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격 - 안도현
숲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때는 몰랐다.
나무와 나무가 모여
어깨와 어깨를 대고
숲을 이루는 줄 알았다.
나무와 나무 사이
넓거나 좁은 간격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벌어질 대로 최대한 벌어진,
한데 붙으면 도저히 안 되는,
기어이 떨어져 서 있어야 하는,
나무와 나무 사이
그 간격과 간격이 모여
울울창창 숲을 이룬다는 것을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숲에 들어가 보고서야 알았다.
이 시는 불에 타 버린 숲을 보며 느낀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나무와 나무 사이의 거리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노래한 작품이다. 이 시의 화자는 숲이 울창했을 때와 불에 타 버린 후에 나무와 나무 사이의 거리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독백적 어조로 이야기한다. 1~7행까지는 울창한 숲을 원경으로 바라보았을 때의 인식을 다루었다. 그 때까지 시적 화자는 나무들이 빈틈없이 모여서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8~15행에서는 이러한 시적 화자의 인식에 결정적 변화가 나타나게 된다. 여기서 시적 화자는 불에 타 버린 숲의 한가운데 들어와 보고 나서 숲을 이루는 것이 나무와 나무 사이의 적당한 거리에 있었음을 발견한다. 그것은 인간의 삶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이나 우정은 맹목적인 밀착(집착)이 아니라, 때로는 한 발짝 떨어진 위치에서 관조할 수 있는 여유와 조급해하지 않는 기다림의 거리를 유지할 때 완성되는 것이다. 이처럼 시적 화자는 숲을 이루는 나무들의 모습에서 인간 사회의 바람직한 관계를 발견해 내고 있다.
나무와 나무 사이의 적당한 간격은,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 한 발짝 떨어진 위치에서 관조할 수 있는 여유를 의미한다. 나와 부모, 나와 형제, 나와 친구, 나와 선후배가 모두 아름다운 간격이 있어야 한다. 늘 가깝다는 이유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는가. 그러나 조금 넓게 생각해 보면 관조하는 여유는 비단 사람을 대할 때만 필요한 자세가 아니다. 권력이나 재물, 또는 이루고 싶은 꿈과 이상에 대해서도 조급해하지 않는 기다림의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즉, 어떤 대상을 추구하건 맹목적인 자세를 지녀서는 안 된다. 모든 대상에 대해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지고 기다림의 거리를 유지할 때 행복하고 평안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