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숲 사이 천년 고찰 산책, 봉은사
서울 강남 대표사찰로 자리…추사 김정희 현판 등 문화재도 가득
비즈한국 기사 등록 : 2021.05.18.(화) 10:58:50
글 : 구완회 여행작가
[비즈한국] 종교와 상관없이 사찰은 아이와 함께 가볼 만한 곳이다. 무엇보다 우리 역사는 불교를 빼놓고는 이해할 수 없고, 불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찰 방문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석가탄신일을 즈음해서는 특히 그렇다. 우리 사회의 안녕과 개인의 소원을 빌고,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은 덤이다. 코로나19로 장거리 이동이 불안해졌으니, 가까운 곳이라면 더욱 좋겠다. 서울 강남 빌딩숲 속에 자리한 천년 고찰 봉은사는 어떨까.
#도심 속 소나무 숲길 산책
조선 시대의 기본 정책이 숭유억불이었다지만, 왕실은 불당을 짓고 절을 만드는 일에 열심이었다. 신라 시대에 처음 창건된 봉은사 또한 왕실의 지원으로 성장했다. 15세기 연산군 때에 정현왕후가 절을 새로 지으면서 봉은사라는 이름을 붙였고, 16세기 명종 때 수렴청정을 했던 문정왕후는 자신이 총애하던 승려 보우를 봉은사 주지로 앉히면서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후 문정왕후의 뜻에 따라 중종의 왕릉이 봉은사 자리로 옮겨오고, 봉은사는 지금의 자리로 이사하면서 큰 규모로 확장되었다. 삼존불을 봉안한 대웅보전과 관음도량의 중심 관음전, 진여문, 천왕문, 해탈문, 나한전, 심검당, 열반당 등 대규모 건물들이 속속 들어섰다. 문정왕후 사후에는 보우 선사가 제주도로 유배되는 등 봉은사도 내리막길을 걸었지만, 근현대를 거치면서 서울 강남의 대표사찰로 예전의 영화를 되찾았다.
도심 속 빌딩숲 사이에 자리 잡은 봉은사는 여전히 규모가 큰 사찰이다. 정문인 일주문을 지나면 대웅전을 비롯해 10여 동의 크고 작은 건물들이 나오고, 그 뒤로는 23m 높이의 거대한 미륵대불이 사찰 전체를 굽어보고 있다. 밖에서 보기보다 훨씬 규모가 큰데, 안으로 들어갈수록 그 규모를 실감할 수 있다. 절 뒤편의 소나무 숲길은 산책 코스로 아주 훌륭하다. 평일 점심 시간이면 이 길을 산책하는 근처 직장인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복잡한 도심 속에서 이리도 한가로운 숲길이라니, 도심 사찰 봉은사는 도량뿐 아니라 휴식 공간의 역할도 겸하는 듯하다.
#추사의 마지막 작품 ‘판전’
방문자의 눈길을 끄는 건 웅장한 미륵대불이지만, 봉은사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추사 김정희가 세상을 뜨기 3일 전에 썼다는 판전의 현판이다. 얼핏 보면 비뚤배뚤, 도무지 조선 대표 명필의 글씨라고는 믿어지지 않지만, 원래 대가의 작품은 말년으로 가면서 어린아이와 같이 되기도 한단다.
추사의 글씨 말고도 봉은사에는 문화재들이 가득하다. 대웅전에 자리 잡은 목조석가여래 삼불좌상(보물 제1819호)과 고려시대에 제작된 봉은사 청동 은입사 향완(보물 제321호) 등이 대표적이다.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봉은사에서 만들어진 삼불좌상은 조선 후기 최고 조각승으로 손꼽히는 승일 스님의 작품이다. 지금도 봉은사 대웅전에 나란히 앉아 번뇌의 바다에서 신음하는 중생들을 굽어보고 있다. 이 밖에도 조선시대 승과 시험을 치르던 선불당과 장흥사 동종, 영산전 사자도와 신중도 등 수십 점의 문화유산이 서울시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2021년의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봉은사에선 봉축 법요식과 점등식, 문화공연, 영화상영 등 풍성한 행사가 펼쳐진다. 당연히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행사가 진행될 테지만, 그래도 인파가 부담스럽다면 부처님오신날을 지나서 봉은사를 찾는 것도 좋다. 아이와 함께 여유롭게 사찰을 둘러볼 수 있을 것이다.
