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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부터 1860년까지 이탈리아 반도 남부에 있던 왕국.
종종 시칠리아와 정치적으로 연합했다.
시칠리아와 이탈리아 남부에는 원래 비잔틴 제국과 롬바르드족·이슬람교도들이 세력을 떨치고 있었으나, 12세기초 노르만인들이 그곳에 나라를 세웠다. 1130년 루지에로 2세는 노르만인들이 얻었던 땅을 모두 통일하고 시칠리아와 풀리아의 왕을 자칭했다. 처음에는 교황과 신성 로마 황제 둘다 이탈리아 남부에 대한 주권을 주장하며 이 노르만 국가를 놓고 다툼을 벌였다. 12세기말에 들어와 이 왕국은 호엔슈타우펜 왕가 출신 신성 로마 황제들에게 넘어갔다(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은 1198~1250년 시칠리아 왕을 겸한 프리드리히 2세임). 이때 나폴리 왕국은 최고로 번영해 정치적으로는 유럽에서 중앙집권체제를 가장 잘 정비한 국가였으며, 경제적으로는 상업활동중심지이자 주요 곡물생산지였고, 문화적으로는 그리스와 아랍의 문물을 서유럽으로 퍼뜨리는 역할을 했다.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적자(嫡子) 가계가 끊기자 교황은 자신에게 반대하는 왕이 남부 이탈리아를 다스리게 될 것을 두려워해, 프랑스 왕 루이 9세의 형제인 앙주 가문의 샤를을 초청해 나폴리 왕위에 앉혔다(1266). 샤를은 수도를 시칠리아의 팔레르모에서 나폴리로 옮겼는데 이는 자신이 북부 이탈리아에서 구엘프(교황파)의 지도자였기 때문에 그곳을 중시하겠다는 정책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혹한 통치와 과중한 세금 때문에 시칠리아 만종 학살 이 일어났다(→ 색인 : 시칠리아 만종 학살). 그 결과 시칠리아는 본토의 왕국과 정치적으로 분리되었고 스페인의 아라곤 왕국이 시칠리아를 다스리게 되었으며 이 사건은 나폴리와 시칠리아 모두에게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거의 1세기 동안 이어진 앙주 가문과 아라곤 왕국의 투쟁에서 실제로 이긴 쪽은 귀족들이었다. 그들은 양쪽의 왕들에게서 계속 양보를 얻어내 권한을 확대했으며, 무정부 상태가 계속되는 동안 봉건주의는 양쪽 왕국에 확고하게 뿌리를 내렸다.
나폴리 왕국은 로베르토(1309~43 재위) 치세에는 번영을 누리며 이탈리아 문제에서도 주도권을 쥐었으나, 14세기 중반~15세기에는 앙주 가문 안에서 왕위계승을 놓고 싸움이 벌어졌다. 결국 왕국은 1442년 시칠리아를 다스리던 아라곤 왕 알폰소 5세에게 넘어갔고, 1443년에 그는 자신을 '양시칠리아 왕국(시칠리아와 나폴리 왕국)의 왕'이라 불렀으며, 그의 아들과 손자인 페르디난도 1세와 페르디난도 2세도 이 칭호를 썼다. 15세기말에 이르러서도 나폴리 왕국은 여전히 이탈리아를 차지하려는 열강들의 분쟁에 휘말려 있었다. 프랑스 왕 샤를 8세가 1495년 잠깐 통치했고, 1504년 스페인으로 지배권이 넘어가 2세기 동안 스페인이 파견한 총독의 통치를 받았다. 스페인은 이곳에서 세금만 많이 걷었을 뿐 전혀 개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폴리 왕국 경제는 계속 침체했다. 과중한 세금에 분개한 하층 계급과 중간 계급은 1647년 7월 반란을 일으켰으나(마사니엘로의 반란), 귀족들과 스페인 정부는 힘을 합쳐 1648년 이를 진압했다.
스페인 왕위계승전쟁(1701~14) 결과 나폴리 왕국은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로 넘어갔다(얼마 동안 피에몬테가 시칠리아를 다스렸음). 그러나 1734년 스페인의 돈 카를로스 데 보르본 대공(뒤에 카를로스 3세가 됨)에게 정복당한 뒤 나폴리와 시칠리아는 각각 독립 왕국이 되어 스페인의 부르봉 왕가 사람들의 지배를 받았다. 18세기에 들어와 부르봉 왕가 출신 왕들은 계몽주의적 전제정치를 내세워 국가를 근대화하기 위한 개혁을 지지했으나 이러한 개혁은 교회문제에서만 이루어졌다.
나폴레옹이 이탈리아를 지배하게 되자 나폴리 왕국은 파르테노페 공화국으로 개편되었고(1799), 1806년 다시 왕국으로 바뀌어 나폴레옹의 형제인 조제프의 통치를 받다가 1808년부터는 나폴레옹의 처남 조아생 뮈라의 지배를 받았다. 프랑스가 다스리는 동안 나폴리 왕국은 봉건주의를 철폐하고 프랑스와 같은 형태의 법전을 도입하는 등 근대적인 요소를 도입했다. 부르봉 왕가 출신 왕 페르디난도 4세(뒤에 양 시칠리아 왕 페르디난도 1세가 됨)는 2번이나 시칠리아로 도망쳐야 했는데, 그때마다 영국인들의 도움을 받았다.
