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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대비해 노아의 방주 짓는 법
2023년 가해 연중 제32주간 금요일
복음: 루카 17,26-37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은 마지막 심판 날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일러주십니다. 마지막 심판 때는 노아의 홍수와 같을 것입니다. 노아처럼 방주를 만들던 사람은 죽음이라는 홍수가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의 삶에 집착하다 결국 홍수를 맞이한 이들은 슬픈 결말을 맞습니다.
이와 같은 이야기가 소돔의 멸망입니다. 소돔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방주를 만드는 이가 있었습니다. 바로 롯입니다. 방주에는 두 천사를 모실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은총과 진리입니다. 은총과 진리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임을 믿게 됩니다. 따라서 소둠의 멸망을 통해 노아의 방주가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됩니다.
이 와중에 방주를 만들지 않는 이가 있었습니다. 멸망한 이들이야 당연하겠지만, 롯의 아내입니다. 롯의 아내는 여전히 세상 것에 집착하고 있었습니다. 하느님 자녀는 세상 것에 집착할 필요가 없는 이들입니다. 물 위를 걷는 이들입니다. 예수님이 돈에 집착하겠습니까, 세상 권력에 집착하겠습니까?
그러면 우리가 방주를 잘 만들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바로 세상 것들에 붙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롯의 아내는 세상 것에 붙들렸습니다. 그래서 소금기둥이 되어버렸습니다. 재물과 쾌락, 명예로부터 자유롭다면 그 사람은 방주에 탄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죽을 때 성 요한 바오로 2세처럼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세요!”라며 주님께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믿음을 키워갑시다. 그리고 그 믿음이 세상 집착으로부터 벗어나게 만드는 믿음이 되게 합시다. 아무리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른다고 할지라도 세상 것들에 휩쓸리고 휘둘린다면 실제로는 구멍이 뚫린 방주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이 굳건한 노아의 방주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배디민턴 안세영 선수는 한 선수에게만 일곱 번을 졌었습니다. 자카르타 아시안 게임 때 단 한 게임을 뛰고 예선 탈락을 했었는데, 자신이 너무 창피하게 여겨졌습니다.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껴졌습니다. 당시 게임이 전혀 되지 않았었고 모든 것을 쏟아부어도 천위페이는 절대 넘을 수 없는 만리장성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안세영 선수에게 좌절을 안겨주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나는 인생에서 실패를 거듭해왔다. 이것이 정확히 내가 성공한 이유다.”
그녀는 “일요일도 운동하겠다”라는 결심을 굳힙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운동했습니다. 그렇게 맞이한 도쿄 올림픽 8강에서 다시 천위페이 선수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또 졌습니다. 이때 안세영 선수가 느낀 감정은 천위페이가 벽과 같았다고 합니다.
포기했을까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레슬링 지옥 훈련도 했고, 약점을 보완하고 강점을 살리는 훈련을 끊임없이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질 수 없겠네!”
그녀는 ‘대각스매싱’이란 기술을 완성하였고 이번엔 자신이 벽과 같은 선수가 되면서 단식과 복식 금메달을 휩쓰는 세계랭킹 1위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천위페이를 경기에서 피하고 싶었을까요? 빨리 만나 자신을 증명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수능 때가 되면 시험이 두려워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수능만 시험일까요? 이 세상 모든 시간은 다 시험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학생 때야 말할 것도 없고, 결혼해서도 그렇고 직장에서도 그렇습니다. 모든 삶이 평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도 그 평가에서 뒤지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시험을 그냥 두려워만 해야 할까요? 어차피 보아야 하는 시험이라면 안세영 선수처럼 시험이 기다려지는 실력을 쌓으면 안 될까요? 노력해서 그 시험과 상관없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 시험은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인생을 평화롭게 살 수 있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은 오히려 시험이 기다려지게 마련입니다. 이 세상 인생을 열심히 산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삶이 막연히 두려워하며 공부하지 않는 학생보다 낫습니다.
“죽음이라는 시험아, 빨리 와라!”
우리 각자는 노아의 방주를 짓는 시험을 앞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노아의 방주가 바로 하느님 자녀라는 믿음, 그래서 물 위를 걸을 수도 있고, 죽어도 영원히 사는 존재라는 믿음임을 알았습니다. 이 믿음을 측정하는 방법은 세상에 어떤 것도 집착하지 않는 것임도 알았습니다. 물 위를 걸을 수 있고 부활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그 믿음이 나의 방주입니다. 그것만 준비되었다면 죽음이란 시험이 기다려질 것입니다. 죽음이라는 유일한 인생의 시험을 앞두고 우리가 할 일은 바로 믿음의 방주를 견고히 짓는 것뿐입니다.
- 전삼용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