절 입구에 있는 사천왕상과 부도, 대웅전과 탑을 보면서 아이에게 불교 문화 전반과 그것이 우리 역사에 미친 영향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건 어떨까. 삼국시대에 전래된 불교는 왕권을 강화했고, 백성의 종교가 되었으며, 문화 예술의 발달을 이끌었다는 설명과 함께 말이다. 더불어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종교들이 평화롭게 공존한다는 걸 강조했으면 좋겠다. 지금은 서울시청 앞 광장에 거대한 불탑이 서 있지만, 12월에는 크리스마스 트리로 바뀔 것이다. 앞으로 더 많은 종교가 차별없이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덧붙이도록 하자.
<여행메모>
봉은사
△위치: 서울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
△문의: 02-3218-4800
△이용시간: 일출~일몰, 연중무휴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탐매하기 좋은 봉은사, 명상길까지 걸어 봄(春)직 아니한가!
시민기자 윤혜숙
내 손안에 서울 발행일 2024.03.27. 11:00 수정일 2024.03.27. 14:35
남도에선 하루가 멀다고 봄꽃 소식이 들려온다. 특히 이맘때 지인들이 SNS에서 올리는 홍매화 사진을 보면 마음은 벌써 남도에 가 있다.
하지만 멀리 남도에 가지 않아도 서울에서 봄의 전령사, 홍매화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3월 중 봉은사를 방문하면 된다.
봉은사에서 가장 인기 있는 매화나무를 찾아서
봉은사 가는 길은 9호선 전철을 타고 봉은사역에 내려서 1번 출구로 나오면 된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자리 잡은 절이라 그런지 평일 한낮인데도 봉은사로 향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봉은사에서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일주문’(一柱門)이다. 봉은사에서는 이 문을 ‘진여문’이라 한다. 진여(眞如)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뜻한다. 따라서 진여문에 들어선다는 것은 곧 부처님의 세상에 들어간다는 의미가 있다.
진여문을 지나면 ‘법왕루’(法王樓)가 나온다. 법왕루는 법의 왕, 즉 부처님이 계시는 곳을 말하며, 대웅전과 마주하여 누각으로 세워져 있다. 법왕루를 지나면 3층 석탑이 있는 경내가 나온다.
법왕루를 나오자마자 하늘을 가득 메운 연등이 진풍경을 연출했다. 형형색색 연등 아래 기자도 잠시 멈춰서서 마음속으로 안녕을 기원하며 대웅전으로 향했다.
대웅전에는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이 있다. 조선시대 최고의 조각승인 승일 스님의 손을 거친 삼불좌상은 보물 제1819호로 지정돼 있다. 삼불좌상 모두 조각적으로 우수하고, 발원문을 갖추고 있어 17세기 중후반의 불교 조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성보로 평가받고 있다.
봉은사에서 가장 인기 있는 홍매화는 ‘영각’ 부근에서 만날 수 있다. 대웅전 오른쪽으로 난 좁은 계단을 오르면 ‘영각’이 나타난다. 오늘 봉은사를 방문한 대다수 사람은 홍매화를 구경하러 온 듯, 매화나무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로 인해 사진을 찍는 게 힘들 정도였다.
매화꽃을 자세히 살펴보면 꽃 자체는 여리여리하면서도 화려해 보인다. 모진 추위에도 불구하고 꽃을 피워내기에 강인하고 고고한 자태를 자랑한다. 그런 매화의 매력에 사람들이 끌리나 보다.