1815년 왕정복고 뒤에는 양시칠리아 왕국이라는 공식 명칭을 갖고 유럽 보수국가들과 보조를 맞추었다. 왕국의 많은 사람들은 자유주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나, 왕은 절대주의를 더욱더 고수했기 때문에 정치적 충돌을 피할 수 없었다. 1820년 반란이 일어나 국정이 위태롭게 되자 페르디난도 1세는 헌법 제정을 허락해야만 했다. 1848년 페르디난도 2세가 왕위에 있을 때 시칠리아는 독립운동을 벌였다. 왕국의 정치적·경제적 상황이 매우 열악했기 때문에 1860년 주세페 가리발디가 침입해 들어오자 나폴리 왕국은 쉽사리 무너졌고, 나폴리와 시칠리아는 같은 해 10월에 실시한 국민투표 때 북부 이탈리아와의 통합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 지방 나폴리 주의 주도.
로마에서 남동쪽으로 190㎞ 떨어진 이탈리아 반도의 서해안(티레니아 해)에 자리잡고 있다. 거대한 항구도시이자 지적 활동의 중심지이며, 전통적으로 빈곤한 메초조르노(이탈리아 남부지역)의 금융중심지이다. 이곳은 한때 나폴리 왕국과 양시칠리아 왕국의 수도이기도 했다.
나폴리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만의 하나를 끼고 있으며, 이 만의 입구에는 북쪽으로 이스키아 섬과 남쪽으로 카프리 섬이 놓여 있다. 시는 베수비오 산과 캄피플레그레이(플레그레이 벌판) 사이의 구릉에 자리잡고 있다.
전통산업으로는 자기제품·직물·강철 생산이 있으며, 신흥산업으로는 전자공업·정유업·자동차조립공업이 있다. 관광업도 이 지방 경제에서 중요하다.
나폴리의 중심부이자 가장 오래된 구역은 만 옆에 있는 평지와 보메로 고지에서 뻗어내린 능선 동쪽에 있다. 현재의 번화가인 보메로에는 14세기에 지은 산텔모 성(1537~46 재건)이 있어서 동쪽의 구시가와 서쪽의 현대화된 구역을 내려다보고 있다. 구시가에는 중세도시의 좁은 길들이 고대 네아폴리스 양식에 따라 나 있다. 즉 3개의 '데쿠마니'(기준도로)가 동서로 가로지르고(이들은 현재 각각 비아 산 비아조 데이리브라이, 비아 트리부날리, 비아 안티칼리아로 불림), 좁은 길들이 그와 직각을 이루며 항만 쪽으로 내리뻗고 있다. 보메로의 기슭에 있는 키아이아라는 이름의 동네는 예전에 외국인들이 좋아하던 주택지구이다.
옛 네아폴리스가 자리 잡았던 곳에는 대저택·성·교회당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며 도시의 많은 곳에 걸쳐 인공 지하동굴이 있다. 그 이름을 딴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두오모 성당(1294~1323)은 지진으로 크게 부서진 후 대폭 보수되었다. 다른 사적지로 카포디몬테 대저택과, 1279~82년에 피아차델무니치피오 서쪽에 세워져 일명 마스키오 안조이노(앙주 요새)라고도 알려졌고 현재 시청이 들어선 카스텔 누오보, 상점과 사무실이 들어 있는 십자 모양의 갈레리아 움베르토 2세 거리, 성(聖) 토마스 아퀴나스가 공부했고 후세를 가르쳤던 도미니쿠스회 수도원 등이 있다. 이곳에 있는 고등교육기관으로 중요한 곳은 나폴리대학교(1224)·국립역사학연구소 음악학교(1537년부터 있었던 서구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원) 등이다. 이탈리아 최대의 오페라관인 산카를로 극장(1737)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르네상스 시대에 세운 팔라초 쿠오모에는 현재 시립박물관인 가에타노 필란지에리가 들어서 있다. 국립고고학박물관(1586)은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 폐허에서 발굴한 벽화·모자이크·청동작품들과 파르네세의 대리석 수집품을 소장하고 있다. 국립도서관은 파피루스 고문서와 사본들을 보관하고 있다.
나폴리는 로마와 이탈리아 남부지역을 연결하는 철도의 중요한 연결지점이다. 현재의 항만시설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재건되었지만 여객항으로서 차지하던 나폴리의 중요성은 감소되었다. 카포디키노 국제공항이 시 중심부에서 북쪽으로 약 8㎞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 117㎢, 인구 995,171
나폴리 교통-버스, 트램, 지하철, 등산 열차인 푸니콜라레(Funicolare) 등이 운행된다.
주요 버스 터미널은 가리발디 광장으로 R1/R2번 버스는 Dante 광장으로 출발하고, 110번 버스는
Galibaldi 광장에서 Cavour 광장, 고고학박물관을 연결한다. 지하철은 두 개 노선이 운행중이며
나폴리 중앙역 지하에 지하철 역이 있다.
GiraNapoli라 불리는 티켓은 90분 동안 유효하며 0.77유로, 1일권은 2.22유로이다.
버스, 트램, 지하철, 푸니콜라레 승차시 모두 사용할 수 있다.
나폴리
계란성
에트나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