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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자녀들이 교회 안에서 필히 참석해야 할 만찬이 있다. 이 만찬은 주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던 마지막 날 저녁에 세우신 것이다. 만찬을 세우신 그다음날에 그 분은 십자가에 못박히셨다. 이것은 주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던 마지막 날 저녁에 드신 식사이다.
이 최후의 만찬은 어떤 것인가 ?여기에 이야기가 있다. 유대인의 유월절이라는 절기는 유대인들이 애굽에서 종 노릇 할 때에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셨음을 기념하는 절기 이다. 하나님은 어떻게 그들을 구원하셨는가? 하나님은 그들에게 각 집에서 양 한 마리를 준비하여 정월 14일 저녁에 그것을 잡고 그 피를 문설 주와 좌우 인 방에 바르고 양의 고기를 무교병과 쓴 나물로 더불어 먹으라고 명하였다. 유대인들이 애굽에서 나온 후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기념으로 매년 이 절기를 지키라고 하셨다.( 출 12 : 1 ) 그러므로 유대인의 시각에서 유월절은 그들이 구원받은 것에 대한 회상 이다.
주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시던 그날 저녁은 바로 유월절 양을 먹을 때였다. 주 예수님은 그 분의 제자들과 유월절을 잡수신 후에 곧이어 그분의 만찬을 세우셨다. 여기서 주님은 의도적으로 그분의 만찬을 먹는 것은 마치 유대인들이 유월절을 먹는 것과 같음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우리가 이 두 가지를 대조해보자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벗어나도록 구원받았기 때문에 유월절을 지키고 하나님의 자녀들도 세상의 죄악에서 벗어나도록 구원받았기 때문에 주님의 만찬을 먹는다. 이스라엘인에게 어린양이 있었듯이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어린양 이신주 예수님이 있다. 오늘날 우리는 이미 세상의 죄악과 사탄의 권세로부터 해방되어 하나님께로 완전히 돌아갔기 때문에 유대인이 유월절 어린 양을 먹듯 우리는 주님의 만찬을 먹어야 한다.
주 예수님은 절기를 지내신 후에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 마 26 : 26~28 )고 하셨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세우신 만찬이다.
만찬이란 무엇인가 ? 만찬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온 가족이 오손도손 저녁을 먹는 것이다. 이는 조반을 먹는 것과 같지 않고 바삐 먹는 점심과도 같지 않으며 안식의 냄새 가 충만하고 안락중에 먹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주님의 만찬을 먹을 때에도 분주하거나 이것저것 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에서 안식을 누려야 한다 .
주님의 만찬의 의미
( 1 )주님을 기념 함
주님은 왜 우리에게 이렇게 하라고 하셨는가 ? 주님은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 고전 11 : 24 )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만찬의 첫 번째 의미는 주님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주님은 우리가 그 분을 잊어버릴 것을 아신다. 우리가 얻은 은혜가 크고 얻은 구속이 놀랍지만 경험은 우리에게 우리가 그 분을 잊어버린다는 것을 알려준다. 새로 믿은 형제자매들은 갓 구원을 받았지만 조심하지 않으면 주님의 구원을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주님은 특별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 하셨다 .주님이 우리에게 그 분을 기념하라고 요구하신 것은 단지 우리가 잊어버리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은 우리의 기념이 필요하시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해서 주님은 우리가 그 분을 잊어버리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그 분은 우리보다 얼마나 더 뛰어나신 분인지 모른다. 그분은 위대하신 주이시므로 우리가 기념을 하든 안 하든 그것에 개의치 않으실 수 있겠지만. 그 분은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주님이 그분 자신을 낮추시어 우리의 기념을 얻고자 하신다는 것이다. 그분은 자신을 낮추시어 구주로 오셨고 또한 그 분 자신을 낮추시어 우리의 마음을 얻고자 하신다. 주님이 우리에게 그 분을 기념하라고 하신 것은 그 분의 사랑의 요구이다. 만일 우리가 주님을 자주 기념하지 않고 주님의 구속을 우리 앞에 두지 않는다면 우리는 매우 쉽게 세상의 죄악과 섞여 지고 또 하나님의 자녀 가운데에서 다툼이 유발됨으로써 큰 손실을 입기 때문에 주님은 우리에게 그분을 기념하라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 분을 기념한다면 우리는 유익을 얻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은혜 받는 방법 중에 하나로서 그것을 통해 우리는 주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
당신이 주님을 기념할 때 얻는 가장 큰 유익은 세상의 죄의 능력이 당신 몸에서 세력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며칠 간격으로 당신이 어떻게 주님을 영접한 것과 주님이 어떻게 당신을 대신하여 죽으신 것을 기억한다면 당신은 더 이상 세상의 죄악과 섞이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떡을 떼어 주님을 기념 함으로써 얻는 유익 중의 하나이다.
