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이미숙
달빛 하얗게 쏟아지는 밤이다. 그 고운 달빛에 끌려 마당으로 나갔
다. 평상에 앉아 하늘을 바라본다. 푸른빛이 감도는 하얀 달빛이 오
늘 따라 유난히 아름답게 보인다. 그것은 낮에 느꼈던 따뜻한 인정 때
문이리라. 한 상자의 고구마를 받아 들며 소박한 사랑을 가슴에 담았
다. 혼자일 때는 힘이 되지 않아도 여러 마음이 함께 할 때 커지는 그
기쁜 순간은 촌부가 흙속에 혼신을 담는것과 무엇이 다르랴. 스승님
의 따뜻한 마음의 배려로 받아온 고구마. 정성들여 깨끗이 씻고 작은
솥에 넣어 불을 당기면서 맛있게 익기를 기다린다. 김이 모락모락 나
는 고구마를 쪼개어 보니 노란속이 입안에 침이 돌게한다.
간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가 가족들과 고구마에 담긴 뜻을 이야
기하며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남아있는 고구마를 잘 보관하기 위해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 놓다가 문득 십여년 전 일들이 생각이나 입가에
미소를 지어본다.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고향으로 돌아와 둥지를 튼지 이
듬해에 작은 묵정밭 하나를 일구게 되었었다. 어우렁더우렁 이웃들
과 함께하던 세월이 영상처럼 펼쳐진다.
바랭이 밭이 되어 있는 묵정밭을 이른 봄부터 손질하면서 서너 이랑
은 고구마를 심으리라 생각하였다.
종자를 하우스 한켠에 묻어 활대를 꽂고 이중으로 비닐을 씌워 싹을
길러서 흙이 보이지 않을 만큼 줄기가 무성해 지는 하지쯤이 되면 밭
이랑을 고루 다듬었다. 그리고 비내린 다음날 그 줄기를 잘라 밑둥에
황토 흙을 발라서 고구마를 심었다.
여러날 몸살을 앓아 잎이 시들시들 하다가도 땅내를 맡으면 이내 줄
기가 푸르게 뻗어 두둑을 덥는다.
흙을 북돋아 주고 김을 매 주며 주렁주렁 많이 안기를 기다리는 시
간들, 모진 비바람도 따가운 뙤약볕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결실의
알맹이를 키워가는 그 흙속의 진실을 누가 알수 있을까. 그렇게 고구
마를 심으며 나는 어머니를 생각했다.
씨앗으로 심긴 모정은 자신의 양분을 줄기와 잎으로 보내면서 시간
이 흐르면 빈 속을 흙속에 모두 내어 놓는다. 그리고 줄기속에 새 생
명을 넘겨주고 토실한 고구마가 많이 키워 자기를 바라는 것만 같다.
끝없이 나누어 주기를 주저하지 않는 어머니 삶처럼, 땅속의 실뿌리
키워가는 고구마. 그뿐이던가. 서리가 내리기전 줄거리를 따서 삶아
말리면 훌륭한 보름나물로 먹을수 있고 앙산한 넝쿨은 소의 여물에 쓰
여진다.
늦가을 고구마를 캐서 지게로 져 내릴때면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쏟
아졌다.
곱게 노을이 물든 아미산 마루를 뒤로하고 비탈길을 넘어질 듯 지고
내려온 고구마를 윗목에 마련해둔 통가리에 채워 넣을 때는 먹지 않아
도 배가 불렀다. 그 흐뭇한 마음이란 촌부가 아니면 느낄수 없는 감
동이리라. 엄동설한 추운 겨울날이면 가마솥 아궁이에 솔잎으로 불을
때서 고구마를 쪄 놓고 이웃을 불렀다. 온돌방 아랫목 담요속에 둘러
앉아 발을 묻고 놋쇠 화로에 담겨진 불씨를 다독이며 시원한 동치미와
더불어 먹던 그 고구마의 맛은 지금도 잊을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이
다. 십여년이 지난 지금 그리움에 나는 가끔씩 그 산을 오른다.
내가 일궈서 고구마를 심던 그 묵정밭은 예전처럼 그대로이다. 그
모습을 보며 산 꼭대기까지 오르내리며 고구마를 가꾸던 일, 수확의 기
쁨으로 힘겨운줄 모르고 지게에 지고 내려오던 내 모습, 인정으로 나
누어 먹을줄 아는 넉넉하던 마음, 그러나 이제는 받으며 깨닫는다.
정성을 묻고 희망을 캐올리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터이지만
그 시절의 인정이 그리운 것은 무엇 때문일까.
심어진 줄기속에 뿌리를 내리고 그 뿌리에 살을 주기까지의 그 보이
지 않는 흙속에 진실을 우리는 모르고 살아간다.
몇푼의 돈만 주면 언제고 사먹을 수 있다는 좁은 생각으로 지난세월
기쁨에 젖었던 감동도 잊고 살아왔다.
땀을 흘리고 정성을 다해 가꾸는 촌부의 마음이 수확을 해 놓고도
넉넉하지 못한 것은 그것에 대한 진실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각박한
현실 때문이 아닐까.
호미에 찍히고 상품으로 내어놓지 못하는 것부터 먹는 것이 촌부의
마음이다.
조금 심어 가족 간식거리로 만족하려는 마음보다 많이 심어 상품으
로 만들려는 작은 소망이리라.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넉넉한 마음을
느낀다.
나누는 기쁨을 깨닫는 인정의 한해.
농사를 지어 놓고도 판로가 없어 애끓이는 촌부의 심안을 헤아리신
스승님의 깊은 뜻을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나도 어엿한 전직 촌부였음을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 왔지 않는가?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신 스승님께 감사 드리는
마음으로 한입 베문 고구마가 유난히 더 달고 맛나다.
땀흘린 촌부의 얼굴에 희망의 미소 띄울 수 있기를, 거칠은 손 마디
마디에 정성을 담아 심고가꾼 고구마이기에 새 천년을 열며 더 많은
인정으로 나눔의 웃음꽃 피어나기를 다시금 되돌아보며 소망하는 시간
이다.
첫댓글 스승님의 깊은 뜻을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나도 어엿한 전직 촌부였음을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 왔지 않는가?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신 스승님께 감사 드리는
마음으로 한입 베문 고구마가 유난히 더 달고 맛나다.
땀흘린 촌부의 얼굴에 희망의 미소 띄울 수 있기를, 거칠은 손 마디
마디에 정성을 담아 심고가꾼 고구마이기에 새 천년을 열며 더 많은
인정으로 나눔의 웃음꽃 피어나기를 다시금 되돌아보며 소망하는 시간
이다.
@그 스승님이 수필반을 지도하시는 교수님이 아닐까
생각하는 아침입니다
잘읽고 갑니다
농사를 지어 놓고도 판로가 없어 애끓이는 촌부의 심안을 헤아리신 스승님의 깊은 뜻을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나도 어엿한 전직 촌부였음을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 왔지 않는가?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신 스승님께 감사 드리는 마음으로 한입 베문 고구마가 유난히 더 달고 맛나다.
땀흘린 촌부의 얼굴에 희망의 미소 띄울 수 있기를, 거칠은 손 마디마디에 정성을 담아 심고가꾼 고구마이기에 새 천년을 열며 더 많은 인정으로 나눔의 웃음꽃 피어나기를 다시금 되돌아보며 소망하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