 읽으며 정신을 깨우는 얌전한 시도부터, ‘채찍질’이나 ‘거세’ 같은 기상천외한 고행까지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책은 이 흥미진진한 분투기로 가득하다. 유럽의 여러 수도원은 물론이고, 교황청의 바티칸도서관 수장고까지 뒤진 저자의 집중력과 집요함이 빛을 발한 결과다.
수도자들의 노력은 헛수고로 그치지 않았다. 당대에 이미 집중의 고수들로 칭송받았고, 거리 두기에서 메타인지로 이어지는 꽤 현대적인 6가지 집중법을 정립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수도자들의 유산에 힘입어 산만함을 끝장낼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저자는 “(그들이) 특별한 속성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라며, 결국 중요한 건 ‘태도’라고 답한다. 즉 산만함은 당신 혼자만의 문제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다른 누군가가 해결해줄 수도 없다. 그러니 SNS를 끊고 유튜브를 지우는 한편 수도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7세기의 유명한 비유처럼 산만함의 “영원한 불길”을 지나면서도 쓰러지지 않는 단단한 태도를 얻게 될 것이다.
“수도자들은 왜 사다리를 올랐을까?”
방황하는 마음을 잠재울 중세 천년의 지혜
수도자들은 산만함을 이야기하며 ‘방황’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지나치게 관심을 끄는 것들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는 것. “갈수록 쇄도하는 정보”, “감시자본주의” 등을 산만함의 주요 원인으로 꼽는 현대에도 이는 유효한 진단이다(5쪽). 이러한 방황을 끝내고자 수도자들은 개인과 공동체 모두에 적절한 도구를 개발했으니, 이를 ‘집중의 사다리’라 한다.
[거리 두기: 평생을 바칠 첫걸음]
집중의 사다리는 여섯 개의 가로대로 구성되는데, 그중 첫 번째가 거리 두기다. 곧 나를 산만케 하는 모든 것과 작별하는 일이다. 최근 유행하는 ‘디지털 디톡스’가 대표적이다. SNS상의 넘치는 관계를 정리하거나, 스마트폰을 멀리하는 일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수도자들은 더욱 멀리 나아갔다. 우선 재산을 포기했다. 어떤 이들은 ‘내 것(mine)’이라는 표현조차 쓰지 않았다(44~46쪽). 재산의 포기는 가족의 부양을 신경 쓰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했으니, 인간관계도 정리되었다(41~44쪽). 그런데도 만족하지 못한 수도자들은 수 미터 높이의 탑 위로 기어올라가 독존의 상태를 완성했다! 5세기에 활동한 시메온의 탑은 2미터에서 시작해 20미터까지 높아졌다(59~60쪽, 118~120쪽). 그에게 중요한 것은 탑 자체가 아니라 ‘계속해서’ 오르는 행위였다. 즉 산만함과의 싸움은 중단될 수 없었다.
[함께하기: 격려와 감시의 공동체]
반면에 어떤 수도자들은 수도원에서 함께하기를 택했다. 같은 목표를 향해 정진하는 이들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격려와 위로를 얻었다. 이는 낯선 풍경이 아니다. 잠시나마 함께 수행하는 ‘템플 스테이’부터 묵묵히 공부하는 모습을 공유하는 ‘공부 브이로그’까지, 함께하기의 현대적 버전을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다만 집중은 “영생과 죽음의 문제”인 만큼, 당근뿐 아니라 채찍도 필요했다. 하여 수도자들은 빈틈없이 짜인 일과가 잘 지켜지는지 서로를 감시했다. 그들의 일과는 평범한 시간표의 차원을 넘어 삶의 모든 것을 규정했다. 자는 법과 독서하는 법(81쪽), 기도하는 법(85~87쪽)은 물론이고, 심지어 생각하는 법(89쪽)과 말하는 법(93~94쪽)까지 정해져 있었다. 특히 육체노동은 종류별·구성원별·계절별 등으로 세분화되었는데, 수도원에서 기르는 개조차 할 일을 부여받았다(82~85쪽).
[심신 수행: 욕구를 다루는 법]
수도자들은 평생 함께할 수밖에 없는 동료인 몸과 마음의 조화에 특히 신경 썼다. 이는 현대인들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인 웰니스와 일맥상통한다. 그 구체적인 방법 또한 식이요법부터 수면까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106쪽).
문제는 불쑥 튀어나오는 욕구였다. 1500년 전에는 이를 산만함의 원인으로 여겨 억눌렀다. 씻지 않는 것이 가장 흔한 시도였다. 사막 교모인 실바니아는 평생 몸에 물을 묻히지 않았다(111~113쪽). 푹 자지 않으려고 서 있거나 의자에 앉아 밤을 보낸 수도자들은 당대의 스타였다(116~121쪽). 허기로 산만해지지 않을 정도로만, 마치 연료를 채우듯 먹는 건 수행의 기본이었다(131~133쪽). 이 모든 걸 마스터한 수도자도 성욕은 버거웠다. 개중 너무나 절박한 이들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으니, 스스로 거세했다(126~129쪽).