떡을떼어 주님을 기념하는 것의 또 하나의 영적인 의도는 하나님의 자녀들로 하여금 다툼과 분쟁이 없게 하는 것이다. 당신이 어떻게 자신이 은혜를 받고 구원 얻었는가를 생각할 때 다른 형제도 그가 어떻게 은혜를 입고 구원 얻었는가를 생각할 터인데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주 예수께서 당신의 천만 가지 죄를 사해 주신 것을 생각하고 있을 때에 피의 구속함을 받은 다른 형제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어찌 그를 용서하지 않거나 그의 틀린 것을 기억하고 분 파를 일으킬 수 있겠는가 ? 이천년 이래 교회 안의 많은 하나님의 자녀의 다툼은 주님의 만찬의 상 앞에 옴으로써 지나갔다. 심지어 많은 원수 되었던 것이 주의 상 앞에 나옴 으로써 다 지나갔다. 이것은 주님을 기념함은 당신이 어떻게 구원을 얻고 사함받았는가를 기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당신의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하여 주었는데. 당신은 당신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을 만날 때 그를 붙들고 그의 목을 잡아서는 ( 마 18 : 35 )안 된다. 모든 형제자매들은 주님을 기념할 때 자연히 자신의 마음을 넓히게 되고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을 수용하게 되며 또한 주님이 구속하신 모든 사람이 주님의 사랑하는 자임을 보게 된다. 주 안에서는 시기와 분쟁과 정죄함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모여 주님을 기념할 때마다 주님은 다시 한 번 우리에게 그 분의 사랑과 십자가의 역사와. 은혜 입은 모든 사람은 다 주의 사랑하는 자임을 복습 시켜준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셨다. 주님은 당신뿐만 아니라 그 분께 속한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을 버리셨다. 하나님께 속한 모든 사람들이 다 그 분의 사랑하시는 자이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도 당신의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는 당신이 그분의 사랑하는 자를 미워할 수 없기 때문이다.
( 2 )주의 죽으심을 표명함.
주의 만찬에는 또한 두 번째 의미가 있다. 고린도전서 11장26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 ( 표명하는것 )이라 ]
당신이 이렇게 주의 떡을 먹고 주의 잔을 마시는 것은 주의 죽으심을 표명하는 것이다. 표명이라는 말은 [선포]라고 번역할 수도 있는데. 그 뜻은 사람들이 알도록 주의 죽으심을 선포하는 것이다. 주님이 우리에게 그 분의 만찬을 먹으라고 하신 것은 다만 그 분을 기념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그 분의 죽으심을 선포하기 위한 것이다.
이 떡과 잔이 왜 주의 죽으심을 표명하는 것인가? 본래 피는 육신 속에 있다. 피와 살이 갈라졌다는 것은 죽음을 뜻한다. 당신이 이 잔 속에 있는 포도주를 볼 때에 피를 보게 되고 이 떡을 볼 때에 살을 보게 된다. 주님의 피가 한쪽에 있고 주님의 살이 다른 쪽에 있으며 피와 살이 나눠졌다는 것은 주님의 죽으심을 표명한다. 이 떡은 가루가 된 곡물이며 이 잔은 짓눌려 짜진 포도이다. 이것은 여기에 죽음이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주님은 바울을 통하여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의 죽음을 표명하라]고 하셨다. 우리가 가루로 만든 떡을 먹고. 짓눌려 짜진 포도주를 마심은 바로 주의 죽으심을 표명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주 예수님이 이미 이 땅에 계시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십자가의 표시 -떡과 잔은- 여전히 여기 남아 있다. 떡과 잔을 볼 때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의 주님의 죽으심을 본다. 이 십자가의 표시는 주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것을 알려준다. 우리는 이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표명하는 것이니라. ] 주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이 말씀은 실로 우리의 위로이다. 이 말씀이 만찬과 연결되어 언급되었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교회는 한 주 한 주를 거듭하면서. 똑같은 만찬을 2000년간 먹어왔지만 이 만찬은 아직도 마쳐지지 않았다. 우리는 현재까지도 만찬을 계속 먹고 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에 우리는 더 이상 이 만찬을 먹지 않는다. 현재 우리는 그날을 고대하고 있다. 우리가 얼굴을 맞대고 주님을 보게 될 때에 만찬은 지나가게 된다. 우리가 주님을 본 후에는 더 이상 주님을 기념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만찬의 첫 번째 의미는 주님을 기념하는 것이고 두 번째 의미는 주님이 오실 때까지 그 분의 죽으심을 표명하는 것이다. 사람이 주님 자신을 기념할때면 자연스럽게 주의 죽으심을 기념하게 되고 자연히 왕국을 바라보게 된다.
곧 어느 날 주님이 오셔서 그 분에게로 우리를 이끄실 것이다. 십자가는 언제나 우리를 재림과 영광으로 인도 할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기념할 때에는 언제나 머리를 들고 서 [주여 당신의 얼굴 뵙기를 원합니다. 당신의 얼굴을 뵐때에 이 모든 것이 지나갈 것입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주님은 우리가 그 분을 기념하고 그 분의 죽으심을 오실때 까지 선포하기를 원하신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
성경에서 말하는 '주의 만찬'은 복음을 받는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