홍매화를 구경한 뒤 ‘미륵대불’이 있는 곳으로 갔다. 야외에 모셔둔 거대한 불상이다. 1996년에 완공된 봉은사 성보로서 높이 23m에 이르는 국내 최대 크기의 부처님상이다.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누구든 거대한 불상 앞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경건하게 합장한다.
미륵대불에서 왼쪽으로 가면 ‘판전’이 나온다. 봉은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데다가 판전 편액이 한눈에 봐도 그 글자체가 예사롭지 않다. 아니나 다를까. 추사 김정희 선생이 쓴 마지막 글씨라고 한다. 현재 서울시 유형문화재 84호로 지정돼 있다.
봉은사 경내에 있는 크고 작은 전각 중의 하나이기에 그냥 지나칠 법하나, 봉은사를 방문한 김에 추사 김정희가 쓴 글씨를 찾아보는 것도 봉은사를 관람하는 재미라고 하겠다.
봄꽃 만큼이나 힐링을 선사하는 봉은사 ‘명상길’
이제 봉은사 경내를 둘러봤으니 봉은사 명상길을 걸어야겠다. 봉은사 명상길은 지난 2021년 4월 강남구가 봉은사와 민간 토지 사용 및 조성에 관한 업무협약을 맺고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사찰을 방문하는 신도와 시민들이 산책을 즐기면서 명상뿐만 아니라 도심 숲속에서 휴식과 문화, 관광을 즐길 수 있어 강남의 명소로 부상하고 있다.
사람들로 번잡한 봉은사 경내완 달리 봉은사 명상길은 이름처럼 명상하기 좋았다. 숲길 주위에 듬성듬성한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을 번갈아 보면서 천천히 걷다 보니 이곳이 도심 한복판이라는 사실을 잊을 정도였다. 약 20분 가량 1.1km의 명상길을 걸으면서 한층 자연과 가까워진 듯했다.
지금 봉은사에 가면 홍매화를 볼 수 있다. 곧 산수유꽃도 만개할 테고 목련, 벚꽃도 차례대로 피어날 것이다.
멀리 남도에 가지 못한다면 반나절 시간을 내어 봉은사를 방문하는 것은 어떨까? 봄나들이 삼아 봉은사에서 봄꽃 구경도 하고 명상길도 걸어보자. 새봄, 복잡한 번뇌는 절로 사라지고 따뜻한 마음의 위안을 찾게 될 것이다.
대한불교조계종 봉은사 (서울 강남구 봉은사로 531)
대한불교조계종 봉은사로봉은사는 서울의 중심지인 강남구 삼성동에 자리 잡은 천년고찰이다. 794년 연화국사가 창건하였고 처음엔 견성사라고 하였다. 이후 1498년 성종의 계비 정현왕후가 성종의 능(선릉) 동편에 있던 이 절을 크게 중창하고 절 이름을 봉은사로 바꿨다.
봉은사는 조선조에는 조계종을 대표하는 선종 수사찰로, 근대에는 역경사업과 도제를 양성했던 동국역경원이 세워진 터전이다. 봉은사에는 보물 2점과 성보문화재 40점을 소장하고 있다. 추사 김정희가 쓴 현판이 걸린 판전에는 화엄경, 금강경 등 13가지의 불경 경판 3,479판이 보관되어 있다. 매년 음력 9월 9일에는 사부대중이 함께 경판을 머리에 이고 법성게(불교 경전의 산문 내용을 시의 형태로 되풀이해서 설명한 것)를 독송하면서 법계도를 따라 행진하는 정대불사라는 의식이 행해진다.
오늘날 봉은사는 수행 중심의 사찰 운영으로 새로운 불교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 템플스테이를 비롯한 불교대학, 경전학교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국내외적으로 양질의 한국불교문화를 널리 알리고 있을 뿐 아니라, 사회복지 또한 실현하는 도심 대찰의 위상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 봉은사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