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림으로 우거진 성인봉 산길
전남 광주의 지인 4명을 포함해 아내와 나, 모두 6명이 지난 6월 1일부터 3일까지 울릉도 여행길에 올랐다. 1일 오전 7시 30분에 울진 후포항을 떠난 울릉 썬플라워 크루즈는 159km 거리 바닷길을 4시간 남짓 항해한 끝에 울릉도 사동항에 도착했다 우리 일행은 다시 25인승 관광버스를 타고 도동항으로 이동해 그곳 현지 식당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은 뒤 내수전 전망대를 비롯해 봉래폭포, 촛대 바위 등 관광코스를 돌며 동해東海 망망 바다 한가운데 솟은 사방 100여 리의 아름다운 섬을 구경했다.
울릉도는 오각형 모양의 섬으로서, 동서 길이 93.3km, 남북 길이 34.8km에 달한다.
도동항의 숙박업소에서 첫날 밤을 보내고 이튿날 오전 9시 10분, 씨플라워 쾌속선을 타고 1시간 30여 분 동안 87.4km 거리의 바닷길을 달려 대한민국 영토의 동쪽 끝에 우뚝 서 있는 독도에 도착해 20여 분 동안 갈매기들이 쉴 새 없이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독도의 풍광을 사진에 담은 뒤 다시 그 배를 이용해 사동항으로 돌아왔다.
그곳에서 점심을 먹은 뒤 거북바위-태하 성하 신당-현포 코끼리 바위-천부 송곳봉 성불사-나리분지 등의 관광 명소를 둘러본 다음 도동항의 한 식당에서 함께 저녁 식사를 한 뒤 울릉도에서의 2일차 관광 일정을 마무리했다.
동창들과 뜻밖의 조우
이날 한성중고 동창들 30여 명이 저동항에 도착해 저녁 식사를 마치고 촛대바위 아래 방파제에서 술자리를 즐기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도동항에서 택시를 이용해 저동항으로 가서 동창들과 그 가족들을 만나 함께 술잔을 나누며 밤늦은 시간까지 정겨운 이야기를 나누며 회포를 풀었다.
이튿날 아침, 지정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마친 뒤 택시를 타고 오전 9시 무렵에 KBS 중계소 성인봉 들머리에 도착하니 막 하산한 듯한 등산객 2명이 그곳 주막에서 막걸리를 기울이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정겹게 다가왔다.
등산로 길을 묻는 아내에게 주막집 여주인이 "성인봉 가는 길은 처음 시작 30여 분간 오르막길이어서 다소 숨차기는 하지만 대부분 완만한 경사의 편안한 숲길이므로 모자조차 쓸 필요 없고 명상에 잠겨 걷다 보면 별로 힘든 줄 모를 뿐 아니라 아름답기 그지없어 그런 별천지가 따로 없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런저런 준비를 마치고 오전 9시 30분 산행을 시작했다. 그리 심하지 않은 경사의 산길을 40여 분 오르니 평평한 길이 나오고 그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 20분쯤 뒤에 성인봉 가는 길과 대원사로 내려가는 길의 삼거리 갈림길에 도착해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온갖 희귀식물들로 가득한 산길을 걸었다.
산행객을 괴롭히는 깔때기나 모기가 전혀 어른거리지 않고, 항시 맑은 기운이 감도는, 신비스러운 느낌을 자아내는 숲길을 약 40분쯤 더 걸으니 출발점에서 2.39km, 성인봉까지 남은 거리 1.39km임을 알리는 이정표가 나오고 그 옆에 산행객들에게 휴식과 재충전의 유용한 쉼터인 팔각정이 보인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걸음을 재촉해 오르막길을 오르다가 평평한 길을 걷고 또 오르막 경사로를 오르다가 평평한 길을 걸으며 성인봉을 향해 한껏 마음의 여유를 누리면서 걸은 끝에 마침내 12시 정오에 해발 986.5m 높이의 성인봉 정상에 당도했다.
성인봉 일대에는 섬 노루귀, 섬바디, 우산고로쇠 등 수많은 희귀 식물군이 원시림을 이루는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정상에서 사진도 찍고 두루 사방을 조망하다가 정상부에서 100m 아래에 설치해 놓은 벤치에 앉아 갖고 간 맥주와 간식을 먹은 뒤 그곳에서 만난 울릉도 현지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하산을 시작했다.
나리분지로 가는 길은 시간도 더 많이 걸리고 택시로 더 먼 길을 돌아와야 하는 관계로 처음 출발했던 KBS 중계소로 하산하기로 작정하고 온 길을 되돌아 내려갔다.
모기 등 해충 없는 신령스러운 기운
살균 소독 효과 높은 바다 한가운데 섬의 소금 바람의 영향 때문인지 깔때기나 모기뿐 아니라 다른 벌레들도 거의 보이지 않고 왕복 8.2km의 깊은 산 산행에서 흔히 두세 번은 만나게 되는 뱀들도 일절 눈에 띄지 않았다.
울릉도 성인봉을 위시한 산들이 연출하는 분위기는 이태백이 읊은 대로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의 별천지요, 속진俗塵을 벗어난 선계仙界라는 생각이 든다. 다섯 시간 남짓 성인봉을 오가는 산길을 걸은 산행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선계에서 노닐었던 꿈같은 일로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조선 초기의 문인으로서 사육신死六臣의 한 분인 김시습 선생(1435~1493)께서 언젠가 동해 인근의 금강산에 대해 읊은 시는 울릉도 성인봉의 별천지를 그대로 옮겨놓은 한 폭의 수채화라 하겠다.
두루미 등에 올라 바다 위의 산을 소요하나니
오색구름 사이로 봉래산 궁궐 보이네