[독서: 악마의 공격 맞받아치기]
우리는 으레 독서가 집중력을 높인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독서가 인지 능력을 관장하는 전두엽과 해마의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신경과학 연구가 많다. 1500년 전의 수도자들 또한 특유의 통찰을 발휘해 독서가 집중력을 끌어올린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수도자들은 한시도 책을 놓지 않았다. 직접 책을 읽을 수 없을 때는 당번을 정해 대신 낭독하도록 했다(151쪽). 이 중세의 오디오북이 중요했던 이유는 악마의 공격이 쉬지 않았기 때문이다. 악마는 얼음처럼 차가운 손으로 수도자의 눈과 머리를 쓰다듬어 잠에 빠지게 하고(25쪽), 과거의 화려했던 생활을 문득 떠오르게 하며(152쪽) 집중을 방해했다. 수도자는 책, 특히 성경에서 그 공격을 맞받아칠 구절들을 끊임없이 찾았다. 이 일에 너무나 집중한 나머지 “시력을 잃을 뻔”한 건 기본이고(170쪽), 어느 수도자는 책상 앞에 앉은 채로 며칠 밤을 새우다가 죽고 말아 그 자세 그대로 묻혔다(151~153쪽). 그런데도 부족함을 느낀 수도자들은 쓰고 편집하고 만드는 일까지 아우르며 다양한 방식으로 책과 만났다. 이 과정에서 각종 형식의 주(158~161쪽), 타이포그래피와 인포그래픽, 레이아웃(162~177쪽) 등을 개발했으니, 오늘날의 모든 저자와 편집자, 독자는 수도자들에게 빚진 셈이다.
[명상과 메타인지: 어질러진 마음의 방 정리하기]
독서는 분명 집중에 도움이 되었으나,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요즘 말로 ‘정보 과부화’가 수도자들을 괴롭혔다. 그들의 마음은 평생 쌓인 온갖 기억과 책에서 얻은 지식으로 산만했다. 정기적으로 이 생각들을 정돈할 필요가 있었으니, 그 방법으로 개발된 것이 바로 명상이다. 이때 명상은 신비체험 따위가 아니라, 마인드맵 작성에 가까웠다. 수도자들은 종이 위에, 또는 머릿속에 “여섯 날개를 한 천사”나 거대한 “방주” 모양의 마인드맵을 그린 다음, 그 각 깃털과 각 방에 생각들을 분류해 넣었다(195쪽, 212~215쪽).
명상에서 더 나아간 것이 마지막 여섯 번째 가로대인 메타인지다. 현대 심리학에 따르면 메타인지란 생각을 ‘판단’하는 법이다. 이와 비슷하게 수도자들은 생각을 “분별”하는 것으로 이해했다(224~228쪽). 즉 나쁜 생각을 걸러내 상상 속의 울타리 안에 가둬놓고, 좋은 생각만 바라보려 애썼다(231~233쪽). 생각은 부지불식간에 떠오르므로, 분별 작업은 깨어 있는 내내 계속되었다. 이처럼 생각 자체에 몰두할수록 수도자들은 세상을 잊고 자기 자신을 잊어, 종국에는 집중하는 상태만이 남았다(244~246쪽).
“흔들릴 순 있어도 넘어지진 않는다”
쇠처럼 단단한 태도로서의 집중
순수한 집중에 도달한 수도자들은 기쁨과 실망을 동시에 맛봤다. 평생의 목표를 이루었지만, 그 상태가 오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도로 섬세한 과정인 데다가, 역설적이게도 자신이 집중하고 있음을 의식하는 것 자체가 집중을 깨뜨렸다. 하여 제아무리 훈련된 수도자라도 삶의 대부분은 “파리 떼, 불한당, 폭풍우 같은 산만함” 가운데 있을 수밖에 없었다.
현대인은 부실한 직장 문화, 과도한 경쟁, 무엇보다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테크놀로지에서 산만함의 원인을 찾는다. 하지만 중세 천년을 빼곡히 채운 집중 분투기는 산만함이 “인간 경험의 고유한 특징”임을 알려준다. 신에게 집중하지 못하면 지옥에 떨어진다는 “종말론적 절박함”으로 각오를 다진 수도자들조차 산만함을 끝내 정복하지 못한 이유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찌해야 할까. 1500년 전에도 불가능했던 집중이, 그때보다 훨씬 소란스러운 오늘날 가능할까. 저자는 이에 대해 7세기에 활동한 아나스타시오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녀를 돌보느라 항상 정신없다고 푸념하는 어느 부모에게 그는 “어디서 사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답했다(260~216쪽, 263쪽). 결국 산만함과의 싸움에서 중요한 것은 조건이나 기술이 아니라, “산만함이 결코 사라질 것 같지 않은 상황에서도” 집중하려는 태도다. 쉬지 않고 집중의 탑을 기어오르는 이 “마음의 습관”이야말로, 또다시 원치 않은 생각으로 굴러떨어진 우리에게 수도자들이 건네는 지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